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벌의 누더기와 한 개의 발우로 45년을 중생 구제에 바친 부처님은 열반의 땅 구시나가라를 향하여 고된 행진을 시작했다. 부처님은 라자그라하를 출발, 나아란다에서 잠시 머무르고 북서쪽 갠지스 강을 건너 밧지족 사람들에게 “불법승 보물 세 개를 굳게 믿으시오. 그러면 마침내 해탈하여 무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고 간곡히 부탁하고 베살리에서 창녀인 암바팔리의 집에 가서 그 여인을 제도했다. 부처님께서 베살리의 대나무 숲에서 마지막 여름 안거를 보낼 때 깊은 병이 생겨 격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여, 나는 이제 여든 살, 늙고 병들었다. 내 육신은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자신의 껍질을 벗어날 때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육신을 얻는 것이다.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하고 자신을 의지처로 해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 그때 부처님은 석 달 뒤에 구시나가라에서 세상을 떠나겠다고 스스로 결심하였다. 그러자 아난다가 눈치를 채고 울부짖으며 간청했다. “부처님, 아직 저희들의 눈이 밝지 않으니 이 세상에…
유미자 <서양화가> 의상도착증 환자 헤라클레스가 여성용 드레스를 입고 옴팔레의 시중을 들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세 영웅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아킬레우스에게는 여성과 관련된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중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라는 청년을 초대하여 술잔치를 하다가 취중 이피토스를 성벽 아래로 던져 죽게 한 일이 있었고, 아내와 자식을 때려 죽인 적도 있다. 이러한 죄들의 정죄(죄닦음)로 옴팔로스 왕국의 여왕 옴팔레 밑에서 종살이를 해야 한다는 신탁이 있었다. 때문에 옴팔레 여왕의 시중을 들 때와 여종들과 길쌈할 때마다 여장을 해, 남성이면서 여성의 옷을 입고 즐긴 헤라클레스였다. 이러한 헤라클레스가 태어났을 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싶었던 쥬피터가 그의 아내 쥬노를 잠재우고 헤라클레스에게 쥬노의 젖을 먹였다. 그때 성급히 구는 바람에 아기의 입 밖으로 몇 방울 떨어진 쥬노의 젖이 뭉쳐 흰백합이 되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여자의 옷을 입고 즐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양성적 인생관’의 반영으로 인간의 근원을 통찰하고자 하는 의지 표명이 아닐까. 알렉산드로 대왕도 죽기 몇 달 전부터 여장하고 지냈다고 하며
시승격 18년째 답보 재정자립도 47%에 불과 복합단지 조성땐 일자리 1만개 재정자립도 60% 가능 반대 위한 반대보다 지역발전 우선 생각해야 하남시가 광역화장장 유치 문제를 놓고 양분화될 위기다. ‘찬-반’논란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양측간 입장은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 단체장은 단체장 대로 ‘주민소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광역화장장을 유치하는 대신 댓가로 받는 인센티브를 통해 명품도시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다. 경기신문은 이에 따라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찬-반’입장의 인사를 초대하는 지상토론을 계획했다. ‘찬-반’의견 조율과 나아가 화장장 해법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갈등과 반목을 동시에 해소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일부 인사 및 화장장범대위측의 사정에 따라 김황식 하남시장을 만나 화장장 추진배경과 입장을 듣는 것으로 대체했다. - 일부 주민들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왜 화장장을 유치하려 하는가. ▲도시면적의 93%가 개발이 제한돼 있고, 상수원보호, 문화재보호, 수도권정비계획 등으로 개발이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시 승격 18년이 지난 현재까지 답보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수도권 도시
있는 그대로를 보는 데서 진리는 저절로 나타난다. 꽃의 꽃다움은 있는 그대로에 있지 그것을 뽑아다 칼로 자르고 갈라서 분석한다고 해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뼈를 깎고 피를 짜고 살을 말리는 고행은 육체에 대한 인위적인 가공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찾겠다는 것이 자칫 그것의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예리한 관찰력으로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직관이다. 철저한 긍정이야말로 진정한 부정이 될 수 있다. 싯다르타는 허탈한 걸음으로 숲 속에서 내려와 수자티 소녀로부터 우유죽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나이란자나 강으로 가서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깨끗이 씻어냈다. 목욕을 마치고 언덕에 올라가보니 고행 중에는 힘없고 퇴색해 보이던 강과 산이 갑자기 생기를 띠었고 히말라야의 설경도 눈부시게 빛났다. 마침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고행주의를 버리고 스스로 진정한 인간임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운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그늘로 가서 앉았다. 마침 그곳에서 풀을 베고 있던 한 소년이 향기로운 풀을 한 아름 안아다가 자리를 깔아주었다. 싯다르타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 소년이 가져다 준 풀을 깔고 앉아 깊고 고
파주 비무장지대(DMZ)해마루촌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행정구역상 주소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를 자동차 길안내기기(네비게이션)에서 찾으면 엉뚱한 곳이 나온다. 지도에도 길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마을로 가려면 임진강을 가로 지르는 전진교를 건너야만 한다.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다리 앞에서 초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허가증을 받는다. 다리를 건너 골짜기로 들어가면 군부대와 훈련장, 사격장 뿐만 아니라 지뢰지대가 즐비하다. 길은 훈련 중인 군인들과 길게 늘어선 전차와 군용차로 금세 가득찬다. 삭막한 산길을 지나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깔끔히 단장된 길과 집이 있다. 마치 외국의 주택가처럼 각양각색의 집들이 보기 좋게 들어서 있다. 조봉연(51) 마을운영위원장은 “한국전쟁 때인 1952년 11월 장단군 주민들이 강제 소개(疏開)돼 이후 원치 않는 유랑생활을 하고 있었다”며 “98년 국방부가 비무장지대에 마을조성을 허가하고 파주시가 실향민과 원거리 영농민을 위해 부지를 조성해 지금의 마을을 이뤘다”고 말했다. 마을 조성 때 신청자가 많아 추첨으로 60가구를 뽑았다
행복지수는 영국의 심리학자인 로스웰(Rothwell)과 인생상담사 코언(Cohen)이 만들어 지난 2002년 발표했다. 이들은 18년 동안 1천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80가지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5가지 상황을 고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행복은 P, E, H 의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P(personal)는 인생관, 적응력, 유연성 등 개인적 특성, E(existence)는 건강, 돈, 인간관계 등 생존조건, H(higher order)는 야망, 자존심, 기대, 유머 등 고차원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은 3가지 조건 가운데 생존조건인 E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존조건인 E가 개인적 특성인 P보다 5배 더 중요하고, 고차원 상태인 H는 E보다 3배 더 중요하다고 봤다. 이 지수를 공식화하면 ‘행복지수 = P+(5×E)+(3×H)’가 된다. 결국 이 공식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에는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건강·돈·인간관계 등이 중요한 셈이다. 이들은 인간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통상 전세보증금이라고 하는 임차보증금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주택의 사용대가로 지불하는 돈입니다. 임대인은 주택의 사용료를 이 전세보증금의 이자로 충당하고 나중에 임대차기간이 끝나면 임차인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임대료를 대신하여 주택시세의 40-50%가량에 해당하는 많은 전세보증금을 받고 그 이자로 임대료에 갈음하는 전세제도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제도라고합니다. 임차인은 전세자금만 마련하면 매월 임대료를 지급해야하는 부담 없이 주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금융권이 아닌 개인에게 담보 없이 저리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어서 주택임대시장에서 전세형 임대차가 월세에 비해 많이 애용되고 있습니다. 전세보증금은 무주택서민인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내 집 마련의 기초자금입니다. 그동안 벌어 둔 전 재산에 해당하는 반면 임차주택 역시 임대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전 재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전세제도는 가난한 서민이 조금 덜 가난한 서민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빌려주는 형태가 되는데 장래 채무자인 임대인의 재무상황 역시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데서 임차인의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통상 임차인은 전세보증금을 지급하면서 전세권을 설정하지 않고 임대인의 신용만
그의 출가가 남과 다른 점은 중생의 구제를 먼저 생각했다는 점이다. 출가는 무한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얼켜있는 무한의 사슬로부터의 자기 해방이요, 생명에 대한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찬다카를 보낸 뒤에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맨발로 길을 가는 이름없는 구도자가 되어 구시나가라를 향하여 묵묵히 걸어갔다. 따가운 뙤약볕을 받으며 맨발로 길을 걸었으며 끼니 때가 되어도 먹지 못하고 밤이 되어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이 당시의 싯다르타가 겪는 어려움은 사실 완전히 그의 탓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청한 것이다. 왕궁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부귀 영화를 한 몸에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싯다르타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고난의 바다로, 거친 가시밭 길로 밀어넣었다. 자기에게 어떤 경험을 시켜주는가에 따라 그 ‘주인공’의 미래는 산으로도 갈 수 있고 바다로도 갈 수 있다. 싯다르타의 주인공이 싯다르타라는 육신에게 과연 어떤 경험을 시키고, 어디어디를 끌고 다닌 끝에 부처가 될 수 있게 했는지 두 눈 부릅뜨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싯다르타는 발우를 손에 들고 걸식하면서 동남쪽으로 길을
“자! 여러분 다시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이 곳이 바로 화성행궁의 중앙인‘봉수당’입니다. 이 곳에서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거죠. 그 규모가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심 원섭(81)할아버지.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목소리는 쇠처럼 쉼없이 단련된 듯했다. 여기에 사쁜한 몸짓까지 곁들여 당시를 재구성하자 눈앞에는 혜경궁 홍씨의 성대한 회갑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심 할아버지가 정성껏 대하고 있는 관광객은 일본 고교생들. 심 할아버지는 이들을 정조대왕 시대로 이끌었다. 시간여행의 선봉장인 셈이다. 심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 이야기는 계속됐다. “정조대왕은 어린시절 할아버지인 영조대왕이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었을 때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하지만 어린 정조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죠. 이런 슬픔을 안고 자란 정조가 아버지의 원침(묘소)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에 올 때마다 머물던 곳이 ‘화성행궁’입니다” 심 할아버지는 화성행궁 안을 내 집마냥 능숙하게 안내했다. 그리고 정조대왕의 이야기는 계속됐
왕자의 수심어린 얼굴을 들여다 본 숫도다나 왕이 까닭을 물었다. 동심의 싯다르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살기를 원하면서도 살기 위하여 서로 잡아먹는 것을 보니 불쌍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로부터 17년 후에 싯다르타를 출가시킨 동기가 되었다. 싯다르타 이후의 스님들도 대부분 이 문제 때문에 출가를 하게 된다. 스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어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문제다. 어디로부터 태어났는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그 온 곳과 갈 곳에 대한 강한 의문으로부터 수행은 시작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생사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자연으로부터 받는 첫 질문이다. 싯다르타의 나이 스물아홉이 되던 해의 봄이었다. 궁중에서 큰 잔치가 베풀어지던 음력 2월 8일 밤, 그는 아내와 아들과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없는 이별을 했다. 자신에게 연루되는 어떠한 인연도 출가자는 완전히 끊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밤, 온 세상이 잠든 시간에 마부 찬다카를 조용히 깨운 싯다르타는 애마 칸다카를 타고 성문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동쪽으로 어둠을 뚫고 달려갔다. 기왕이면 마부없이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