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진실보도를 강조하면서 객관보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뉴스의 취사선택 등 취재보도의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객관보도를 부정하면서 관점이나 다양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진실은 보편적이어서 주관이 개입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인간의 주관적 의식에서 독립되어 있는 객관의 영역에 있다는 뜻이다. 불가피하게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객관보도가 불가능하다면 객관의 영역에 있는 진실을 무슨 방법으로 확인해서 보도할까? 이것도 불가능하지 않나? 객관성이라는 것은 저널리즘 이전에 철학의 문제다. 철학에서 실재론은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있다. 학문이라는 게 진리를 추구하는 건데, 진리 인식이 불가능하다면 학문 자체가 성립할 수도 없다. 철학은..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45년의 메타버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줄거리는 이렇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VR 기계를 끼고 특정 게임에 로그인해서 하루를 살아간다.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채굴해서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걸로 현실 수입을 얻는다.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은 게임 회사가 내건 퀘스트에 도전하며 갖은 위험에 처한다. 결말에서 주인공과 친구들이 모든 퀘스트를 완료하고 악당이 물러나면서 가상공간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뻔한 것과 별개로 메타버스를 주된 소재로 삼은 영화라서 무척 흥미로웠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이다. 언제부턴가 자주 보이는 단어지만 생각보다 훨씬 예전부터 생활 깊숙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명과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든, 학문은 바로 그 사명과 행복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자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알기 위해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배운다. (동양 금언) 인간은 자신의 힘이 허락하는 한, 또 사정이 허락하는 한,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에 더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그는 앞서간 사람들의 경험을 이용하고 배운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없이 남이 한 말을 그대로 말하는 학문은 가장 저급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서목록을 책이라고 부를 수 없듯 그런 사람을 진정한 학자라고 부를 수 없다. 진정한 사람은 앞서간 선배들의 학문을 배울 뿐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을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다. (리히텐베르크) 종종 미신이 오히려 진리와..
스페인의 코르도바(Cordoba)와 톨레도(Toledo)는 고색창연한 도시다. 중세의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이미 고전(古典)인데, 파리대학이 유럽 중세의 지적 탁월함을 이루기 전에는 바로 이 두 도시가 쌓아올린 학문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랍어로 쓰여진 그리스 철학과 과학은 훗날 르네상스의 젖줄이 된다. 12~13세기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새삼 발견하게 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걸까? 8세기 이후 15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남부는 이슬람의 영역이었다. 북부 아프리카에 접한 지중해를 거쳐 스페인에 이르는 지역은 한때 로마제국의 판도였으나 제국의 몰락으로 이슬람이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도권은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기독교, 유대교를 핍..
국토교통부가 GTX-D노선을 김포(장기)~부천종합운동장 구간만 반영하겠다고 발표하자 김포, 부천 등 경기도 서북부와 인천 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와 인천시가 건의한 노선보다 대폭 축소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김포~부천~강남~하남’(68km)노선을, 인천시는 청라와 검단 두 노선이 서울로 이어지는 Y자 형태의 노선을 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열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2021~2030) 수립연구 공정회`에서 김포~부천 구간만 연결하겠다는 반쪽짜리 계획만 발표한 것이다. 물론 정부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이 지역민들의 고통은 더 크다. 김포시의 경우 인구 50만의 도시지만 김포 골드라인이라고 하는 2칸짜리 경전철 노선 하나 밖에 없다..
지구환경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기후 온난화 및 대기와 수질오염의 심각성이 이슈화되면서, 공동재(common goods), 공공재(Public goods)와 함께 커먼즈(commons)라는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커먼즈는 일반적으로 ‘공동으로 누리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이나 지식을 포함한 공동의 ‘유·무형 재화’에 대한 권리를 일컫다. 커먼즈의 기원은 1225년 수정된 영국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에서 출발한다. 당시 ‘산림헌장’에서 목초지와 숲에 대한 평민(commoners)들의 사용 권리를 명시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경쟁적 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 이기주의를 빌미로 천연공동자원을 독점하였고 한정된 공유자원은 급감하고 파괴되었다. 1960년대 일부 사회 활동가와 과학자를 중심으로 천연자원 고갈과 인구증가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자연 공동재의 사회적·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1968년 생물학자 개릿 하딘은 “어민이든 농민이든 자신의 개인적인 자원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커먼즈를 소비하기 때문에 커먼즈는 지속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유지의 비극」을 발표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느 누구도 파괴를 원하진 않지만, 결국 소유권이 불분명하고 한정된 공유자원부터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하딘의 이론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법학교수인 캐럴 로즈의 《공유지의 희극》과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가 대표적이다. 특히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며 각자의 당면 상황보다 공유자원의 장기 보존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우에 따라 공동 소유의 커먼즈가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음이 입증한 것이다. 커먼즈는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관계 혹은 인류 공동체의 삶에 핵심이 되는 다양한 요소와 과정, 그리고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까지를 포함한다.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기술정보는 지식 커먼즈이고,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는 협동조합과 공제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조직도 커먼즈이다. 협력적인 사회관계를 위한 ‘공동의 것을 공동체가 관리하는 모델’ 즉, 사적 또는 공적의 영역이 아닌 ‘제3의 공동체적 관리’ 방식도 커먼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돌봄, 먹거리, 재활용, 환경 등의 일부 분야에서 공동체적 관리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경제를 포함한 비영리 영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효과적인 공유자원 관리와 활용의 대안으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다양한 공공부문 민영화가 촉발시킨 부작용의 대안으로 쓸모도 다양하다. 공공정책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사회적경제 조직 중심의 커먼즈를 확대할 수 있다면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가상화폐 열풍에 휩싸여있다. 하루아침에 수백만 원이 오르는 것은 예사고 단번에 수천만 원씩 폭락하기도 한다. 가상화폐의 연이은 폭등·폭락에 미국 재무부는 이로 인한 ‘돈세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의지를 밝히자 전 세계 시장은 일제히 급락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유튜브나 SNS 또는 글로벌 기업 등의 투자 소식에 투자자들은 돈을 싸서 달려들기도 한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도지파더가 5월8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출연한다”라고 말하자 도지코인 가격이 순식간에 32%나 오르기도 했다. 도지코인은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가치가 수없이 변동하는 가상화폐다. 최근 국내에선 가상화폐 앱 월 사용자 수가 300만명을 돌파했고 지난 한 달 동안 일부 거래소에서는 100만개 계좌가 신설되기도 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회원 중 20대가 35%, 30대가 25%로 2030세대에 몰려있다. 2030세대는 가상화폐를 놓고 투자와 투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취업난과 집값 폭등 그리고 근로소득과 은행이자로 자산증식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가상화폐를 흙수저가 금수저로 바뀔 수 있는 마지막 티켓으로 생각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며 “저는 화폐(커런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용어 정리부터 나섰다. 정부는 제도화를 통해 시세 조종·자금세탁 행위 등의 금지, 거래방식 제한, 가상화폐 이용자에 대한 설명의무 등 규제 강화로 시장을 통제하려 한다. 카지노와 같은 가상화폐 ‘판’은 통제돼야 마땅하지만, 가상화폐가 경제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 금융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미 페이스북 주도로 2019년부터 진행된 가상화폐 ‘리브라’가 ‘디엠’으로 이름을 바꿔 출시할 예정이다. 프로젝트 초반 각국 정부들은 페이스북 주도의 가상화폐가 세계 통화와 금융 안정성에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리브라’의 개발 중단을 요구했지만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없어 보인다.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암호화폐 시장이 위험하니 막겠다는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청년들이 보는 세상은 AI, 블록체인, 6G, 가상세계 등 신기술이 맞물린 새로운 시대다. 그런데 우리 기성세대는 아직 산업화 시대에 머물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현재 정부는 가상화폐로 파생된 문제를 강제적인 ‘규제’로 풀이하려 한다. 2030세대의 가상화폐 집중현상에 대해 무작정 ‘규제’ 보단 ‘왜’부터 시작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 경기신문 = 방기열 기자 ]
예전에 있었던 학폭사건으로 연예계나 체육계가 뜨겁다. 지금도 초·중·고의 어두운 곳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학폭을 당한 아이나 부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한다. 내 친구의 경우는 아들이 따돌림을 당해 학교를 찾아가니 선생님이 비협조적이었고 교육위원에다 진정서를 보내보라고 했단다. 문제는 상대 학부모를 찾아가도 자기 자식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자식 편만을 든다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들은 말로는 피해 학생이 병원에 입원해서 가해자 아버지가 입원한 학생을 찾아갔더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상황이었다 한다. 그 아버지는 공부도 잘했던 자신의 딸이지만 마주하면 그 애가 생각나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고 하였다. 학폭은 정말 잔인하고 무섭다. 언젠가는 놀이터에 있는 아이까지 납치해 죽이게 한 사건도 있..
- 말을 하는 가축, 흑인 노예- 미네소타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만장일치 유죄평결이 내려졌습니다. 무저항 상태의 흑인 조지 프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한 혐의로 말이지요. 이 같은 인종차별문제는 총기문제, 의료보험문제와 함께 미국의 계급적, 구조적 모순을 상징하는 3대 암종(癌腫)으로 불립니다. 오늘은 인종차별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광고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18세기 중반 이후 미국 남부의 주요 신문에 빈번이 등장하는 광고 유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사고파는 ’것이지요. 이들 콘텐츠는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생각과 양심을 지닌 인간을 가축처럼 사고파는 습속이 이렇게까지 성행했던 곳은 이 나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북아메리카 땅에 최초의 흑인노예가 도착한 것은 1619년 8월.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 스무 명을 싣고, 대서양 연안 버지니아 주 포인트 컴포트(Point Comfort)에 화물선이 도착한 거지요. 이것이 미국 노예제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유럽 산(産) 공산품과 서아프리카 지역 현지 노예들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곧 인력이 고갈됩니다. 이후에는 무장 용병을 고용하여 아프리카 내륙 중심부까지 침입한 다음, 아예 강제 납치 형태로 수요를 충당하기 시작했지요. 알렉스 헤일리의 장편 소설 《뿌리(Roots)》에 생생히 묘사된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16세기 초부터 1860년대까지 약 1250만명의 흑인 노예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송되었고 항해 도중 15퍼센트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비인간의 극치인 이런 제도가 왜 미국에서 성행했을까요? 산업 구조의 지역적 편차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 비해 50년 정도 산업혁명이 늦게 시작되었지만 미국 북부 지역은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성공시켰지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남부지역은 여전히 농업이 생산력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면화, 담배,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는 대규모 농장이 주력 산업이었던 거지요. 인간의 육체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이들 농장 소유주들에게 노예는 단순한 소유물을 넘어선 존재였습니다. 경제 전체를 책임지는 ‘살아 움직이는 생산도구’였던 겁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임금제 노동력이 절실했던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가 노예제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랐던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두 지역 간의 정치경제적 충돌을 불러왔고 남북전쟁 발발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 최고 등급의 건강한‘니그로(Negro)’를 팝니다- 노예광고는 크게 2종류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순수한 판매 목적이지요. 아래에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미국이 아직 식민지 상태였던 1769년 7월 24일에 집행된 겁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남동부의 찰스턴은 노예 무역항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곳. 이 도시의 한 신문에 게재된 광고는 지면 좌우측에 남녀 흑인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대칭적으로 레이아웃 했습니다. 그 아래 자그마하게 아이들 그림까지 그려놓았네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인남자, 소년, 성인여자, 여자아이로 구성된 총 94명의 노예들이 지금 막 아프리카에서 도착했다는 겁니다. 이들은 모두 (쇠고기 등급을 매길 때나 쓰는 단어인) 최상급(prime)의 건강한 상태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 대서양 횡단 항해는 1달 이상이 소요되었지요. 그러한 노예 운반선의 상태는 참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선내의 모든 공간을 활용하여 사람을 화물처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소나 말도 이런 상태로는 견딜 수가 없지요. 발목에 차꼬를 채운 상태에서 벌린 입에 물과 음식을 넣어주고 대소변도 그 자리에서 보게 했습니다.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갔습니다. 이렇게 도착한 흑인들을 바로 시장에 내놓아 가축처럼 가격을 매겨 사고판 겁니다. 강제노동을 통한 잉여가치 생산을 체제 유지 기반으로 삼았던 한 사회의 비인간적 본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아메리카 판 추노(推奴) 광고- 두 번째 유형은 도망간 노예를 잡아들이기 위한 것입니다. 1793년과 1850년 두 번에 걸쳐 발효된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Law)이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 법률은 도망친 노예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잔혹한 추적을 허용하였습니다. 심지어 도망노예를 도와준 사람까지 처벌하는 희대의 악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를 향한 탈출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인간은 가축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절망적 삶을 벗어나기 위해 때로는 목숨까지 거는 겁니다. 이런 케이스가 급증하자 전문적인 노예사냥꾼들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2010년 KBS2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연속극 '추노(推奴)'를 기억하시는지요? 거기 등장하는 활극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겁니다. 동시에 도망 노예를 추적하는 신문 광고가 하루가 멀다 않고 등장합니다. 이들 콘텐츠에는 값비싼 ‘내 물건’을 되찾고야 말겠다는 노예 소유주들의 이글거리는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1793년 게재된 다음 신문 광고를 보시지요. 벨파스트란 이름의 흑인남자 노예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스물일곱 나이에 5피트 8~9인치의 신장, 특히 이빨이 매우 하얗다고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마치 우(牛)시장의 소를 설명하듯 말이지요. 같은 해에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길로틴에서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민중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정신이 전 세계에 선포된 겁니다. 그런데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런 반문명적 작태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거지요. 노예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소유주 마이클 월레스가 현상금 2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 적혀있네요. 당시 달러 가치를 오늘날의 그것으로 정확히 환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중엽 미국 육체노동자 일당이 평균 1.5달러 정도였으니, 그 60년 전 20달러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큰 금액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소문난 범죄자에 대한 현상금이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흑인 남자 노예 ‘환수(還收)’에 걸린 돈이 이 정도였던 겁니다. 광고의 왼쪽 상단에 묘사된 그림은 거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쇄수준의 한계를 뚫고 전달되는 파토스가 강렬합니다.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뒤를 돌아보며 황급히 달아나는 청년의 표정을 보십시오. 추적자에 대한 두려움이 선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 사회’를 이보다 뚜렷하게 보여주는 증언은 드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예 광고는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노예 해방 선언’이 발표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광고는 당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의 통조림’입니다. 그 점에서 이들 콘텐츠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근원과 야만적 자본주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적시하는 귀중한 사례들입니다.
‘기레기’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당연히 기자들을 경멸하는 모욕적인 표현이다. 위키백과에서는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이나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규정한다. 얼마 전 대법원은 ‘기레기’란 말을 들을만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하는 것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기레기’라는 말은 2010년 무렵 MB정권이 언론을 장악한 이후 등장했고,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보도 이후다. 과거에도 사이비기자, 악덕기자, 어용기자와 같이 기자직을 비하하는 말은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본래 그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100년이 훌쩍 넘은 한국 언론의 역사는 한마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