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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교하 천도구상

이창식 주필

정조가 그의 18년(1794)에 착공한 수원 화성을 1년 반만에 축성을 끝냈을 때 수원 천도설이 나돌았다. 정조 사후 천도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정조의 특별한 수원 애착 등을 감안하면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 것이 역사 학자들의 사견이다.

 

그런데 이보다 184년 전인 광해군 4년(1612)에는 교하(경기도 파주 금천역 부근)로 도읍을 옮기려는 천도 구상이 있었다. 광해군은 그의 5년(1613) 1월 3일 “예로부터 왕들은 성읍을 따로 건설해 예기치 않은 일을 대비했으니, 도읍을 옮기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하는 강화를 마주하고 있고 형세가 아주 기이하다. 독성 산성(화성시 소재)의 예에 따라 성을 쌓고 궁을 짓고는 때때로 순행하고 싶다.

 

대신과 해조 당상은 헌관.언관.지관과 함께 날을 택해 가서 살피고 형세를 그려오라.”고 비변사에게 명령했다. 때마침 임진왜란(1592· 선조 25)으로 불에 탄 창덕궁이 재건돼 거처를 옮겨야 했는 데도 광해군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광해군은 교하는 임진강과 너른 평야가 있어 물과 식량 조달이 쉬우며 서울보다 외침에 대비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료들은 모두 반대했다.

 

교하 천도를 제안한 이의신을 엄벌하라는 상소도 빗발쳤다. “이의신은 일개 기술관일 뿐이므로 그 요사스럽고 망령된 것은 변론할 것도 없습니다. (중략) 무릇 교하는 일개 작은 현인데다 포구에 치우쳐 있어 성을 쌓고 부서를 만들기에는 결코 좋은 곳이 아닙니다.” 광해군 5년 2월 23일자 ‘광해군일기’는 위와 같이 적고 있다. 왕은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는 반대에 천도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어찌 멀리 내다보는 계획이 없는가”라고 탄식했지만 중과부족이었다.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통일 한국의 수도로 파주 지역이 적지라고 말하는 이도 없지 않다. 광해군의 교하천도 구상과 정조 때의 수원 천도설은 수포 또는 낭설로 끝났지만 대상 지역이 경기도였다는 점에서 경기도는 주목받는 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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