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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퇴고(堆敲)

이창식 주필

시문(詩文)을 지울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일을 퇴고라고 한다. 시문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면 고치고, 더하기를 하게 되는데 이 때의 퇴고야말로 글 쓰는 이로서는 가장 긴장되는 순간일 것이다. 퇴고란 말이 생긴 데는 일화가 있다.

 

나귀 등에 앉은 사나이가 무언가를 혼자 중얼거리며 묘한 손짓까지 하며 길을 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데도 사나이는 정신없이 나귀가 가는 데로 가고 있었다. 이 사나이 이름은 가도(價島)였다. 그는 나귀를 타고 가면서 시 한수를 생각해 내었던 것이다. 시는 이응의 ‘유거(幽居)에 제함’이었다.

 

“한가한 집이라 이웃이 드물고/ 풀섶길은 동산으로 드네./ 새는 연못 가 나무에 잠들었는데...” 여기까지는 술술 읊었는데 뒤에 이어지는 “중은 달 아래서 문을” ‘두들기네(敲)’로 할까 아니면 ‘미네(推)’로 할까 망설이게 되었다. 두들기느냐, 미느냐를 결정하지 못한 가도는 두 글자를 입으로 외어도 보고, 실제로 두들기는 시늉과 미는 시늉을 해보기도 하였다.

 

가도로서는 무아지경에 가까운 사색이었지만 남이 보기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정신이 시에 팔린 가도는 앞에서 오는 일행을 보지 못하고 그만 고관 대작의 행차로 보이는 행렬 속에 끼어들고 말았다. “무례한 놈, 썩 비켜서지 못할까. 경윤(京尹·한성판윤의 별칭) 한퇴지님을 모르는가.” 부하들은 가도를 끌어내려 한퇴지 앞에 무릎을 꿀렸다.

 

가도는 시구를 생각하다 그만 실수를 했다며 사과했다. 한퇴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그건 ‘두드리네’로 하는 것이 좋을 걸세.”라고 말했다. 이 일로 해서 두 사람은 절친한 시우(詩友)가 되었고, 밀퇴(推)와 두들길고(敲)를 합쳐 퇴고란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시, 시조, 소설, 수필, 동시, 동화, 희곡, 평론 등 문인 뿐아니라 논설이나 논문을 쓰는 논객과 학자들도 창작 또는 저술의 노고 못지 않게 퇴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퇴고야말로 창작과 저술의 종착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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