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남프랑스 사투리에 겁 많고 소심했던 폴 세잔(Paul Cézanne). 놀랍게도 큐비즘(입체파)의 거장이자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됐다. 이런 세잔의 그림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은 예쁜 사과였다. 왜 그랬을까. 세잔에게 사과는 우정과 아량, 인간애의 징표였다. '사과바구니'와 '7개 사과의 정물'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세잔의 사과가 이처럼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중반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부르봉(Bourbon) 중학교. “파리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그 학생은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본 한 학생이 그 전학생을 도와줬다. 그 전학생은 어느 날 사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바구니를 선물 받은 학생은 그 후로 계속 사과가 있는 정물만 그렸다.” 사과를 준 학생은 훗날 프랑스 대문호가 된 에밀 졸라(Emile Zola)이고 사과를 받은 학생은 세잔이다. 이 둘이 주고받은 학창시절의 우정. 이 추억이 세잔 그림의 주요 모티브였다. 세잔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생트-빅트아르(Sainte-Victoire) 산이다. 이 산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대장주다. 하늘까지 솟아올라 훤칠하고 수려하다. 세잔은 이 산을 가장 아끼는 소재로 삼아 15년간 줄곧 그렸다. 세잔은 뼛속까지 프로방스를 사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1년 성공을 위해 파리 루브르로 상경했다. 하지만 프로방스의 피를 거역할 수 없었기에 결국 고향으로 귀환했다. 거기서 석회석의 하얀 생트-빅트아르 산을 열정을 다해 그렸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이 가장 사랑한 도시다. 하지만 유독 애지중지한 곳이 있다. 가르단느(Gardanne)다. 엑상프로방스에서 12킬로 남쪽 지점에 있는 이곳. 지중해가 넘실거리고 금모레 햇빛과 황토색의 붉은 흙이 진풍경이다. 처참하게 실패한 세잔은 이곳 꾸르 포르뱅 27번지에 세 들어 살면서 오뚝이처럼 재기를 꿈꿨다. 이때의 흔적들은 프레르언덕(Colline Des Frères)에 고스란히 남아 세잔 뮤지엄과 세잔 광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가르단느는 이밖에도 세간의 총애를 받는 곳이 많다. 자연경치에 수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자기 가마, 성벽, 거기에 녹지 유산까지. 그리고 생-피에르(Saint-Pierre) 성당의 종루와 아름다운 성 발렌타인 성당, 중세의 풍차들이 있다. 이러한 가르단느의 갖가지 유적들은 외국인과 프랑스인들의 큰 흥미를 끌어 관광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프로방스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중해의 찬란한 햇빛과 라벤다 꽃, 마르세이유의 이국적 풍경과 사람냄새, 풍성한 바다음식. 프로방스로 가려는 이유는 만 가지가 넘는다. 이러한 이유에 세잔과 생트-빅트아르 산을 추가해 꼭 가르단느를 한 번 가보시라. 분명 색다른 프로방스 여행의 맛을 톡톡히 보게 될 것이다.
샤갈전을 보고 왔다. 샤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색체의 마술사’라 불리는 그의 그림 속 화려한 색들이 아프다고 말한다. 1, 2차 대전을 살아낸 유태인의 삶, 부인과의 사별, 병마 등 어두웠던 삶은 꿈과 환상 속으로도 피하게 만들었고 이를 화폭에서 살아나게 했다. 전시회 벽에 쓰인 ‘나는 초현실주의자라는 말이 싫다. 나는 나의 현실만을 그린 것이다’라는 샤갈의 말 역시 그래서 아프다. 샤갈의 말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eda Kahlo/1907-1954)를 떠오르게 했다. 샤갈과 동시대를 살았던 그녀 역시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고통도 무게 잴 수 있다면 샤갈은 프리다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 흘린 피를 찍어 그림을 그렸다고 할 정도로 고통의 극지를 오체투지 했던 프리다.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는 말도 배우기 전 어머니..
부모 중 한쪽이 외국 출신인 학령기(7~18세) 다문화 청소년 중 교내 차별 등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한 해에 5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정책당국이 다문화 정책을 전근대적 ‘동화주의’ 기조에 묶어놓고 일반 학생들의 ‘다문화 감수성’을 키우는데 소홀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구 절벽 공포 속으로 몰려가고 있는 형편에 이는 심각한 문제다. ‘경쟁력 있는 다문화 국가’를 이룩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마저 암담해질 수 있다는 문제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주 배경 학생은 지난해 기준 16만56명으로 전체 학생의 3%를 차지한다. 15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6배나 증가한 수치다. 국내 거주 외국인 비율이 4%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문화·다인종 국가(5% 이상) 진..
중국의 소설가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이 소설은 판금조치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영화로 제작될 수 없다. 한국의 장철수 감독이 영화화한 배경에는 이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은 서사가 굵직하고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이 극적이어서 영화문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중국 인민군 사단장 관사 취사병인 우이왕은 사단장 부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민을 위한 복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사단장이 장기 출장을 떠난 사이 그의 젊은 부인 류롄에게 유혹을 받는다. 우다왕이 거듭 뿌리치자 류롄은 "인민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겠다는 거지?" 물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어서 벗어." 하고 재촉한다. 그는 끝내 무너져 내리고 그녀에게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라는 찬사를 받..
청년 인구 비율(24.09%)이 경기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은 수원시가 지난 22일 ‘수원 청년정책 발전 방향 정책연구 학술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날 발표된 연구결과가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수원시 거주 만 19~39세 청년 622명(남성 248명·여성 374명, 기혼 195명·미혼 427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수원 청년 10명 중 9명이 “사회적 어려움 정도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 정도’를 묻자 응답자의 87%가 ‘심각하다’(‘매우 심각’ 45.5%, ‘약간 심각’ 41.5%)고 답했다. “청년정책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비슷하게 나왔다. 일자리분야에서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물었더니 ‘고용환경 개선’(31.5%), ‘기업 취업연계 프로그램 제공’(30.5%), ‘취업..
1. 박막례 할머니(80세, 가명) 오랜만에 진료실 문을 밀고 들어오시는 박막례 할머니 얼굴이 많이 부었다. 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장복했을 때 나타나는 문 페이즈, 쿠싱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떨어진 아들네 집에 계시면서 너무 아파서 주사 몇 번 맞으셨단다. 그 주사 또 맞으면 콩팥 다 망가진다고, 침으로 살살 달래보자고 말씀드리고 치료실에 뉘어 드렸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 도박 중독이었다. 돈 내놓으란 말에 새끼들하고 먹고 살 것도 없다고 하면 무섭게 때렸다. 얼굴 맞으면 표시나니까 죽자고 얼굴만 가렸다고 한다. 그러면 몽둥이로 등을 치고 배를 쑤시고 온몸을 깨털 듯이 두들겨 팼다며, 징하디 징한 결혼 생활을 회고했다. 생활비를 벌어올 턱이 있나. 다 팔아먹어 땅뙈기 하나 없으니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말 많고 탈 많은 2022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91개국이 7개 종목에 출전하였다. 이는 2021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던 46개 종목의 205개 국가에 비하면 반쪽짜리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정신은 고스란히 유효하기 때문에 세계인의 체육행사로써 인정받고 있는 것이리라. 주지하듯이, 근대올림픽은 1896년 4월 쿠베르탱 남작과 14명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에 의해 서기 393년까지 중단되었던 올림픽은 1500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다. 쿠베르탱과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은 올림픽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공존은 올림픽의 중요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동장군'(冬將軍)이라고까지 높여 부르는 삭풍혹한도 입춘, 우수에 이어 개구리처럼 동면하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 켜는 경칩이 되면 무장해제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꽃들도 제각기 볼록한 가슴을 열어 자부심을 뽐낸다. 모두가 양춘가절(陽春佳節)의 주역으로 생명축제의 들판에 진출하는 것이다. 봄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간이다. 선남선녀들은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산야대지로 뛰어나가 약동하며 그 맹추위의 기나긴 억압을 떨치려 한다. 이 자유는 흡사 해방을 맞은 식민지 민초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선물과 같다. 이때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그 이름은 '꽃샘추위'. 4월에도 마치 한겨울로 되돌아간 듯 맵찬 눈보라가 몰아친다. 나의 군복무 시절, 강원도 화천 대성산에는 5월에도 눈이 내렸다. 꽃샘추위는 우..
우리가 쓰고 있는 주7일 짜리 요일제(曜日制)의 근원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하루를 쉬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편이죠. 거기에다가 땅을 중심으로 해와 달,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다섯 행성이 시간을 관장한다고 여긴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이 결합한 개념이에요. 요일 개념이 없었던 조선 시대에 관청에서는 1일·8일·16일·23일 그리고 연 24회의 절기마다 업무를 보지 않았다지요. 요일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1895년 갑오개혁 때예요. 오랜 기간 계속되던 ‘주6일 근무제’가 ‘주5일제’로 넘어간 게 2003년이었으니까 한 20년 됐네요. 그런데 요즘 20대 대통령 선거 한복판에서 ‘주4일제 근무’가 화두로 떠올랐어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주4.5일제’를 정책으로 꺼내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주4일제’를 공약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선후보들이 한목소리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약속하면서 중소기업계의 10년 숙원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정부도 올 상반기 중 표준계약서 등을 통한 ‘납품단가연동제’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산업계의 고질적인 약육강식(弱肉强食) 구조인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 적폐를 일소함으로써 공생적 거래질서를 확립해 ‘상생 경제’ 혈맥을 뚫어야 할 것이다. 대선에 즈음한 선심성 반짝 꾐수로 끝나지 않도록 국민적 관심을 집중할 때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은 숫자로는 전체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있고, 종사자 기준으로는 75% 안팎을 넘나든다. 그러나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각각 529만 원, 259만 원으로서 임금 격차가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차이가 중소기업의 경영난에 깊숙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별 중소기업 대신 중기중앙회가 대기업과 납품대금조정협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상생협력법이 시행되긴 했지만, 대기업과 거래를 끊을 각오가 아니면 감히 조정신청을 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존재하는 한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이를 개선할 방책으로 제시된 ‘납품단가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이와 연동해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법적 장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심상성 정의당 후보는 각각 ‘납품단가연동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동참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경만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계류 중인 대·중기상생협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납품 대금에서 원자재 가격이 차지하는 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위·수탁 기업이 납품 대금의 조정방법을 담은 표준약정서를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또 원자재 기준 가격이 일정 비율 이상 상승할 경우 위탁기업이 추가 비용을 납품 대금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분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원·하청기업이 나눠 분담하게 돼 원자잿값 상승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물론 ‘납품단가연동제’의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기업 간 합의로 이뤄진 사적 계약을 또 다른 법령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연동제 대상 원자재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막연하고 원청기업인 대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돼 산업생태계 자체를 허약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핑계로 이 제도를 가로막기에는 현실이 너무 절박하다. 대기업 편중의 경제정책으로 일관하던 시대에서 상생(相生)의 가치가 더욱 존중되는 시대로 세상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 ‘납품단가연동제’는 예측이 더욱 어려워진 국가 미래에 대비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 정책의 디테일한 부분에 소홀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을 결단해야 할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