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유난히 추운 주말 야간근무 날이었다. 아이가 고열이 나면서, 경련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현장에 출동했다. 일반 출동의 경우 대개 구급대원들은 출동하면서 환자의 과거력을 파악하며 가상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소아 출동의 경우 인근 소아청소년과 진료 가능한 응급실 병상을 확인하는 과정이 더해진다. 이전에는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대기하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날도 경련 중인 아이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느라 한참이 걸렸다. 주변 응급실에 문의했는데 10분 거리에 있는 응급실들은 소아청소년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안 된다고 답했다. 인근에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전화해보니 진료는 가능하지만 2~3시간 대기해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답변은 대다수 비슷하다. ‘진료는 가능하나, 기본 2시간은 대기를 해야 한다.’ 또는 ‘응급처치는 가능하나 전원 필요시 보호자가 직접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 결국 보호자에게 상황설명 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아닌 즉시 진료할 수 있는 수원 소재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했다. 다행히 이송 중 아이는 경
2년 전쯤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무대는 세르비아의 군용 무기 고물상이다. ‘니콜라 막수라’라는 한 예술가가, 매주 이곳을 방문해 예술 재료를 찾는다. 고물 무기더미에서 예술재료? 그것도, 가급적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무기들, 또 가급적 전장의 핏자국이 얼룩진(물론 은유다. 살상무기를 선호한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무기들을 고른다. 그 섬뜩한 살인무기들은 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M70소총과 군용 헬멧으로 만든 기타, 바주카포와 군용 가스통으로 만든 첼로, 탱크로 만든 타악기.......등이다. 막수라의 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참전용사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하고 싶습니다.” ‘처치 못해 쌓여있는 무기 고물더미’는 세르비아의 상흔을 말해준다. 그 ‘상흔’이란 유고슬라비아 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상처일 것이다. 세르비아 얘기 나오다 갑자기 왜 유고슬라비아? 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듯 하다. MZ세대 중에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이 금시초문인 이들도 있을 듯 하고. 요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음울한 지구촌에 세르비아-코스보 사이의 전운이 연일 토픽이던데, 이를…
100년 전, 일제 치하, 경상도 진주에 국채보상운동, 3.1 만세 운동, 학교설립, 백정 해방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젊고 의로운 인물이 있었다. 백촌 강상호(1887년생) 선생이다. 국채보상운동 경남 책임을 맡았을 때, 스물 한 살이었다. 진주공립보통학교(진주초)의 학무위원이 된 건 스물 아홉. 그 무렵, 긴 가뭄과 대홍수가 지역사회를 초토화시켰다. 이웃들은 쌀독이 비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백촌은 양친과 함께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동네의 가가호호에 부과되는 호세ㅡ주민세와 유사한ㅡ10년치를 대신 냈다. 거금이었다. 서른 살이었다. 4-50대 중견인사들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나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나이에 농부들 벼 베듯 해낸 거다. 훗날 주민들이 백촌의 자당을 기려서 시덕불망비(施德不忘碑)를 세웠다.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겠다'는 착하고 아름다운 합창이다. "부족한 곳 누추한 마을 복전을 돌보아 농사짓게 해주시고, 천금을 바르게 쓰시어 많은 집이 돈을 얻으니 그 혜택이 산과 바다와 같으매 은덕이 높고 넓음을 돌에 새겨 잊지 않고 백세에 전하리라 1917년 가좌리 주민 일동" *복전(福田:복을 거두는 밭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가난한 사
7월 8일부터 16일까지는 경기도가 정한 ‘2023년 경기바다 여행주간’이다. 경기도는 김포·시흥·안산·화성·평택시 일대에 260.12㎞ 길이의 해안선을 품고 있다. 따라서 해수욕장과 섬, 문화유적, 자연 풍경 등 볼 것이 많고 먹을 것,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거리가 가까우니 시간과 경비도 그만큼 적게 든다. 버스나 전철, 여객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여름 휴가철이 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해외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여행객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로 하락한 엔저 현상까지 덮치면서 일본 관련 여행상품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항공권과 여행 패키지 상품 등을 취급하는 인터파크와 트리플에 따르면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26일까지 한 달간 결제된 일본 투어&액티비티 상품 총 판매량이 전월 비 53%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면서 국내 여행수지 적자폭은 커지고 있다. 여행수지 적자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소비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사용한 금액이 더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분기(1~3월) 여행수지
2017년부터 추진되어 2031년 개통 예정인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은 2년 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고속도로 양평 양서면 쪽 종점이 갑자기 김건희 여사 일가의 부동산 보유지 부근 강상면으로 바뀐 것이 핵심이다. 윤 대통령 취임 두 달 후인 지난해 7월 국토부와 양평군이 노선변경을 논의했고, 지난 5월 종점을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한 사업안이 공개되었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끝난 상태에서 정권이 바뀌자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업비 일천억원 이상이 더 소요되는 변경안을 추진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혜 논란이 일자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실무부서의 의견일뿐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토론방 등에서는 정부공직자재산공개 관보 화면을 캡쳐해 대통령 재산목록 제일 상단에 나오는 땅(배우자)이 변경종점 인근이라며 외압이 행사되지 않았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역 이슈가 국민적 관심사로 확산되는 국면이라고 하겠다. 종점변경 정책추진 책임자들이 언론 인터뷰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동균 전 양평군수는 4일…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에는 여자야구 아시안컵 대회가 있었다. 아시아 12개 나라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 야구 여자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덕분에 월드컵 그룹 예선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남자 프로야구의 엄청난 인기를 생각하면, 야구 국가대표 대항전이라 꽤 화제가 될 법했다. 예상 외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여자야구 아시안컵 1위는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인 일본이었다. 세계 랭킹 1위의 벽은 높았다. 일본의 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높은 걸로 정평이 나 있으니 이 정도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아쉬웠다. 언젠가부터 일본은 야구를 포함해서 다른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모든 종목에서 말이다. 축구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목표로 할 때, 일본은 16강은 기본이고 8강을 목표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남자배구는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올림픽 8강에 진출했다. 많은 종목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량 차이가 보인다. 우리는 옆 나라와 이렇게까지 차이 나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일본은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잘 구성되어 있다. 일본 중학생의 64%가, 고등학생
오래 전의 일이다. 분당에서 책모임 할 때 당시 대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이른바 운동권 선배들을 좌파 꼰대로 지칭했다. 그들에게는 좌파나 우파나 한물 간 ‘올드 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시각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운동 세대라는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리고 쓰라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하게 되었다. 몇 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80년대의 획일주의와는 정반대의 다원주의 사회가 들어섰다. 둘째, 어떤 현상이든 종합적으로 봐야하는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나 정의 등 굵직한 개념도 사안별로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지난 시절의 지식은 달라진 시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과학도 많이 깊어지거나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물리학 등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런데도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대의 산물인 586 정치인은 변화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실용주의 시대에 걸 맞는 어젠다 설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살인적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 해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케케묵은 민주 대 반민주 논리로만 일관한 것이다.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