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역사와 함께한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 토목사업부터 고도 성장기의 각종 SOC 국책사업에서 건설사들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기업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선봉이었고, 개발도상국 시절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창구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 주거 형태이자 각 가정의 주된 자산인 아파트 역시 건설사를 빼놓고는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에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잦은 인명사고로 지탄을 받기도 하고,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또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기신문>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명암을 고스란히 반영한 건설사들의 성장 과정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삼성그룹의 건설사는 삼성건설이라는 법인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그룹은 건설산업 시공평가순위 1위의 재벌 기업 집단이지만, 건설사가 없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사실 삼성의 건설사는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으로 존재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로, 상사부문, 소재부문(옛 제일모직), 건설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건설부문은 삼성건설이라는 독립 부문으로, 직원도 따로 채용하고 CEO도 따로 존재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삼성건설이라는 법인명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1993년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때문이다. 당시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을 맡았던 열차가 전복돼 58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사고였다. 이 사고로 삼성종합건설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이에 삼성은 삼성종합건설을 해체하고 1995년 삼성물산에 합병했다. 삼성물산은 상사부문과 소재부문의 이미지가 비교적 양호했기 때문에, 건설부문도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으로 편입시켜 이미지 회복에 나섰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후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타이베이 101,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등 세계 최고층 건물들을 건설하며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부르즈 할리파는 500m부터 단독으로 시공을 맡아 완공을 앞당겼다.
국내 시장에서도 부산 지역에서 분양에 성공하며 이미지 회복에 나섰다. 2014년에는 도급순위 1위에 올랐다.
오늘날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삼성물산의 시공능력평가액은 2023년 기준 4조 7000억 원으로, 국내 건설사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은 국가고객만족도조사 1위를 26년 연속 차지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 위기와 기회를 넘어 세계적인 건설사로
삼성물산은 1938년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이 설립한 '삼성상회'에서 비롯됐다. 청과물과 건어물을 팔던 작은 가게였던 삼성상회는 사업을 점점 확대하면서 종합상사, 건설, 리조트, 패션 등 다양한 사업 분야를 아우르는 현재의 삼성그룹으로 성장했다.
삼성물산은 대한민국의 산업 성장과 함께하며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펼쳐 왔다. 1954년 '제일모직' 설립, 1976년 국내 최초의 가족동산 '자연농원' 개장, 1975년 ‘종합상사 1호’ 지정, 1995년 12월 삼성건설 합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그룹은 건설업에 비교적 뒤늦게 진출했다. 1977년 통일건설과 신진개발을 인수해 삼성종합건설을 출범시켰다. 1970년대는 건설업의 중흥기를 맞이한 해로, 삼성종합건설이 설립된 1977년 삼성해외건설도 함께 설립됐다. 1978년에는 신진그룹 모기업이던 신원개발을 인수했고, 삼성해외건설과 삼성종합건설로 통합했다.
이후 당시 건설업체들이 그랬듯이 각종 개발사업에 참여했고 해외에도 진출했다. 한국 건설업체 최초로 일본에 진출하기도 했고 1991년 미국기계학회로부터 원자력 시공능력 인증서를 따냈다.
하지만 1993년 3월 28일에 일어났던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를 계기로 회사 이미지는 실추했고, 6개월간 영업정지를 받았다. 결국 그해 5월에 삼성건설로 회사이름을 바꿨다가 1995년 9월에 삼성물산에 합병돼 1996년부터 건설부문이 됐고, 2002년 주택부문을 통합했다.
그러나 구포참사가 오히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성장 계기가 됐다. 6개월간 영업정지와 이미지 추락으로 인해 국내 수주가 불가능해지자, 해외의 대형 건설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인지도와 경험을 쌓아 초일류 건설업체로 도약한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해외에서 시공한 건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고의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다. 처음에는 베식스, 아랍텍과 같이 지었으나 500m부터는 단독으로 건설했다. 3일에 1층씩 올리는 초고속 공사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타이베이 101의 마무리 공사 역시 삼성물산이 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2번 타워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주 시공사다. 즉 1998년 이래 세계 최고(最高)의 마천루는 모두 삼성물산에서 관여한 건물인 셈이다.
◇ 23년간 독보적인 존재감 '래미안'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1998년 베란다의 창호무늬를 내세운 한국형, 1999년 사이버 아파트 등 브랜드 아파트를 시도하다 2000년 3월 '미래지향적이며(來), 아름답고(美), 편안한(安) 아파트'라는 의미의 브랜드인 래미안을 내놓았다. 이후 국내 아파트 시장에서 23년 동안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단지는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랙스아파트를 재건축해 지은 래미안 이촌 첼리투스다. 지하 3층~지상 최고 56층, 전용면적 124㎡ 460가구 규모의 래미안 이촌 첼리투스는 '하늘로부터'라는 라틴어 이름처럼 가장 높은 한강 변 아파트 중 하나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아랍에미리트 부르즈 칼리파의 꼭대기 첨탑 공사에 사용했던 초고층 건축기술 공법을 적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래미안은 지난 2015년부터 미분양 제로의 진기록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가고객만족도(NCSI) 아파트 부문 26년 연속 1위, 국가브랜드 경쟁력지수(NBCI) 19년 연속 1위, 한국 산업의 브랜드 파워(K-BPI) 22년 연속 1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술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음, 환기, 단열, 수납공간, 에너지 절약 등 각 주거성능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험동을 운영하는가 하면, 지속적 모니터링으로 고객들 수요를 상품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또한 저탄소ㆍ친환경 공동주택의 현실화를 위해 기술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기술개발과 현장적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68가지 친환경 에너지 기술을 적용한 에너지 제로 건축물 '그린투모로우'를 선보이고 지열, 태양광, 소형풍력 등 대체에너지 기술은 물론 다양한 공동주택 에너지저감기술과 시스템을 개발해 현장 적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삼성물산 건설부문, 올해 사상 최대 실적 예고
원자잿값 상승과 주택 경기 위축 등으로 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약 9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9% 증가했다. 연간 영업이익 1조원 돌파 목표도 이미 90%가량 달성한 상태다.
특히, 올해 3분기에는 매출 5조 2820억 원, 영업이익 303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6.1%, 50.6% 성장했다. 3분기 영업이익은 건설사 중 유일하게 3000억 원대를 기록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이 같은 실적을 거둔 것은 해외 수주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누적 해외 수주액은 57억7969만 달러(약 7조 60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7.8% 증가했다. 이는 우리나라 해외 건설 수주 총액(3분기 누적 기준)의 24.6%를 차지하는 규모다.
주요 해외 수주 건으로는 미국 테일러 반도체 공장 추가 수주(약 3조 7500억 원), 카타르 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약 1조 8000억 원), 대만 국제공항공사(약 1조 2400억 원) 등이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국내 주택 사업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해외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와 스마트 시티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수주를 늘리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수소 생산·활용 추진… 미래 성장 발판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발전 EPC 사업 역량을 기반으로 태양광, 그린수소, 소형모듈원전 등 미래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AI와 IoT, 빅데이터 등을 결합한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하며 미래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김천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석유공사, 한국전력기술, LS일렉트릭, 수소에너지네트워크, 에스퓨얼셀 등과 '오프그리드(Off-Grid) 그린 수소 생산과 활용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린수소는 신재생 에너지만을 활용해 생산되는 수소로, 그린수소 생산시설 건설은 국내 처음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 프로젝트에서 태양광 발전, 에너지 저장과 그린수소 생산시설 및 이를 연계하는 시스템 전체에 대한 기본 설계와 상세 설계를 비롯해 주요 기자재 구매, 시공 등을 총괄한다. 2025년 1월부터 실제 생산에 나서며, 생산된 수소는 수소차 충전소를 비롯해 인근 지역 연료전지 발전에 친환경 연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스마트시티 분야에서도 AI와 IoT, 빅데이터 등을 결합해 도시 인프라에 모듈러, 솔루션Biz 등 스마트 사업 역량을 적용해 미래 지향적인 스마트 도시를 구축할 계획이다. 공간 중심의 주택 상품에서 입주 후 서비스 영역까지 밸류 체인을 확장해 한 차원 높은 주거 가치를 만들 예정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2023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SCEWC, Smart City Expo World Congress)’에 국내 건설사 최초로 참가해, 삼성물산 스마트시티의 비전과 솔루션을 선보였다.
앞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인도네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시나르마스 랜드와 스마트시티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우디 모듈러 공급을 위한 PIF(사우디아라비아 투자청)과 합작법인 설립 협약을 연달아 성사시키며 스마트시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