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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파자 (破字)

이창식 주필

시장(市場)이란 용어는 19세기 말 개항 이래 생긴 용어로 예전에는 ‘시전(市廛)’ 또는 ‘장시(場市)’ ‘장터’ ‘저자’라고 불렀다.

전(廛)은 삼국 시대부터 그 역사를 볼 수 있는데 490년(신라 소치왕 12) 서울에 처음으로 개설돼 사방의 물화를 유통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나라 시장 역사가 1500년이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옛날 장터에는 상인과 소비자 사이에 끼어들어 흥정을 붙이고 나서 중간 이문을 챙기는 ‘여리꾼’이란게 있었다. 처음에는 가게 앞에 줄지어 서 있다고 해서 ‘열립(列立)꾼’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이익을 남겨 먹는다하여 ‘여리(餘利)꾼’으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상인이 받고자 하는 물건 값에 자기 이문을 얹어 흥정을 성립시키고, 여리(餘利)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상인과 저들만이 알 수 있는 암호(暗號)를 만들었는데 그 암호가 다름 아닌 한자의 획을 분합한 파자(破字)였다.

예컨대 하나는 ‘천불대(天不大:天에서 大를 빼면 一)’, 둘은 ‘인불인(仁不人:仁에서 을 빼면 二)’, 셋은 ‘왕불주(王不主:王에서 기둥을 빼면 三)’, 넷은 ‘죄불비(罪不非:罪에서 非를 빼면 四)’, ‘다섯은 오불구(吾不口:吾에서 口를 빼면 五)’, 여섯은 ‘곤불의(袞不의:袞에서 의를 빼면 六)’ 일곱은 ‘흡불백(不白:?에서 白을 빼면 七)’, 여덟은 ‘태불형(兌不兄:兌에서 兄을 빼면 八)’, 아홉은 ‘욱불일(旭不日:旭에서 日을 빼면 九)’ 열은 ‘토불일(土不一:土에서 一을 빼면 十)’ 등이었다.

미뤄 짐작하건대 여리꾼의 지식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을 터인데 파자를 통해 하나에서 열까지 숫자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 두뇌와 재간이 뛰어 났음을 알 수 있다.

상인과 여리꾼만이 아는 파자 암호를 주고 받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여리꾼 몫을 치르고 물건을 사야했으니 요즘 말로 하면 소비자 기만이면서 불공정 거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닌가. 당시 소비자들은 여리꾼이 농간 부리는 줄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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