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에서 만난 백남준 예술혼
‘차들이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는 동안 고속도로에 홀로 멈추어 섰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는가? 빠르게 돌아가는 온 세상의 속도에 대비되는 정적인 느낌…’
백남준아트센터가 지난 7일부터 오는 5월16일까지 새로운 기획전 ‘수퍼 하이웨이 첫 휴게소(The First Stop on the Super Highway)’를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백남준의 세기적 아이디어인 ‘초고속 정보 통신망(Information super highway)’ 에서 차용한 것으로, ‘수퍼 하이웨이’ 는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잇는 축을 의미하는 동시에 백남준아트센터 앞에 놓인 여정을 암시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수퍼 하이웨이’에서 잠시 멈춰 백남준 예술세계에 반영된 ‘속도’의 의미와 예술적 실험의 ‘극단’을 조망하는 이 전시는 2008년 9월 국내 최초로 공공 미술관 외국인 학예연구실장으로 영입된 토비아스 버거(Tobias Berger)가 기획했다.
‘수퍼 하이웨이 첫 휴게소’는 예술에서 시도되었던 ‘극단(extreme)’의 표현 및 실험을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백남준 비디오 작품 중 가장 단순한 행위를 느리게 표현한 <버튼 해프닝>과 뮤직비디오처럼 빠르게 편집한 <레이크 플레이시드 ‘80>, 두 작품을 통해 백남준 예술세계에함축되어 있는 ‘속도’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백남준과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는 작품들의 대결을 꾀한다.
특히 라 몬테 영의 악보(스코어), 플럭서스 멤버들이 함께 만들었던 <플럭스 필름>, 로버트브리어의 ‘극단’적인 실험영화, 조지 브레히트의 오브제 등 60년대 백남준과 함께 어떤 금기와 제도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한대의 예술실험에 동참했던 플럭서스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병치된다.
이 전시에서는 대지예술, 설치예술 등 크기의 ‘극단’의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었던 60년대 예술계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불러온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 <콘>이 백남준아트센터 전경에 설치될 예정이다. 오펜하임의 <콘>은 일상의 오브제인 거리의 주황색 바리케이드의 크기를 ‘극단’적으로 과장해 거리의 풍경을 바꾸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품들은 특히 점과 선-정지, 그리고 전진(Stop and Go)이 상징적으로 연상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라 몬테 영이 1962년에 만든 이벤트 스코어 <밥 모리스를 위한 컴퍼지션 #15>, 산티아고 시에라의 <에스파시오 이글루티나도르 하바나에서 고용한 여섯 사람의 8피트 길이의 문신>, 그리고 타로 시노다의 거대한 기계장치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붉은 선들이 그러하다. 홍콩 작가 팩 슈엥 츄엔은 35㎜ 필름 프레임의 모든 라인을 잘라내어 새로운 필름을 편집하며, 로렌스 바이너는 바닥에 40파운드 무게로 2분 동안흰색 액체를 스프레이로 뿌림으로써 ‘점’을 만들어낸다.
아브로마비치/울라이는 몇 시간 동안 원을 그리며 운전을 하고, 로버트 브리어는 초기 실험영화에서 스프레이 페인트 라인과점을 사용하며, 조지 브레히트의 이벤트 스코어는 항상 검은 원과 함께 시작된다.
백남준의 비디오 <레이크 플레이시드 ‘80>에서 가속도가 붙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은 시징 멘의 <2008 베이징 올림픽 게임>이라는 작품에서 좀더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초고속 정보 통신망‘에 잠재된 엄청난 속도와 힘을 예견했던 백남준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기획전 ‘수퍼하이웨이 첫 휴게소’는 현재와 미래의 예술에 대해 조망하는 망루에 위치한 첫 번째 휴게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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