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은 언제나 진리를 분명히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애매하게 만든다. 진리는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장하면 논쟁이 없이도 받아들여질 만큼 명확해진다. 자기가 옳을 때도 끝까지 침묵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있다. (칸트) 논쟁을 하지 말라. 논쟁은 설득하는 데 가장 불리한 방법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못과 같아서 때리면 때릴수록 깊이 들어가 뺄 수 없게 된다. (유베날리우스) 누군가가 너희를 슬프게 하거나 모욕을 줄 때는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는 반박하지 말 것이며, 꼭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정신적 동요부터 가라앉히라. (성현의 사상) 지금 당장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을 때는 침묵하라. 잠시 침묵하다보면 이윽고 마음도 가라앉을 것이다. (박스터) 나쁜 병에 걸린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없듯이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하고 너는 말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의식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너도 이성을 가지고 있으니 이웃에게 그 결점을 일깨우기 위해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너 자신의 이성의 힘을 발휘해 이웃의 마음에 양심을 눈뜨게 하여,
깊은 가을이다. 알록달록 단풍이 산천을 수놓는다. 절기는 입동이 지나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를 종종 튼다. 가사가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휘날리는 풍경과 잘 어울린다. 특히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솓아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라는 구절이 특히 울림이 있다. 바쁜 일상에서 잊고 살 때가 많지만 문득 멈춰서 돌아보면 정말 삶에서 어느 하나도 오롯이 혼자서 이룬 것이 없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순간까지 이 우주, 지구에서 만물들과 주변의 인간들과 함께 서로 영향을 받으면 살아간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천인상응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의 생명활동이 자연계와 상응한다는 개념이다. 천은 자연계를 뜻하며 상응이라는 것은 자연계의 변화가 인체에 영향을 미칠 때 인체는 반드시 자연계에 상응하는 반응을 일으킴을 가리킨다. 응(應)은 감응(感應)을 뜻하는 것으로 자극과 반응으로서의 감응은 똑같이 조율되어 있는 악기가 공명하듯이 하나의 변화는 다른 것에의 변화를 초래하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의 생명을 기르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기
11월의 어느 날. 프랑스 북부 해안가 아치형 절벽 밑에서 한 남자가 그만 화폭을 접는다. 그리곤 곧장 연인에게 편지를 쓴다. “이곳은 지금이 제일 좋아요.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무능함에 화가 납니다.” 끌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이야기다. 이 남자를 절망시킨 곳. 그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에트르타(Etretat). 파리 북서쪽 200킬로 지점에 있는 알바트르(Albâtre) 해안가의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희한하고 아름다운 석회암 절벽들이 있다. 이 절벽들 위로 미끄러지듯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선은 신비 그 자체다. 코끼리 형상의 절벽 끝에 나 있는 성문의 실루엣은 어떠한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닮았다. 여기에 풍요로운 전원, 울퉁불퉁한 절벽에 출렁이는 바다, 해안에 좌초된 배까지. 이 보다 더 완벽한 그림 구도는 없다. 에트르타 마법. 이 마법에 걸린 모네는 50여 점이 넘는 그림을 여기서 남겼다. 사실 모네 하면 아름다운 수련(Nymphéas)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수련 연작은 모든 걸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모네는 자연 속에 빠져 풍경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그중 하나가 에트르타
중국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요소수 대란’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차를 세우고 폐업할 수밖에 없는 화물차 차주들은 요소수 없이도 차량을 운행할 수 있도록 불법 개조를 하려는 정황이 발견될 정도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자재에 대한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전략이 아직도 허술하기 짝이 없음을 증명한다. 국가전략 자체를 총점검하고 새로운 비상구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닥쳐야 허둥대는 ‘냄비 행정’ 고질병을 언제나 고쳐내나. 요소수 대란으로 현실이 더 분명해졌을 뿐 원자재 대란은 어느 품목에서든 벌어질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한국이 수입한 품목 1만 2586개 중 3941개(31.3%)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80% 이상이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은 1850개로 미국(503개), 일본(438개)보다 편중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원자재는 씨가 마르고 기름값은 뛰고… 이만저만 문제가 아니다. 이미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무역구조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외생변수에 취약한 것인지는 여실히 경험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
절집 벽의 심우도(尋牛圖)는 소를 찾는 그림, 불교의 오래된 상징 중 하나다. 상징은 말과 글의 세계, 나아가 문명의 씨앗이다. 소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읽자. 우리 불교와 사상, 정서적 전통에서도 이미지 크다.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은 ‘소를 찾는 집’이다. 뜻 크고 깊은 스님 만해, 아름다운 시 언어로 인류를 가르쳤다.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 3·1 독립선언에 나섰고, 끝내 그 연꽃 마음 변절하지 않았다. 그의 종교의 친정은 인제 백담사다. 만해기념관 부근 계곡은 단풍이 극치여서 찾는 이 더 많았다. 매서우면서도 그윽한 이율배반적인 눈길, 만해 조각상에 마음 숙였다. 저런 스승 있으매 오늘 우리가 이리 당당하리라. 마침 이재명 이낙연 두 후보의 재회(再會) 배경 벽면에 우연히 걸린 찾을 尋(심)자 액자에 주목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우연일까, 허나 중요한 만남의 상징으로 여겨 그 시사(示唆)하는 바를 찾는 것이겠다. 한자가 그림임을 잘 보여주는 글자다. 손 모양 계(彐) 아래 만들 공(工)과 입 구(口)다. 다시 쓰면 左(좌)와 右(우)다. 아래는 손목에 점찍은 마디 촌(寸)이다. 암중모색(暗中摸索), 어둠 속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한…
선생은 당대 러시아 소설가로서 대문호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등을 잇는 현존 최고의 작가다. 1939년생으로 여든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쓴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미술대학, 고리끼 문학대학에서 공부했다. 6공 때 한-러 수교 덕분에, 1989년 9월, 세계 한민족 체전 참가자의 일원으로 우리 정부가 보낸 전용기를 타고 '조국' 땅을 밟는다. 100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는 돌아가면서 친구 인 번역가 김근식 교수에게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 얼마 후 실로 경천동지 할만한 편지를 받게 된다. "고개 숙여 존경하는 시인이여! 이렇게 하여 나는 당신의 후예임을 알아내고 한없이 기뻤습니다. 이제 내 운명에서 풀리지 않았던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결심과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왔던 나는 결국 많은 면에서 당신의 길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 놀 라운 소식에 형언키 어려운 기쁨을 느끼면서도 어이하여 나는 울적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일까요?" 김시습이 아나톨리 김의 17대 직조(直祖)였던 것이다. 이 문장은 선생이 당시 한 일간지에 기고했던 에세이 "나는 한국인인가, 러시아인인가?"의 첫대목이다. 그 기사를…
개는 골목에서 큰길로 걸어 나왔다. 다리는 짧고 몸통은 길쭉한 개였다. 목줄에 묶인 개는 주인의 바짓가랑이 주위를 요리조리 누비며 걸었다. 걷던 개가 처음 멈춰 선 곳은 전봇대 앞이었다. 개는 뒷발 하나를 전봇대에 걸치고 오줌을 갈겼다. 오줌은 벌려진 개의 뒷발 각도와 높이에 상응하는 자국을 전봇대에 남겼다. 전봇대에 새겨진 오줌 자국에서 김이 모락거렸다. -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도 먹을 수 있게 존중하고. 다른 개는 반대편 인도에서 걸어왔다.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였다. 목줄에 묶인 개를 따라 주인은 아등바등 끌려 다녔다. 개가 주인을 끌고 나온 건지, 주인이 개를 끌고 나온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다른 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봇대에 오줌을 갈긴 개를 향해 다가왔다. 다가서는 다른 개를 향해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가 짖어댔다. - 일을 할 거면,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의 주인은 여전히 아등바등 끌려 다녔다. 끌려 다닐 때마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앞말과 뒷말이 연결되지 않고 뜬금없어서, 말의 속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건지, 만나던 애인에게 딱지를 맞은…
예수는 이미 그 도덕적 기초가 흔들리고 있던 기존 사회의 종말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활 질서의 물질적 상징인 신전은 더욱 완전한 것의 건설을 위해 무너져야 한다.’고 예언했다. 그리고 그는 조만간 실현될 그 예언 위에, 훨씬 훗날 실현될 똑같은 사태에 대한 예언을 덧붙이며, 그 사태를 당시 사람들이 세상의 종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던 모습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금 그가 예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의 끝에서 끝까지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 기초가 되는 모든 시설과 질서를 살펴보면 튼튼한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곧 모두 붕괴되어 예루살렘 신전처럼 신전의 돌 위에 돌멩이 하나 남지 않는 상태가 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라므네) 산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평지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빨리 해돋이를 본다. 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들은 육체적인 생활만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빨리 영적인 해돋이를 본다. 그러나 얼마 후 때가 되어 해가 솟아오르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보이게 된다. 지금까지 종종 사람들이 남을 위해 죽는 것이 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