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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집] 강화 전적지 순례

몽고·서구열강 침략 맞선 광성보·초지진·강화외성 조상들의 우국충정 서린 곳
최후의 1인까지 불사른 호국의 聖地

 


지난 6일(음력 4월24일) 강화군 불은면에 위치한 광성보에서는 1871년 미국의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육전대의 침입에 맞 서 최후의 1인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350명의 조선 수비군의 넋을 달래는 제139주년 광성제가 봉행 됐다.

이번 광성제에서는 당시의 참상을 담은 사진 전시와 지난 2007년 136년만에 10년간 임대형식으로 돌아온 조선의 장군 깃발, 수(帥)자기 게양식도 거행 돼 그 옛날의 조선 수비대의 참상과 우국 충정을 느끼게 했다. 이를 계기로 호국의 성지로 불리는 강화도의 군사요충지와 전적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광성보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어 있다.

초지진

초지진은 광성보에서 2㎞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강화외성 최남단에 자리한 진으로 해상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때 구축한 요새다.

고종 3년(1866)에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함대와 공방전이 있었고(병인양요), 고종 8년(1871)에는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와(신미양요) 그리고 1875년에는 일본군함 운양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초지진은 1976년에 복원된 것으로 사적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내부에는 높이 약 4m에 긴 축이 100m 쯤 되는 타원형 돈대에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고, 3개의 포좌와 100여개의 총좌가 있다.

이곳의 석축 한 편과 노송중간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초지진 내에는 당시 일본함대에 포격을 가했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이 대포는 길이 2.32m 입지름 40㎝의 거포로 일정 때 일본 모 고관이 뜯어다 자기 별장에 기둥 밑받침으로 쓴 것을 광복 직후 수도경찰청장을 지냈던 장택상씨가 되찾아서 현관 기둥으로 보관하다가 그의 아들이 초지진 복원소식을 듣고 기증해서 오늘까지 남게 된 유서 깊은 유물이다.

갑곶돈대

갑곶돈대는 구강화대교 입구에 위치해 있는데 돈대 하부는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돈대 설치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갑곶나루가 위치하고 있어서 김포의 문수산성과 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남쪽으로는 강화역사관이 위치하고 있고, 국민의 국방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되었으며 숙종 5년 (1679)에 축조 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7일 병인양요시 프랑스 극동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산성, 문수산성 등을 점령하였고 동년 10월13일 프랑스군은 삼랑성(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해 패주 하였다.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 강화동종을 가져가려 하였으나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성내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등을 약탈하고 조선궁전 건물은 불 질렀다. 갑곶돈대 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송해면 숭뢰리, 대산리·월곶리·옥림리·용정리·갑곶리, 선원면 신정리·지산리·연리, 불은면 고능리·오두리·넙성리·신현리, 길상면 초지리 등 1읍 4면 14리를 종단하고 있다.

강화외성은 북쪽으로는 적북돈(대산리 산1번지)에서부터 염하 해안가를 따라 휴암돈·월곶돈·제승돈·염주돈·갑곶돈·가리산돈·좌강돈·용당돈·화도돈·오두돈·광성돈·용두돈·손돌목돈·덕진돈을 경유하여 초지돈(길상면 초지리 624번지)까지 축조된 성으로서 둘레는 23만 225m이며, 수문은 21개이다.

대몽항쟁기에 고려는 강화로 천도하여 몽골에 저항하였다. 강화에 신도시를 건설하여 국가를 운영하였고, 이를 위해 내성·중성·외성 등을 축조하여 이중 삼중의 외침 방어시설을 형성하였다. 이 3성 중에서 내성에 대한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중성과 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고려 조정은 강화로 천도한 이후 궁궐을 신축할 때 내성을 축조하고, 이 궁궐을 보존하고 몽골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외성을 쌓았으며, 이후 중성을 쌓아 내외 방어시설을 보완하였다.

평화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는 2006년 말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북방지역 임야에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타 지역에선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 생태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비교할 수 있도록 준공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시설내역으로는 지하층과 4층은 군부대 전용시설이며, 1층에는 강화특산품과 북한의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토산품 판매장과 식당, 관리사무실, 게스트 룸이, 2층에는 고성능 망원경과 전쟁의 참상과 흔적을 볼 수 있는 강화의 국방체험과 북한의 도발, 남·북한의 군사력 비교, 통일정책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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