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는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역사와 함께한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 토목사업부터 고도 성장기의 각종 SOC 국책사업에서 건설사들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기업들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선봉이었고, 개발도상국 시절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창구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 주거 형태이자 각 가정의 주된 자산인 아파트 역시 건설사를 빼놓고는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에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잦은 인명사고로 지탄을 받기도 하고,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또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기신문>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명암을 고스란히 반영한 건설사들의 성장 과정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에너지화학, 정보통신, 반도체는 SK그룹을 재계 2위까지 올려 놓은 3대 축이다. 직물, 합섬 사업으로 시작한 SK는 감각적이고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 왔다. 1980년 유공, 1994년 한국이동통신,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SK는 이를 각각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라는 국가대표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들의 화려한 성장 뒤에는 SK가 1977년 인수한 SK에코플랜트가 있다. SK의 성장사에서 건설업이 크게 강조되지는 않지만 SK에코플랜트는 그룹의 궃은 일을 도맡아 하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왔다. 울산, 평택의 LPG 지하비축기지, 다양한 국내외 플랜트, 파주 연료전지 발전소 등이 SK에코플랜트의 작품이다. 최근 국가적 과제 격으로 진행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도 SK에코플랜트가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SK가 50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숲 조성 사업인 조림사업도 한때 SK에코플랜트의 자회사였던 SK임업의 주도하에 진행됐고, 현재는 그룹 탄소배출권 플랫폼의 핵심이 됐다.
SK에코플랜트는 1962년 설립된 협우산업이 모태다. 협우산업은 1965년 건설업 허가, 1976년 해외공사 면허를 취득하고 1977년 선경그룹에 인수돼 선경종합건설로 사명을 바꾼다. 1977년은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뒤를 이어 동생 고(故)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이끌며 다양한 사업에 진출해 덩치를 키워나갈 때다.
최종건 회장은 일제 패망과 6.25 전쟁을 겪으며 고전하던 선경직물을 적산불하로 얻어냈다. 선경직물의 오너 경영인이 된 최종건 회장은 섬유화학 사업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며 1962년 홍콩 수출을 시작으로 해외에도 진출한다. 1972년에는 워커힐 호텔 인수를 성공시키지만 197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최종건 회장 사후에는 그의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맡아 대기업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최종현 회장은 섬유화학을 넘어 관광(선경개발), 조림(서해개발), DMT공장(선경유화), 정유(선경석유), 오디오테이프(선경매그내틱) 등을 잇따라 설립하며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선경종합건설도 선경그룹 산하로 편입된다.
선경종합건설은 1979년 첫 해외공사로 사우디 주택단지를 수주하고, 1980년대에는 안산 등 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종합건설사로의 입지를 다진다. 1984년 선경건설로, 1998년 SK건설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2021년 SK에코플랜트로 다시 한 번 변신하며 건설업을 넘어 친환경 및 신에너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 M&A로 성장한 SK그룹의 숨은 주역, SK에코플랜트
선경그룹이 유공을 인수한 후 선경건설은 각종 비축기지와 플랜트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선경이 자신보다 매출액 규모가 3~5배 이상에 달하는 유공을 인수하자 일각에서는 너무 덩치가 큰 기업을 무리해서 삼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최종현 회장의 선견지명과 선경건설의 지원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1987년 인도네시아 선경인더스트리(現 SK케미칼)의 DMT/PAT 플랜트 공사를 맡았던 선경건설은 1988년 울산 유공 LPG 지하비축기지를 준공하고, 유공의 상압증류시설 공사, 옥시케미칼 PO/SM 플랜트, 경질유 개질 플랜트, PE/PP 플랜트 공사에 잇따라 착공한다. 이 시설들은 현재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인천성유화학, SK엔무브, SK온 등의 기반 시설 역할을 했다. 정유, 석유화학에서 윤활유, 2차전지에 이르기까지 SK그룹 미래먹거리의 토대가 된 셈이다.
선경그룹이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인수한 1994년 이후에도 SK건설의 남모르는 활약은 계속된다. SK건설은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의 인프라 구축 공사에 나선다. 기지국 설립 등 망구축 사업을 통해 SK텔레콤이 3G 시절부터 이동통신 1위 사업자가 되는 기반을 세웠다는 평가다.
망구축을 맡았던 SK건설의 U(유비쿼터스)-사업부문은 2015년 물적분할을 통해 SK TNS로 분리된다. SK TNS는 정보통신공사업 시공능력평가액 1위 기업으로 등극하지만, 2021년 알케미스트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에 매각한다. SK건설이 SK에코플랜트로 거듭나며 환경사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SK에코플랜트는 투자전문회사 신규 법인을 통해 SK TNS에 출자하며 지분관계는 이어오고 있다.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 M16공장도 SK건설의 작품이다. 수 조원이 투입된 M16 공장은 SK하이닉스 주력 상품인 D램 생산의 전초기지이자, 그룹 차원의 역량이 집중된 투자사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SK에코플랜트는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에 참여하며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SK건설과 아파트, 최초의 브랜드 아파트는?
국내 대형 건설사와 아파트는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10여년 이상 아파트 시장은 브랜드 아파트의 전성시대다. 삼성물산의 래미안, GS건설의 자이, DL이앤씨의 e편한세상,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부터 아파트 시장에 등장해 현재 프리미엄 브랜드를 새롭게 런칭하는 등 국내 주택시장에서 활약중이다.
브랜드 아파트의 원조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시작은 SK건설이다. 1999년 상표등록을 한 래미안, 2000년 첫 분양에 나선 e편한세상보다 크게 앞선 1994년, SK건설은 수원 인계동 분양아파트에 'HOMEX(호맥스)' 브랜드를 도입한다. 'HOME'과 EXELLENT'의 합성어로 최고의 집을 의미하는 브랜드명이다. 현재 SK에코플랜트의 대표 아파트 브랜드는 '뷰(view)'의 전신이라 할만하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프리미엄 주택 브랜드 '드파인'(DEFINE)을 공식 출시했다.
국내 최초의 대형 고급 아파트 단지 '워커힐 아파트'는 선경종합건설 시절 지어졌다. 1978년 서계사격선수권대회 선수촌으로도 사용된 이 아파트는 대회 이후 일반 분양됐고, 한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특히 워커힐이라는 이름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SK그룹은 1987년 워커힐 산책로에 워커 장군의 기념비를 세웠고, 최태원 회장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종종 워커 장군을 언급하기도 한다.
◇ SK에코플랜트의 최종 과제 '상장', 악재를 넘어서
재계에서는 M&A를 통해 성장해 온 SK그룹의 특성상 자회사나 상장사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198개의 자회사 중 상장사만 21개로 두 수치 모두 재계에서 가장 많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또 친환경 그룹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면서 꾸준히 사업구조를 개편해 왔다.
현재는 지주회사인 SK(주)가 중간지주회사 격인 SK스퀘어,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SK E&S, SKC를 두고 이들이 각각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구조다. 여기에 SK텔레콤, SK바이오팜, SK실트론 등도 직접 지배하고 있다. SK디스커버리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제인 최창원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지분관계도 대부분 정리된 상태로 계열분리도 언제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SK에코플랜트는 44.5%의 지분을 가진 SK(주)의 직접 지배를 받지만 15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어 사실상 중간지주회사의 역할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또 SK에코플랜트의 상장은 자회사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신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실판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평가다.
SK에코플랜트는 SK건설 시절부터 상장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상장을 본격적으로 타진하던 2018년, 라오스댐 붕괴 사고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며 상장이 무산됐다. 2017년 7월 라오스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댐 붕괴사고 원인에 대한 공방이 길어지며, SK건설의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고, 결국 상장이 보류됐다. 2008년 상장을 추진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연기됐던 상장이 또 한 번 무산되는 순간이다.
악재를 딛고 SK에코플랜트는 상장을 염두에 둔 사전 행보에 나선다. SK에코플랜트 상장의 걸림돌로 지적되던 SK디스커버리와의 지분을 정리하면서다. SK디스커버리는 SK에코플랜트의 지분을 28.25% 보유하고 있었는데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공정거래법상 이를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2019년 최창원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의 SK에코플랜트 보유 주식 997만 989주를 매각하면서 주가수익스왑(PRS) 계약을 맺는다. PRS 계약은 해당 자산을 처분할 때 최초 매수액과의 차액을 나중에 정산해 받는 방식이다.
지분이 정리된 후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통해 총 1조 원 규모의 자본금을 확충했고, 부채비율을 낮추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SK디스커버리는 1176억 원을 정산받게 된다. 올해 7월에는 1000억 원의 자금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에 4350억 원의 주문을 받으며 대박이 났다.
업계에서는 상장을 눈앞에 둔 SK에코플랜트의 기업가치를 최소 3조 원 정도로 추산한다. 시장에서는 최대 8조~10조 원 수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있다. 다만, 대내외적 경영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고, 국내 건설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어느정도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 친환경, 신에너지 기업으로 변신
SK에코플랜트는 최근 환경·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0년 수처리업체 EMC홀딩스를 1조 500억 원에 사들였고, 지난해에는 폐기물 관련 6개 기업을 인수했다. 올해에는 싱가포르 E-waste(전기·전자 폐기물) 기업 테스(TES)를 인수했고, 베트남 태양광 전문 기업 나미솔라와 탄소배출권 국내 거래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SK에코플랜트의 이같은 행보는 SK그룹이 추구하는 ESG 경영과 연관이 깊다. 최근 SK그룹은 전 계열사를 막론하고 EGS 경영 강화를 화두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SK에코플랜트도 산업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 대신 환경 분야의 비중을 높여 에너지와 환경사업의 전반적인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인공지능(AI), 디지털전환(DT) 기반의 환경 솔루션을 구축하고, 폐배터리의 친환경적 재자원화를 위한 밸류 체인을 마련한다. 또 미래 수처리 기술 개발과 고도화를 통한 물 순환 체계 구축과 친환경 혁식 기술 개발에도 나선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연료전지, 수소에너지, 재생에너지, 에너지 솔루션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확보와 에너지 선순환 플랫폼을 통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SK에코플랜트는 본질적인 사업인 주택과 플랜트, 엔지니어링에서도 에너지 절감형 건축을 통한 탄소중립 실현,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건설소재 개발, 기존 산업 설비를 친환경 설비로 전환 등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2024년으로 창립 47년을 맞는 SK에코플랜트가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전환과 그간의 숙원사업이던 상장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