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 김 인 구 영희가 웃었다 철수가 웃었다 목덜미에 스르르 팔꿈치에 스르르 감기는 옛날이야기가 웃었다 소꿉놀이가 있었다 까르르 까르르 물볕에, 햇볕에 마르는 한 나절 예닐곱살 개구쟁이들이 웃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영희가 있을 뿐 어른이 되어버린 철수가 있을 뿐. 1964년 전북 남원출생. 1991년 ‘시와 의식’ 여름호에 <비, 여자> 외 2편을 발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2014년 세종 우수도서 선정)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혼자 먹는 밥 권 순 학 언제부턴가 빵보다 밥이 좋아졌다 쓱 바른 어느 잼보다 수저 부딪치는 소리가 좋아졌다 빈 반찬통 떨어졌을 때 요란한 통만 찾았다 잊은 양념과 국물에 미끈하고 나서야 혼자 먹는 밥보다 식탁에 둘러앉은 얼굴 하루를 되새김질하는 저녁이 좋아졌고 설거지하며 쌓인 고단까지 씻고 싶어졌다 물음표는 가고 느낌표만 남은 것일까 부쩍 자주 창가에 앉아 벚꽃 지짐에 단풍 차까지 우려내기도 하지만 그대로 남겨지는 그것들 혼자 먹는 밥 밥이 아니라 자신을 먹고 있었다 1960년 대전출생,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이 있고 저서로 ‘수치해석기초’가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기계IT대학 전기공학과 교수.고 한국시인협회 및 한국지능시스템학회 회원.
할아버지 텃밭 이 종 숙 얼갈이 배추 구멍 숭숭 뚫어도 맛있다고 냠냠 상추에도 달팽이 한마리 살금살금 배추벌레도 살금살금 할아버지도 살금살금 옥상에 여름이 한가득. 이종숙 1953년 서울출생, 아동문학세상 동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구연문화위원 회원. 한국아동문학연구회 기획위원, 시산맥 회원, 2016년 경기문화재단 동시 창작지원금 수혜
터 본다 오 현 정 함박눈 내리는 날 수지로 와서 수지맞았다고춤추는 귀에 마음이 떴다 얼음새꽃 헤치고 걸어갈수록 뾰족한 터 주신을 품고 떠다니는 좋은 일이 지관도사마냥 약수터를 오른다 앞산 바람이 수상하고동서남북에 열린 입이 납시어도 가위 눌리지 않고 아침 해를 받는 터 현관의 등을 밝힌다흔들리지 않으려는 옹졸한 신발들이 이참에 옆집과 터 본다 오현정 1952년 경북 포항출생 1989년 《현대문학》 2회 추천 완료로 등단. 시집『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 『몽상가의 턱』 『광교산 소나무』외 다수. 애지문학상 외 다수 수상. 한국시인협회 이사 외.
상수리나무와 까치 박 수 화 숲속 나무 우듬지 위 아리잠직 앉아있다 까치집들이, 가지들도 연두초록빛 옷을 갈아입고 햇살바람에 일렁거린다, 헌집보다 새집이 좋다고 쉼 없이 물어 나른 가지들로 까치들은 센바람 날 탄탄한 평형의 집을 짓는다 언젠가 가로수 하늘 침들이 까치집 한 채가 보도블록 내 발등 주위로 쏟아져내렸다 바람살결 율동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안단테 칸타빌레로 맑은 소리를 내며 지상의 중심축 하나가 툭! 무너져 내렸다 빈 둥지에 바람의 은유만 속삭이는 곳 그곳 안부가 궁금하다 올망졸망 까치동네 봄날 놀이터, 이봄 모두 어디로 떠나버렸을까 상수리나무가 보듬은 온유까치집 애옥살이 까치네 가족들 봄소식이 그립다 박수화 1955년 경남 김해 출생. 2004년 평화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새에게 길을 묻다』 『물방울 여행』 『체리나무가 있는 풍경』 『흐린 날 샤갈의 하늘을 날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여성작가위원.
월 식 석 연 경 갱도에서 물고기 떼가 나온다 깊숙한 지하에는 해감내 고대의 주검이 달궈지는 시간 금강석은 죽음을 지나 있다 어둠 속 어딘가 유폐된 빛을 품고 있다 무너진 갱도가 뚫리자 매지구름이 걷힌다 물고기 떼가 바야흐로 달에 닿는다 찬란한 어둠 금시초문 월식이 시작된다 석연경 68년 경남 밀양출생, 2013 『시와 문화』시, 2015 『시와 세계』평론 등단. 시집『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연경인문 문화예술연구소장
아파트 부지의 내 도로의 도보 이용은 차량 진출입과 달리 자유롭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던 아파트 부지 내 도로의 통행을 막아 차량은 물론 도보 통행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는 어떠할까. 서울북부지방법원 2018카합2 통행방해금지 사건에서 아파트 인근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던 아파트 부지 내에 있는 도로에 대하여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쓰레기 투척, 기물파손 등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통행을 막기로 의결하고 철문을 폐쇄, 철문 위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방법 등으로 인근 주민들의 통행을 막아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아파트 인근 주민들은 ‘통행의 자유와 그에 기한 방해금지청구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철조망의 철거 등을 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도로로 제공된 토지의 소유자가 자신의 소유권에 기하여 어느 특정인만이 아니라 그 도로를 이용한 모든 타인의 통행을 막은 경우에는 그와 같은 소유권의 행사가 권리남용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통행의 자유에 기하여 방해의 배제를 구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위 사례와 같이 인근 주민들이 타인의 사유지를 통행할 수 있는 권리에 관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계층을 홈(Home)족 이라 부른다. 코로나19 창궐도 이유지만 스스로 집에서 삶을 즐긴다. 사회생활에 부적응으로 집밖을 두려워하는 ‘방콕족’과는 구별된다. 집을 일상의 생활공간으로 꾸미는 ‘홈스케이프(Home+Escape)’,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홈캉스(Home+Vacance)’, 카페처럼 집을 만드는 ‘홈카페’, 예능인이 방송에서 보여준 ‘나래바’ 그리고 코로나19 침체속 급성장한 출장 청소.세탁.방문수거 서비스도 이들 홈족이 주도한다. 여기에 홈트레이닝도 그 중 하나다. 여러 사람이 밀집해서 체취와 체액이 곳곳에 묻어있고 밀폐된 공간인 헬스장을 피하려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모 스타트업 온라인 PT 프로그램은 수강 신청이 급증한 것은 안전하게 운동하고 싶은 단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공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 ‘홈족’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이들 중 상당수가 은둔형 외톨이로 진행된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때 슬기로운 홈족 생활로, 그리고 홈족 생활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며 가파른 확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나, 거기에 있었다 박 남 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책장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점점 색이 바래고 먼지가 켜켜이 앉아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고 이제 그만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사이 해와 달은 수없이 떴다 지고 바람은 제멋대로 들락날락하고 문득 코끝 간지럽히는 초록향기에 몸은 허공에 둥실~ 나, 그만 마음을 활짝 열어버렸다. 박남주 1955년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단오부채』, 『중심은 사랑이다』가 있다. 시랑 동인.
봄 빛 김 정 원 바위산 하나가 가슴 열고 강둑 지나 드센 바람 비켜 마을에 다가선다 ‘立春大吉’ 기둥에 붙어 조을고 있던 빛살이 누워 앓는 사람의 손등에 한웅큼 기운 실어 무릎을 세운다 덤불 속 죽은 듯 풀싹들이 다투어 봄빛 끄집어 당겨 얼굴 내미네 한결 개운해진 걸음걸음 내 얼음 발바닥에도 새싹 돋나봐! 김정원 1932년 경북 포항출생. 1985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 ‘허(虛)의 자리’, ‘삶의 지느러미’, ‘분신’. 율목문학상, 민족문학상, 소월문학상, 세계시문학대상 수상. 여성문학인회 이사, 미래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