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윤일균 할머니 시집올 때 해오신 반닫이 손잡이 자루 반질거리는 할아버지 깔딱조선낫 틀니 끼울 수 없는 아버지 잇몸 빈 지게 지고서야 펴지는 엄니 허리 우주를 매단 손잡이 이내 굳은 아내의 속마음 - 윤일균 시집 ‘돌모루 구렁이가 우는 날에는’ / 2019·도서출판b 시는 서사와 묘사의 만남이다. 시의 역할은 묘사로 상상을, 서사로 사유를 독자에게 전해야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묘사가 과잉된 시가 독자의 상상을 가로막고, 때로는 상상할 필요 없는 서사가 사유(思惟)를 가로막을 때가 있다. 그런데 모처럼 서사와 묘사가 매우 흥미롭게 조화된 시 한편을 읽는다. 시인이 발견한 ‘그믐달’은 하늘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의 몸과 마음이다. 할머니의 삶이 송두리채 담겨있는 작고 오래된 옷장의 손잡이에서 헛헛한 시간을, 반질거리는 할아버지 조선낫과 아버지의 잇몸에서 발견된 휘어지고 고단한 시간을, 어머니의 휘어진 허리에서, 아내의 오무라진 속마음에서 슬픔이 갉아 먹고 남은 애잔한 세월의 그믐달을 다시 보게 해주었다. 화려한 수사이거나 생경한 언어가 아니라, 가까이 있어 놓쳐버린 사랑에 대해 시인은 노래하고 있…
‘고독’은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매우 쓸쓸함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수필가 이양하의 ‘나무’에서 ‘나무’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에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현재의 위치를 지키며 즐길 뿐이다. 특히 새와 달과 바람이라는 친구들이 있지만, 나무는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그러나 나무는 고독하다고 해서 그것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무는 사계절 내내, 그리고 밤낮으로 변함없이 곁을 떠나지 않는 고독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것보다도 그 고독을 잘 견뎌내며, 오히려 그 고독을 즐기며 함께 한다. 보통 도시생활은 자유롭고 달콤하며, 분위기는 화려하고 풍요롭고 즐겁다. 그러나 그 자유롭고 풍요 속에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결핍과 소외 그리고 고독이다. 고독한 삶의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인들은 왜 고독할까? 고독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이라고 말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멀어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는 도시공간만의 비인간화, 사무화경향이 팽배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고독은 ‘홀로 있음’과 ‘외로움’의 의미로 읽혀 부정적이거나 가급적 피해야하는
1926년 단성사에서 상영한 ‘아리랑’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한국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 영화였다. 이 영화로 감독 데뷔한 나운규는 민족영화 감독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며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항일’이란 용어를 들어내놓고 말 못하던 그 시절, 검열을 의식해 가며 만든 민족영화 ‘아리랑’은 많은 부분이 삭제된 후 공개된다. 당시 한국 옷을 입은 한국사람만 나와도 환호하던 관객들에게 나운규는 더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아리랑’을 만들어 민족적인 감동까지 이끌어 낸 최초의 감독이다. ‘아리랑’은 민족영화로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한국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즉 민족영화의 전제 조건은 한국사람의 이야기를 한국사람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영화라는 개념은 이렇듯 다분히 자국의 전통적 사상까지를 포함하는 범위로 좁혀진다. 지금 ‘아리랑’은 필름이 분실돼 볼 수가 없고 다만 문헌 자료를 통해 영화를 유추해볼 뿐이다. ‘아리랑’은 항일영화로 볼 수 없지만 다분히 항일성을 상징한 대립요소의 드라마 트루기를 갖고 있으며 은유적으로 표현된 영상의 표현이 일제강점기 핍박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제외한 모든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경기도내 몇몇 지자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것도 행정 일선에서 낮은 수당을 받고 있는 통·리장의 자녀 장학금 지급조례 시행규칙에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가 있었다니 기가차다. 그나마 경기도 인권센터가 발견해 개정 의견을 표명하고 나서서 다행이다. 인권센터는 이 같은 시행규칙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요소가 있다고 판단, 조례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도내 19개 시·군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장학금을 신청할 때 ‘종교’와 ‘사상’을 기재하거나 별도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강제했다. 오랜 시간동안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인권을 침해당했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지를 단편적으로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다. 일제와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인권불감증이 뼛 속 깊이 박혀있었다는 방증이다. 기성세대들이 ‘인권망각 유전자’를 대물림 할 뻔했다. 요상한 문구는 더 있다. ‘학업에 충실하고 타의 귀감이 돼 장차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강요다. 지자체들은 이 글이 적힌 ‘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국기에 대
황해경제자유구역 내 ‘현덕지구 개발사업’이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추진된다. 도는 지난 10여 년간 지지부진했던 경기도 평택 황해경제자유구역청의 현덕지구 개발사업을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덕지구 개발사업은 평택시 포승읍 신영리와 현덕면 장수리·권관리 일원 231만6천100여㎡ 부지에 유통, 상업, 주거, 공공 등의 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8년 5월 지구로 지정됐고 2012년 8월 지식경제부가 황해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개발계획변경을 승인, 평택시 현덕면 일대 231만6천㎡가 개발지구로 지정됐다. 도는 2014년 1월 현덕지구 개발 사업 시행자로 대한민국중국성개발(주)을 선정했다. 그러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해당지역 토지 소유자들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가중됐다. 현덕지구 내에 거주하고 있는 114가구 주민들은 노후주택 개보수와 보일러 교체 어려움에 따른 생활불편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토지보상 시기가 확정되지 않아 이주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등 시설재배를 할 수 없어 영농소득도 감소했다. 이에 도는 지난해 8월 현덕지구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 결과 시행기간 내 개발사업을…
역사 속의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의 승리로 기록하고 있지만 영화 ‘봉오동전투’의 흥행은 실패로 끝났다. 지난 8월 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최종 478만여 명을 기록했는데, 개봉전 예상은 ‘1천만’을 넘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럴 수준이었는지, 홍보를 앞세운 바람잡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500만 명을 넘겨야 제작비를 회수하는 수준을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제작자나 감독은 관객을 설득하는 흥행이 일본군을 상대하는 전투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터이다. 큰 기대를 걸었다가 모래 씹은 표정을 지은 경우는 또 있다. 한글 창제 과정을 소재로 다룬 ‘나랏말싸미’도 스타급 배우를 앞세우고, 연기력 좋다는 배우들을 좌우로 배치했지만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을 일으켰을 뿐 흥행에서는 처참한 결과로 마쳤을 뿐이다. 100만 관객에도 미치지 못했다. 영화는,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학술작업이 아니어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작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왕이 갑작스런 변고로 정상적 정무를 살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몰래 가짜 왕을 세운다는 ‘광해-왕이 된 남자’나 관상을 기막히게 잘 본다는 소문 덕에 궁에 들어갔다가 권력 싸움에 휘말
최근 A형 간염이 급증함에 따라 간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간염은 말 그대로 간에 염증이 생긴 상태로, 초기에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발견이 어렵고 만성화 될 경우에는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 또는 간암과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예방 및 정기검진을 통한 조기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간염바이러스는 발견된 순서에 따라 A형~G형 등으로 구분한다. 이 중 A, E형은 급성 바이러스 간염을 일으키고, B, C, D형 간염은 만성으로 악화돼 간경변증, 간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A형, B형, C형 간염이 흔하다. - A형간염 ‘시간 지나면 대부분 자연회복, 치료제 없어 예방접종 중요’ 위생환경이 나빴던 과거에 많이 발생한 관계로 50대 이상에서는 대부분 면역력이 형성됐지만 20~30대에서는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젊은 층에서 발병률이 높다. 초기 증상은 감기몸살과 비슷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가 감기로 생각하고 있다가 눈과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발생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몸살기운, 피로감, 구역, 구토, 황달 등이 2주 이상 지속돼 고생하나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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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계의 파괴로 하루가 다르게 멸종위기 생명체다 늘어가고 있다. 희귀곤충으로 분류되는 천연기념물 제218호 장수 하늘소도 그중 하나다. 지난 2006년 포천 광릉숲에서 암컷 한마리가 발견된 이래 8년가까이 모습을 드래낸적이 없어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행히 2014년 수컷 한마리가 나타남으로써 위기를 면했다. 그후 올해까지 6년 연속 장수하늘소 서식이 확인됐다. 장수하늘소는 같은 속(Callipogon)의 다른 종들이 중남미(멕시코·콜롬비아 등)에 분포하는 반면, 유일하게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 종으로, 그 멋진 모습과 거대한 크기로 인해 곤충의 왕으로 불린다. 특히 생태학계에선 극동러시아와 북아메리카가 베르링 육교로 연결됐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화석 종으로 불린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광릉숲이 유일한 서식지로 확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개체수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밀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서식지내로의 지속적인 개체수 재도입과 복원이 시급한 종이다. 그렇다면 장수 하늘소가 이처럼 위기에 처한것은 무엇때문일까. 물론 생태계파괴가 첫째 원인이지만, 국립수목원의 연구진은 먹이의 감소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주요 먹이가 ‘서어
도문을 말하다 /김윤배 강물은 강물로 흘러 고원을 다 담으면 안 되는 거다 강물이 설렘이라면 아, 강물이 소멸이라면, 망각이라면 안 되는 거다 기다림이라면, 슬픔이라면 안 되는 거다 강물이 안타까움이라면 될까 안타까움으로 역류의 하루다 하루는 일 년이고 백 년이다 안타까움을 놓고 시간을 말하면 안 되는 거다 안타까움을 놓고 죽음을 말하면 안 되는 거다 도문, 저 급류를 놓고 피 흐르는 역사를 말하면 안 되는 거다 어둠이여! 빛이여! - 김윤배 시집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 휴먼앤북스 낭만시선 시를 읽다보면 풀길 없는 심사를 달래는 갈증을 느끼게 한다. 사람의 외로움은 생의 본래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이별은 만남에 대한 배태된 숙명적인 결과로 후유증으로 남는다. 가을바람 빗소리에 에버덩문학의집 방가로 창을 때리고 빗물들이 거칠게 떨어진다. 시인은 사랑의 처절함을 공격적으로 은유한다. 어둠이여, 빛이여 구도자적인 염원의 강한 메시지에 울림이 온다. 무덥던 여름날이 가고, 가을날 바람과 태풍이 왔다. 계절의 순환을 삶과 인생에 비유한다면 기다림으로 다가오는 봄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희망의 다름 아닌 시간들이다. 여름은 치열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