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실력보다 커넥션이 중요한 사회의 공고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모대학의 모교수에게 강의를 주실 수 있는지 타진하는 손편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 답신이 와서 나는 그 교수를 만나러 학교 연구실로 찾아갔다. 모교수는 내가 전공한 여론과 여론조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면서 여러 질문을 하셨다.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론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그 개념에 입각해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한국이 여론조사로 공천을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여론조사를 공천에 사용한 민주당의 2002년 대선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도 설명 드렸다. 여론조사란 오차범위가 존재하고 그 오차범위 안에 있는 후보들은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인데 0.01%라도 앞선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룰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한국 사람들 너무 겁이 없다”라는 말까지 드렸다. 그러자 그 교수는 웃으면서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방법이 없어서라고? 난 이 말에 동의
파란 방을 가진 랑부이예 호텔 전편에서 이야기했듯이 프랑스 문학 살롱의 기원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앙리 4세 통치가 끝날 무렵 궁정의 관습이 다소 천박해지자 파리의 귀족 여성들은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기로 결심하고 자택에 사교모임을 열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살롱은 랑부이예(Rambouillet) 부인이 운영한 파란 방이었다. 파란 방은 벽을 비롯한 방 안의 분위기가 파랑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당시는 벽이 대부분 빨간색이나 황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랑부이예 부인은 그런 색을 탈피하고 다른 색을 칠해 분위기를 독특하게 하였다. 랑부이예 부인의 원래 이름은 카트린 드 비본(Catherine de Vivonne)으로 158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스페인과 프랑스 주재 이탈리아 대사였고 어머니는 귀족의 후예였다. 개성이 강한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하였다. 그녀의 집에는 아버지를 찾는 문인들이 자주 모였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머니는 이 모임에 딸이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렇게 그녀는 대화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예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고 역사를 좋아했던 그녀는
새로운 기술로 등장한 인공지능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기계의 행동은 실제 우리의 행동과 비교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의 일이다. 1950년 수학자 앨런 튜링은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기계에 지능을 부여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게 바로 ‘튜링 테스트’ 개념이다. 그는 기계가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완벽하게 파악했다. 즉, 어떤 사람이 인간과 대화 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계와 대화 하고 있는지 구별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이즈음 워렌 위버는 기계가 자동으로 텍스트를 번역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인공지능에 의한 번역의 역사를 예고했다. 그로부터 단 5년 만인 1956년, 인공지능은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앞 다퉈 인공지능 연구에 들어갔다. 기술 혁명은 점점 더 가속화됐고 많은 전문가는 인공지능이 2000년대에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혁명이 그리
자동차가 자율 주행하고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 이는 오랫동안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현실이 되어 우리 생활 속으로 훅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 오픈AI는 인간처럼 추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쳇GPT-5를 공개했다. 이는 기계가 더 이상 프로그래밍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AI는 우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간단히 ‘Yes’, ‘No’로 답할 수 없지만 필자는 과감히 ‘No’라고 말하고 싶다. 기술이 제 아무리 정교해진들 우리 인간 경험의 미묘한 뉘앙스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있다. 최근 데이트 앱의 전 세계 사용인구가 16%나 감소했다. 이 현상은 스페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왜 그러할까? 이 나라에 사는 싱글들은 ‘메르카도나(Mercadona) 플러팅’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카도나 플러팅’이란 오후 7~8시에 대형마켓 체인인 메르카도나로 쇼핑을 떠나 카트에 파인애플을 담음으로써 “나는 진지한 만남을 원해요”라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전통적 관행이다.
세계 제1의 박물관 파리 루브르. 매년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9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서울시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이 많은 사람 중 80%가 외국인 관광객이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조콩드(Joconde)’다. 조콩드는 ‘모나리자’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연간 700만 명이 이 그림을 보고 간다니 참으로 놀랍다. 세계인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 역사가 230년이 넘는다. 장구한 역사가 부럽지만 심각한 노후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 낙후된 기술 장비는 온도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귀중한 작품들을 위협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루브르 박물관을 개보수할 방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유리 피라미드의 혼잡을 완화하기 위해 박물관 동쪽에 새로운 대형 문을 만들고 연간 방문객 수를 1,200만 명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현재 피라미드 문은 연간 4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도록 디자인 돼 굉장히 비좁다. 또한 박물관의 대표 작품인 모나리자가 독립적으로 접근 가능한 ‘특별구역’을 설치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어 주변 지역의 관람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보
살롱이란? 한국에서 ‘살롱’이란 단어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풍기지 않는다. 아마도 룸살롱이 연상돼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살롱은 음성적 의미보다 양성적 의미가 크다. ‘살롱’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살롱(Salon)은 프랑스어로 응접실이나 서재처럼 방보다는 넓고 큰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폐쇄적 이미지보다 개방적 이미지가 더 많다. 17, 18세기 파리의 부유하고 저명한, 그리고 영향력 있는 여성들은 자택의 응접실이나 서재, 때로는 넓은 안방에서 사회적, 지적 모임인 ‘문학 살롱’을 열었다. 살롱은 예술, 문학, 철학, 음악, 정치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사교 모임으로, 전형적인 프랑스 문화 행사였다. 이는 수도 파리와 관련이 깊었고 넓은 인맥을 가진 부유한 여성들이 주최하는 경우가 많았다. 살롱에 모여든 손님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민주적이고 국제적이며 관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토론을 진행했다. 따라서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관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또한 새롭고 때로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계몽주의적 사고를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점차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지난주 9일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도널드 트럼프 등 굴지의 정치인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가난한 땅콩 농부이자 인도주의자, 전 해군 중위로 캐나다의 핵 재앙을 막고 미국 최고 권좌에 올랐던 카터는 이제 이 세상을 영원히 등졌다. 타임지는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미국 최고의 전직 대통령’으로 카터를 평가했다. 국제 분쟁의 핵심 중재자이자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의 수호자인 카터는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화해시킨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해군에 입대할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가족의 땅콩 사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4남매의 장남이었던 그의 가장 큰 야망은 "농장에 도움이 되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976 미국 대통령이라는 큰 왕관을 쓸 운명이었다.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미국 정치가 소용돌이 칠 때 그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이때 카터는 조지아 주 상원의원을 지냈지만 미국 정계에는 거의 무명이었다. 그런 그가 거물급 정치인 제럴드 포드를 100만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 300년 후에 만든 기념일 크리스마스는 진정 아기 예수의 탄생일일까? 그 누구도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을 알지 못한다.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일이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크리스마스가 최초로 기념된 건 서기 336년경 이탈리아 로마에서였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축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기독교 교회는 로마의 농신제 사투르날리아, 게르만의 죽은 자의 숭배, 켈트족의 동지 의식을 대체하기 위해 축제 달력을 도입했다. 기독교는 예수를 ‘세상의 빛’으로 여겼기 때문에 동지 및 태양의 부활과 예수의 연관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빛과 그리스도의 탄생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단어 자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켈트어에서 유래한 노이오(새로움)와 헬(태양)의 합성어로 보기도 하고 라틴어 나탈리스(탄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12월 25일은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자리매김을 한 것은 중세 유럽에서였다. 며칠 동안 축하 행사가 지속되었으며 특별한 미사, 행렬 및 잔치가 벌어졌다.
연말연시. 소외된 사람들이 가장 춥고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이다. 그들이 품위 있고 유쾌한 한때를 보내도록 특별한 손길이 필요하다.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 있다. 아르망 마르키제(Armand Marquiset)다. 이 프랑스인은 20세기 사회사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대함을 동원해 크리스마스시즌에 노인들이나 취약 계층이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가난한 이들의 작은 형제회(Petits Frères des Pauvres)를 설립했다. 이 ‘작은 형제회’는 크리스마스이브 연대 행사를 조직할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을 받아 연중 내내 노인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꾸준한 명성을 쌓아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활발히 진행된 홍보 캠페인은 당시 프랑스의 아파트와 주택, 도시와 시골의 호스피스에 숨어 있는 소리 없는 고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마르키제는 수도원을 자주 방문하는 신비주의자로 예술을 즐기는 귀족이었다. 이런 그가 소외계층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남작 부인이었던 그의 할머니는 1차 세계대전에서 남편과 외아들을 잃었다. 동병상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무일푼이 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상징적인 실루엣을 되찾았다. 2019년 4월 15일, 성당 건물은 끔찍한 화재로 폐허가 됐다. 눈물을 흘리는 파리 시민들과 전 세계의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첨탑이 무너져 천 년 된 지붕 구조의 일부가 사라졌다. 프랑스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수년간의 작업 끝에 노트르담의 지붕과 첨탑은 예전과 똑같이 재건됐다. 기부금으로만 자금을 조달한 이 ‘세기의 프로젝트’에는 약 7억 유로(한화 약 1조 562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또한 250개의 업체와 2,000명의 전문가가 동원됐다. 지난 토요일 노트르담에서는 재개관 기념식이 있었다. 예배와 역사의 장소로 노트르담은 부활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영적, 유산적 역할도 되찾았다. 내부는 미니멀한 전례 가구와 새로운 조명으로 레이아웃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화재 당시 손상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복원되고, 17세기부터 제단에 걸려있던 그리스도 성화도 다시 돌아왔다. 노트르담의 재개관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사로, 정신적, 문화적 쇄신을 상징한다. 65세의 한 신자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신앙, 종교, 유산, 파리의 역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