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서머스는 킬러다. 지금까지 16건인지 17건인지, 비교적 오랜 기간 이 ‘업계’에서 이름을 날려 온 저격수이다. 그는 원 샷 원 킬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 빌런(악당)만을 죽인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끼고 다니며 토마스 하디의 작품을 좋아한다. 제임스 M. 케인(『포스트 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과 데이비드 포스터 같은 작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머릿속에서 뱅뱅 거리며 살아가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닉이라는, 메릴랜드와 펜실베이니아, 그러니까 미 동부 지역을 장악한 마피아 보스에게서 조엘 앨런이라는 인물을 ‘처치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빌리는 200만 달러라는 큰돈을 바하마에 예치하는 것을 조건으로 인생의 마지막 작업에 착수한다. 착수하되 이건 좀 시나리오가 필요한 일이라 그는 당분간, 조엘 앨런이란 인물이 곧 출두할 법원 주변에 똬리를 틀고 보통사람으로 스며들어 살아가야 하며 다운타운에도 사무실을 유지하는 척해야 한다. 직업은 출판사 에이전트에게 원고 마감에 쫓기는 무명작가 노릇으로 정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에게 이번 일을 맡기면서 조직 보스 닉과 그의 하수인 중 한 명인 조지 러소라는 인물은 빌리에게
깊어져서 가을이다. 새벽 닭 울음조차 어스름 너머에서 깊다. 깊음도 흐를 수 있을까. 나는 창문을 열고 한동안 바라만 본다. 방 안에 고인 어둠이 창틀을 타고 넘어가 새벽 속으로 흩어진다. 새벽은 푸름 속에서 더디게 흐른다. 산과 들과 마을에서 흘러온 밤의 색깔들이 푸름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까닭으로 푸른 것들은 깊다. 밤과 어둠을 삼킨 푸름은 깊다. 바다가 그렇고, 새벽이 그렇고, 피멍 든 가슴 또한 그러하다. 푸름의 깊이는 어떤 눈금으로도 가늠할 수 없다. 하물며 가을이 익어가는 새벽의 푸름 아니던가. 나는 실눈을 뜨고 어둠과 푸름의 경계에서 발돋움 하고 선 여인을 떠올린다. 움푹 파인 그녀의 볼우물에도 새벽은 고이고 있을까. 땅끝, 해남(海南)에서 만난 봄은 목이 말랐다. 갈증 난 논과 밭과 들이 마른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퍼부었다. 원망 섞인 삿대질에도 하늘은 좀체 비를 뿌리지 않았다. 나는 갈라진 논바닥과 타들어가는 밭고랑을 그대로 뮤지컬 대본에 옮겼다. 해남에서 만난 가뭄은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서도 시뻘겋게 타올랐다. 그녀에게서 처음 연락이 오던 날도 비는 오지 않았다. 보자는 연락에 그러자고 답했다. 약속장소는 해남과 완도가 마주보고 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예수) 여러 가지 나쁜 일, 즉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하기는 매우 쉽다. 우리에게 선이자 행복인 일을 하려면 크게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다) 지혜에 이르는 길은 결코 백합꽃이 피어 있는 잔디밭을 지나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항상 초목이 자라지 않는 낭떠러지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 (존 러스킨) 진리의 탐구에는 항상 동요와 불안이 뒤따른다. 그렇더라도 진리는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너는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진리 쪽에서 먼저 나타나면 된다고 너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진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네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진리를 찾아라, 진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파스칼) 끊임없이 선량한 삶에 마음을 쏟는 사람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통증은 일을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심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적…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멋진 표현이 있다. 당·송(唐·宋) 6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시인 소동파의 절창 '적벽부'에 나온다. "우리 인생이 천지간 부질 없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와 뭐가 다른가. 이 몸뚱아리는 저 넓고 넓은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하나와 또 뭐가 다른가." 영어로는 'a drop in the ocean'(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라고 한다. 이 근사한 시어(詩語)는 나에게 광대무변의 세계인 우주에 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해를 도와준다. 빅뱅으로 시작된 '우리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다. 지구는 46억년. 아, 30여년 전 읽었던 마쓰이 다까후미 동경대 교수의 '지구, 46억년의 고독'이라는 시적인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다시 보고 싶다. 생명은 38억년, 인간은 4만년, 인류문명은 4000년의 퇴적층이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대략 13만 광년(光年)으로 추정된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km를 진행한다. 그렇게 1년 동안 달려간 거리가 1광년이다. 상상해보라. 그 속도로 13만년을 가야하는 길이와 두께를... 인류는 예수탄생 기준으로 겨우 2000년을 살아왔다. 우주학(cosmology)에서 쓰이는 숫자들은 너무나 커서 초현실적이
영국·미국·캐나다 3국을 순방한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국민의 자긍심을 심기보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8일부터 24일까지 순방일정엔 여왕 장례식 참석, 유엔총회 기조연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런던에선 장례식 전날 예정됐던 참배일정이 현지교통 사정으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1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게 치밀히 짜여지는 대통령의 외교행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국민을 당혹게 했다. 뉴욕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동안 환담하고,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30분 간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부분 언론이 저자세 외교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정상회담이 아닌 간담이라고 두 정상간 만남의 격을 낮췄다. 순방 성과를 국민 앞에 내놓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실제로 이번 순방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21일 뉴욕에서 있었던 ‘글로벌 펀드’ 행사장을 나서며 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극에 달했다. “국회 이 xx들 승인 안해주면···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 발언이 22일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프랑스의 AFP를 필두로 미국의 CNN, 영국의 가디언 등 세계 유력언론들까
‘수원시자원회수시설’(영통소각장) 문제는 군비행장 이전 문제와 함께 수원시의 가장 큰 현안이다. 영통소각장은 지난 2000년 조성됐다. 환경부 내구연한지침인 15년이 지난 지 오래됐지만 현재도 매일 518t의 생활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이에 수원시는 대보수를 추진 중이다. 국비 366억원과 시비 1134억원을 투입해 낡은 소각시설을 현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시설을 대보수하면 소각장 내구연한은 2038년까지 늘어난다. 수원시는 마땅한 이전 부지가 없어 고쳐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전을 추진하더라도 해당지역 주민 반발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대보수를 실시해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을 위한 연간 40억원 가량의 지원사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근 영통 주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해 5월 소각장에서 검은 연기가 나온다는 주민 민원이 제기된 이래 소각장 이전 요구 집회가 계속됐다, 일부 주민들은 '소각장 중단 및 폐지를 위한 비상행동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어 인근 영통 지구 내 13개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위원회 회장단과 영흥공원 푸르지오 입주예정자협의회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 연대해 만든 '영통 소각장 주민대책위원회'는
미국발 금융긴축이 다시 비상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22일(한국시간) 3연속 자이언트 스텝(0.75%p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이로써 미국의 기준금리는 3.00~3.25%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한국의 현재 기준금리는 2.50%로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과 0.75%p의 차이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 FOMC 위원들은 향후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점도표에서 미국 금리가 올해 말 4.4%, 내년 4.6%까지 오를 것으로 제시했다. 시장 예상치를 모두 웃도는 것이다. 그러자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연말까지 두 차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그동안 고수했던 ‘베이비스텝(0.25%p 금리인상)’ 기조를 빅스텝(0.50%p)으로 상향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연말까지 한·미간 금리 격차가 1%p 안팎으로 더 벌어져 한국 경제에 고환율, 달러 유출 가속화 등 상당한 파장이 우려된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3%, 전월대비 0.1% 오르며 월가의 전망치를 상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9일 한국의 올해 물
2주 전 통일부장관은 추석을 맞이하여 북한에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하는 통지문을 발송하려고 했으나 북한이 수신을 거절하여 남북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지문 내용은 시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상봉사업을 논의 하자는 좋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현 상황 속에서 북한이 긍정적 화답을 할 것이란 기대를 얼마라도 갖고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표면적으로 보면 모든 남북간 정치적 현안을 떠나 우리 민족의 아픔과 슬픔인 흩어진 가족들을 만나게 하는, 그야말로 인도적 성격의 사업을 제안함은 당연하고 적절하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대방과의 합의가 필요한 일을 추진함에는 상대방의 생각, 입장을 고려해야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북한은 약을 올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로서야 이산가족상봉사업이 인도적 사업이지만 북한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정치적 성격의 사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사업이 성사된 것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체제의 인정 및 화해 불가침, 그리고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을 하자는 합의가 있은 후에 이루어 졌고 이 후 20차례 가까운 금강산 상봉도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