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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zip] ①최초의 '대림', DL이앤씨의 84년

부림상회에서 대림산업 거쳐 DL이앤씨로
'장자승계' 원칙 고수하며 '3세 경영' 개막
갑질·승계 일감몰아주기·안전사고 '불명예'
'그림자' 지우고 '글로벌 디벨로퍼' 도약할까

건설사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역사와 함께한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 토목사업부터 고도 성장기의 각종 SOC 국책사업에서 건설사들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기업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선봉이었고, 개발도상국 시절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창구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 주거 형태이자 각 가정의 주된 자산인 아파트 역시 건설사를 빼놓고는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에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잦은 인명사고로 지탄을 받기도 하고,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또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기신문>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명암을 고스란히 반영한 건설사들의 성장 과정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DL이앤씨는 올해 창립 84주년을 맞은 국내 최고(最古) 건설사다. 1939년 10월, 창업주 이재준 초대회장이 인천 부평 허허벌판에 세운 부림상회가 모태다. 부림상회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익숙한 대림산업을 거쳐 2021년 DL이앤씨가 됐다. 

 

DL이앤씨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건설사다. 해외 사업을 수주해 국내 건설사 중 최초로 외화 벌이에 성공했고,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했으며, 해외 플랜트 수출 1호 회사다. 지금은 당연해진 브랜드 아파트를 처음으로 시장에 선보인 기업이기도 하다. 

 

타이틀이 많은 만큼 알만한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건설에도 다수 참여했다. 국토 대동맥이라 불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서울 교통의 혈관과도 같은 서울지하철 건설에 DL이앤씨가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상징과도 같은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도 DL이앤씨의 작품이다. 국책 사업급으로 추진된 포항제철소 건설을 비롯해 독립기념관, 한국은행 등도 DL이앤씨의 손길이 닿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랜드마크도 있다. 세계 최장 현수교로 전세계 건설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튀르키예의 '차나칼레 대교'다. SK에코플랜트와 합작으로 공기를 1년 7개월 단축해 준공했는데, 이는 국내 최장 현수교인 이순신 대교에 이어 DL이앤씨의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세계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 허허벌판의 부림상회, 근검절약과 '설렁탕 외교'로 일군 기업

 

DL그룹의 창업주는 이재준 초대 회장이다. 1939년, 23세 나이에 인천 부평에 설립한 부림상회에서 건설자재를 팔며 사업을 시작했다. 주요 거래 품목은 목재였다. 자본금 3만 원, 종업원 7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8년 후 직접 벌목에 나설 수 있을만큼 성장했고, 사명을 대림산업으로 바꾸며 건설회사로 거듭났다. 

 

 

광복을 전후로 일본계 건설사들이 철수하자 그 빈자리를 전략적으로 파고들며 급성장 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건설사로 변신한 대림산업의 1호 수주는 부평경찰서 신축공사다. 이후 대림산업은 각종 대규모 사업에 뛰어들고,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추진하며 급성장을 이룬다. 

 

이 초대회장은 근면성실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거래처에 조금만 늦게 방문해도 수금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벽 4시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대림산업을 함께 일군 초창기 간부들 역시 이 초대회장의 이같은 일정을 따랐다. 이 초대회장은 평생 수수한 차림을 유지했고, 찾아오는 손님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설렁탕을 대접했다.

 

이 초대회장의 이러한 경영방식은 DL이앤씨가 1962년 시공능력평가제도가 생긴 이후 60년 이상 10대 건설사에 포함되는 근본이 됐다. 또한, 고객제일주의 경영철학의 모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초대회장은 1988년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하다 199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1995년 11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 '최초'는 '대림'...해외 진출부터 아파트까지 건설산업 '선도'

 

동남아 진출은 DL이앤씨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된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 진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DL이앤씨는 1966년 1월 28일, 미국 해군시설처에서 발주한 87만 7000달러 규모의 베트남 라치기아 항만 항타 공사를 따낸다. 같은해 2월 DL이앤씨가 한국은행으로 송금한 공사 착수금 4만 5000달러는 국내 건설사의 첫 외화 획득이라는 대사건이었다. 해외 첫 수주 자체는 현대건설의 1965년 11월 태국 고속도로 공사였지만, DL이앤씨의 송금이 더 빨랐다.

 

1973년에는 중동 진출에도 성공한다. 4차 중동전쟁 과정에서 국내 건설사에 중동 진출 붐이 일었고, DL이앤씨는 아람코가 발주한 정유공장 공사를 따낸다. 중동 진출 1호는 아니지만 해외 플랜트 수출 1호의 성과였다. 

 

동남아와 중동에 이어 아프리카에서도 DL이앤씨의 성공은 계속됐다. DL이앤씨는 1975년 9월 1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첫 아프리카 진출 건설사가 된다. 현재까지 DL이앤씨가 진출한 국가는 전세계 35개국에 달하며, 플랜트, 댐, 도로, 항만, 공공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DL이앤씨는 국내 최초로 브랜드 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건설사기도 하다. 2000년 1월 경기 용인시 보정동에 공급한 'e편한세상'이 주인공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1년 앞선 1999년 국내 처음으로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 상표를 출원했지만 DL이앤씨의 분양이 한 발 먼저였다. 

 

 

◇ 3세 시대 시작된 DL그룹...지주회사 전환하고 새출발

 

DL그룹 오너 일가는 장자승계 원칙이 명확하다. 창업주 이재준 초대회장은 장남 이준용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고, 이준용 명예회장은 다시 장남 이해욱 회장에게 가업을 승계했다. 이 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등의 의혹과 논란은 있었으나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왕자의 난과 같은 분쟁은 없었다. 또 DL그룹이 3대를 거치는 동안, 아버지의 사망 이전에 확실한 후계자를 정해 경영권을 물려주는 방식도 관례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2대인 이준용 명예회장은 아버지 이재준 초대회장이 타계하기 전인 1993년 회장직에 올랐다. 이준용 명예회장은 1977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사실상 회장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용 명예회장 역시 장남이자 현재 회장인 이해욱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이준용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2006년인데, 이후 DL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한때 유지된다. 다만 이 시기에도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해욱 회장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욱 회장은 2019년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른다.

 

2021년, 이해욱 회장은 창립 82년만에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돌입한다. 그간 국내 대기업의 악습으로 지목되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고, 지배구조를 단순화 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한편, 사업별 명확한 구조 개선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은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인 대림산업을 분할한다. 건설 부문은 인적분할을 통해 DL이앤씨로, 석유화학 부문은 물적분할 해 DL케미칼이 된다. 존속회사인 대림산업은 분할 후 사명을 DL(주)로 바꾸고 지주회사 역할을 맡는다. 이 회장은 (주)대림을 통해 DL(주)를 소유하고, DL(주)가 DL이앤씨, DL케미칼, DL에너지, DL모터스를 자회사로 둔다. DL이앤씨 등 DL(주)의 자회사들은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며 각각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지분 관계로 따져보면, 이 회장이 대림(주)의 지분 52.26%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고 대림(주)가 지주사인 DL(주)의 지분 42.3%를 가진다. DL(주)는 DL이앤씨 지분 23.15%, DL케미칼 88.9%, DL에너지 70%, DL모터스 100%를 각각 보유한 최대주주다. 

 

DL그룹은 이같은 사업 부문 조정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하고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 일감몰아주기·안전사고 불명예 그림자도

 

고도 성장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 마련이다. 특히 21세기를 맞아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접어들며 기업들의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면서 과거 관례처럼 행해졌던 일들이 구설에 올랐다. DL이앤씨 역시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과 회장의 태도가 구설에 올랐다. 

 

대표적인 게 이해욱 회장의 수행기사 상대 갑질 논란이다. 2016년 당시 부회장이던 이 회장이 수행기사에게 상습적 폭행과 폭언을 한 것이 알려졌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교체된 운전기사가 40여 명에 달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회장은 "저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며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사과드리겠다"고 머리를 숙였고, 결국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승계 과정에서의 일감몰아주기 의혹도 꾸준히 지속됐다. 이 회장으로의 승계 과정에서는 물론, 이 회장의 아들 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해 오너 일가가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는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최근 1심에서 2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동원된 DL 법인은 벌금 5000만 원, 글래드호텔앤리조트도 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현장의 사건 사고에 대한 지적도 계속된다. 단적으로 이 회장은 오는 12월 1일 노동자 사망 사고 관련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 8월 부산 연제구 아파트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하청업체 근로자 8명의 사망사고 때문이다. DL이앤씨는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건설사 중 최다 사망사고를 낸 단일 건설사다. 

 

이밖에도 2017년 8월 평택국제대교 교각 상판 붕괴 사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노선 건설현장 사고 등 현장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 DL이앤씨,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과제는?

 

DL이앤씨는 시공 위주의 건설회사였지만 앞으로는 프로젝트 자체를 발굴해 시공부터 운영까지 총괄해 수익을 창출하는 ‘디벨로퍼’로 업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다양한 시공 경험을 보유한 주택, 상업시설, 교량, 댐과 같은 분야는 물론 DL그룹내 시너지를 통해 호텔과 석유화학, 에너지 분야에서도 디벨로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디벨로퍼 사업을 통해 장기적 성장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DL이앤씨는 올해 1월 미국 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X-Energy)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결정했다. DL이앤씨는 2천만 달러(약 250억 원)를 투자해 엑스에너지가 발행하는 전환사채를 인수했다.

 

DL이앤씨는 향후 엑스에너지와 SMR 플랜트 사업 개발을 협력하고 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기회와 경쟁력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엑스에너지의 SMR 기술은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활용성이 높아 DL이앤씨의 플랜트 사업과 연계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DL이앤씨는 SMR 사업을 통한 친환경 신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추진한다. SMR 가동 시 발생하는 600℃ 이상의 높은 열을 또 다른 친환경 에너지원인 수소 및 암모니아 생산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DL이앤씨는 국내외에서 개질 및 부생수소 생산 플랜트를 설계부터 시공까지 수행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향후 SMR 사업과 접목한 수소 밸류 체인을 구축해 친환경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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