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은혜를 입고 살아왔다. 책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나는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자유 독서’ 시간을 즐겼다. 때문에 책 속에서 스승과 선배와 성인을 만났다. 철들면서는 봉급의 몇 퍼센트를 떼어서 서점으로 책 사냥 가듯 찾아가 좋은 책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독서량이 불어나면서부터는 책을 엄격히 가려서 읽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고 믿었다. 경전은 소리 내어 읽었고 책을 통해 자신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 ‘기준 잡힌 인생을 만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만나며, 독서와 사색하는 자를 만나라’는 충고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읽고 있는 책이 다 되어 가면 두뇌의 연료가 바닥난 것처럼 불안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는 푸..
2018년 9월 평양 5·1 경기장 문대통령 연설 장면과 지금 한미연합훈련이 끝난 시점에 북한이 도발을 할까 노심초사하는 현 상황을 대비시켜보면서 다람쥐 채 바퀴 돌 듯하는 남북관계, 정말 항구적인 한반도평화체제의 구축, 나아가 남북생활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한 일일까 체념 섞인 생각이 자꾸 떠올라 힘든 세월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고리를 끊고 같은 역사와 전통을 함께한 한민족이 통합되어 세계사를 주도하는 꿈을 버릴 수는 없다. 8개월 남은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상황을 잘 판단하고 바른 선택을 한다면 아직도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너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때 상대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검지 손가락 하나, 그러나 작은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우리는 북한핵문제가 해결되지 못..
추석을 앞두고 물가가 비상이다.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7월 기준 한국의 식품 물가 상승률은 6.4%로 OECD 38개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 OECD 평균치(3.1%)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통계청의 8월 지표를 보면 농축수산물과 공업제품, 개인서비스 가격이 모두 올랐다. 5개월째 2%대 상승률을 보여온 물가는 최근엔 두 달 연속 2.6%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소비자물가가 다섯 달째 2%를 넘은 건 2017년 5월 이후 4년 만이다. 특히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7.8%나 올랐다. 전·월세 등 집세도 4년 만에 가장 큰 오름폭(1.6%)을 보였다. 정부는 그동안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현 추세로 간다면 2012년(2.2%)이후 9년 만에 ‘연 2%대 고물가 시대’를 맞게 된다. 물가 상승에 대한 경계는 올초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무..
과거 활발히 활동하고 인기가 있던 뮤지션의 소식을 종종 접한다. 이제는 TV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같은 대안 미디어들이 생산해내는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다양한 채널에서 자신이 원하는 뮤지션의 모습을 능동적으로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시간을 지나온 그들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는 엊그제 본 것 같이 한결같은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전성기의 폼에서 많이 벗어났거나, 전혀 다른 음악 스타일로 나타난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물리적인 퍼포먼스보다 오랜 기간 음악의 인생을 걸었던 그 모습에 대한 존경이 우선하기에, 응원의 자세로 음악을 듣곤 한다. 그래서 젊음의 에너지는 덜해도 오히려 깊어지고 넓어진 표현력으로 음악을 주무르는 모습에 감동할 때가 많고, 또 그렇게 그들의 새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명상으로 탈모를 치료한 남자가 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더 된다. 늙어가던 피부가 아이처럼 희고 뽀얗게 변하고 배도 들어갔다.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 주변에서 일어난 ‘세상에 이런 일이’의 주인공은 전직 언론사 기자였던 60대 중반의 남성. 매일 새벽 5시에 기상, 한 시간 넘는 명상을 십 년 넘게 하면서 생긴 변화란다. 남편의 변화를 보고 신기해하다 명상을 따라 하기 시작한 부인이 고민에 빠졌다. 남편처럼 ‘긴 침묵 가운데 오래 앉아있는 짓을 좀 쑤셔서 못해먹겠다’는 이야기다. 그녀에게 음악명상을 권했다. 명상은 좌선 상태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걷기명상, 차명상, 춤명상도 있다. 음악명상은 10여 년 전의 놀라운 체험 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는 내 식 명상법이다. 장소는 서울 구로에 소재한 불교대학이었는데 일반인들을 대상..
"이 선생님, 청와대와 민주당에 들어가 있는 운동권을 저는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 "어떤 낡은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괴물들 같아요." "글쎄요, 동의하기 어려운데요. 팩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정치권에 들어간 운동권 출신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긴 하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를 하고 있고,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정치권에 있는 운동권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 쉽지 않거든요." "김 선생, 나는 정치권 운동권들이 차라리 이데올로기적이었으면 해요." "......" "정치권 운동권들은 대부분 기존 철학을 버렸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시대에 맞는 어떤 새로운 철학을 받아들인 것 같지도 않아요. 상당수는 타락했다고 봐요. 잘못된 정치 문화에 깊이 빠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인..
사람들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타인의 잘못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그 반대 또한 진리이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의심할 여지없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만약 어떤 일이 선을 배반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면, 그것은 진짜 선한 일이 아니거나 아직 그 일을 할 시기가 되지 않은 것이다. 신은 양심과 이성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의 불을 켜주고 있다. 폭력으로는 믿음의 불을 켤 수 없다. 폭력과 위협이 가져다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공포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 방황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나무라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 미망으로 인해 이미 충분히 불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을 때는 그들을 나무라도 상관없지만, 오히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에게 반발심을 일으켜 그들을 더욱 돌아서게 만든다. (파스칼)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일치의 기초를 탐구해야 하지 않을까? (마르티노) 신앙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수단으로 신앙을 도입하고 그것을 보호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을 강요하면 오히려 증오를 불러일으키듯, 신앙을 강요하면 오히려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사람들이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성직자의 편협한 마음과 권력욕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위버튼)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광신자와 마찬가지로 편협하다. (뒤클로) 진정한 신앙은 강요에 의한 외면적 지지도, 보석으로 장식하는 외면적 지지도 모두 필요치 않다. 또 특별히 포교 활동을 할 필요도 없다 신에게는 시간이 많아 천년도 하루와 같다. 자신의 신앙을 강요에 의해, 또는 외면을 장엄하게 장식함으로써 지탱하려는 사람, 또 그것을 서둘러 포교하려는 사람은 거의 또는 완전히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제야말로 루터가 추구했던 참된 교회개혁을 해야 해. ‘새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셨는데, 개인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 육신으로 인해서, 이성으로 인해서, 본능으로 인해서 사는 것이 아니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생명으로 고쳐나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 돼. (함석헌) /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늘 바닥이었다. 앞발 두 개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우리의 신세는 바닥이 되었다. 인간들의 직립은 바닥을 딛는 우리의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어서, 곧추 세운 머리의 하중은 몸뚱이의 것이 되지 못하고 우리 것이 되었다. 머리가 강요한 아픔의 깊이를 목도 허리도 다리도 받아내지 않았다. 받아내지 않고 흘려보낸 것들은 뼈와 살과 피를 따라 밑으로 흘러 땅에 고였다. 땅에 고인 것들을 딛고 서는 건 늘 우리 몫이다. 우리는 바닥에 산다. 늘 바닥일 수밖에 없음은 부당한 것이었으나 우리는 받아들였다. 우리의 받아들임으로,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몸뚱이가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바보 같은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후회한다고 해서, 후회를 돌이킬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우리에겐 없다. 선택권은 늘 머리 꼭대기에 있고 우리에..
부산대학교는 8월 24일 조민 씨의 2015년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동양대 표창장과 입학서류 기재 경력이 주요 합격 요인이 아니라면서도 “당시 신입생 모집요강 중 지원자 유의사항에 제출 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합격 처리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렌트(Hannah Arendt)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악의 평범성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아이히만은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유대인 학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던 것이다. 교육부의 지시에 순응해 거리낌 없이 행동에 옮긴 부산대 보직교수들은 아이히만과 다를까? 부산대는 당초 대법원 판결 이후 입학전형 공정관리위원회를 소집하려고 했으나 교육부..
9월 1일부터 그간 민영제로 운영하던 광역버스 12개 노선이 경기도 공공버스로 전환됐다, 경기도 공공버스로 전환돼 운행을 개시하는 노선은 ▲광명시 1개 ▲용인시 7개 ▲파주시 1개 ▲평택시 1개 ▲화성시 2개 등 총 5개 시군 12개 노선 110대다. 이로써 도내 공공버스는 220개 노선 2070대로 늘어났다. 도내 광역버스의 90%가 경기도 공공버스로 운행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1일부터 직행좌석형 시내버스 70개 노선이 ‘경기도 공공버스’로 전환됐다. 이들 노선은 이전까지 경기도와 경기교통공사가 ‘수입금공동관리형 준공영제’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영구면허로 민간업체가 노선권을 소유하고 있었고 서비스 저하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공공성이 한층 더 강화된 노선 입찰형 준공영제 방식의 경기도 공공버스로 된 것이다. 경기도 공공버스는 공공이 노선을 소유하고 입찰경쟁으로 민간 사업자에게 일정기간 운영권을 위탁하는 ‘노선입찰제’ 방식으로, 도와 시·군이 서비스를 책임진다. 영구면허가 아닌 한정면허제다. 면허기간은 5년이며, 서비스평가 결과에 따라 1회에 한해 4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도는 대중교통의 공공성과 재정지원 투명성을 강화한 ‘선진국형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도 경기도 공공버스를 국가 준공영제 표준 모델로 선택한 바 있다. 경기공공버스는 도가 ‘대중교통이 자가용보다 더 편리한 경기도’를 만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역점사업이다. 경기도가 공공버스를 운영한 후 운영비용이 절감되고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며칠 전 아침 MBC뉴스투데이는 “버스업체들이 운영권을 따내려다 보니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관리비를 아끼는 등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고 보도하면서 “쉬는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졸음이 오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졸음운전이 사라졌다”는 버스 운전기사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버스기사들의 운전습관이 변화되면서 유류비도 절감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입찰을 통한 업체 선정 평가 기준에 승객들의 민원 내용과, 기사들의 휴식권 보장 여부를 반영, 서비스가 좋아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버스회사가 서비스를 개발하고 경쟁하는 효과도 있고 공공성이나 공익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라고 밝힌다. 경기도 공공버스 전환 이후 경기도민기자단으로 활동하는 한 시민은 “버스를 기다린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배차 간격이 아주 짧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24시간 내내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편리한 버스”라고 경기공공버스를 칭찬했다. 그동안 광역버스는 만성적자 상태였다. 많은 승객들이 이용한다지만 주로 출퇴근 시간에 몰렸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승객마저 20% 정도 감소했단다. 수원역~사당역을 운행하는 7770번 버스 노선은 이용객이 가장 많은데 올 1분기 2억 4000만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공버스 전환 이후 적자로 인한 운행 중단이나 노선 변경 등 운영 불안은 덜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경기도의 재정지출이 더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확대에 찬성하는 이유는 경기도공공버스가 절대로 필요한 서민의 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