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본 영화가 있다. ‘인생은 짧고 볼 영화는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내겐 이례적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개봉된 1962년 미국의 줄스 다신 감독이 만든 흑백영화 페드라(Phaedra)다. 라디오 심야방송을 즐기던 청소년 시절, 배경음악으로 처음 만났던 페드라는 강렬했다. DJ는 ‘남주인공이 사랑이 추락하자 인생도 추락하는 장면의 음악’이라고 소개했는데 바하의 파이프 오르간 음악 ‘토카타와 푸가’가 흐르는 가운데 절규에 가까운 독백이 나온다. (너무 많이 들어서 외워버렸다. 물론 영어다) ‘가자, 달리자! 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추방되는 것도 영광이지 오, 세바스챤 바흐! 라라라~~ 굿 바이, 페드라, 그녀는 날 사랑했어. 죽고 싶어. 이제 스물 네 살, 라라라~’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 뒤 종로의 한 영화관에서 재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첫날 첫회..
예수를 골고다 언덕에 끌고 가서 처형한 십자가는 예수에게만 적용된 특별한 방식이 아니었다. 기원전 71년, 로마에서 카푸아로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街道)에는 십자가들이 줄지어 박혀 있었다. 장장 2백 킬로미터다. 그 길 위의 십자가 행렬은 죽은 자들에 대한 기념비가 아니라 노예반란의 처형 현장이었다. 그렇게 못박혀 죽은 이들은 무려 6천여명이었다. 기원전 73년부터 2년간 벌어진 내전에 가까운 노예 봉기는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로마에 살고 있는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노예였으니 이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로마 지배층으로서는 사생결단의 사태였다. - 아피아 가도의 비극 훗날 케이사르와 함께 제1차 3두 체제를 이루었던 크라수스 그리고 폼페이우스가 이 노예반란 진압에 마침내 성공한다. 이들이 집행한 십자가 처형은..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를 향한 경기도체육회의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급기야는 도체육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이원성 회장의 1인 시위가 경기도의회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체육진흥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도와 도의회를 규탄한 뒤 무기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앞으로 조례의결 무효확인 소송 등 행정소송과 대토론회, 청와대 국민청원 등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항변했다. “체육을 정치로부터 분리하고자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통해 체육회장을 민선으로 선출했고, 지방체육회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법정 법인화를 앞둔 시점에서 경기도의회가 일방적으로 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체육진흥법에 배치되는 매우 유감스러운 조치”라는 것이다.(본보 1일자 1면..
연꽃은 나흘만 핀다. 피는데 하루, 지는데 하루, 활짝 핀 연꽃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뿐이다. 개중에는 하루만 피는 연꽃도 있다. 새벽처럼 꽃잎을 열어서, 아침이면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기도 전에 꽃잎을 닫는다. 노랑어리연꽃이 그렇다. 그래서일까. 연꽃은 사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진창이든 흙탕이든 기꺼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 내린 연꽃은 혼탁함에 물들지 않고 주변을 정화한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으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연꽃이다. 여기,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별을 보며 하루를 열었다가 달을 등지고 하루를 닫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이든 대학이든 지하철이든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당연히 피는 꽃이 있다. 백화점이든 지하상가든 공공기관이든 어디든, 사람이 꼬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려지는 아수라장에서 멸시와 천대를 쓸어 담아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들이 있다. 우리는 그 연꽃을 ‘청소노동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참 우습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거룩하다고 하면서,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차로 우려 마시면서, 수술실에서 나온 피와 고름을 치우는 사람들은 더럽다고 한다. 흙탕물에 핀 연꽃 이파리에는 밥을 싸 먹으면서, 공중화장실의 변기를 청소하는 사람들은 냄새난다고 한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은, 똥과 오줌을 싸고 지리는 사람일까, 대신해서 닦고 치워주는 사람일까. 연못에 핀 연꽃은 영롱하지만 세상에 핀 연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흙탕물 바닥에 뿌리내린 연꽃처럼 청소노동자들은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에 뿌리를 내린다. 중환자실 옆 계단 밑에 커튼을 치고 들어앉았거나, 화장실 비품창고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앉아서, 쉬고 먹고 옷을 갈아입는다. 승객용 대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되고, 큰 손님이라도 방문할 때는 죽은 듯이 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는 투명인간이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가운데 열에 여덟은 여성 청소노동자다. 그들 가운데 일곱은 비정규직이고 평균 월급은 117만원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내이고 엄마인 그들이 도시가 싸지른 쓰레기를 치운다.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지린내 나는 변기를 손으로 닦는다. 힐끔거리며 바지 지퍼를 내리는 사내들 틈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청소를 한다. 지하철역에서 버스터미널에서, 남자화장실이 있는 온갖 빌딩에서, 수치와 치욕을 삼키며 변기를 닦는다. 연꽃은 나흘만 핀다. 피는데 하루, 지는데 하루, 활짝 핀 연꽃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뿐이다. 청소노동자들의 목숨도 다르지 않다. 최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갑질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노조를 결성한 게 해고 사유였다. 건물에서 쫓겨날 때, 관리자들은 “늙은 년들이 노조는 무슨”,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며 밀어냈다. 참으로 무식한 말이다. 그녀들은 이년, 저년이 아니라 LG트윈타워를 정화(淨化)시켜온 거룩한 연(蓮)이다.
일본의 의도된 교과서 역사 왜곡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교과서에도 한국 관련 역사 오류와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인 반크(VANK)는 2021년 발행된 미국의 AP(대학조기 이수 과정) 교과서 등에 실린 한국관련 내용을 분석했다. 그런데 유명 출판사 맥그로 힐에서 발행한 'AP 교재 2021년 판' 지도 335쪽에 고구려가 중국 한(漢) 왕조(BC206∼AD220)의 영토에 포함돼 있다. 또 이 교재는 신라가 당의 속국이었으며 668년에 당이 철수하면서 신라가 한국을 통일시켰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른 출판사 배런스의 AP 교재도 마찬가지다. 95쪽과 432쪽 지도에서도 고려 전체를 몽골 영토에 포함시키고 고려의 이름도 표기하지 않았다. 또 152쪽 지도에서는 중국 청(淸) 왕조를 소개하면서 조선(朝鮮) 전체를 청 왕조의 영토로 색칠했다. AP 과목은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명문대에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우리 역사가 미국 교과서에도 이렇게 잘못 기술돼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일본이 내년부터 사용할 고교 교과서에 독도영유권 주장을 대폭 확대 강화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다. 학생들이 배울 30종의 교과서 대부분에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라고 표기하고,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들어간 교과서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는 ‘강제성’을 언급하지 않고 대부분 ‘위안부가 있었다’는 마지못해 서술하는 내용들이다. 여기에 동북공정으로 자국에 맞춰 역사를 수정해온 중국에서는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 백과사전이 김치에 이어 최근 삼계탕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반크는 세계 최대 청원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알지'에 미국의 AP교과서 내용을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하는 청원 운동에 들어갔다. 올해부터 미국 AP 교재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가 함께 기술됐다. 그동안 일본해만 단독 표기됐는데 미국을 상대로 반크 등 시민 단체들이 노력해 거둔 결실이다. 하지만 민간 교과서나 지방정부와 달리 미국 중앙 정부는 여전히 우리보다 일본쪽 입장에 우선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미 인도태평양사령부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성명에서 '동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일본 정부의 반발로 다음 날 바로 '일본해'로 정정했다. 역사는 국가의 뿌리로 정신적 주권 영역이다. 문화적 충돌로 드러나는 오늘의 한반도 지형은 국력·외교의 축소판이다. 외교와 시민단체의 국제여론전 등은 중요하고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외교전은 국력에 비례하며 국력의 총합에는 국민의 단합된 힘이 절대 중요하다. 최근 서울연구원은 서울시민 10명 중 9명 정도가 현재 우리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자기와 같은 편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82.5%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1997년 금모으기 운동’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로 복원돼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호모사피언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두 가지를 꼽자면 음식과 섹스로 귀결된다.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기계에 머물며 추구하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생물학자 윌슨(E. O. Wilson)은 “인간의 정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이며, 이성은 그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라고 했다. 종의 기원과 이기적 유전자를 경유하여 최근의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살펴본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 욕망과 합리적 이성으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분석은 짝을 잃은 듯 허전하다. '펜트하우스 시즌 2'는 막장 드라마로서 시청률 30%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케이 광자매'도 막장에 가까운 내용의 미스터리 살인 사건과 멜로와 코믹이 혼합된 드라마로서 평균시청률 1위를 질주중이다. 시청자들은 이렇게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드라마를 선호한다. 유튜브 역시 이기적 욕망과 감성을 자극하는 유튜브의 선호도가 높다. 진중권의 아무 말 대잔치에 환호하는 것도 유사하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를 결정하는 것도 이성이 아닌 감성이다. 상품에 대한 욕망이 앞서는 것이다. 지나친 소비에 대해서는 후회하기보다는 합리화한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합리화하는 데도 능하다. 진실을 감추고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해당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대입해보면, 보수는 이기적 욕망에 충실하고, 진보는 이성의 힘을 키우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만 이기적 욕망과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시민대중은 어떨까? 대체로 합리적 이성이 이기적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진보의 설 자리가 좁은 까닭이다. 선거에서 투표 행위는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생존의 문제다. 정부와 여당에 대해 가장 날을 세우는 2030 세대의 위기의식은 사실상 번식을 포기한 생존 투쟁에서 연유한 분노의 발현이다. 또 한편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정성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이기적 욕망과 합리적 이성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철칙으로 했던 원시공산사회에서 공정성이 인간의 본성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최후통첩게임에서 입증된 바다. 공정함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 합리적 이성에 의해 절제되었던 이기적 욕망이 분노로 폭발하는 법이다. 초가삼간을 태우더라도 분풀이를 하겠다는 것. 역사는 겪을 일을 다 겪은 후에야 겨우 한 걸음씩 전진하는 법이다.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가 평생 친구이며, 사회에 나가면 그렇게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다고. 훈화는 늘 친구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로 끝났다.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흐르고 보니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하다. 동창들과 연락하고 지내지만 학교 다닐 때만큼 가깝게 지내지는 않는다. 사는 곳과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가 절친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스무 살이 넘어 만났다. 대학 동기들과 동아리 후배들. 학교 발령 동기인 친구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서 가까이 사는 몇 명과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난다. 지금껏 서로 다투거나 마음 상한 적이 없기에 시간이 지나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의 존재가 소중하다. 아이들에게 친구가 차지하는 무게감은 어른이 느끼는 것보..
2021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7조 4000억 원에 이르며, 정부와 민간을 합쳐 예산 규모 100조 원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국내외 핵심경쟁력은 R&D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를 기반으로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제조산업이 발전해 왔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 등 842개의 공공기관의 ‘19년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 규모는 전체 공공기관 구매액의 2.5%인 1조 2천 829억 원에 달하며 6년 연속 증가세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가치소비를 실천하겠다는 공공기관의 의지가 확산되고, 사회적기업(취약계층 고용비율이 30% 이상인 경우)이 공공기관과 5천만 원까지 수의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구매실적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매품목별로 보면, 물품은 8,240억 원(전년 대비 2,114억 증가..
K선배가 손을 잡아끌었다. 신세계백화점과 한국은행 사이 로터리였다. S대 시위대가 남산 쪽에서 밀고 내려왔다. 그러나 나는 순간 겁에 질려있었다. 이미 정보가 샌 듯 로터리에는 백골단과 전경이 쫙 깔려있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독재타도! 민주쟁취!” 로터리까지 시위대는 밀려왔고 우리는 대오로 들어갔다. ‘펑 펑’ 최루탄이 터졌고 청 커버를 입은 백골단이 달려왔다. 대오는 금방 깨졌다. 그때 K선배와 잡은 손을 놓쳤다. 한국은행 쪽 골목으로 도망쳤다. 숨이 막혀 컥컥거리고 있는데 백골단이 다가와 곤봉으로 등짝을 때렸다. “아니에요. 나는 대학생 아니에요. 재수생이에요.” 나는 변명했고 다행히 백골단은 나를 보내주었다. 그때 10여 미터 앞에서 질질 끌려가는 K선배가 보였다. 곤봉에 머리를 맞았는지 머리에 피가 흥건했다. 상의가 거의..
구글 등 글로벌 미디어제국의 ‘갑질’이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7월 이후 민주당 조승래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은 구글 등이 시장 우월적 지위를 무기로 특정 결제수단 강제(인앱결제)를 막기 위한 정보통신망법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후 수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도 이 법안은 국회 과방위 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구글의 물타기 전략과 야당(국민의힘)의 갈지자 행보 탓이다. 지난해 9월말 구글은 2021년부터 구글플레이에서 유통되는 게임뿐만 아니라 음원, 동영상 등에 대해서도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그 수수료도 30%로 책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가령 어떤 대형백화점이 자신의 매장에서 구매하는 모든 물건은 자사의 카드로 결제해야 하고, 결제수수료를 30%(통상 2-3%)로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가정해보자. 불매운동을 하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