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우리의 소원’은 몇 차례의 개사를 겪었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제 강점기 삽화가, 만화가, 문학가, 영화 각본가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안석영(본명 안석주)이 그의 아들인 작곡가 안병원의 곡에 글을 써준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우리의 소원’은 1947년 3월 1일 한국방송의 삼일절 특집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1948년이고 한국전쟁의 휴전으로 분단체제가 시작된 것이 1953년이니 노래가 발표될 시점에는 ‘통일’을 부르짖을 이유가 없었다. 분단되지 않은 조국에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의 소원’에도 ‘통일’은 없었다. 원래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출신이었던 안석영이 좌우익 세력 사이의 충돌이 극심했던 미·소 군정기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꿈꾸며 써내려간 가사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에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란 대목이 “
25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를 앞두고 민주노총이 내년 최저임금 25% 인상안을 내놨다. 시급 기준 1만770원 수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요구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지금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심을 노출할 때가 아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2017년 시간당 6천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2018년 7천530원(16.4%), 2019년엔 8천350원(10.9%)으로 올랐다. 하지만 저소득층 일자리가 오히려 감소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생기자 올해는 인상률이 2010년 이후 최저치인 2.87%(8천590원)로 결정됐다. 굳이 코로나19의 재앙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확대돼왔다. 최저임금 적용이 취업률을 떨어뜨렸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23일 발표한 자료에는 2018년에 새로 적용받게 된 근로자 집단의 취업률 감소 폭이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아닌 집
코로나19는 우리사회의 여러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생산과 소비가 축소되고 수출과 수입이 감소돼 경제가 어려워졌다. 교육, 문화, 체육, 여행·레저, 근무환경, 종교생활 등 여러 방면에서 국민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19로 결혼식 풍경도 달라졌다. 신혼여행 계획을 수정해 외국 대신 제주도 등 국내를 선택하는 신혼부부가 많았다. 또 감염을 우려한 혼주 측이 날짜를 연기하는 경우가 속출, 업체와의 다툼이 빈발 했다.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확산되자 경기도는 지난 1일 물류창고, 콜센터와 함께 결혼식장 등 다중이용시설을 대상으로 집합제한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결혼식장의 경우는 출입자 명부를 관리하고 방역관리자를 지정해야 하며 출입자 증상 확인 및 유증상자 등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 또 방역조치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인륜지대사’인 결혼식을 언제까지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는 없다. 이 와중에 눈길을 끄는 소식이 있다. ‘인천형 작은 결혼식 사업’이 그것이다. 간소하지만 뜻 깊은 결혼문화 확산을 위해 인천시가 추진하는 이 사업을 위해 시는 컨설팅 및 작은 결혼식장 세팅을 지원하며,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
어느 날 혼자 사는 자취방에 계란 2판이 있었다. 업무차 출장을 갔다가 동네 양계장에서 계란이 싸다고 해서 사온 것인데 혼자서 먹기에는 많은 양이다. 그래서 큰 솥에 물을 올려서 삶았다. 삶은 계란 2판을 들고 출근하여 5층 의회사무과장 책상에 보자기째 올려놓았다. 출처를 알리기 위해 명함을 붙였다. 오전 10시쯤 의원님께서 삶은 계란을 맛있게 드셨다며 전화를 주셨다. 의회사무과 과장님이 의원님실에도 전했던 것. 삶은 계란을 먹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4층, 3층 순으로 본청내 각 부서에 삶은 계란을 전했고 용기있는 동사무소 공무원이 SNS를 통해 ‘우리 동에는 언제 오는가?’ 질문을 한다. 그래서 10판 300개를 사서 구내식당 가마솥에 삶았다. 식당 담당자의 협조와 인근부서 2명의 지원을 받았다. 승용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계란을 싣고 각 동을 한 바퀴 순회했다. 이후에는 환경사업소, 보건소, 차량등록사업소를 돌았다. 계란을 받은 동료 공무원들이 SNS를 보내오고 지금 먹고있다며 단체사진을 올리고 셰프사진을 편집하여 보내주었다. 지금도 그 사진을 SNS계정의 사진으로 쓰고 있다. 어린시절 1965년 경 아이들에게 있어 계란은 부의
국내에 잘 알려진 외국 유통회사가 있다. 한국에 들어와 맥을 못 춘 다른 선진 유통회사들과는 달리 이 회사는 높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이 회사 한국지사에 레전드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뛰어난 경영능력과 겸손한 품성으로 사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그가 서울의 한 지점에서 부점장으로 있다가 대도시 점장으로 간 것이 40을 갓 넘긴 나이였다. 그곳에서 5년 동안 일하며 그는 괄목할 만한 매출성장을 기록해 경영진을 놀라게 했다. 그는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하도록 상품을 배치해 분위기를 새롭게 했더니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그를 차출해 다른 도시의 개점 작업을 맡겼다. 그는 설비 점검에서 시작해 상품입점 기획, 상품배치, 홍보, 회원 확보까지 총력을 쏟았다. 회사 측은 신규시장이어서 우려를 많이 했고, 5년 정도 적자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곳은 개점 첫 해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그가 레전드급 반열에 오른 더 큰 이유는 빛나는 실적보다도 고졸 학력으로 점장, 그것도 잘 나가는 점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스펙보다도 능력을 중시하는 회사의 기업문화가 바탕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상경했다. 형과 함께 자
벚꽃이 활짝 피던 작년 4월, 서울대공원으로 꽃구경을 갔다. 벚나무를 ‘소리나무’라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생각나 벌들이 있는지 관찰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춰있던 4월에 활짝 핀 벚꽃을 보다가 벌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벌들이 수없이 날아와 날개 짓하며 윙윙 거리는 소리를 직접 들으니 왜 소리나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고, 지금도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위기는 늘 존재하고,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자기의 진로와 삶의 방향에 대해 성찰하며 미래를 준비하여 모두가 기회를 얻길 바란다. 50년의 삶을 살았다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첫돌까지 1년을 제외한 49년은 후회하는 삶이라고 하니 순간순간 현재를 소중히 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1997년도 IMF사태 이후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대량부도로 인해 실직된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개별프로그램이 필요함에도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을 준비하지 못하고, 열린교육에만 매몰되어 놓친 부분이 많았다.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세심한 교
생각처럼 쉬운 게 또 있을까.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생각은 값을 쳐주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무엇을 생각하던 혹은 생각하지 않던 온전히 공짜다. 공짜일 수 있는 자유가 생각에 있어서인지, 세상에 쏟아지는 것들을 보면 공기처럼 가볍다. 대표적인 게 말과 글인데 말과 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리로 그치지 일쑤다. 소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들이 쏟아내는 것이 소리다. 비와 바람이 그렇고 짐승과 자동차 심지어 파리와 귀뚜라미도 소리를 뱉는다. 물론 그렇게 뱉어내는 소리 가운데는 인간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것들도 있다. 그렇게 쏟아내는 인간의 소리를 우리는 말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말은 소리의 일종이다. 그럼에도 말을 소리와 구분하는 까닭은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말과 글을 처음 만들어낸 인간들도 의사소통을 위해 생각이 필요했다. 무엇이라고 부를까. 부르기 위한 것들은 자연현상에도 많았고, 사물이나 느낌에도 적지 않았다. 생각 끝에 인간들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부터 한 글자씩 차례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몸, 물, 불, 숲, 산, 길, 집, 밥, 땅, 일, 힘, 땀, 꽃, 별, 달, 해, 손,
이제는 당황스럽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파장이 어디까지 일지? 이미 경계의 선을 넘은 지는 오래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와 산업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끝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더 큰 걱정이다. 종식을 선언하는 국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는 재유행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뿐만 아니라 중국의 베이징도 최근 징후에 민감한 이유이다. 재유행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미래준비를 위한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고 있다. 관광 또한 코로나로 인한 트렌드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이달 16일 의미 있는 분석자료를 발표했다. 비대면(Untact) 시대의 국내 관광행동 변화이다. 지난 1월 20일부터 5월 30일까지 21주간 통신사의 빅데이터로 국내 관광객의 이동패턴과 행동변화를 분석했다. 근거리(Short distance), 야외활동(Activity) 가족 단위(Family), 자연 친화(Eco-area), 인기 관광지(Tourist site) 관광 수요회복 조짐은 아직(Yet)이란 키워드를 뽑아내 SAFETY(안전)란 말로 정리했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영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관광도…
코로나바이러스19의 전지구적 전파 이후 시민의 일상은 어찌 변할까. 세 가지 증후군을 골라 본다. 먼저 사회의 풍토 변화다. 교육의 부재 상황에서 대중은 전통적인 학교가 무용해지는 것을 간파했다. 대학의 기능상실이 뒤따를 것이다. 개인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열린 시민대학이 는다. 자주적인 개인학습, 직접 현장에 참여하는 실습, 학습공동체와 지식동아리, 동호회가 자조적으로 꾸려가는 습작, 문제의식을 느낀 당사자들의 직간접 체험, 일하면서 배우는 노작, 교수 없는 터득 방법, 조사와 토론으로 직능인이 되는 습득가정 같은 창의적 성장 기술이 자리잡아간다. 다음은 개인의 행동 변화다. 자기계발의 풍습이 극단적으로 바뀌는데, 나는 ‘방목(放牧)’의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학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배우고, 몸소 익히고, 스스로 얻고, 알아서 깨닫는다. 취미와 특기, 전공에 있어 유기된 상태에 놓인 사람들 중 적극적인 개인들은 가장 유목적인 존재, 유희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분산적이면서 전인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속출하고, 몇 가지 분화된 영역에서 전문적이면서도 여러 분야에 지식을 걸친 융합적 인재들이 드러난다. 이들은 교육현장, 학계와 직업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이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이며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이다. 이중 상주군의 1965년 인구는 26만5천명이었다. 하지만 2019년에 9만9천986명이고 지금 검색해 보니 9만8천644명이다. 2019년말에 10만을 찍고 다시 내려왔다. 이처럼 상주시 인구를 상세히 따지는 이유가 있다. 2019년 초에 상주시 인구 10만선이 무너졌다고 상복을 입었다가 곧바로 철회한 해프닝이 있었다. 이에 상복을 입을 것이 아니라 젊은 공무원들이 색동옷을 입고 열심히 일하자고 언론 기고를 통해 제한했다. 그 글을 상주시청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항의전화를 받고 삭제했다. 1978년 공무원 2년차에 양정(糧政)업무를 담당했다. 벼와 보리를 수매하는 일이다. 우리 면 수매실적이 저조했다. 전후 사정과 과정은 모르겠고 부면장님과 재무계장님을 모시고 상주시로 벼를 사러갔다. 하지만 당시에 시도, 시군간 양곡이동은 불법이었다고 했다. 수매용 볏가마를 가득 실은 12톤 트럭이 움직이자 파출소 경찰관에 칼빈소총을 메고와서 검문을 했다. 젊은 나이라 벼락처럼 내달려 도망쳤다. 연세드신 두 분을 버려두고 나만 살겠다고 도망쳐 나와서 사무실에 사건경과를 보고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