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 이후 정치권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반응을 시작했다. 출발점은 민심의 무게추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불변의 법칙이어야 한다. 여당에게는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회초리였고 야당에게는 변화가 없다면 다음에 똑같은 채찍을 예고한 것이다. 그런데 선거 후 모습들은 여야가 별로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먼저 여당을 보자. 선거 패배에 책임지고 물러난 지도부에는 소위 친문 인사들이 다시 자리를 메웠다. 당내 50여명의 초선 의원들이 ‘반성문’을 내고, 앞으로 선출할 당 지도부에 친문 진영의 2선 후퇴를 촉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당 대표 후보군에 거론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 범주에 해당한다. 변화의 시작은 인적 쇄신이다. 새 지도부는 내년 3월 대선에 내세울 후보 경선을 관리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는다. 특정 색깔을 가진 지..
똑순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서 뭐라고 몇 마디 하더니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내 손에 건네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이름은 나도 모른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똑순이 반장이라고 불렀다. 똑순이는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들어왔다고 했다. 150이 될까 말까 한 작은 키였다. 하지만 얼마나 야무지고 똘똘했는지 10년 만에 상동공장 반장이 되었다. 억세다는 아줌마들도 똑순이에게는 꼼짝하지 못했다.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석고 틀을 번쩍번쩍 들어 날랐다. 노조 대의원이었다. 그러나 데모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석현공장에서부터 임금인상과 노조민주화 투쟁이 시작됐지만, 똑순이는 나서지도 않았고 다른 남자 대의원들처럼 아줌마들이 데모에 참가하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모두 본사까지 가두 시위에 나설 때도 똑순이는..
“광산의 조건이 지금보다 더 나빴던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 깊은 지하 갱도에서 말 등에나 씌우는 마구(馬具)를 둘러메고 팔 다리로 기어서 탄차를 질질 끄는 그 지독한 노동에 시달렸던 노부인들이 아직도 몇 사람 살아 있다.” 조지 오웰이 1937년 출간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 (The Road To Wigan Pier)》의 한 대목이다. 이 작품은 영국 북부 탄광지역 위건의 빈민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사한 르포 문학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 “그녀들은 임신 중일 때도 이 일을 계속하곤 했다. 요즈음에도 만약 임신한 여성들이 탄차를 끌어야만 석탄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석탄 없이 지내기보다 차라리 임신부들이 탄차를 끌게 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럴까? “우리 모두가 비교적 고상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목구멍에는 석..
지난 8일 경기조달지원센터가 수원시 영통구에 문을 열고 업무에 들어갔다. 이로써 조달업체 업무처리를 위해 인천지방조달청과 서울지방조달청까지 가야 했던 경기남부지역 중소기업들은 가까운 수원에서 일을 처리하게 됐다. 도내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업(총 78만개)이 있다. 조달사업실적 역시 전국에서 가장 많은 6조5천억 여원이다. 그런데도 이런 대접을 받아 온 것이다. 수원에 경기조달지원센터가 신설되면서 도내 기업들의 애로사항 일부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조달청 독점체제다. 경기도는 공공 조달시장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조달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며 도 자체 공정조달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가조달시스템(나라장터)의 지방조달 독점 개선을 위한 공정조달시스템..
왜 그럴듯한 남성조차 여성존중에 실패하는가?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은 당대표가 자신을 성추행한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국민들에게 발표한 글에서 위와 같이 물었다. 사실 나도 계속 그것이 오래동안 궁금했다. 왜 그럴듯한 그들이 여성을 존중함에 실패하는가? 선한 가치의 추구, 인간 진보에 대한 희망과 그것에 대한 실천을 표방하는 이들이 왜 바로 옆의 여성을 존중하는데 성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그것을 물을수도 없었고 행여 아주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물어도 대답은 석연치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니가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많도 많이 들었다. 그러던차에 나의 오랜 내적물음을 표면화시킨 장의원의 글들은 나만 아팠던 것이 아니구나 나만 궁금했던 것이 아니구나 위로가 되었다. 문제제기를 하는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우리의 삶이 정신적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불멸을 믿게 된다. 우리의 본성이 동물과 같은 성질에서 멀어짐에 따라 불멸에 대한 의심은 점점 사라져간다. (마르티노)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내세를 믿는 근거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의 존재와 나의 불멸이 의심할 나위 없는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다만 나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내가 불멸한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은 곧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나에게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내 본성과 굳게 맺어져 있음을 뜻한다. (칸트)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 알고 있는 것의 전부는, 내가 아직 본 일이 없는 것, 모르는 것을 믿으라고 나에게 가르친다. (에머슨) 이 세상에서의 우..
4.7 재·보궐선거는 부동산 정책 실패 등 여권심판론이 대세를 갈랐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국민의 선택에 ‘겸손’과 ‘경외감’을 표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씁쓸하고 허전하다. 성추행으로 시작돼 진흙탕으로 끝난 싸움에 국민들의 공간은 아예 없었다. 역대 선거의 과정과 끝난 이후를 보면 국민으로서는 흑역사다. 5년마다 4년마다 국민의 혈세 꼬박꼬박 받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갑’ 행세를 하다가 선거 전후해서 잠시 대국민 립서비스를 한다. 이번 선거 이후는 다른 모습이길 기대한다. 이제 대한민국과 정치권은 어쩔 수 없이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국면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갈 것이다. 11개월 남았다. 이번 재보선은 강요된 정당 투표였다. 정책이나 인물론은 실종됐었다. 앞으로는 정치권이나 후보자, 국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당이나 이념,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인물과 정책, 미래비전 등 원칙에 충실한 상품을 내놓고 거기에 합당한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는 선거가 돼야 한다. 선거구도가 적폐니 심판론 등 과거를 가르키면 미래를 열 수 없다. 군부정권이 끝난 1993년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심판론 중심의 권력교체가 대한민국에 어떤 미래를 가져왔는가. 앞으로 11개월이면 정당이나 국민이 인물이나 정책을 탐색하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당이 제대로 상품(후보)이 나오도록 품질관리(경선)를 잘해야 한다. 특히 경선 과정에 당선 가능성 못지않게 ‘도덕성’을 최우선으로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난 2007년 대선(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이 재현되며 정책 대결은 물건너간다. 그래서 본선에서는 후보자간 정책대결을 벌이는 진짜 자질 검증을 하자. LH사태, 공직자 재산등록 등을 계기로 국민들도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지도자나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몰고오는 파괴력이 어떤 것인지, 왜 부동산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지 말이다. 총선 공천·인사 검증 부실이 빚어낸 말 그대로 인재의 연속이었다. 출사표를 던지려는 대선 주자들도 당원이나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말하기 전에 자신과 가족의 도덕성을 스스로 점검해보기 바란다. 집안 문제, 처가의 일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려면 불출마를 간곡히 요청한다. 흠결이 있더라도 정당 공천받아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역사와 국민앞에 반복되는 죄를 짓지 말기를 바란다. 여야 정치권에도 촉구한다. 대선 승리위해 체제 정비, 대통합 논의에 앞서 10년 가까이 묶여있는 ‘이해충돌방지법’부터 처리해 재보선 민심에 응답하라. 국민들은 특히 이번에 표를 몰아준 야당을 주시할 것이다. 올 9월 퇴임하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16년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앞두고도 지난 연말 70%가 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총명하면서도 평범함과 소탈, 엄마같은 리더십’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LH발 포연을 뚫고 하나된 대한민국으로 가려면 정책과 실력에 앞서 대한민국을 자연스럽게 도덕적으로 재무장시키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수신제가’형 지도자가 출현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의 요청이다.
1. 기적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패배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다. 부산 시장선거의 경우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졌다. 이번 선거는 극우정당의 대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대 패배인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른바 MB의 정통 후계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정부와 민주당이 싫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나온 사람들은 반대정당에 몰표를 던졌다. 탐욕이 승리한 선거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언론과 검찰이 문제라고까지 말한다.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시각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청와대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 실망하고 분노한 철저한 응징 투표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거부에는 백약..
그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여수 돌산대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이젠 더 이상 우리 관계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가 저무는 돌산대교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연인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수배생활이 4년차에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전해 들었다. 그녀는 나랑 헤어지자 말자 처음 맞선을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마음이 변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음을.. 희망이 없으면 흔들림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시간이 흘려 YS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분정..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자 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 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약력 ▶청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현대문학](1964)으로 등단. ▶시집 [떠돌이 별] [사랑굿] 1·2·3 [멀고 먼 길] 외 6권. ▶수필집 [하얀물감] [그대 하늘에 달로 뜨리라] [생의 빛 한줄기 찾으려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사랑하며]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공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