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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김준엽의‘장정(長征)

지난 7일 타계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에 대한 수식어는 많다. ‘시대의 스승’, ‘실천적 지성’ 등 언행일치의 사표(師表)로 불리는 그가 전두환 정권의 압력으로 고려대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됐을 때 학생들이 한 달 동안 ‘총장 사퇴 결사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그의 인품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다. 이를 두고 김 전 총장은 “평생 많은 훈장을 받았지만 그때 학생들의 시위를 최고의 훈장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학병(學兵) 탈출 1호로 1세대 중국학·공산주의 전문가인 그는 정계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학자로서의 길을 고집했다. 회고록인 ‘장정(長征)’에서 장면 내각의 주일대사(1960), 5·16 이후 공화당 사무총장, 박정희의 통일원장관 제의(1974) 등을 모두 뿌리쳤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1988년 1월 초 궁정동 안가에서 당시 대통령 당선자였던 노태우로부터 국무총리를 제의받았을 때 이른바 ‘5불가론’을 이유로 고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첫째, 그동안 노 당선자를 두 번 만났지만 잘 모르고 둘째, 헌법에 따라 전두환 씨가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게 되는데 총칼로 정권을 장악하고 많은 사람을 괴롭힌 그에게 내 머리가 100개 있어도 숙일 수 없고 셋째, 민주주의란 의회정치인데 총리가 어떻게 반민주주의자들과 협력해서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넷째,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그 스승이라는 자가 총리가 될 수 없으며 다섯째,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굽실 거리는 풍토를 고치기 위해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지성의 절개’를 보여줬던 ‘영원한 광복군’인 김 전 총장의 좌우명은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였다. 후학들에게는 “‘역사의 신’을 믿으라. 정의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했다.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부딪쳐 온 그는 1944년 일본 게이오(慶應)대에 재학 중이던 21세 때 학병으로 강제 징집 당했다가 탈출한다. ‘장정’에서 그는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고 술회했다. 일본군 탈출 후 중국 유격대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하며 다시 6천 리 길을 걸어 충칭(重慶)의 우리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이 고난의 장정에서 그는 동행했던 장준하와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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