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나는 벌레를 싫어한다.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짠 음식을 싫어한다. 나는 열려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나이를 들먹이며 서열을 따지는 사람을 싫어한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때로는 주체하기 어렵듯이 혐오와 증오 역시 의지로 누르거나 피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누군가 토해 놓은 길거리의 오물이나 고장 난 변기 속 배설물을 좋은 마음으로 마주하기는 어렵다. 식민주의자, 독재자, 연쇄살인범을 혐오하는 건 당연하게 여겨진다.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를 선인으로 만들었다가 악인으로 만들기도 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게 한다. 그러나 마음의 영역은 타인이 들여다볼 수 없기에 표현하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혐오’ 자체가 아니라 ‘혐오 표현’을 문제 삼는다. ‘혐오 표현’의 반대는 ‘사랑 표현’이 아니라 ‘혐오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 따지면 혐오 자체가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겉으로 드러난 죄를 찾아내 처벌하기조차 벅차므로 혐오하는 마음은 일단 면죄부를 받는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와 무심한 대답이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나 보다. 메달 반납까지 들먹이며 연일 소셜미디어에서 공격이 이어지자 외신까지 한국의 여성 혐오 정서를 기사화하였다. 여성가족부도 나서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혐오를 뜻하는 그리스어 ‘miseo’와 여성을 뜻하는 ‘Gyne’의 합성어인 ‘misogyny’는 여성 혐오의 의미로 사용된다. 엄밀히 따지면 여성 혐오는 여성을 혐오한다기보다 ‘여자답지 못한 것’을 혐오한다. ‘여자답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우선 외형적으로 헤어스타일, 꾸밈, 의상 등이 익숙한 모습이어야 하며, 성적 매력의 범위 안에서 다소 도발적인 것 정도는 허용된다. 태도에 있어 여자답기 위해서는 배려해야 하고 말투가 부드러워야 하며 나서지 않아야 한다. 짧은 머리, 무심한 어조, 강한 말투는 여자답지 못하기에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람은 바뀌기 어려우므로 안티 페미니스트나 마초가 하루아침에 성 평등주의자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말풍선을 그리는 머릿속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대상을 특정해 비난하고 인신공격하는 혐오 표현만은 멈춰야 한다.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폭력의 영역이고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시민(民)이 주인(主)인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공화국은 공화제로 운영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공화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입법과 집행이 분리된 통치형태가 핵심이다. 즉,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사법부의 분리가 더해지면 삼권분립이 된다. 정리하면 삼권분립을 채택한 국가는 형태상 공화국이다. 그러나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었다는 것만으로 공화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형태 또는 절차상으로는 공화제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공화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복종’이 필요하다. ‘복종’은 공화제가 아닌 독재와 어울리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재와 복종은 공존할 수 없다. 독재국가에서 시민들은 단지 억압되어있을 뿐 권력이 복종하지는..
13개월 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며 남북 및 북미 관계가 중대한 길목에 진입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연락선이 재개되던 지난 27일 6·25 전쟁 정전 68주년을 맞아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했지만, 지난해와 달리 ‘핵 보위국’ ‘핵 억제력’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 등도 북한과의 대화와 소통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냉각기를 이어온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흐름이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자인할 정도로 극심한 식량난에다 코로나 국경봉쇄 조치까지 장기화되면서 내부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해 홍수·태풍에 이어 올해는 1981..
이번에는 꼬꼬마 한의사일 때, 특히나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수많은 중환자들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인턴 시절의 기억의 한 자락을 꺼내볼까 한다. 그 병원은 중풍전문병원으로서 엄격한 관리시스템 덕분인지 항상 전국에서 오는 중풍환자들로 풀 베드(full-bed;입원실이 빈 곳이 없는 상태를 그렇게 불렀다)인 곳이었다. 중증의 중풍환자들은 마비가 심하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항상 침상에 누워있게 된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한 방향으로만 누워있으면 눌려있는면 살이 체중의 무게를 받기에 욕창이 생기기 쉽다. 한마디로 살이 짓물러 상처가 나고 곪아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를 수시간마다 바꾸어주기를 지도하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잘 안되어 욕창이 심한 반신마비의 중증 중풍의 노인환자분이 입원하게 되었다. 꼬리뼈 부근의 엉덩이..
명파 캠핑장에서 송정마을 캠프장까지 20킬로. 길을 떠나기에 앞서 근 10년 만에 동해에 몸을 담가보았다. 민통선 입구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부터 공식적인 출발을 했다. 중간중간 쉬면서 걸었지만, 뜨거운 태양열 아래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어깨에 배낭이 없으니 할만했다. 발바닥이 아파오는 게 심상치가 않다. 두 시간 반을 걷다 보니 어제저녁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던 이상중 목사께서 시무하는 초댁제일교회를 지나가게 되어 쉴 겸하여 연락을 드렸더니 쾌히 허락하시어 잠시나마 에어컨의 찬 바람을 맞으면서 잘 쉬었다. 행복이란 이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오후 중간에 수박화채를 먹으니 절로 기운이 난다. 두세 분이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여 주시니 사실 따지도 보면 그동안 내가 네팔이나 스페인에서 걸었던 순례길에 비하면 거저..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유리로 된 창도 없지요. 앞으로도 뒤로도 열고 나올 문이 없어요. 문도 창도 없는 동그라미 속에 당신이 있어요. 저는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렇게 사는 것도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사는 옹기 속은 어떤 세상인가요. 얕기만 한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애써 부릅떠도 볼 수 없어요. 당신은 속에 있고 저는 밖에 있어요. 무릎에 턱을 고이고 쪼그려 앉으셨나요. 옹기 속 동그란 세상에도 환한 달빛이 드리우나요. 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어 봐도 어둠뿐이니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메주 아홉 덩이를 넣고 소금물을 부은 날부터였지요.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말이 없지만, 어둠이 두껍게 내린 밤이면 제 귀에 들..
2022년 3월 9일은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다. 225일 남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5000만 씨알들과 8000만 민족 전체의 삶과 내용, 낱낱의 개인들과 공동체의 안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소위 G8의 일원이 됨으로써, 지구촌 전반에도 비중 높은 인물이 된다. 과연 누가 될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장부에 이름 올리고 뛰는 이들 대부분 마치 '전국상인연합회'의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듯하다. 하기야, 당선만 되면 100만 명의 공무원들이 하던 일 그대로 하고, '여의도'는 변함없이 잘 굴러갈 텐데 무슨 문젠가? 취임하면 가장 먼저 공약들을 손본다. 캠페인 기간에 마구 던졌던 '뻥카'들은 섞어찌개 식으로 합치거나 과감히 폐기하면 되는 것. 야당이 따지고 들면, 겸손 떨며 사과하면 된다. '허니문 기간' 타령하는 기특한 기레기가 반드시 나오니 걱정할..
어릴 때도 방학은 무척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으니까 손을 꼽아가며 방학을 기다렸다.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방학 숙제가 정말 많았다. 매일 일기 쓰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몇 편 이상 작성하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던 숙제였다. 고학년이 되자 주제를 정해서 탐구해 오기와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추가되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이 모든 걸 다급하게 해결했다. 다른 건 몰아서 해도 지장이 없었는데 일기만큼은 그게 어려웠다. 일기의 내용을 채우는 건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뛰어다니고 저녁때 TV 봤다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미 지나간 날씨는 거짓말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신문 같은 매..
‘수술실 내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1만 3959명 중 1만 3667명이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무려 국민의 97.9%가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안’에 찬성한 것이다. 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 정책참여 플랫폼 ‘국민생각함’에서 5월 31일부터 6월 13일까지 실시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국민의견 조사 결과다. 아울러 권익위는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 등 4개 기관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에게 같은 내용을 물었다. 그 결과 찬성 답변은 82%였다. 수술실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이유는 ‘의료사고 입증책임 명확화’, ‘대리수술 등 불법행위 감시’가 가장 많았다. 수술실에서의 성추행과 대리수술, 의료사고 등 문제가 빈발하자 경기도는 2019년 경기도 내 공공의료원의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했다. 법안 통과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는 “어린이집 CCTV가 소극 보육을 유발하지 않는 것처럼 수술실 CCTV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대다수 의료진들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고 극소수의 불법 의료나 성추행 등으로 국민을 지켜줄 것”이라며 의료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후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최초 법안 발의 후 6년이나 지났지만 반대의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6월 23일에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1소위 의원들이 ‘수술실 CCTV 설치법’ 관련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 논의를 했으나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시간 끌기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즉시 통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충분히 더 검토해야 한다며 논의를 미뤘다. 민주당 의원들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의무 설치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환자 측 요청이 있으면 촬영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공적 분쟁해결절차에 한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요 내용을 확정해 신속히 입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부작용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의무설치 외의 대안이 필요하다면서, 구체적 설치 장소나 촬영범위, 보안관리절차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이 지사는 “주권자 의사에 반해 특정 집단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일 리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의료기관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제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당도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본보(27일 자 2면)에 따르면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가 수술실 CCTV법(의료법 개정안)은 유령수술이나 의료사고 은폐 등 각종 범죄를 끊기 위한 민생 법안이라면서 8월 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국민의 요구다. 물론 내 일터에 CCTV가 설치된다면 불편하다. 누가 나를 감시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따라서 의사단체나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대안을 조속히 내놓길 바란다. 단, 이를 핑계로 또다시 부지하세월, 시간만 낭비한다면 더 큰 비난을 자초할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개최된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다시 한번 ‘세계최강’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여자 양궁은 단체전 올림픽 9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남자 양궁도 금빛 화살을 쏘았다. 신설 종목인 남녀 혼성 종목에 출전한 여자대표팀 막내 안산과 남자대표팀 17세 고등학생 김제덕은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어 대회 2관왕에 올랐다. 한국 양궁이 놀라운 경기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은 결코 기적이 아니다. 실력 이외의 그 어떤 요소도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선수 선발 절차와 과학적 훈련 시스템이 합작해낸 피땀의 결실일 따름이다. ‘공정 경쟁’만이 경기력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의 찬란한 성과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진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