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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 양평 소리산

사락사락 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산음리 석산리 사이 용소계곡…깎아지른듯 아찔한 기암절벽
소리산 한눈에 보이는 봉미산…절경 담는 사진 명소로 ‘으뜸 ’

 

추운 겨울 추위로 움추려진 어깨를 펴고 산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움추려진 몸이 확 풀리고 마음도 상쾌해지는 산이 있다.

바로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와 석산리에 위치한 ‘소리산’.

높이는 479m에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세는 험한 편이다.

주민들이 소금강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고 예로부터 산 속 바위벼랑에 수리가 서식했다고 해 ‘수리산’으로 부르다가 ‘소리산’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널리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아름다워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가족단위 휴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인근 봉미산과 종자산이 토산(土山)인 것과 달리, 정상과 주능선이 바위로 이뤄져있으며 산음천에 쪽은 바위절벽으로 형성됐다.

바위 능선으로 인해 계곡이 단애 협곡을 이뤄 경관이 빼어나고 절벽의 높이는 거의 200m에 이른다.

특히 산음리와 석산리 사이에 있는 용소계곡은 기암절벽은 풍부하고 맑은 물과 함께 곳곳에 조약돌이 깔린 공간이 있어 휴식공간으로 인기 높으며 매년 3월에는 ‘소리산 고로쇠축제’가 열린다.

산행은 삼산교 앞에서 시작해 능선 갈림길을 지나 403m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문례리로 내려오는 4.5km 코스와, 석현리에서 시작해 안부(鞍部: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를 지나 정상에 오른 다음 삼산교로 내려오는 5km 코스가 있으며 두 코스 모두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교통편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상봉터미널에서 홍천군 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양평읍에서 내린 다음 석산리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승용차는 양평읍에서 홍천군 방면으로 44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가평군 설악면으로 이어지는 494번 지방도로로 들어선 후 명성을 지나 석산리로 가면 된다.

주변 관광지로는 봉미산과 산음계곡이 있다.

봉미산은 용문산북쪽 주능선을 따라 10km되는 지점,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에 위치한 산골마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산이다.

봉미산은 양평군의 북쪽 외곽을 둘려싸며 가평군 설악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산행은 산의 동쪽인 산음리가 기점이 되는데 지금은 산음리에 이르는 328번 지방도가 말끔히 포장돼 서울에서도 당일등산이 가능하다.

정상 남쪽 능선에는 작은 분지가 형성돼 일명 늪산(814m)이라고 불리며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용문산을 비롯 유명산, 중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장락산맥의 줄기가 한없이 뻗어 내리고 동으로는 소리산 넘어 대명스키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또 산음계곡은 ‘산음리 소금강’ 이라 불리는 계곡이다.

봉상리, 보룡리, 향소리를 거쳐 문필봉을 넘으면 숨어 있던 계곡이 나타난다.

강원도와 맞닿은 곳이라 강원도 산세를 볼 수 있을 뿐더러 경기도의 고른 물살을 접하게 된다.

포장도로 거의 끝부분 절벽과 그곳에 핀 무명초, 소나무들이 어울린 소리산을 정면으로 보게 되는 곳에 ‘산음리 소금강’ 이라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어 사진 찍기에 가장 좋다.

주변 볼거리

양근향교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에 있는 향교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됐다.

조선 중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됐다.

명륜당은 높직한 축대 위에 세워졌으며 맞배지붕에 한식 골기와를 얹고 좌·우측에 방풍판을 달았다.

재실(齋室)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맞배지붕이다.

내삼문은 솟을대문으로 맞배지붕에 측면 1칸씩인데 높직한 대지 위에 세웠다.

동·서무는 맞배지붕이고 한식 골기와를 얹고 있으며 측면 좌·우편은 창호(窓戶)를 개설했으며 다른 곳의 향교들과 비교할 때 전모를 갖추고 있는 향교로서 건물배치나 건축양식에 대한 연구자료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봄·가을에 공자를 제사지내는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6∼7명이 운영하고 있다.

노산사지

조선 후기의 학자 이항로가 세웠던 노산사가 있던 터.

1977년 10월 13일 경기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됐으며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노산사(蘆山祠)가 있던 자리로 이항로(李恒老)가 태어난 집터이기도 하다.

노산사는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살아 있던 당시 그가 경모하던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놓았던 사당이다.

이항로가 죽은 후에는 후손들이 그의 영정도 여기에 이들과 함께 모셔놓았다.

그러나 100여 평에 이르던 사당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 있는 3칸의 작은 사당은 1954년 유림(儒林)들이 이항로의 높은 덕행과 학식을 기리기 위하여 전에 노산사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이항로는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다.

어려서부터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해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항로는 성리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울어가는 국운을 염려한 우국지사으며 문하생 가운데서 의병봉기와 구국독립의 중심인물이 많이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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