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듣는 질문이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혹은 답하고 혹은 침묵한다. 간혹 편이 없다고 애써 손사래 치는 사람도 있다. 왜 없는지, 없을 수밖에 없는지, 없어야 마땅한지, 글을 써서 입증하려고도 한다. 그럴 때, 그러니까 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편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인용(引用)’이다. 인용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주장을 빌어 나의 생각과 주장의 타당성을 밝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런 만큼 인용에 동원되는 사람과 책과 말과 글귀 또한 다양하다. 철학과 사상, 과학과 예술, 심지어 신화와 종교까지 인용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 인용의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끌고 와서 내 것으로 꾸미는 것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습관처럼, 무언가를 인용하는 사람의 글에는 눈길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손쉽게 빌려온 말이나 글에는 생각이 뿌리내릴 틈이 없다. 틈이 없는데 어느 깊이에 공감이 고이겠는가. 공자와 예수와 싯다르타의 말과 글을 날마다 노래한다고 공자와 예수와 싯다르타가 되진 않는다. 백 마디의 인용보다 솔직한 생각 하나에 눈길이 머묾도 그래서다. 편이 없는 사람은 없다. 없다고 하는 순간 새롭게
결혼생활 40년이지만 아직도 우리 부부는 다툴 때가 가끔 있다.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70년 넘게 헤어져 다른 이념과 체제속에 살아온 남북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후 7년여간 남북간 교류현장에서 북측인사들과 수십차례 만남을 가진 경험이 있다. 초창기에는 언어문제는 물론 근본적 사고의 차이로 대화에 많은 어려움을 가진 기억이 있다.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 고심을 한 끝에 발견한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소통을 잘하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년초 개최된 제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위원장이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밝힌 대남ㆍ대미 정책방향을 역지사지 관점에서 그 속내를 정확히 인식한다면 유의미한 대응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보며, 새해 남북관계의 복원과 북한 핵문제 해결의 단초도 열리리라 생각한다. 먼저 대미정책방향이다. 한마디로 일관된 기존 정책의 고수다.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본심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면서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철회와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대화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30년 가까운 북미대화에서 얻은…
지난 15일, 영국의 보리스 총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대면 회담 방식으로 오는 6월 개최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한국, 호주, 인도를 공식초청했다. 게스트 초청일지라도 한국이 처음으로 대면 참석하는 G7 회의이며, 영국은 차후 G7을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10개국(D10)으로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서방국가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이제는 개발도상국을 넘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6.25전쟁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도 전쟁 직후 “대한민국이 전쟁에서 회복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도 GDP 91.6달러로 필리핀은 동경의 대상일 정도로 세계 최빈곤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한강의 기적” 이제 이 말은 전 세계인에게 낯선말이 아니다. 아니 이제는 기적을 넘어 경제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고 성장률을 달성했고, GDP 순위는 세계 10위 내로 올라섰고 국가부채도 GDP 대비 45.5%에 그쳐 선진국 평균인 131.
코로나19로 인해 날벼락을 맞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 대한 ‘손실 보상’ 문제를 놓고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인류에게 발상의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과성 조치가 아닌, 효율적인 제도를 구축하는 일에 뜻을 모으는 게 온당할 것이다.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절망에 빠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애간장이 녹는 “살려달라”는 애원이 한숨을 부른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숙박·음식점업을 하는 업체의 부채비율이 지난해 3분기 216%에 달했다. 2015년 통계 집계 이래 100%대 중반이었던 부채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된 지난해 2분기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라는 얘기다. 벼랑 끝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은 문자 그대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나 마찬가지다. 응급환자는 우선 살려놓고 보는 게 순서다. 당장 살려내지 않으면 우리 경제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다. 세기적인 전염병 코로나19는 인류에
월성 원자력 발전소에서 삼중수소가 관리 기준을 초과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정치 공방이 한창이다.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특정 방송사가 ‘정치적 가짜뉴스’를 내보냈기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났다는 발언이 나왔다. 지목을 받은 방송사는 당일 저녁종합뉴스에서 “(어느 정치인의) 발언에 하나하나를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입니다”라며 국민 안전과 관련한 문제제기에 정치인이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냐며 응수했다. 한 쪽은 기준치를 초과한 고농도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원전 지하로 방사능 물질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것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기에 경위를 무조건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 쪽은 고농도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위험성을 과장한 데다 검출은 일시적인 것으로 발견 즉시 회수해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외부 누출 근거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관계를 왜곡・과장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삼중수소로 인한 1년간 피폭량이 ‘멸치 1g’ 내외라는 전문가의 발언을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인용하면서 ‘본질’을 운운한다. 일상에서도 삼중수소는 쉽게 검출된다는 언론은 이번 문제제기는 원전 수사에 쏠린 관심을 돌리기 위한 여론
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만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은 정확히 그 연장선에 자리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든 야만스러운 사건의 배후에서 트럼프는 늘 하던 대로 ‘편 가르기’ 정치를 되풀이했다. 범법자들을 향해 “위대한 애국자”라고 추켜세우며 사회 갈등을 부추겼다. 보다 못한 미국 하원이 제지에 나서 마침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의 이력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가 따라붙게 됐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저신다 아던을 주목한다. 2017년 10월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뉴질랜드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필리핀의 두테르테, 이런 ‘상남자형’ 지도자들이 즐비한 틈새에서 ‘젊은 여성’ 지도자는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판. 예상을 깨고 그녀가 국제사회에서 ‘트럼프 해독제’로 부상하게 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2018년 12월, 20대 영국 여성이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던 총리는 즉각 그 여성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기
강준만 교수가 경향신문에도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칼럼의 타이틀은 ‘화이부동’으로 화합하되 무리를 짓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이다. 사실 이런저런 연유로 ‘파’를 형성해 무리를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다. 다만 무리를 짓더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반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강준만은 문재인 대통령 열성지지자들이 못마땅하다. 자신이 보기에 극단이라고 판단하는 추상적 집단을 혐오하면서 그 자신은 다른 극단이 된 현실은 알고 있을까? 1월 6일자 경향신문 칼럼 《‘어용 언론’을 요구하는 문파들에게》 얘기다. 강준만은 문파들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문재인 정부를 무조건 지지하는 어용 언론이 될 것을 요구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절독’을 위협하거나 ‘기레기’라고 욕하는 게 무슨 유행병처럼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두 신문은 무조건 문 정권의 편을 드는 ‘어용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사실인가? 팩트체크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서 전에는 ‘조선일보 공화국’을 욕했을까? 조선일보 공화국은 해체되었나? 어떤 신문을 구독하든지 절독하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
보통 회사에서는 1년의 마무리를 12월 즈음에 한다. 11월부터 연말 결산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학교 회계도 2학기가 한창 진행 중인 11월에 마감 요청이 들어온다. 반면에 교사들은 종업식이 끝나야 한 해가 갔다고 느낀다. 종업식 전에 작성해야 할 서류들이 많고 학기가 끝날 때까진 학교 폭력이든 사건 사고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학교 종업식이 1,2월 중에 있으니 교사의 연말은 1, 2월에 있다. 종업식이 다가오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내가 힘들어 하던 아이와 이별하고 새출발 할 수 있으니 좋은 마음 하나, 나와 주파수가 잘 맞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아쉬움 하나. 기쁨이 큰지 아쉬움이 큰지에 따라 1년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다. 보통은 아쉬움이 크지만 가끔 너무 힘들었던 해에는 빠른 이별을 원할 때도 있다. 어찌됐든 시간이 흐르면 헤어질 수 있으니까 열심히 버틴다. 올해의 종업식은 기쁨도 아쉬움도 아닌 쓸쓸함이 가장 컸다. 여러 가지 감정은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서사가 쌓이고 친밀해져야 생기는데 이번엔 도무지 그럴 틈이 없었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학년을 올려보내는 경우는 처음이다. 등교하면 내 자리 주변에서 기웃 기웃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