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그녀가 한의원을 방문했다. 이전에는 혈압과 당뇨로 인해 내원했었는데 이번에는 팔목이 아프다. 몇 달 전에 우연히 넘어졌는데 팔목에 금이 갔고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얼마 전에 풀고 나서 일상에서 사용했더니 다시 붓는다. 시간이 지난 것에 비해 치료가 느려서 몸의 진단을 해보니 자율신경의 에너지와 심장 기능이 모두 저하되어 있다. 단지 팔이 다친 것이라고 하기는 4년 전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던 그녀를 떠올리니 의아하다. 그동안 좀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하고 물어보니 과연 최근 몇 년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물으니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원하시면 말씀하셔도 되어요 하니 남편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이신다. 얼마 전 은퇴해서 시골에 집도 사놓고 가꾸면서 살자고 먼저 내려가 준비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3년 전 쓰러졌다. 이제 애들도 다 키워놓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는데 먼저 가버린 남편이다. 워낙에 잘 웃고 밝은 표정의 그녀의 얼굴 속에 누구도 눈치채기 어려운 외로움과 쓸쓸함이 숨어있었다. 3년이 지났는데 최근까지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가 얼마 전부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아직 정말 가까운 사람 말고는 남편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간혹 인사를 나누곤 하는 아파트 옆집도 그렇다. 안부 인사로 건네는 “남편분도 잘 계시죠”라는 말에 한 번 더 남편이 생각나서 가슴이 무너진다. 시골집에는 아직도 가면 남편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시골집에 못 가게 말린다고 했다. 인간이면 아마도 누구나 어느 순간 경험할 감정이다. 외로움(loneliness)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느끼게 된다.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 적응 할 때, 혹은 그녀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였을 때 등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관계의 양보다 질에 영향을 받는다. 고독(solitude)과는 차이가 있다. 외로움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20세기의 종교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이에 대해 “우리의 언어는 현명하게도 혼자 있음의 두 측면에 대해 각기 다른 단어를 남겼다. 혼자 있음의 고통에 대해서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혼자 있음의 영광에 대해선 고독이란 단어를”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재점검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변화 가능한 감정인 외로움을 이해하고 돌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연구들은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때 뇌의 통증을 느끼는 부위가 활성화되며 매일 담배 15개비씩 피우는 것처럼 건강에 해롭다고 말한다. 의욕이 없다는 그녀에게 혈관 검사 결과를 보여드리면서 지금 돌보지 않으면 이곳저곳 아프면서 사는 동안 고생하실 수 있다고 운동을 잘 챙기시고 다음에 올 때 다시 체크해보자고 말을 건넸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공원을 걸었더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면서 의욕을 보인다. 안도감이 든다.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역대급 부실 청문회로 기록될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지 23년이 됐다. 김대중 정부였던 2000년 6월 23일 16대 국회는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했다.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 인사권을 법률에 의거해서 견제하고, 주요 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주권자인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동안 국회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에 대해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각 정당들도 여론의 질타를 받을 때마다 인사청문회법의 개정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결국은 말뿐이었고,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슬며시 덮는 것이 관행이 됐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여론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청문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 도를 넘어 지나칠 정도의 사생..
일신상의 문제로 인해 군에 입대를 하는 대신 관이나 공공기관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인원을 사회복무요원 또는 공익이라고 부른다. 사회복무요원은 기초군사 훈련을 마치고 민간인 신분으로 다양한 기관에서 공익목적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건강의 이유로 인해 징병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은 젊은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대체하기 위해 복무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의 근무지 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는 소집대기자가 복무기관 자리수 보다 많기 때문이다. 성일종 의원이 병무청으로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소지대기자는 5만 8천명인데 복무기관 자리수는 3만 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통계 수치는 2019년 이후 2022년까지 소집대기자가 복무기관 자리수보다 훨씬 많다. 이러다보니 복무지를 배정 받기 위해 대기하는 젊은이는 계속 적체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진 소집대기자는 통상 3년이 지나면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고 병역이 면제되는데 매년 1만명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소집대기자가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는 유령처럼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제한을 받음은 물론 여행을 비롯한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얻는 불이익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취업공고에는 병역을 필한자 또는 면제자를 구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병무청에서는 소집대기자를 6개월 단위로 소집통보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다. 이러한 결정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대기했던 젊은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시행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소집을 기다리다가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의 1/3을 정상적으로 살지 못했는데 새로운 정책의 시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충 계산해 봐도, 1만 명의 젊은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하루 동안 240,000시간 버려지고 있으며 1년으로 계산하면 천문학적인 시간이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복무기관의 자리수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면제 처리를 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금도 젊은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속절없이 날아가고 있다.
청년 교사의 죽음 지난 주 20대 청년들의 사고와 안타까운 죽음이 전해졌다. 그 중 하나는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 여러 무성한 추측들이 있고, 추모 열기 또한 뜨겁다. 겨우 2년 차에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사실에 대한 진상은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로 ‘마지막 시간’을 ‘학교’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교사로서 첫 출발을 하고 담임을 맡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초기 혼란에 대한 언론의 책임 그가 죽음의 공간으로 학교를 선택함으로써 개인을 넘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더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전에 소셜미디어에서는 ‘힘’ 있는 누군가가 언론 보도를 막..
경기도는 관광지로서의 입지가 매우 좋다. 매력 있는 관광자원 또한 널려있다. ‘경기도에서는 한국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25일자 본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경기도는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조건을 두루 갖춘 뛰어난 관광지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인천항, 평택항이 지척에 있다. 육상 교통환경도 우수하다. 전철이나 대중교통 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갯벌을 품은 바다와 수려한 산, 그림 같은 섬이 올망졸망 붙어 있는가하면,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러니 산해진미를 만들 수 있는 식재료도 다양하다. 수원 화성과 남한산성 등 세계유산과, 제부도 갯길, 용주사와 융‧건릉, 파주 임진각 등 역사유적과 자연 경관 조건이 어우러져 있다. 따라서 경기도와 경기도관광공사는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마..
도깨비, 응답하라1988, 이상한변호사우영우, 모범택시 등. 내가 본방사수한 드라마다. 요즘엔 몰아볼수 있어 본방사수가 별 의미 없지만 재미있으면 몰입한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라도 재미없는 드라마는 안본다. 내용이 건전하고 좋은 메시지 전달한다고 재미없는걸 보지는 않는다. 재미와 시청률은 드라마 생존의 기본이다. 오로라공주, 아내의유혹, 왔다장보리, 조강지처클럽, 임성한, 김순옥 등. 소위 유명세를 탔던 막장드라마와 대표적 작가다. 막장이라 비난하지만 아무나 못쓴다. 막장이어도 시청률이 담보되었기에 이 작가들이 살아남은거다. 각자 시청률 20% 이상씩은 항상 들고 다녔다.그래도 욕은 먹는다. 욕하면서도 드라마는 또 본다. 막장드라마란 말이 우리사회에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쯤이다. 임성한의 일일연속극 등이 이말의 생성에 기여했다. 김순옥의 아내의유혹(2008)이 막장드라마에 마지막 점을 찍고. 통상 일반적 상식이나 도덕기준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이야기 흐름이 개연성 없이 전개되는 드라마를 말한다.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이를 응징, 복수하는 과정에 기억상실증, 출생의 비밀, 극단적 고부갈등, 재벌가와의 관련 등이 적당히 조미료로 뿌려진다. 막장드라마의 공식이다. 너무나 익숙하다. 일본도 막장드라마가 있으며 남미의 텔레노벨라는 그 수위가 민망할 정도다. 극단적 재미를 탐닉하는건 인간의 본성인지 모른다. 고전문학의 최고봉인 세익스피어 작품도 실제론 통속적이다. 그리스신화에는 근친상간과 존속살해도 등장한다. 그래도 우린 세익스피어나 그리스신화를 고전의 원전으로 해석하고 응용한다. 힘들때 매운 음식 찾듯이 재미없는 삶속에서 현실과 다른 지독히 자극적인 내용에 빠져 대리만족하고 감정몰입을 한다. 막장드라마의 순기능이다. 현실의 고통 대신 욕망의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나보다 더 나쁜 시어머니 욕하면서 스스로 나는 괜찮은 시어머니라 자위할 수 있는 핑계거리도 주고. 2022년 TVN우리들의블루스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개선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장기기증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 다 안다. 모든 드라마가 재미도 있고 좋은 드라마면 더 바랄게 없는데 그건 어렵다. 그동안 막장드라마는 방송사 입장에서 최소한의 투자와 노력으로 시청률을 담보받을 수 있는 안전판이었다. 80-90년대에는 농촌드라마도 있었다. 당시 우리사회는 드라마에도 사회발전과 통합의 계도적 역할을 요청했다. 대부분 개발도상국가가 그러하듯. 이젠 세계 최상위권의 드라마왕국이다. 과거형태의 막장드라마는 더이상 소구력이 없다. 배용준을 일본여인의 욘사마로 만들었던 겨울연가에도 막장코드는 있다. 기억상실증 등의 클리셰가 작동한다. 그래도 겨울연가를 막장드라마라고 안한다. 오히려 그런 클리셰가 순애보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대중사회의 문화상품이다. 시대에 따라 담는 내용이 달라져야 잘팔린다. 임성한의 데쓰노트로 유명한 오로라공주처럼 아무 개연성 없이 출연자들이 12명이나 죽어나간다면 지금 시대에 그런 시청율은 나올수 없다. 수준높은 장르물이 다수 만들어지는 요즘 리얼리티의 부재는 드라마에 치명적이다. 드라마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장치를 포함할 수밖에 없고 그중에는 소위 막장코드가 많지만 과거처럼 자극적으로 개연성 없이 늘어놓아서는 시청자의 눈을 못잡는다. 중요한 것은 막장코드를 사용해도 어떻게 사용하여 스토리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갖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격이 달라진다. 막장드라마와 명품드라마의 차이는 거기서 갈라진다. JTBC의 밀회나 스카이캐슬은 막장코드를 쓰면서도 세련된 드라마로 격상시킨 대표적 사례다. 과거 스타일의 막장드라마는 이젠 설 자리가 없다. 사회진화와 함께 변한 세태와 시청자를 스토리 안에 짜임새있게 녹여내야 한다. 막장드라마는 진화해야 한다. 그게 막장이든 명품드라마이든 살아남기 위해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가 오는 날이 잦아지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애주가들은 술 먹을 핑계를 만들어 내게 마련이지만, 특히나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라는 상식(?)이 술 자리로 이끌게 된다. 필자 역시 애주가 중 한 사람으로 주위에 술꾼들이 많다보니 이런 날을 피해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나하게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꼭 한번은 듣게 되는 이야기가 ‘간이 욕하겠다’ 혹은 ‘간에게 미안하다’ 등의 표현이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간을 학대하는 습관 보통 일반적으로 우리가 간을 학대하는 경우는 ‘술’과 ‘피로’라고 생각하기 쉽다. 피로는 간 때문이며, 간을 관리해야 피로도 줄일 수 있다고들 한다. 몸의 피로와 알코올 섭취가 간에 무리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은 그렇게 단순한 기관이 아니다. 간은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의 물질 대사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간은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을 일단 ‘유해 독소’로 간주하고 분해, 해독하여 피를 통해 모든 장기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즉, 물을 제외하면 먹는 모든 것들이 간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약은 말할 것도 없고, 유기농 채소건, 잡곡 밥이건 간에는 부담이 되는 ‘독소 성분’이다. 심지어 간을 위해 챙겨 먹는 것들조차 간에게는 오히려 ‘해독해야 하는 또 하나의 독소’라는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간에는 약도 없다는데 간을 위해 먹는다는 건 뭐지? 간에는 약도 없다고들 한다. 한번 나빠진 간은 다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간에는 약도 없다는데, 우리는 간을 위해 뭔가를 챙겨 먹으려고 한다. 간을 위해 먹는다는 모든 것들은 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간에 약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전 세계적으로 간을 위해 먹는다는 건강기능식, 약 등의 효능을 살펴보면 간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 단지, 항산화 작용이나 간에서 배출하는 담즙 배출 활성화 등이 대부분이다. 술도 안 먹는데 지방간이라고? 우리나라 성인 대다수가 가진 지방간의 경우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지나친 알코올 섭취 때문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지방간을 유발하는 간 손상의 경우는 장에서 생긴 내독소가 간문맥을 통해 간으로 이동하며 발생하는 것으로 명기하고 있다. 또한 미국 코넬대학에서 만성 피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서도 만성 피로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장내 미새물의 종류가 극도로 낮아 세균 수치가 상당히 높아 이 세균(유해균)들이 염증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은 우리가 섭취한 모든 먹거리를 분해하여 흡수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장이 모든 물질 대사를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장에서 분해된 성분들은 그대로 간문맥을 통해 가장 먼저 간으로 유입된다. 이후 간은 장에서 유입된 모든 성분을 ‘독소’로 인식하고 분해, 해독하여 온 몸으로 물질대사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간에 부담을 주는 LSP(내독소)는 장내에 존재하는 그람음성균이라고 하는 세균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독소로 소장, 대장 어디에나 존재한다. 세균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장이나 간에서 흡수되거나 분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균을 따라 간에 치명적인 독소들이 간문맥을 통해 간으로 유입되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때 장누수증후군을 가진 환자라면 이러한 유해균이 다량으로 간으로 유입되게 된다. 간으로 유입된 해당 독소(내독소 LSP)는 간에 쌓이게 되면서 이것이 간 손상을 유발하여 지방간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애간장 태우는 간 건강 관리 간을 위해 무언가를 먹겠다면 그 성분과 효능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식약처의 발표 내용은 최근 간 건강과 관련한 학계의 새로운 발견을 인용한 것이다. 식약처 발표와 코넬대학의 임상시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간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방간 등 간 질환의 걱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우선 장 내 미생물의 관리를 통해 장에 존재하는 유해균들이 간 문맥을 통해 간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애간장 태우다’라는 표현은 ‘몹시 안타깝고 초조하며 걱정이 된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애’는 창자, 즉 대장을 말하고, 간장은 간을 의미한다. 우리 선조들은 장과 간의 관계와 그 중요성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촉발한 논란이 일파만파다. 고인이 생전에 당한 혹독한 정신적 상황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자의 권위가 도무지 인정되지 않는 교실과 협박성 갑질을 일삼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의해 속절없이 붕괴된 교단 재건이 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 정립에 모두 나서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을 제로섬 관계로 놓고 벌이는 최근의 ‘양자택일’ 논란은 결코 해법을 찾아내지 못할 어리석은 작태다. 한 초급교사의 불행한 선택이 부른 파장으로 인해 적나라하게 조명되고 있는 ‘교권 침해’ 사례는 끔찍하다. 초등학생이 휴대폰을 만지면서 교사에게 “해볼 테면 해보라”라고 덤비는 건 교실에서 흔한 일이라고 한다.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을 깨우거나 일으..
피묻은 1500개 소뼈 더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다. 소뼈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유고슬라비아의 민요가 흘러나온다. 흰 드레스의 여인은 세르비아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고 이 작품은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장을 거머쥔,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 4일간 이뤄진 이 퍼포먼스는 90년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내전 학살을 고발하는 행위였다. 그 충격적 퍼포먼스와 함께 기억에 남은 그녀의 인터뷰.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세르비아인이면서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단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어디일까. 소뼈를 닦으며 부른 노래를 주목한다. 유고슬라..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젊은 여교사의 극단적인 선택. 쉬쉬해왔던 학부모의 갑질이 불거진 사건이다. 어디 서초동, 교사에게 뿐 만일까? 우리 사회 갑질은 직장, 농촌, 학교, 백화점, 아파트, 식당…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 혹은, 재벌 2, 3세의 폭행에서부터 간호사의 태움 문화, 밀어내기 갑질, 학폭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나 뭐하는지 알지? 변호사야”. 서이초교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갑질 발언이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기에, 알량한 직업을 내세우고, 자기 자녀의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이번 사건으로 교권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일리 있어 보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 근본 원인은 우리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삐뚤어지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를 긍정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소중한 의미를 함의한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결합하고 연결하는 게 사회 자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회자본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여 진다. 법조인이라는 특정집단의 우월의식이 부정적 동질성으로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젊은 여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법조인들의 부정적 동질성, 다른 말로 하면 카르텔이다. 그렇지 않은 법조인도 있다. 하지만 그랜저 검사, 별장 성 접대, 대장동 50억 클럽, 검찰 특활비 회계부정, 검사 출신 법무부장관의 국회의원에 대한 깐죽거림, 교사에 대한 폭언 등은 법조 카르텔에서 비롯된 행태다. 법조인이 부패하고, 법조인의 준법의식이 삐뚤어지면 공정과 상식은 무너져 내린다. 행복한 사회가 아니고 불행한 사회가 된다. 범죄를 막아야 할 법조인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유죄가 안 되고, 폭력을 막아야 할 법조인이 폭력을 저지르는 세상에선, 평범한 국민은 열패감만 느낄 뿐이다. 법조 카르텔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다. 또 다른 기득권과 연합해 몸집을 키운다. 법조-언론-토건 카르텔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합 카르텔은 공권력과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이성이 마비된 괴물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 시점, 법조인들은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국민도 각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후진국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앞장서라. 정치가 변하지 않으면 국민은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변명의 정치는 중단돼야 한다. 정치인이 바로 서야, 국민도 바로 설 수 있다. 공직자들은 공적 서비스 제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행정 효능감이 높아진다. 사회가 행복해야 갑질도 경감하게 될 것이다. 서초동 20대 신규 교사의 자살. 우리의 삐뚤어진 군상들이 빚어낸 사건이다. 인격의 저열함을 교정할 수 있는 건 전인교육 강화에 있다. 정부의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 중심의 정책, 국민 존중의 겸손한 소통, 사법의 공정성 확보, 부정부패 방지에 국정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서초 교사 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과 상호존중의 관계를 경시하는 정치와 행정풍토에선 사회에 만연한 갑질을 지적하기도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