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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6·25전쟁 영웅

여준선생,독립군 양성·항일투쟁에 평생 바쳐
조달진 육군소위,적 전차 4대 파괴 6대 노획한 영웅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서로군정서 부독판, 임시정부 간서총판부 총판으로 활동한 여준(呂準·1862~1932)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또한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는 전쟁 발발 당시 강원도 홍천에서 적 전차 4대를 파괴하고 6대를 노획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린 조달진(趙達珍·1928.11.18~2008.10.15) 육군 소위를 선정, 발표했다.

여 준 (呂準·1862~1932) 선생

 

 

여준 선생은 선생은 1862년 죽산군 원삼면(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한문을 공부한 선생은 성년이 되어 서울에서 이상설, 이회영, 이시영 등과 어울려 신학문을 섭렵했으며 1896년 성균관 직원에 임명되기도 했다.

여준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이상설, 정순만, 이동녕 등과 함께 민중의 애국사상고취를 위한 교육계몽의 필요성을 깨닫고 민족교육활동을 통한 구국운동 방략을 계획했다.

 


1906년 이상설 이동녕 선생 등이 북간도로 망명해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연길현 용정촌에 서전서숙을 세우고 이듬해, 이상설이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자 선생이 제2대 숙장이 되어 서전서숙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서전서숙은 민족교육을 실시한다는 이유로 통감부 간도파출소의 감시와 방해가 심해지고 재정난이 겹쳐지자 3개반 74명을 단기 속성과정으로 졸업시키고 1907년 8~9월에 폐교하게 됐다.

서전서숙은 1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으나 이후 간도 지역 민족교육의 선구가 됐다.

이후 선생은 국내로 돌아와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을 계속했고,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의 교원으로 초빙되는 한편 1908년 용인 원삼면 죽릉리에서 삼악학교를 세워 신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여준 선생은 신흥학교 유지회를 구성, 이상룡의 뒤를 이어 교장에 취임해 학교 운영을 전담하는 등 독립군 양성을 위한 민족교육에 매진했다.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의 정령으로 추대돼 박찬익·김동삼·김좌진 등 38인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2년에는 액목현에 검성중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고 1930년 7월 북만주 위하현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에서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1932년 만주사변 중 서거하기 까지 일생을 독립군 양성과 항일투쟁의 일관된 삶을 살았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달진 (趙達珍·1928.11.18~2008.10.15) 육군 소위

 

 

조달진 일등병이 제6사단 19연대 3대대 소총수로 복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홍천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진출로인 말고개는 주변의 저지대 감시가 가능하고 도로 폭이 좁으며 굴곡이 심해 대전차 방어에 천혜의 여건을 갖춘 지형이었다.

19연대장 민병권 대령은 이러한 지형상의 이점을 이용해 적의 대전차 파괴를 목적으로 조달진 일등병을 포함한 11명의 특공대를 편성했다.

6월28일 10시쯤 말고개를 지나던 전차대열에 대전차포 공격과 연막수류탄을 사용해 적 전차 승무원을 모두 하차하게 해 적 전차 파괴 4대, 노획 6대, 사살 24명의 전과를 거뒀다.

특공대는 육탄으로 적 전차를 공격하는 용맹과 투지를 발휘해 국군의 사기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30일까지 홍천을 사수해 적의 남진을 3일간 지연시켰다.

이날 바로 조달진 일등병은 이등중사로 2계급 특진했다.

전사에는 육탄 11용사의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7월24일 경북 상주군 유곡 북방전투에서는 조달진 이등중사를 포함한 7명으로 구성된 대전차 특공대가 4대의 적 전차에 포격을 가해 4대의 적 전차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른바 7용사 특공작전으로 조달진 이등중사는 이등상사로 2계급 특진했다.

두 차례에 걸쳐 적 전차를 파괴한 조달진 이등상사는 불사조, 탱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됐다.

조달진 육군 소위는 이러한 두 번의 공적으로 1950년 10월 을지무공훈장, 2011년 10월 국군의 날에 태극무공훈장(1등급)을 수여받았으며 아울러 개전 이후 한국군 최초로 미 동성훈장 수여의 영예를 안았다.

/자료제공=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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