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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 힘겹게 뿌리내린 식물들의 치열한 삶 산성 쌓은 선조들의 고단했을 삶과 교차 ‘먹먹’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는 북한산성 재조명
<6> 북한산에서 만나는 야생화

 

가을 등산로엔 구절초·쑥부쟁이·금마타리 등
산성 따라 걷다보면 많은 야생화 만날 수 있어


해방 직후 美 농무성에서 파견된 엘윈 미더
털개회나무 발견·파종… ‘미스김라일락’ 명명



북한산에는 800여종의 생물종 분포 보고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미선나무·분취 발견
자생하는 산개나리 등 계절별 지속적 조사 필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특히 가을풍경은 세계 어디와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의 수도 안에 북한산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곳이 전 세계 어디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 달 전쯤 북한산성의 야생화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에 빠진 건 솔직히 여지껏 북한산을 조사할 때 마다 항상 그 속의 식물에만 집중했지, 산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북한산성을 따라 돌아보기로 산을 올랐다. 개인적으로 바위산을 좋아하는 터라 북한산은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지만 유례없이 긴 가뭄으로 인해 계곡은 마르고 약수터 몇 곳은 이미 폐쇄돼 있었다. 특히 바위산으로 이뤄진 북한산의 식물들은 가뭄의 고통을 더 겪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듯 그 구성원인 식물들 또한 현재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존하고 종자를 만들어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열매들을 맺고 있었다.

가을인 만큼 등산로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구절초, 쑥부쟁이, 금마타리, 산부추 뿐만 아니더라도 식물과 20년을 넘게 살다보니 자연히 알게 된 다양한 식물들 또한 이미 철이 지났음에도 그 존재들을 보면서 봄에는 보라, 하양, 노랑, 분홍 등 화려하게 꽃필 온갖 종류의 제비꽃들과 노루귀 그리고 봄을 알리는 우리나라 대표식물인 진달래, 철쭉, 개나리 등 실제 가을 산을 오르고는 있지만 필자는 사계절을 상상하며 돌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뤄진 북한산과 같은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토심이 깊고 기름진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에 비해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치열하고 처절하게까지 느껴진다.

바위 틈틈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식물들의 모습을 본다면 모두들 그 모습에 탄성을 지르지만 막상 그 치열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산성을 축조할 때 산에 있는 돌을 이용해 성을 만들었다는 안내문을 읽으면서 오르기도 힘든 험준한 산속에 이런 산성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선조들의 고단했을 삶이 바위틈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식물들의 삶과 교차되면서 나의 뇌리를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토양이 좋은 평평한 땅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늘보고 두 팔 벌리듯 마음껏 가지를 뻗으며 자랄 수목들이 바람에 의해 씨앗이 바위틈에 날아들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뿌리는 물과 양분을 찾아서 바위틈을 파고들며 절벽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바위를 힘껏 안고 자라니 그 모양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자연에 순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식물들의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식물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자생식물에 대해 특별히 애정이 더 많은 이들이라면 북한산은 오히려 북한산에 자생하고 있는 특별한 식물종 하나 때문에 더 잘 알려진 곳일 것이다. 필자 또한 처음으로 북한산을 오른 이유가 그 특별한 식물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언제나 우리나라 식물종 보전의 중요성이나 우리나라 식물의 해외유출사례, 또는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식물종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 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식물이 바로 ‘미스김라일락’이다. 물론 ‘미스김라일락’은 북한산에 자생하는 식물은 아니지만 그 부모가 되는 식물이 북한산에 자생하는 털개회나무이기 때문이다.

‘미스김라일락’의 사연은 1945년 9월 해방 직후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에 파견 나온 여러 학자들 중 미국 농무성에서 파견된 엘윈 미더(Elwin M. Meader)는 1947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식물을 채집하던 중 서양에서도 좋은 향기로 많은 사랑을 받는 라일락종류인 털개회나무를 발견하고 그 종자를 채종해 미국으로 가져가 뉴햄프셔대학의 원예학과 실습장에 파종했다.

그 중 7개가 성공적으로 자라났는데, 그 중 하나가 유달리 일반종에 비해 키가 작고 꽃향기가 진한 변이종이 발견됐다. 1954년 미더는 이렇게 발견된 새로운 품종에 자신이 한국에 근무할 때 옆에서 도와주던 ‘미스 킴’의 이름을 품종명에 붙여 ‘미스김라일락’이라고 불렀다.

‘미스김라일락’은 작은 키와 진한 꽃향기 그리고 병충해에 강해 아직까지도 전 세계 원예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우수한 식물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수한 부모개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생활 주변에 너무 많이 식재돼 흔히 볼 수 있어 그 가치가 저평가 되고 있는 식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개나리(Forsythia koreana)다.

개나리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인데 개나리종류 중 북한산에 자생하는 산개나리(Forsythia saxatilis)는 북한산을 대표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물론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개나리와 산개나리의 차이점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자루 뒷면 잎맥 위와 암술머리에 털이 있는 것이 산개나리의 특징이다.

하지만 발견된 대부분의 산개나리들이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이 있는 곳 주변이라 아직까지 자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산개나리가 주인으로 있던 곳에 사람이 들어가서 살았으니 누가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많은 사실들이 달리 해석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산성 구간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마도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다른 곳도 쉽지는 않지만 백운대 정상을 올라 처음에는 서울시내를 내려다보고 환호하고 그 다음엔 정상의 태극기와 3·1운동 암각문 그리고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산성을 보면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선조들을 발자취를 보면서 오늘 나 자신이 잘 살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곳에서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일어서는데 갈라진 바위틈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 키작은 나무가 눈에 들어 왔다. 심한 가뭄에 잎은 이미 말라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가까이 가서보니 북한산 주인인 산개나리였다.

이 친구가 산개나리인지 개나리인지는 너무 말라있어 정확한 구별이 어려웠지만 다행이 눈들은 살아있어 추후 다시 찾아 동정해 봐야겠지만 백운대 정상에서 산개나리를 만난 것만으로도 얼마나 반가웠던지 마치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 집을 당당히 지키고 있는 집주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산성을 따라 걷다보면 일부구간은 안전상의 문제로 통제되거나 암벽등반 장비를 갖춰야만 접근이 가능한 구간이 있어 그런 구간은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서야 했지만 북한산에는 식물종이 다양하지 않다던 얘기와는 달리 많은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단, 환경 탓에 대량으로 식물들이 분포하기 보다는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바위틈이나 흙이 조금이라도 쌓여 있는 바위 아래와 나무뿌리 사이에 쌓인 한줌의 흙에도 여러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산성을 따라 걷다보니 산성의 벽에 열심히 흡착판을 뻗으며 가을단풍을 자랑하는 담쟁이와 틈틈이 뿌리내린 바위채송화는 인간과 자연의 만남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이 높거나 가파르면 그만큼 계곡도 깊어지니 다양한 식물들이 능선과 계곡을 따라 분포하게 되는데, 특히 북한산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중 하나인 팥배나무는 아름다운 가을단풍 뿐 아니라 붉게 익은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돼 주고 신갈나무의 도토리 또한 추운 겨울을 보낼 동물들에게 있어 중요한 먹이가 돼 준다.
 

 

 

 


북한산에서 자생하는 단풍나무는 대부분이 당단풍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가을 단풍이 유독 화려하다. 계곡의 동북향에 낙엽이 쌓여 부엽층이 쌓인 곳에서는 투구꽃들도 간간히 군락을 이루고 있어 북한산 식물종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수봉(文殊峰)에서 산철쭉이 군락을 이룬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남장대지(南將臺址)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 행궁터 방향으로 바로 내려오게 됐는데, 산철쭉의 붉게 물든 단풍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특히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행궁터 주변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고목의 산사나무는 행궁터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자생하던 것으로 보였겠지만 행궁터의 발견으로 인해 아무래도 예전에 식재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산성 내에는 많은 사찰이 있어 예전부터 다양한 식물들이 약용이나 식용 등의 이유로 사찰에서 식재됐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인위적으로 식재되고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그 종자가 동물들에 의해 여러 곳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산성의 역사만큼이나 산사나무도 고목이 돼 있었다. 현재 북한산에는 800여종의 생물종이 분포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중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보호종이면서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미선나무와 특산식물이면서 북한산에서 발견됐고 그 분포지가 일부지역에 한정돼 있는 분취와 산개나리의 자생지라는 것만으로도 북한산성이 품고 있는 생물종의 중요성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북한산성은 북한산국립공원 내 자리하고 있어 인위적인 관리를 허용하지 않지만 현재 산성 내 어떠한 식물종 아니 생물종들이 분포하고 있는지 계절별로 지속적인 조사가 필요하고 종에 따라서는 필요한 보전 대책도 수립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복원된 일부 성곽이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라 아쉬워하는 평가도 많지만, 지금 세대에선 북한산성을 제대로 보전하고 복원해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중요한 자연생태계를 간직한 아름다운 북한산성을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강정화 한택식물원 식물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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