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북쪽이라면 나는 북쪽을 향해 처음 눈을 뜬 누룩뱀 북쪽으로 돌아앉아 참빗으로 머리 빗어 내리면 연서를 쓰던 손가락이 쏟아진다 가고, 오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 버들눈썹 그리고 빈 배처럼 흔들릴거라 방문 닫아걸고 더운 피 식히며 남은 꽃이나 피우는 늙은 투전꾼 같은 꽃나무 한 그루, 나는 백가지 꽃 중 으뜸인 매화 백분 곱게 발라 분합마냥 환해질거라 발목 없는 다리로 번져가는 꽃무늬들 당신의 그림자는 오른 쪽에 있었던가 왼쪽에 있었던가 당신의 노래는 콧노래였나 나에게 겹쳐졌던가 당신에게 흘러가는 나를, 상상해보는 거라 내 몸의 북쪽이 서늘해지네 당신을 잊을 수 있을 것도 같다 - 서안나 ‘불교문예’ 겨울호 /2009년 매화 한 그루 피니 주변이 환하다. 어느 인생인들 누룩 뱀처럼 똬리 틀고 앉아 북쪽에 집중한 적 없었겠는가. “더운 피 식히며/ 남은 꽃이나 피우는 늙은 투전꾼 같은/ 꽃나무 한 그루에 당신의 그림자는 오른 쪽에 있었던가 왼쪽에 있었던가/ 당신의 노래는 콧노래였나 나에게 겹쳐졌던가/” 시린 손으로 더듬어보는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 한 “가고, 오지 않는 사랑” 이 봄날 마음은 &
술 취한 취객들이 새벽을 몰고 왔다. 새벽은 구역질로 인육의 냄새를 뿌려놓고 발로 차고 부수며 화풀이도 모자라 독수리에 침을 뱉는다. 거친 삶들이 출렁이는 혓바닥 이 밤을 지나 아침까지 수많은 말들을 들어줄 재간이 내겐 없다. 송수화기에서 휴대폰소리 또다시 새벽을 깨운다. 해남에서 급행 통신선을 타고 달려온 아버지의 전언이다. 별일 없느냐? 아이구! 아버지께서 이 시간에! 밤새 꿈자리가 너무 안 좋아. 꿈속에서 내가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노인네 안심이라도 한 듯 어여! 들어가라 하신다. 자식 걱정하는 아버지는 꿈속에서 아들과 만났고 나는 술 취한 취객들과 긴긴밤을 보내고 있었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번쩍 들켰으면, 모자를 벗고 단 하루라도 쨍쨍하게 살 수 있다면, 외롭다고 쓰는 순간이 가장 외롭던 그날 네게로 돌아가고자 몸을 틀었을 때 눈부시게 깨졌다, 나는 네가 박힌 심장에서 피가 흐르고 산산조각 난 마음은 흩어진 채 빛났다 <시인 소개> 1962년 강원도 양양 출생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1993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안개 詩>, <슬픔의 속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엘리베이터 천장 위에 늙은 거미 한 마리 텅 비우고야 껍질 속으로 한 올 바람이 인다 누군가 외마디 비명! 부처를 만난 걸까 <시인 소개> 1962년 서울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 2005년 <월간문학> 시조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누렁이 마음>, <리트머스 고양이> 제2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국격에 대한 도전이고 상도의를 상살한 행위다. 이참에 우리정부도 도입기종에 앞서 도입시기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경주 월지 신라의 진흙구렁 속 막새기와에 갇힌 새 두 마리 손을 내밀어 꺼내려 해도 본 체 만 체 주둥이를 맞대고 꼼짝 않는다 발가락을 서로 엉킨 채 깨금발로 서서 무슨 비밀스런 말씀이라고 풀이파리 하나로 주둥이를 가리고 무슨 비밀스런 사랑이라고 부리를 물고서 수작을 벌이는지 기왓장 한 귀퉁이 슬그머니 깨지는 것도 모르고 천 년 동안 절정에 든 새들의 연애질 기와는 비몽사몽이다 <시인 소개> 1958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한국미술사 전공 1991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격포에 비 내리다> <나무 안에 잠든 명자씨>, 산문집 <황홀-시와 그림에 사로잡히다>
하얀 전깃줄에 앉은 참새 복받으세요 아침인사에 내 눈썹이 희어졌는지 만지지요 섣달 그믐밤 잠자면 눈섶이 희어진다 방마다 불 밝히다 새벽녘에 잠들고 하얀 전깃줄에 앉은 참새 복받으세요 짹짹 중천에 뜬 아침 새편지를 안고 햇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큰절을 마주받고 올해는 복 많이 달라고 기원을 했지요 <시인소개> 충북 영동 출생 ‘문예창조’, ‘동시와 동화나라’로 등단 하와이 한인 문인협회 회원 한민족통일문예제전 외교통상부장관상 수상, ‘광야’ 문예공모 및 주부백일장 시 입상 시집으로 <내안에 자리 잡은 사랑>, <그 고운 이슬이 맺히던 날> 등
제가 좀 그렇지요 앞에 앉은 사람에게 이야기 시켜 놓고 먼 나라로 가 있을 때 많지요 함께 자란 제 동생은 그럴 때 제 멱살을 잡고 마구마구 흔들어 자기 말을 듣는 모드로 저를 되돌려 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숨을 폭 쉬곤 가버리고 말죠 저도 그러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니에요 교신이 툭 툭 끊어지는 무전기처럼 반쯤 내리감은 눈꺼풀 밑에서 제 눈동자가 아득한 곳으로 달려가 버렸을 때 그리워요 가만가만 저를 흔들어 눈 맞춰 줄 사람 나중에 제가 오래오래 기다려 줄 사람 <시인소개>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문학 박사) 공주영상대학교 방송영상스피치과 교수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내가 암늑대라면> <맛을 보다> 등
눈이 오다 그치다 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 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마종기 시인 소개> 1939년 일본 도쿄 태생,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아들 서울대 대학원 의학과 졸 1959년 현대문학 시 ‘해부학교실’, ‘나도 꽃으로 서서’ 등으로 등단 제16회 동서문학상(2003), 제54회 현대문학상 시부문상(2009) 시집 <조용한 개선(凱旋)>, <두번째 겨울>,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팔십년 전 울며불며 세상에 나온 아기가 노인이 된 것인가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의 마지막 정답처럼 지팡이를 짚고 선 노인에게선 아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산을 내려오는 걸음걸이 뒤에는 도선사가 서 있다 물론 그는 내가 아니다 그러나 오십년 뒤에도 아닐 수 있을 건가 무릎 관절이 안 좋아 보이는 빨간 등산복 입은 저 노인은 누구인가 삶의 노스 페이스를 내려온 그에게서 나를 봤다 강만수 시인소개 : 1958년 서울 출생 1992년 <월간 현대시>, 1996년 <계간 문예중앙>으로 문단 데뷔 고려문화 편집위원과 출판 기획자로 활동 시집으로 <가난한 천사> <시공장공장장> <기인한 꽃> 등
열망으로 파도를 일으켜 세우고 해도를 밝히는 흔듦으로 풍어기의 돛을 올린다 거스르고 거슬러 창망한 수심의 물모롱 돌면 싱그런 물빛 투망하는 그물에 꼬뉘는 꿈 같은 물길도 보인다 우리 또 가슴을 있는 대로 펴 보이며 그물을 펴기로 한다 <시인 소개> 송명진:1947년 전남 광영 출생~2010년 1월 별세 19851989년 한국문인협회 여수 지부장 1986년 ‘월간문학’과 1988년 ‘예술계’를 통해 문단 데뷔 1989년 도서출판 ‘혜화당’ 설립 1997년 격월간 종합문예지 ‘정신과 표현’ 창간 2008년 한국시인협회 이사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