인구 1,400만. 대한민국 국민의 1/4 이상이 거주하는 경기도가 최근 제1차 '인구2.0 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인구위기 대응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제1차 '인구2.0 위원회' 현장에서 김동연 도지사는 “임신 전 단계부터 임신기간 중, 출산과 출산 후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해보겠다”며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기도임에도 수장이 직접 인구 감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지방소멸위험지역을 발표하였다. 전체 228개 시군구 중에서 52%인 118곳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나타났다. 이는 급격히 상승하는 고령인구비율과 함께 2022년 기준 0.78명에 불과한 낮은 합계출산율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합계출산율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파악하는데 한계도 있다.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은 살인이라는 범죄행위를 ‘전쟁’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살인이 살인이 아니게 되고, 범죄가 범죄가 아니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쟁은 신성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대지가 피를 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말짱한 거짓이다. 대지는 하늘을 향해 하천에 댈 물을 구하고, 하늘의 구름에서 맑은 이슬을 내려줄 것을 구하지, 피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신에 의해, 심지어는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저주받고 있는 행위이다. (알프렛 드 비니) 전쟁이란 모든 사람들과 모든 백성들이 그 뒤에 숨어서, 세계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온갖 잔인무도함을 드러내는 휘장 같은 것이다. (스프링필드) 예수는 마음으로 짓는 죄 또한 행위로 인한 죄와 동일함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수백 수천 번 마음을 먹다 보면 결국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적(主敵)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은 살인 행위와 같다. (조헌정) 씨ᄋᆞᆯ은 말하자면 내재의 평화, 극소세계의 평화다. 본질적인 평화다, 씨ᄋᆞᆯ의 바탕이 평화요, 평화의 열매가 씨ᄋᆞᆯ이다. 그러므로 씨ᄋᆞᆯ의 목적은 평화의 세계 이외에 있을 수 없다. 극소는 극대에 통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이 순간도 그 눈을 산봉우리에서 떼지 않아야만 모든 발걸음을 바로 할 수 있듯이, 씨ᄋᆞᆯ이 스스로를 닦고 다듬으려 할 때도 세계 평화의 이상을 잊고서 될 수는 없다. (함석헌) 사람들의 내부에 있는 신적 본원의 해방은 필연적으로 사회 체제의 개혁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래 살면 살수록 내 앞에는 할 일이 더욱 더 많아진다. 우리는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일찍이 사람들 앞에 이처럼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현대는 좋은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 물질적인 의미가 아닌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의 시대이다. 숭고한 사회체제의 이념, 숭고한 인간성의 이념이 창조되고 있다. 우리는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지만, 믿음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채닝) 모든 사람이 한 형제자매라는 종교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현대에 진정한 학문은 이 인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예술은 또 이 인식을 사람들의 감정 속에 불러일으켜야 한다. 행복과 불행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살고 있다. 인생을 길게 보는 사람에겐 행복은 짧고 불행은 오래가지만, 원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에겐 행복은 오래가고 불행은 짧다. (게오르규) 왜 출산은 줄고 매해 아파트는 늘어만 가는데, 살 집이 부족하고 아파트값은 하늘 모르고 치솟는가? 이는 자아와 영혼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인간들이 마치 도박장의 사람들과 같이 자본의 놀이 속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조헌정)
스무 해도 넘은 일이다. 한 달 넘게 인도를 배낭여행하며 경전처럼 지녔던 책이 있었다. 강석경의 인도기행. 소설가 강석경이 4개월간 인도 전국을 탐험한 내밀한 기록이었다. 책은 여행 내내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스리나가르를 간 것도 책 속, 한 구절 때문이었다. ‘ 인도에서 사랑하고 싶은 곳은 많았으나, 살고 싶은 곳은 단 한 곳, 스리나가르였다’ 그런데, 어쩔까. 인도 최북단, 스리나가르는 분쟁지역, 여행위험지역이었다. 영국 여성여행자가 군인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작가도 갔다 오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살고 싶은 곳은 스리나가르 뿐’이라는 구절은 사선도 넘고 싶게 만드는 주술이었다. 설렘, 공포가 뒤섞인 감정으로 도착했다. 아아! 작가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피르판잘 설산을 병풍처럼 두른 거대한 달 호수(Dal Lake)! 그 위..
오늘 '노량 - 죽음의 바다'를 두번째 봤다. 전투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 본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너무 길다', '특히 엔딩이 용두사미 꼴'이라는 견해였다. 나는 '朝日 7년전쟁'과 그 재앙의 중심에서 태양처럼 빛났던 이순신의 아름다움과 향기, 上머저리 선조의 더러움과 추함을 생각했다. 정치의 본질은 400년전 왕조시대나 대명천지 21세기 민주공화정의 시대나 큰 차이가 없다. 풍전등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나라와 백성을 살려낸 구국의 영웅은 예외 없이 간신들의 모함과 질투의 대상이 되어 죽거나 그에 준하는 탄압을 받는다. 우리 역사에 이순신이라는 초인적인 인물이 실존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또한 실로 소중하다. 물신숭배의 정점인 오늘의 세태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위인전은 당시의 한 뛰어난 글쟁이가 원고료로 찹쌀 스무 가마쯤 받아먹고 심청전 쓰듯 창작한 것이라고 말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신년연휴 이순신을 읽으며, 희노애락의 감정이 그가 싸웠던 바다의 높은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참 좋았다. 여론조사를 하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70%가 이순신을 꼽는다고 한다. 아이러니는 왜 이순신인가,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궁색하다는 점이다. 이순신을 다룬 책들이 800종 이상 출간되어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 아마도 공교육이 장학퀴즈 풀듯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명량', '한산ㅡ용의 출현'에 이어 '노량 - 죽음의 바다'까지 이순신 시리즈를 흥미진진하게 봤다. 감독에게 고마움을 갖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23전 무패의 그 위대한 '전쟁의 신'과 그 신화는 그만 얘기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깊이 생각해보라. 그건 일종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꼴 아닌가. 대신, 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인간미, 그 미덕이 바탕이 되어 자라고 쌓여 끝내 완성된 '충무공 리더십'을 배우고 체화하고 전파하는 것이 이 나라에서 점잖은 교양인의 요소로 여겨지기 바란다. 그로써 우리는 얼마나 품위 있는 공동체가 될 것인가. 더 나아가, 이순신은 우리의 조상이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저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에게도 차이없이 높은 정신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어른에게서 가장 크게 감동받은 것은 선조에게 올린 출사표 장계(狀啓)다. "원컨대 한번 죽음으로써 기약하고 즉시 범의 소굴을 바로 두들겨 요망한 기운을 쓸어버리고 나라의 부끄러움을 만분의 일이나마 씻으려 하옵거니와, 성공과 실패, 잘잘못은 신하인 제가 미리 헤아릴 바가 아닙니다." 아, 북극성처럼 드높은 자존감이여! 왜적에게 자식도 잃고, 모함을 당하여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서 백의종군할 때, 그는 사실상 깡그리 망가져버린 수군을 수습하여 대적했다. "나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 '死卽生, 生卽死'(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고, 살 길을 찾으며 싸우면 죽는다)"의 불퇴전의 정신으로 임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해전사상 최고의 승전으로 기록되었다. 일본의 사토 테츠타로 제독은 "영국 넬슨 제독의 명성이 아무리 높아도 이순신 장군의 인격과 천재성에는 필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순신 연구자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이순신은 공직을 맡고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단 한번도 행사한 적이 없다.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봉사자의 길 위에서 평생을 살다 갔다"고 말한다. 왜군은 20일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선조는 나라를 버리고 접경지역인 의주까지 도망쳤다. 도주로에 비가 내려서 길이 질척거렸던 모양이다. 선조는 "백성들이 엎드려 등을 대주지 않는 것은 불충하다"며 통탄했다. 그 무능한 악마는 장장 41년 동안 그 자리에서 그 수준으로 나라를 산산이 부수고 민초들의 신명을 마구 밟아죽였다.
학기 중의 일이다. 1학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소원을 작성해서 카드로 만드는 수업을 진행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다른 아이들은 소원으로 무난한 내용을 적었는데, 몇몇 아이가 아이폰이 생기는 게 인생의 소원이라고 말해서 선생님이 놀라셨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인생을 8년도 살지 않은 아이가 너무너무 가지고 싶은 게 아이폰이라니 세상이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몇몇 특별한 아이의 상황인 줄 알았다. 몇 달 후 맡고 있는 2학년 아이들 보호자님과 상담을 진행하며 들은 이야기는 담임으로서 아이들의 문화를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우리 반 A가 자꾸 휴대폰을 집에 두고 등교했다. 어머님은 아이가 실수로 두고 간 줄 알고 잘 챙기라고 말했다. A가 대꾸하길 자신의 휴대폰은 좋지 않으니 이것은 학교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A의 스마트폰은 LG에서 나온 기종이었는데 이것으로는 아이들과 에어드랍도 못하고, 메시지도 다르기에 쓸모없다고 말했다. 결정타로 담임 선생님도 아이폰을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저학년 아이와 하교 후 연락이 안 되면 답답한 건 부모이기에 어쩔 수 없이 애플에서 나온 스마트폰 중 하나를 골라 사줬다고 했다. 이후로는 A가 신나서 핸드폰을 들고 학교에 가며 일단락됐다. 어머님 말을 들어보니 우리 반 친구 한 명이 최신형 아이폰을 사면서 기존에 스마트폰에 크게 관심 없던 반 분위기가 반전된 것 같았다. 6년 전에 2학년 담임을 했을 때는 아이폰은커녕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반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 했다. 키즈폰처럼 목에 걸고 다니면서 통화만 되는 기종이나, 화면은 있지만 역시 통화, 문자만 되는 폴더폰 같은 것들이 대다수였다. 요즘은 반에 절반 정도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스마트폰을 접하는 연령이 점점 더 어려지는 느낌이다. 뇌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도파민 덩어리인 스마트폰을 소원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마트폰이 주의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문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그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내용이 있다. 스마트폰이 가까이에 있다고 인식하는 것만으로 유효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500명의 대학생을 A 집단과 B 집단으로 나눴다. A 집단은 휴대폰을 실험실 바깥에 뒀고, B 집단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꿔 자기 주머니에 넣어뒀다. 이 상태로 기억력과 집중력 실험을 했을 때, 휴대폰과 멀리 떨어진 A 집단이 B 집단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중력, 주의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두는 건 어떨까? 손 닿으면 꺼낼 수 있는 거리에 도파민 덩어리가 있다는 건 여전히 도파민을 멀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요구된다. 최대한 멀리 둬야 정상적인 주의력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를 하나 더 틀릴 수 있다. 이 사실을 안 다음부터 아이들이 등교하면 핸드폰을 교실 바깥의 신발 주머니나 사물함에 넣어두게끔 지도했다. 아주 가끔 수업시간에도 몰래 휴대폰을 쓰는 아이들이 있었고, 수업시간에 종종 벨소리가 울리는 걸 막기 위함이기도 하며,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주의 집중력을 최대한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핸드폰은 최대한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고착된 불신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 불신의 기저에는 정치인의 식언 등이 있다. 정치의 기능은 갈등을 통합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는 그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다. 대통령과 여·야 주요 정당이 갈등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갈등은 권력구조에 근원이 있다.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 등 절대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을 단순다수대표제로 선출하고, 대통령 중심의 국가운영과 국회의원 정수 300명의 약 84.3%인 253명을 각 지역선거구에서 단순다수대표제로 1인을 선출하는 방식이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다. 여·야가 공히 주장했던 개헌은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시행된 이후 37년이 경과되고 있지만 언제 실현될지 오리무중이다. 사표 양산, 표의 등가성 부족, 갈등 심화 등 지역소선거구제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방안이 오래전부터 정당·학계·시민단체 등에서 제시되어 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표의 등가성 및 비례성 실현과 정당의 지역편중 현상 완화 등으로 대표성 강화”를 이유로 우리의 정치 현실을 고려하여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19대 및 제20대 국회에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으로 제출하였다. 제20대 국회는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방안 중 일부 사항만을 받아들여 제한적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입법하였다. 부족하지만 국민통합을 위한 진일보한 선거제도에 헌법재판소는 2023년 7월 20일 합헌결정을 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입법의 미비(?)로 우리의 헌정사, 선거사와 정당사에 비추어 볼 때 상식적으로 설마 어느 정당이 무도하게 ‘위성 정당’을 만들 수 있겠는가에 깊은 회의를 하였는데 정치 현실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 정당 대표 등 정치지도자들의 반복적인 국민 약속, 희망 고문 ‘국민통합’을 조금이나마 실현하려면 이번 선거에서 위성 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그 방지를 입법하는 것이다. 위성 정당 방지 방안은 다른 합리적인 방안도 있겠지만 첫째, 헌법과 정당법의 정당 규정과 정당의 등록 요건 등을 고려하여 국회의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당은 지역구 후보자와 비례대표 후보자를 각 의원 전체 정수(253/47)의 일정 비율 이상을 추천하도록 한다. 둘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결정한다 등이다. 이 방안은 제한적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시 함께 입법된 관련 규정인데 이후 법 개정에서 모두 삭제되었다. 셋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성 정당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들 규정 위반 시 후보자 등록 무효 및 정당 등록 취소 등을 한다.
새해 극장가는 영화 '노량'으로 뜨겁다. 임진왜란을 종결하면서 적탄에 쓰러지는 이순신 장군과 병사들을 본다. 7년 전쟁의 피해는 참혹하다.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에는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12월 노동당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북남관계는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 더 이상 한국을 '대화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 종전 ‘우리민족 제일주의’는 ‘우리국가 제일주의’로 대체하고,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하겠다"고 하였다.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그동안 우리의 대북기조는 ‘하나의 민족’ 위에 세워져 왔다. 한민족공동체, 분단체제, 통일은 대박이라는 것이 모두 그러하다.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1991.12.13.)에서도 남북한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최근 남한 사회에서도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자는 소리가 고개를 든다.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1990년 통일국가를 이룩한 독일을 바로 보자.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기본조약'은 동서독이 하나의 민족(Wir sind ein Volk)이라고 하면서 동서독간 거래를 민족 내부거래로 간주하였다. 1973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지만 외교공관이 아니라 상주대표부를 두고 교류하였다. 빌리 브란트수상의 동방정책은 이후 헬무트 슈미트수상, 정당을 달리하는 헬무트 콜 수상에 이어 일관되게 시행되었다. 상호 교류협력 하면서 상호신뢰를 증진 시켜 통일의 기회를 맞이한 독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반도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얄타체제'(1945.2) 붕괴의 신호탄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한반도에도 ‘전쟁의 위기’가 다가온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였다. 핵을 사용하여 남북관계를 해결하려 한다면 한민족은 파멸하게 될 것이다. 파국을 피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정당을 달리하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대북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곤 하였다. 그러면 상호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뒤집어보면 북한이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말은 핵전쟁을 피하자고 하는 뜻이 아니겠는가? 남북관계에서 상대를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다.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상대의 일그러진 모습만 보이게 된다. 좌우를 살피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새해에는 창틀의 먼지를 털어내고, 평화의 창으로 바라보며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로 하자.
북한산 등산길에서 자주 보던 소나무가 있었어요. 바위들 틈에서 자란 그 나무는 수령은 꽤 된 듯 여겨졌지만 척박한 환경 탓인지 키가 2미터도 채 못 되었지요. 어느 해인가 그 소나무를 무심히 살피다가 아래쪽에 달린 엄청나게 많은 솔방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 전과도 달랐고, 근처 다른 소나무하고도 전혀 달랐거든요. 나무의 영양 상태가 꽤 나쁜 편이었어요. 어느 해인가 지인의 농장에서 이상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고추밭을 돌아보다가 지인이 말했어요. “이 고추들 좀 봐. 내가 요즘 바빠서 물 주기를 소홀했더니 아래쪽으로 수두룩하게 고추를 달았어. 하찮은 생물도 종족 보존의 본능은 강한가 봐. 척박해지니까 새끼들을 이렇게 많이 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생률이 0.72명으로 떨어지면서 세계적 관심거리가 됐죠. 칼럼니스트 로스 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의회가 내각을 구성하는, 즉 의회 권력을 장악해야 행정 권력도 장악할 수 있는 내각제는 권력의 융합이 특징이다. 반면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각각 독립한 대통령제에서 권력은 분산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다소 변형되어 입법부 구성원, 즉 국회의원이 내각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권력이다.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두 권력을 칭해 이원적 정통성이라 한다. 정당성을 부여받은 두 권력이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하는 경우(여소야대) 국정의 운영이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반면 두 권력이 같은 정당에 속한다면(여대야소) 견제의 기능이 약화되어 행정부의 독주가 우려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국정이 마비되거나 행정부 독재로 나아가는 최악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통령과 의회 모두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현명한 장치가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거부권은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의회가 입법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면 대통령은 해당 법률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거부권은 아니다. 의회가 거부권의 행사로 재의 요구된 법률 재적인원의 2/3로 다시 통과시키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의회 역시 국정조사나 인사청문회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제에 대해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작금의 현실이 대통령제 최악의 부작용으로 이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소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음에도 벌써 세 번째 거부권 행사다. 횟수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거부권 행사의 방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의 통과와 함께 거의 동시에 거부권 의사를 밝혔다. 의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는 형식적 태도조차 보이지 않은 것이다. 여당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이와 같은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극한 대립은 더욱 우려된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벌써 두 차례나 당 대표가 중도 하차했다. 이준석 대표는 징계로 인해 하차했다. 김기현 대표는 자진 사퇴이기는 하나 많은 이가 윤석열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사퇴라 생각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의 사퇴로 인해 새로이 당을 이끌게 된 것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다. 그런데 비대위원장은 당대표와 달리 당원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선출절차를 거칠 수 없는 비상시에만 구성원들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인사가 선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의 돌연 사퇴는 그다지 비상스러워 보이는 않는다. 더욱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그간 국민의힘과 관계가 전혀 없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일컬어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장악했다는 평가가 마냥 비약은 아니라 보인다. 의회에 대한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에게 장악된 집권여당, 이렇다면 대통령과 의회의 견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부작용이다.
정치학을 강의하는 선생으로 2023년 가장 기쁜 소식은 영화 ‘서울의 봄’의 성공이다. 수업에서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것보다 한 편의 영화 효과가 엄청났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학생들도 열광하고 질문이 쏟아졌다. 고마운 일이다. 서울의 봄과 비슷한 일이 남미의 칠레에서도 발생했다. 1970년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를 선택함으로 세계 최초의 혁명이 아닌 선거로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켰다. 아옌데는 만성적인 칠레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주력 산업인 구리 광산과 은행을 국유화했고 부자들의 토지 소유를 규제했다. 공공재산 확보, 남녀동일임금제, 전국민 기초생활임금제, 어린이 무상급식 등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 나가자 미국과 다국적 기업은 방치하지 않았다. 미국은 보유하고 있던 구리를 세계시장에 대량 방출함으로써 국제 구리가격을 폭락시켰고 노조에 잠입한 프락치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도했다. 특히 안데스산맥을 끼고 있어서 철도보다 트럭 운송이 주류였던 칠레에서 트럭기사노조의 파업은 치명타였다. 드디어 1973년 박정희를 존경했던 참모총장 피노체트는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로 대통령 궁을 공격했다. 경호원들에게 아옌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떠나라. 저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그러나 총은 두고 가라. 나는 군인의 본분을 망각한 저들에게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최후 지시를 들은 경호원은 단 한 명도 떠나지 않고 궁 안에서 반란군과 맞서다 모두 산화했다. 모두가 12.12 당시 정병주 특전 사령관을 지키다 사망한 김오랑 소령이었다. 아옌데를 사살하고 집권한 피노체트 치하에서 사망, 실종자가 3천 명 이상이고 수만 명이 구금되었다. 1990년 권좌에서 퇴진했지만, 피노체트의 과거청산은 없었다. 2019년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인상으로 촉발된 피노체트 헌법의 개헌이 시도되었다. 특히 K-팝을 사랑하는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개헌을 공약으로 걸고 세계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진보적인 개헌안을 냈지만, 아직 국민적 공감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뒤이어 살아남은 피노체트의 후예들은 극우적 개헌안을 제출했지만 지난 연말(12.17) 역시 부결되었다.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실험실이 아닌 무덤으로 만들겠다던 보리치의 봄은 결국 동력상실되고 말았다. 칠레의 사례는 분열된 사회에서 국민적 합의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민주주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증명한다. 다른 나라 못지않게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극심한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12.12 이후 하나회 중심의 나라가 올바로 청산되었는가? 아직도 하나회의 망령이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검사들의 나라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기시감이 든다. 다행인 것은 서울의 봄을 통해 올바른 과거사를 익히고 있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에 2024년 희망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