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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놀이“가족과 함께해 더 즐거워요”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정겨움을 나누는 민속 최대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설에는 신년계획을 짜고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굳건한 의지를 다진다.설에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놀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면서 전통 놀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투호(投壺)

일정한 거리에 병(壺)를 놓고 편을 갈라 병 속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로 원래 투호는 중국 한나라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춘추좌전(春秋左傳)’에는 진나라 제후와 제나라 제후가 술을 마시는 가운데 투호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당나라 때에는 손님 접대의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주로 왕실이나 귀족층의 놀이로 발달해 왔다. 이러한 투호가 언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삼국지(三國志)’와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고구려의 풍속에 연회를 즐기고 투호와 축국(蹴鞠)을 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주서(周書)’와 ‘수서(隋書)’의 백제조(百濟條)에는 투호가 위기(圍碁)·저포(樗蒲)·악삭 등의 잡희로 행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투호는 고려 초기에는 한동안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예종 때 송나라에서 투호의 도구를 보내오면서 보문각 학사들에게 투호의례와 그림을 그려 투호를 권장하기 시작했다. 투호가 왕실에서 예법을 익히는 법도인 동시에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투호는 조선왕조에 들어와 유교의식 확산과 더불어 유교적 예법을 익히는 수단으로 왕실은 물론이고 양반관료 내지 사족층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다. 투호는 왕비는 물론 내외 명부(命婦)들의 여성 오락으로서도 자주 행해졌다.

▲널뛰기

정초에 여자들이 둘로 나눠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다.

답판(踏板)·도판(跳板)·초판희(超板戱)·판무(板舞)라고도 한다. 승부는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어 널에서 떨어질 때에 정해진다. 주로 정초에 놀지만, 경우에 따라 정월 대보름, 첫 용날(상진일,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정월 16일 귀신날(경기도 지역)과 같이 특정한 날로 국한되기도 한다.

널뛰기에 관련된 몇 가지 설이 내려온다.

첫째, 옛날 죄를 지은 두 남자가 옥 속에 갇혀 있었다. 이들 부인 중 한 사람이 옥에 갇혀 있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다른 죄인의 아내와 공모해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 옥에 갇혀 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엿보았다. 둘째, 옛날에 담장 안에 묶여 있던 부녀자들이 세상 밖을 보고 싶어서 널뛰기를 해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 보았다. 셋째, 널을 뛰면 시집가서 아기를 잘 낳는다. 반대로 처녀 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다. 넷째,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년 중 발에 가시나 못이 찔리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 다섯째, 귀신을 쫓기 위해서 널을 뛴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포천군 일동면 유동리, 김포시 통진읍,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에서는 1월 16일 귀신날에 널을 뛰는 것을 귀신 대가리 깬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 옥에 갇힌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아내가 옥 밖에서 널을 뛰었다거나 담장 안의 부녀자들이 세상이 궁금해 널을 뛰었다는 설은 호사가들에 의해 후대에 형성된 설화라고 볼 수 있다.

담 안에서 생활한 부녀자들은 양반 사대부 집안 여성에 한정된 극소수였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발바닥 단련을 통해 건강한 발의 유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섯 번째는 귀신날에 잡귀를 쫓고 부정을 없애기 위한 축귀적(逐鬼的) 성격을 보여준다.

▲쌍륙(雙六)

정초나 겨울철에 많이 놀았던 주사위 놀이다.

쌍륙은 쌍륙판(雙六板, 말판)과 서른 개의 말(馬) 그리고 두 개의 주사위를 가지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대한제국 말기까지 널리 행해졌다.

악삭과 쌍륙, 상륙, 상육이라고도 했는데 악삭은 길게 깎은 나무를 쥐고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유래는 고대(古代)의 쌍륙판은 바빌로니아·이집트·고대 인도·고대 그리스·로마제국 등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됐는데 가장 오래된 형태는 바빌로니아의 아브라함 성지(聖地)에서 발견된 것으로 C. 3천 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 쌍륙이 전해진 것은 남북조(南北朝)시대에 천축(天竺, 고대 인도)을 통해서 ‘오잡조(五雜俎)’, ‘보쌍(譜雙)’ 등에 호왕(胡王)의 동생이 왕에게 악삭을 바쳐 목숨을 구했다는 고사(古事)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쌍륙은 수(隋)·당(唐)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명칭 이외에도 쌍록(雙鹿)·박륙(博陸)·파라새희(波羅塞戱, 범어)·악소(握塑)·십이기·선채(選采)·육갑(六甲)·육채(六采)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다.

▲연날리기

주로 겨울철에 바람을 이용해 연을 하늘에 띄우는 민속놀이. 종이에 가는 대나무가지를 붙여 연을 만들고, 얼레에 감은 실을 연결한 다음 날리며 논다.

연날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김유신조(金庾信條)’에서 찾아볼 수 있다.

647년에 선덕 여왕이 죽고 진덕 여왕이 즉위하자 비담(毘曇)과 염종(廉宗)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또 ‘고려사(高麗史)’ 권33 충선왕조(忠宣王條)에는 어떤 궁노(宮奴)가 동리 아이들의 연을 빼앗아 충선왕에게 바쳤더니 왕이 책망하면서 곧 돌려주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한시 ‘칠월 삼일에 바람을 읊다(七月三日 詠風)’에서는 음력 7월에 접어들면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읊고 있다.

▲장치기

장(杖), 즉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서 공을 치는 놀이다. 한자로 타구(打毬)·격구(擊毬)·격방(擊棒)·방희(棒戱)·농장희(弄杖戱)·장구(杖球)라고도 쓴다.

장치기는 놀이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채막대기로 구멍에 공을 쳐 넣는 방식으로 현재 골프와 비슷한 형태이고 둘째는 말을 타고 공을 쳐 구문에 공을 넣는 방식으로 흔히 격구 또는 기마격구라고 한다. 현재 서양의 폴로와 유사한 형태다.

셋째, 말을 이용하지 않고 땅 위에서 공을 쳐 구문에 넣는 방식이다. 현재 필드하키와 흡사한 형태다.

이처럼 한국 역사 속에서는 다양한 장치기가 존재해 왔다.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민속놀이로 계승되어 발전하고 있는 형태가 바로 땅 위에서 행하는 장치기이다. 이러한 장치기를 1920년대에는 장구라고도 불렀는데 오늘날 각 지방에서는 공치기·타구놀이·얼레공치기·짱치기·짱공치기 등으로 불린다. 공을 위주로 놀이를 표현하면 공치기요, 공을 치는 채막기를 위주로 표현하면 장치기다. 장치기는 주로 겨울철에서 봄 사이나 농한기, 특히 음력 정초를 전후한 시기에 청소년을 비롯한 남성들의 경기로 많이 행해졌다. 장소는 논바닥이나 광장, 공터였다.

원래 장치기는 축국(蹴鞠)과 함께 일정한 대형을 이루고 공격과 수비를 연습하는 진법훈련과도 관련이 있었던 놀이로 이해된다. 이에 따라 경기의 인원수도 경기장 안에 정해진 위치에서 공격과 수비, 즉 대진(對陣)을 할 수 있는 인원이면 가능하나 보통 10명 이상이어야 적당하였다.

이를 두 팀으로 나누는데, 각 팀당 5∼6명씩으로 구성한다. 각 팀마다 1명은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고, 나머지 전원은 공격과 수비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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