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에 미국 유학생은 아주 특별했다. 경기도 파주 출신의 정태진은 그 특별한 유학생 중에서도 특별히 똑똑했고, 특별히 가난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우스터대학을 수석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정태진은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는 경성에 뒤로하고 유학 전 재직했던 함흥의 영생여고보(현 수원 영생고)로 돌아갔다. 조선어와 영어과목을 맡은 그는 수업을 마치면 우리말 채록(말모이)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학생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때 정태진에게 배웠던 소설가 임옥인은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고 우리말 교육이 맥을 못추던 때 우리는 선생님을 통해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국문학의 정수를 접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38년, 일제가 조선어교육과 사용을 전면금지하면서 정태진의 담당 교과는 조선어와 영어가 아닌 ‘대수’와 ‘수신’으로 바뀌었다. 학교를 그만둔 정태진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편찬 작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이 지도상에서 조선을 지워버린다고 해도 조선어가 남아 있는 한 조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말 사전이 있는 한 조선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그런 정태진과 조선어학회를 일제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과거에 정태진으로부터 배운 여학생의 일기장을 털어 정태진이 금지된 한글과 민족정신을 가르쳤다는 정황을 포착한 일제 경찰은 정태진을 필두로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가혹하게 고문해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을 만들었다. 1년 넘게 취조, 고문하며 친일을 강요했지만 아무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들의 투쟁은 항일무장 투쟁의 최정점인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비견할 수 있는 ‘항일문화 투쟁’의 최정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윤재, 한징선생이 옥사하고, 가장 먼저 잡혀들어가 가장 오래, 가장 가혹하게 고문을 당했던 정태진은 해방된 1945년에야 함흥형무소 문을 나섰다. 미군이 진주하고,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영어 몇 마디만 해도 행세를 하는 시대에 친일의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은 미국 우스터대학의 수석졸업생으로 4개국어에 능숙한 정태진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그는 미군정청 장관도, 국회의원도 다 마다하고 만들다 만 우리말 큰사전을 끝내는 일에 매달렸다. 한글을 망가뜨리려는 이승만에 맞서며 전쟁의 포성 속에서 편찬한 사전을 조판 인쇄하다가 최후를 마쳤다. 작은 공적도 큰 공적으로 꾸며대고, 심지어는 친일매국노들의 덮을 수 없는 죄악마저 가소로운 업적으로 가리며 기념까지 하는 시대에 단 한 번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던 참 지식인, 진정한 애국자 정태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자신을 앞세워 스스로 이름을 높인 자들은 앞다퉈 기념하면서 나라의 말과 글을 지키는 일에 생애를 고스란히 바친 정태진을 기념하는 추모행사를 여는 단체, 기관 하나 없다. 올해 경기도가 기획한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이 눈물겹게 고맙고 반갑다. 해방 75주년이다. 친일, 이제는 청산할 때도 되었다. 국민의 이름으로 기리고 기념할 것을 기념하는 나라다운 나라로 가는 길을 경기도가 보여주고 있다.
생존. 요즘 들어 이 생존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려온다.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을 논하는 학자나 전문가들의 코멘트도 많아졌고,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SNS를 통해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의 생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이는 창업, 부동산의 투자나 주식의 매수, 매도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어제의 경제적 생존 전략과는 다른 의미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매일 같이 아침 TV 방송에서 보이는 전문의들의 건강 상식에 관한 이야기도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그 궤를 같이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건강이라는 부분 역시 그 피로도가 상당히 증가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 생존 전략이라는 것에 대한 실마리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각자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펄(Pearl)이라는 드럼 브랜드가 있다. 1950년대에 설립되어, 야마하(Yamaha), 타마(Tama)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드럼 제조사 중 하나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엔도서(Endorser)를 가지고 있는 회사이며, 전설적인 밴드 토토(Toto)의 제프 포커로(Jeff Porcaro), 딥 퍼플(Deep Purple)의 이안 페이스(Ian Paice), 키스(Kiss)의 에릭 싱어(Eric Singer) 등이 펄 드럼을 사용했다. 이 회사의 공식 명칭은 펄 악기제조 주식회사(パ-ル樂器製造株式會社)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악기를 만드는 회사다. 드럼 이외에도 기타, 피아노를 비롯해 대부분의 관현악기를 만드는 야마하와는 달리, 펄은 드럼과 그에 관한 하드웨어 그리고 타악기 등을 위주로 제조하고 취급한다. 이런 곳에서 새로운 하이 햇(Hi-hat) 스탠드가 나왔다. 하이 햇이란 드럼 세트의 부속품 중 하나로 열고 닫히는 심벌즈를 고정된 심벌즈 위에 얹은 악기인데, 하이 햇 스탠드는 하이 햇 심벌즈가 설치된 스탠드 하단에 페달이 달려 있어, 두 장의 심벌즈가 여닫히는 동작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는 장치를 일컫는다. 드럼과 타악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새로운 하이 햇 스탠드가 나온 것은 그리 큰 뉴스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제품은 드럼 연주를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하이 햇 스탠드가 아니라, 손 소독제 스탠드이다. 기존 드럼 세트에 사용되던 하이 햇 스탠드의 상단에 심벌즈가 아닌 손 소독제 거치대를 놓고, 하단의 페달을 발로 밟아 용기에 담긴 소독제가 나오게 만든 장치인 것이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하고 마치 만우절의 장난처럼 사실 여부에 반신반의했지만, 공식 블로그에도 게재가 됐음을 확인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감정이 복잡해진다. 이것저것 다 만들고 취급하던 회사였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타악기 전문 제조 회사에서의 이런 행보는 다소 놀라웠다. 이번 제품이 회사의 매출에 얼마의 영향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이런 제품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나 고무적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더 이상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예측 한다. 이런 의견이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입시 전쟁, 스펙 경쟁, 취업 전쟁, 이념 대립과 각 세대의 갈등, 성 대결 등, 그 이전부터 우리는 생존을 위해 충분히 몸부림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된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장애물이 버겁게 느껴지지만,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생존 기술과 전략에 대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권력은 시민 개개인으로부터 위임받아 형성된 위임권력이다. 위임권력은 시민의 그것에 군림할 수 없다. 다만 국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일정한 경우 법률에 의해 제한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제한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헌법 제37조 제2항이 규정한 법률유보의 원칙이다. 근래 들어 헌법 제37조 제2항이 대한민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바로 ‘대북전단살포’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김여정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군사적 행동까지 언급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경기도가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 할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는 주최 측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이 역시 자신들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는 여타 다른 권리보다 더욱 두텁게 보호 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작동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함으로써 유지·발전된다. 좁게는 시민들이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 넓게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까지, 공동체의 정책적 결정 사항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작동된다. 이를 넓은 의미에서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 때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표현의 자유가 두텁게 보장되어야 정치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고 그래야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제한되어야 한다. 대북전단살포 역시 자신들의 의견을 전단지, 소책자, SD카드 등의 매체를 통해 북한의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권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보호의 필요성이 강조될 뿐 제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이의 표현이 다른 공동체 구성원의 표현의 자유를 현격히 억압하는 경우와 공동체에 즉각적인 위해를 야기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북전단은 북한 정권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3대째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옹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통일을 추구하고(제4조) 전쟁을 반대한다(제5조). 그렇기에 당연히 한반도의 통일은 전쟁을 수반하지 않는 평화로운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평화로운 방식의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가 전재되어야 한다. 북한을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북전단을 살포하고자 하는 이들의 방식대로 한다면 북한은 대화의 상대방이 아닌 대결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북전단을 살포하고자 하는 이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전단을 날려 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남한 내부에서도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에 대한 극한의 혐오 표현은 남한 공동체 내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이들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다른 이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면 당연히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공동체에 즉각적인 위해를 가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와 공존하기 어렵다. 그동안 북한은 끊임없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민감한 보여 왔다. 급기야 최근에는 대북전단 살포가 계속된다면 군사적 행동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군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공동체에 즉각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일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에 포섭되는 권리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과 공동체의 이익을 비교형량 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즉각적인 위해를 가한다면 당연히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평양은 대동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류경(柳京)으로 불려왔다. 옥류관(玉柳館)은 맑은 대동강 물과 버드나무 강변을 가로지르는 옥류교 옆에 한옥지붕을 얹힌 2층 건물이다. 필자는 2018년 8월 중순 평양에서 열린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참관했을 때 처음 옥류관 평양냉면, 쟁반냉면을 맛보았다. 식당 봉사원이 ‘평양냉면 먹는 법’ 시범에서 꼭 면에 식초를 처서 먹으라는 당부가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당시 평양대회는 분단이후 민간교류 사상 처음으로 서해선 육로(파주~개성~평양)를 통해 선수단 및 관계자들의 방북이 이루어져 국내외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은 북한선수단 평창동계올림픽 참석과 남북단일팀 구성, 4.27 판문점회담 등으로 남북관계가 더할 나위없는 평화적 대화 국면이었다. 8월 평양 국제축구대회도 공중파방송 3사와 JTBC가 동행 취재했고, 금강산피격사건 이후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평양의 모습을 다시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KBS는 8월15일 9시뉴스 톱으로 평양 현지 생방송을 송출해 경쟁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또 동행한 언론인들은 10박 11일간의 일정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방영해 평양거리의 변화와 시민들 일상 모습에 목마른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오늘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을 맞았다. 대북삐라 살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 북한 김여정의 연이은 대남 비난이 계속되고 있어 불볕 더위 만큼 불쾌지수를 높인다. 이 와중에 평양 옥류관 주방장은 “국수를 처먹을 때는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라는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김여정과 옥류관 주방장 발언 사이에 그들이 격앙하는 이유의 실마리가 보인다. 북측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대응 메시지 전략이 긴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평양 보위부의 김선생과 옥류관 이봉사원 동무를 다시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심흥식 논설주간
군산 첫 방문은 고군산군도 탐방이었다. 아침에 새만금방조제 근처를 산책하다 보니까 방조제 규모에 놀랐다. 군산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타고 가는 도로에서 본 군산산업단지를 보고는 다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택시운전 기사가 가는 길목에 펼쳐지는 군산의 산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들려줄 때, 그리고 과거 일제강점기 때 군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군산의 근·현대사에 대해 짧게 이해하게 되었다. 군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생활 터전이 이곳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군산에 대한 자부심이 인상이 깊었다. 그리고 향후 군산이 타 항구도시보다 근대의 모습들이 잘 간직되어 있는 만큼 많은 외지 관광객들이 꾸준히 올 것이고, 최근 들어 더 꾸준히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산 구도심 재생은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군산이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남아있던 일본 적산가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존, 유지하고 현존하는 군산시의 근대 건축들을 지역 정체성으로 부여하면서 차별화된 대표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문화관광 정책을 통해 군산 구도심의 문화자산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군산 월명동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에는 지속적으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군산시 1930년대 근대화 문화 콘텐츠를 통한 관광 정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월명동 주민센터 주변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배경인 초원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많은 외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대부분은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추억에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이 부근을 중심으로 인력거도 운영되고 있다. 과거 일본 적산가옥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든 ‘고우당’은 그 오랜 명성에 걸맞게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고우당’ 근처에 집중이 되어있는 군산의 여러 관광 명소들을 숙박을 하면서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군산은 인천, 부산, 여수 등과 마찬가지로 항구도시로서 물류 및 어업 생산기지이자 경제 중심지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모여살고 상업 활동을 하면서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개항기를 거쳐 근대문화의 도시인 군산시 여행의 주제는 ‘Hello Modern 군산시간여행 1930 길’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의 근대 유적에서 시작된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근대역사박물관’으로 일제 강점기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근대문화의 자원을 전시하고 있다. 바로 이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옛 군산세관 본점이 있다. 과거 군산세관 본점은 1908년 준공, 서울역사, 한국은행본점건물과 더불어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다. 군산시는 이러한 근대유산을 바탕으로 외지인들의 관광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근대 유산을 지역 문화관광의 정체성을 통해 그 문화자산으로 삼고, 복원 및 원형의 보존을 통해 군산 원도심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서는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소개되었던, 옛 조선은행은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한국은행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을사녹약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광복 이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됐다. 동네 앞길로 기차가 지나갔던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은, 총 길이 2.5㎞로 1944년 4월 4일 신문용지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기차가 지나갈 때에는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 타서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다고 한다. 2008년 7월 1일 통행을 완전히 멈추었지만 철길은 그대로 남아서 이를 통해 기억의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구도심의 재생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렇듯 군산은 문화관광 콘텐츠를 첨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의 창고를 통해 그 지역의 정체성과 대표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세계은행은 ‘What a Waste 2.0’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세계의 쓰레기 위기에 관한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세계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고형 폐기물)의 양은 2016년 약 20억 톤에서 2050년 34억4000만 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환경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국내 하루 평균 폐기물 처리량은 26만 톤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3.2%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건설 폐기물(21만 톤, 46%)과 사업장 폐기물(17만 톤, 38%)이 가장 많다. 둘을 합치면 84%나 된다.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비해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소각 시설과 매립 시설 등은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폐기물 배출을 줄이거나 이를 재활용하..
어느덧 무더위가 시작됐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 확산 추세는 지속되고 있어 걱정이 크다. 더욱 우울한 소식은 올해 안에 코로나19 종식이 어려운데다 예방 백신이 나오지 않으면 이 상황이 2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다. 손 씻기 생활화, 기침 예절준수,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이다. 특히 마스크 쓰기는 필수다. 8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영국 의학 학술지 ‘랜싯’에 나온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마스크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과 관련한 문헌 44개를 메타 분석한 연구 결과다. 이에 따르면 병원에서 마스크를 쓰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85% 감소하며 물리적 거리를 1m 유지할 경우 감염 위험은 82% 감소한다는 것이다. 1m 간격씩 추가될 때마다 효과는 2배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정본부장은 더워지는 날씨에 불편하고 힘들어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유지를 일상생활에서 습관화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열대야까지 시작된 여름철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통풍이 잘되고 호흡곤란을 일으키지 않는 덴탈마스크를 권장하고 있지만 현재 공급물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최근 코로나19 산발적 집단감염이 일어난 클럽, 물류센터, 교회, 방문판매회사, 탁구장 등은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확산세가 지속되자 당국은 마스크 착용을 거듭 호소했다. 지난달 26일부터는 버스와 택시,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불응한 승객이 운전기사와 역무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강제 규정이 아니므로 기사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해도 승객이 이를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안일한 사람들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며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또 다른 청원자는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은 당당하고 오히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그들을 피해 다니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며 마스크 미착용은 경범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벌금 부과 등 실효성 있는 단속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다. 조속한 종식을 위해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식탁이었다. 큰 꽃잎 문양이 수놓아진 식탁보 한가운데 해바라기와 이름 모를 꽃들로 장식된 화병이 놓였다. 냅킨이 곱게 접혀있었고 은색 숟가락과 포크가 놓여있었다. 큰 접시들에는 구운 오리고기와 오믈렛과 샐러드, 미군들이 먹는다는 햄과 베이컨과 ‘에그 프라이’가 그득했다. 선교사님이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이모와 사촌 형, 누나들이 자리에 앉자 선교사님이 기도를 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이모님이 나를 위한 기도를 특별히 하셨다. 이모는 나를 부를 때 ‘미스터 고’ 라고 했다. “미스터 고가 주님의 은총으로 명문 ㅇㅇ대의 법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주님의 종으로 크게 쓰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모의 기도는 밝고 높은 톤이었다. 특히 법대라는 대목에 강한 악센트를 주셨다. 이모는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조카의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선교사님과 이모는 영어로 대화를 나눴고 누나들도 가끔씩 영어로 농담을 했다. 그들은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손짓을 했는데 나는 몇 마디 단어를 알아들었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아이 언더스탠드’ 라고 겨우 대답했다. 그러나 덕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이모의 충고가 시작되었다. 이모는 한국의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한국 사람은 게으르고 더럽고 무엇보다 법을 지키지 않는 무식한 민족이었다. 한국 사람은 무식하게 술을 많이 먹었고 심지어 밥상에 책상다리로 앉아서 밥을 먹는 것도 미개한 행동이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모든 것의 표준이었다. 이모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그런 이모의 말에 주눅 들었다. 무엇보다 영어는 내 인생의 큰 콤플렉스였다. 전곡에 사는 이모는 선교사의 초청으로 식구들을 전부 이끌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그때부터 전곡이모는 미국이모로 불렸다. 나에게 미국이모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국이모는 세련됨 그 자체였다. 나는 미국이라는 제국을 동경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인연은 내 생애 딱 한번 뉴욕에 열흘 출장 간 경험밖에 없었다.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나는 미국이라는 제국에 탑승하지 못한 승객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미국으로 갔던 사촌형이 제일 먼저 귀국했다. 형은 십 년을 미국에서 살았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귀국한 형은 술에 쩔어 살더니 어느 해 여름 홍수로 차가 흙탕물에 휩쓸려 돌아가셨다. 이내 두 누나가 귀국했다. 누나들은 영어학원에서 강사를 한다고 했다. 그 후 미국이모도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 나는 이모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재회를 위해 전곡에 갔다. “아이고 행곤아, 너도 많이 늙었구나.” 미국이모에게 나는 더 이상 미스터고가 아니었다. 호호백발이 되신 이모의 주름진 얼굴이 애처로웠다. 이모는 더 이상 미국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모의 아메리칸드림은 깨진 걸까? 최근에 미국에서 들려온 지인들의 증언이 자꾸만 귀를 울린다. “코로나가 분명하지만 병원비가 겁나서 진료를 포기했다.” 흑인을 목 졸라 죽인 백인 경찰의 득의만만한 표정과 시위하는 시민에게 경찰차를 몰아가는 뉴욕경찰의 모습을 CNN 뉴스에서 본다. 숨이 막힌다. 나의 아메리칸드림은 깨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시장 충격으로 5월 취업자 수가 39만 명 이상 감소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기업들을 옥죄는 노동조합법 개정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권 초기 호기롭게 표방했던 ‘일자리 정부’ 구호가 떠오른다. 배고픈 국민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코로나를 핑계로 허술히 가고 있는 점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 고쳐가야 할 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만3천 명 늘어난 127만8천 명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0.5%포인트 오른 4.5%로 역대 5월만 놓고 보면 통계 작성 후 최고 수준이다. 경제활동인구는 1년 전 대비 25만9천 명 감소했다. 구직 의지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전년 동기 대비 55만5천 명 증가한 1천654만8천 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 고용률을 살펴보면 60세 이상 고용률만 0.3% 늘어난 43.1%를 기록했고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전년 대비 모두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1.4%포인트 줄어든 42.2%로 하락 전환했다. 이미 예상됐던 코로나19가 잇따라 몰고 오는 경제 혼란 쓰나미가 드디어 시작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고용 창출을 위해서 먼저 집중해야 할 정책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60대 이상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아무리 늘려도 ‘좋은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말할 수 없다. 청년층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진정한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만들어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반기업적’ 대선공약에 발이 묶여 시의적절한 정책들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공약은 ‘늘·줄·높’(일자리는 늘리고, 비정규직·근로시간은 줄이며, 일자리의 질은 높인다)으로 요약된다. 집권 3년을 넘긴 지금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지 딱히 짚이는 구석이 없다.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專任者) 임금 지급 금지조항 삭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와 경영자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밝힌 “고용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말이 자꾸만 초라한 변명으로 들린다. 핑계만 있고 감동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 ‘일자리 정부’ 공약(空約)에 대한 국민적 아쉬움이 깊어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실용적’인지 깊이 점검해볼 시점이다.
도시화는 영국에서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영국에서 발원하여 유럽 및 전 세계로 확산됐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주택이나 도시 시설의 건설이 불가피해지면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됐다. 도시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과 문화적 편리함을 제공한다. 반면, 환경오염, 열섬현상, 소음, 범죄, 교통사고, 이웃 간의 갈등 등의 부작용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니와 도시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지금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원인이며 도시화가 빚어내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은 예상하지도 못했고 지금 우리가 그것을 처음 겪고 있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는 세계인구의 76%가 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조사한 '2018년 도시계획현황 통계'를 보면, 한국 국민의 92%가 국토면적의 17%에 불과한 도시에 모여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 인구가 모이게 되면 도시개발이 (인구이동이 먼저인지, 도시개발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산림훼손이 수반된다. 야생동물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채 대부분 별 이상 없이 공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식지와 먹이를 잃게 되어 마을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야생동물이 기침을 하면 그 바이러스가 77억의 사람과 그보다 더 많은 가축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도시는 바이러스 전파의 최적지인 셈이다.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의 약 80%가 수도권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발생했다. 영국의 사우샘프턴대를 비롯한 3개국 연구기관이 공동 조사한 바에 의하면 코로나 확산 위험이 있는 세계의 30개 지역은 모두 대도시였다 (서울은 4위로 분류). 국내에서 한때 발병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수도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연구결과를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전염병 확산의 근원지가 되는 대도시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다. 아무리 편리한 여건이 갖춰져 있다 해도 생명과 건강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다. 민선 경기도지사들은 정부와 지방의 자치단체를 상대로 수도권규제법령을 철폐하는 투쟁과 논쟁을 끊임없이 지속했다. 더 나아가 A지사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초강대도시’ 육성을 주창한 바 있는데, 경기도가 이미 포화상태이며 난개발이 만연한 상태에서 이런 주장들은 정부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성과도 극히 미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들의 주장이 국내외 현실 인식, 지방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타주의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도시정책을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 맞춰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의 치적을 위한 도시개발을 멈추고 현재의 도시가 지속가능한 차원에서 인구의 적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진단해야 한다. 규모가 초과상태라면 인근 지자체들과 협력하여 분산을 모색하고 필요하지 않은 과잉 도시시설을 덜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필자가 만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 중에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원주택을 구입해 교외나 농·산촌으로 이사할 계획을 구상 중이거나 실제로 실행에 착수한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 또한 조그마한 전원주택과 텃밭을 갖는 것이 꿈이다. 대도시의 종말과 중소도시의 부활의 시대가 오고 있다. 뉴노멀 시대의 도시 모델은 숲, 농지, SOC가 적절히 조화롭게 갖추어져 있고, 적당한 사회적거리를 유지하고도 공동체의 숨결이 살아있으며, 도시 자체나 인근 지역에 적정한 근린생활시설을 구비한 중소도시가 대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