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0 (화)

  • 맑음동두천 27.1℃
  • 맑음강릉 31.7℃
  • 맑음서울 29.2℃
  • 맑음대전 28.8℃
  • 맑음대구 31.5℃
  • 맑음울산 30.3℃
  • 맑음광주 29.5℃
  • 맑음부산 29.0℃
  • 맑음고창 28.1℃
  • 맑음제주 30.4℃
  • 맑음강화 25.5℃
  • 맑음보은 27.0℃
  • 맑음금산 27.9℃
  • 맑음강진군 29.3℃
  • 맑음경주시 31.3℃
  • 맑음거제 28.4℃
기상청 제공

한국광복군 병력모집·선전활동 전개

김 동 수 (金東洙·1916.12.6~1982.2.20) 선생

 

 

 

김동수 선생은 강화에 세거한 양반가문으로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선생은 상해에서 민족교육의 상징인 인성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고 화랑사 등 각종 소년단체에 가입해 활동했다.

인성학교와 공시중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1월, 제1차 상해사변 이후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학생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34년에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선생은 윤봉길의거 이후 독립전쟁의 군사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된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 입학해 군사학을 연마하고 김구가 조직한 특무대에 들어가 반일운동에 참여했다.

낙양분교를 졸업한 선생은 1936년 중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남경에 가서 임시정부에 합류해 피난 중의 임시정부 등 요인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임시정부가 중경에 도착한 이후 선생은 나월환 등 한인 청년들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했다.

이때 모집된 한인 청년들은 후일 한국광복군의 근간이 됐다.
 

 

 


1940년 9월17일 마침내 중경에서 임시정부의 국군 한국광복군이 창설되면서 이듬해 1월, 전지공작대는 광복군 제5지대로의 편입을 결정했다.

선생은 신설된 광복군 제5지대의 부지대장 겸 제1구대장으로 모병, 선전, 정보수집 활동을 전개했다.

아울러 새롭게 모집된 대원들은 중국군관학교에 한국청년반을 특설해 군사훈련을 시켰고 1945년 4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산하에 조직된 토교대 제3대 대장을 역임했다.
 

 

 


선생은 중경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선생은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동북특파원으로 교포의 생명, 재산의 보호, 안전한 귀국을 주선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8년 귀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자료제공=국가보훈처 수원보훈지청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