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인천시민디자인한마당 행사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시청 중앙홀에서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SK에코플랜트는 이달 중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1동 220번지 일원에 ‘학익 SK VIEW’를 분양할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미추홀구 학익1구역 주택재개발로 들어서는학익 SK뷰는 지하 2층~지상 최고 29층 14개 동 총 1581가구 대단지다. 이 중 일반분양은 1215가구로 정비사업임에도 총 가구 수의 76%에 달할 정도로 많다. 전용면적 59~84㎡로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평형으로 구성됐다. 전용면적별 일반분양은 ▲59㎡ 844가구 ▲74㎡227가구 ▲84㎡ 144가구다. 현재 미추홀구는 정비사업이 대거 진행되면서 인천의 신흥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다. 학익1구역을 포함해 모두 17곳에서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추진 중으로 부평구에 이어 인천에서 2번째로 많다. 아울러 인근 용현·학익지구 1블록에는 1만 3000여 가구 규모의 미니신도시급 도시개발사업도 진행 중이어서 일대가 명품주거타운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편리한 주거생활을 돕는 생활 인프라도 풍부하다. 차량으로 5분거리에 제2경인고속도로 문학IC가 자리해 서울, 성남 등으로 빠르게 이동 가능하고 경인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인천대로도 가깝다. 1·4호선·인천지하철 1호선 등으로 환승이 가능한
1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7회 인천시 소상공인 경영대상'에서 박남춘 시장과 신은호 시의장 등이 박수를 치며 수상자들을 축하하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오전 10시 롯데몰 송도 사업계획 설명회 및 현장방문/ 롯데몰 부지 ▲오후 2시 독일 싸토리우스 바이오 원부자재 시설투자 업무협약식/ 포스트타워 ▲오후 4시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월미공원
▲오전 9시 찾아가는 현장 시장실/ 옹진군
대청도가 가깝게 바라보이는 백령도 남쪽 해변가. 주변 산세에 둘러싸여 아늑한 대지의 품에 터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장촌 마을. 행정구역상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남포1리에 속한다. 포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오랜 역사가 있는 마을로 3면이 산이며, 앞쪽으로는 바다와 접한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2021년 1월 기준 117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지만 1970년대는 600여 명의 제법 큰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 장촌(長村) 그리고 남포리(南浦里) 지명 유래 장촌 마을은 뒤쪽이 석장골산 일명 뾰족산을 주산(主山)으로 하며, 앞(남쪽)으로는 석장골산 밑에서 시작된 개울이 해안까지 마을 중간을 흐르며 개울 좌우 편평한 대지에 가옥들이 자리한다. ‘장촌’이란 지명은 해안으로 길게(長) 분포된 집들로 마을(村)이 형성됐기 때문이며, 경작지도 간척에 의해 넓게 분포한다. 혹자는 ‘장촌’이란 지명 유래가 장씨의 집성촌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내용이며, 촌락의 분포와 관련된 것이다. 옛날에는 마치 삼태기와 같은 지형이라 하여 ‘삼치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의 행정구역명인 ‘남포리’ 명칭은 조선 광해군 때 백령진(白翎鎭)이 재설
▲오전 8시30분 찾아가는 현장 시장실/ 옹진군
내남적 없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식솔을 거느리며 사는 것이 그리 녹녹치 만은 않다. 어느 한 날 하늘에서 금은보화가 뚝 떨어지는 일 없겠지만 격동기 숱한 어려움을 견디며 산 세대들은 참으로 ‘산다’는 것이 버거웠을 것이다. ‘자수성가’란 말도 그런 사람들이 넘치지는 않고 그런대로 근근이 산,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쓰이는 말인가 싶다. 한 가정을 꾸미자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집,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월세, 전세를 거쳐 자가(自家)를 만드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한다. 필자는 옮겨 다닌 집, 즉 이사를 아홉 번 했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7동으로 이사할 때가 1980년 초, 꼭 5번째였다. 후론 내리 20년을 거주한 곳이다. 일명 신기촌(新基村), 원도심 도시계획에 의해 이주케 된 곳으로 무심코 들으면 기지촌(?)으로 들릴 수 있는 변두리 중 상 변두리였다. 좋은 말로 한다면 산(승학, 231m)으로 병풍 친 곳이라고 하지만 그 산 끝자락은 해방 전, 후로 사용된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그 때, 휴일이면 그 산을 등산이랍시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주안묘지(朱安墓地) 산비탈에도 밤버레가 우느냐.” 김광균의(金光均)의 시집
백령도 흰(白)고구마 상강(霜降)을 전후한 요즘 밭마다 고구마 캐기에 여념이 없다. 옹진군 백령도에도 중화동을 중심으로 전역이 고구마 캐기가 한창이다. 백령도에서만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흰(白)고구마. 일명 호(胡)감자. 백령도에서는 ‘땅속의 과일’이라 할 만큼 맛이 달아서 ‘땅 지(地)’, ‘과일 과(果)’를 써서 지과(地果)라 부른다. 백령도에서 논농사에 벼(Oryza sativa, 赤神力)를 심은 시기는 1930년대, 밭농사는 1960년대까지 조(粟) 농사가 주를 이뤘다. 물론 이 때는 간척 이전의 협소한 농경지이며, 초보적 영농 기술 상황에서 식량 사정이 어려워 긴긴 겨울밤 허기를 달래기란 힘들었다. 이 때 준비된 지과, 백고구마가 효자였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 호감자는 해안가에 흙과 자갈이 섞여 다른 곡식은 심을 수 없는 땅에서도 수확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거름을 많이 줘야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돌이 오줌을 싸서 더 잘된다는 말이 날 정도로 잘되던 작물이다. 백령도란 지역사정상 척박한 땅에 구황작물로 흰고구마가 으뜸이었던 셈이다. ‘옹진군 향리지(甕津郡 鄕里誌 1996)’에 의하면 “1904년 경 중국인들이 백령도와의 무역에서 물물교환으로 얻어
수도권을 대표하는 인천 소래포구축제가 3년 만에 재개돼 오는 11월 21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개최된다. 저녁 시간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이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관련 기사 15면 ( 사진 = 남동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