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는 아침 싱그러움이 손짓하는데 쓸고 닦고 청소를 하고 햇살을 듬뿍 받고 나서며 “집아 집 잘 봐라” 사무실을 가면서 신들린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부지런을 떤다 오늘도 무사히 모든 일 아무 사고 없이 순조롭기를 빌고 또 빌면서. 시인 소개 : 경기 용인 출생, <한국문인>으로 등단, 시집 ‘아버지의 눈물’ 외 다수, 경기시인협회 회원, 국민포장·여성부 장관상 수상
가슴이 메말랐다고 꿈이 없는 건 아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울리는 예민한 악기 쓸쓸한 사람들끼리 마른향기 낮은 음성 햇빛과 그늘 속 시간의 바람을 타는 보이는 세상 그 너머 눈물겨운 공동운명체 흔들려 부여안은 채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이승과 저승에서도 그윽한 눈빛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먼 시공의 꿈 눈물이 메말랐다고 꿈을 버린 건 아니다. 시인 소개 : 1956년 수원 출생,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안개 빛 은유’, 경기시인협회 회원
밤새 비 내린 아침 창가 눈부신 햇살 한 줌 찻잔에 녹아들어 안개꽃을 피운다 샘처럼 고여 드는 이 작은 행복 오늘은 조금 더 붙잡아 둬야지 묵은 어둠 사르고 빛살로 다가선 부활의 새 아침, 새 느낌이여 시인 소개 : 강원 영월 출생, ‘순수문학’으로 등단, 시집 ‘너는 해바라기 나는 바람’ 외 다수, 경기시인협회 이사
지동시장 순댓집에서 삶이 허기진 노인이 혼자 앉아 밥을 먹는다 삭정이처럼 수척한 모습으로 국밥을 가득 떠 넣으시는 쩍 벌린 입이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 같다 목이 메인다 차비를 아껴 사 드셨다는 그 순대국 시인 소개 : 인천 강화 출생, <한국문인>으로 등단, 경기시인협회 회원
군살 없이 매끄러져 오른 소나무 숲 안켠 곡절 끝에 다다른 겨울해는 키 작은 기다림에 순간으로 머물다 간다. 옮겨 갈 수 정녕 없지만 그리움이 농익으면 아픔 없이 돌려지는 모가지 있어 얄팍한 그대 숨결로도 충분히 가슴 더워지는데, 하루에 잠깐씩 그렇게 두세 달이면 인색한 사랑 포개어 그리움이 붉은 피 토해낼 수 있겠지 시인 소개 :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집 <연꽃, 나무에서 피다>, 경기시인협회 회원
늘 내 생각의 모서리에 앉아있는 당신 내가 왜 좋으냐고 물으면 그냥 좋다고 말 했지요 늘 내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흘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만 그 높은 산을 넘고 말았지요 힘들었던 삶 모두 흘러가고 결혼 30년이 된 오늘 당신은 둥근달이 아름답다고 전화를 주셨네요 시인 소개 : 인천 강화 출생, <한국문인>으로 등단, 경기시인협회 회원
산도 들도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동지섣달 추운 날 잎새 잃은 담쟁이 붉은색 벽돌담에 영토 확장하고 묵상하네. 한 뜸 한 뜸 새봄 기리며 초록빛 물들 날 손꼽아 기다리네. 시인 소개 : 1943년 경기 수원 출생, <순수문학>(수필)· <문예사조>(시)로 등단, 시집 <목련이 피는 뜻은> 외 다수, 경기시인협회 회원
묵은해를 보내는 서산에 해는 지고 새해를 맞이하는 동산에 해가 뜨네 유수와 같다 하는 세월 흘러감이 못내 안타까워 마음을 가다듬고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소중한 오늘이라는 날이다 뒤돌아보니 어제가 아득하기만 한데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멀어진 날인 것을 실감 흰머리는 수를 더하고 희미한 옛추억이 된 어제는 거침없이 가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한다. 시인 소개 : 경기 용인 출생, <한국문인>으로 등단, 시집 ‘아버지의 눈물’ 외 다수, 경기시인협회 회원, 국민포장·여성부 장관상 수상
풀려 나간 시간의 또아리는 체중을 줄인 겨울나무 잎새를 붙들고 안타까움을 연기(演技)한다 막 내리는 무대의 조명에 덩달아 쳐 보는 기립박수 뒤로, 학습된 인식은 금세 신선한 시간의 손 이끌어 오리라 초침의 끝 본 적 없는 무한정의 재생기억은 시간의 사치를 부추기고 우리는 아쉬움의 가면을 쓰고 길 나선다 갚을 수 없는 고리(高利)의 차용증 챙겨들고 시간을 빌리러 나선다 시인 소개 :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집 <연꽃, 나무에서 피다>, 경기시인협회 회원
뜬금없이 천상병의 ‘歸天’을 생각하다 손가락으로 세어 본다 내 나이가 마흔을 넘어 섰으니 고작해야 이십여 년 아직도 세상을 덜 살아서인지 삶이란 소풍처럼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또 생각한다 칠십도 욕심이었는가.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그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당신은 이십 사년 나는 이십 팔년 너무도 짧다 시인 소개 : 전남 영광 출생, ‘문학비전’으로 등단, 시집 ‘비금도의 하루’, 경기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