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보면서 아나운서들이 제일 짜증이 날 때는 장본인과 주인공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 쓰거나 아예 장본인이라는 표현밖에 모르는 것 같을 때이다. 장본인은 여러 (나쁜) 일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다. 주인공은 여러 (좋은) 일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이 모든 일을 그르친 그 장본인이냐’가 맞는 말이고, ‘바로 이 분이 이번 대형 화재에서 어린 아이들을 구한 그 주인공 영웅이십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국영/공영 아나운서조차 이걸 구분 못하고 ‘이번에 올림픽 경기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식의 표현을 쓴다.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내보내고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 대통령이 암살된 얘기를 하는 등의 행태는 위와 같은 무식의 소치인가. 그 지경을 넘어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에 문제가 있다. ‘라떼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혹은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걔가 그래도 애는 착해. 그러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 사람들 앞에서 너무 뭐라 그러고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등등의 말씀이셨다.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봐야 한다는 얘기들이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주라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는 가르침이셨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설령 체르노빌이 떠오르더라도 방송 같은 데에서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때는 우크라이나의 번성한 수도 키예프의 이미지를 찾든지, 우크라이나 특유의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보여줬어야 옳았다. 할리우드 배우 리브 슈라이버가 연출을 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같은 영화에 그런 이미지가 나온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런 의미의 우선순위가 아예 없다.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전원 같은 건 꿈에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들 제정(帝政)의 역사 속 선조들이 대부분 우크라이나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류리크 공국은 12세기 모스크바대 공국의 뿌리였다.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로마노프 가문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래서 ‘푸틴=러시아’는 정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과거의 우크라이나가 매우 번성한 대국이었음을 보여준다. 하긴, 그런 거 ‘따위’ 전혀 몰라도 된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캐릭터 ‘블랙 위도우’의 여주인공 이름이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것만이라도 생각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거기서 살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적 호기심’이 일었다면 저런 ‘방송 사고’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도 결국 우크라이나 출신이니까. 다 교육의 탓이다. 공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그저 사지선다(四枝選多)의 답만 고르게 하고 점수를 1점이라도 남보다 더 따게 하는 것만 옳다, 옳다 한 기성세대, 부모, 선생의 탓이다. 그러니 조국의 딸 조민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음에도 경쟁심리와 보복심리로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하게 한 것이다. 증언을 한 아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 데에는 그 젊은이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 분위기에서 연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사회 교육의 시스템에 심각한 왜곡이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유력 일간지 신문기자라고 하는 인간들이 사흘을 4흘이라고 쓰고 인도계 이민 2세를 인도계 2민 2세라고 쓰는 것을 더 이상 ‘귀여운’ 실수로 간주해 주면 안 된다. 속된 말로 싸대기를 처맞아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 기자를 손가락질하기보다는 해당 기자의 관리를 맡고 있는 데스크들, 부서 장들을 데려다 곤장을 쳐야 한다. 세상에… 신문사에 데스킹 시스템, 게이트 키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데스크들은 뭐하시고 계신 것인가?낮술 드시고 사우나에서 주무시는 거 아닌가. 그러니 ‘우크라이나=체르노빌 사진’이 나가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교육의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짧고 단순하고 명료한 답을 주되 그 답이라고 하는 게 상황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 있고 진리는 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 단계적인 의식의 발전 방안에 대해 사회는, 학교는, 가정은, 자체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생들 스스로, 혹은 부모들 스스로, 답을 딱 하나만 갖고 산다. 오로지 이 사회에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답. 그 밑에서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다. 일베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선생이 유식해져야 한다. 세상의 답과 진리가 늘 상대적이고 진실의 X파일은 저 산너머에 있다는 것을 체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 키워진 아이들이 아시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하철 안에서 얼굴에 침을 뱉고 낄낄대게 된다. 잘못 키워진 애들이 룸펜 프롤레타리아들과 휩쓸려 다니며 폭력을 일삼는다. 잘못 키워진 아이들이 유겐트가 돼서 나치 친위대가 된다. 그런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숭배하고 그의 악행을 돕는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세상의 파시즘이 부활한다. 자 어떤가, 이제 슬슬 소름이 돋는가?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과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던 시절(2001년), 남북장관급 회담에 참여했던 북한 통전부(노동당 대남사업 기구) 인사와의 대화에서 내가 깨달았던 한 가지 사실은 내 인식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 서울 도착 첫날밤, 북에서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를 대하다 수십 개 채널의 남한 TV를 대하면서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북측 R선생은 다음 날 아침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나에게 말을 건다. 주제가 은행털이 강도 얘기인 오락영화를 보았는가본데, “야! 긴데, 혼자 다 갖겠다고 끝내는 친구도 죽이누만! 사람 욕심이란 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가 보다. 비록 영화지만 말로만 듣던 자본주의 현실을 직접 대하다 보니 앞에 있는 남조선 사람인 나도 인간으로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봉사, 친구와의 의..
생명은 에너지와 물질의 변환이다. 태양의 불꽃이 광합성 생물의 녹색 불꽃이 되는 것이다. 녹색 불꽃은 꽃식물의 적색, 홍색, 황색, 자주색 등 성적인 불꽃, 즉 다른 생물계를 설득하는 전문가가 된다. 화석화된 녹색 불꽃은 태양의 경제체제 안에 있는 인간의 방에 축적된다. 생명은 끊임없이 열을 소산 하는 화학작용이다. 그리고 생명은 기억이다. 과거의 화학작용을 반복하면서 행동하는 기억이다. 그리고 생명은 자기 초월적이다. 태양으로부터 온 에너지를 저장하고 재분배하면서 생명은 최고 수준의 활동력과 복잡성을 과시한다. 생명이 우주의 큰 영역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어떤 생명으로 만들지 누가 추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포유류 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 역시 200만 년을 더 견뎌낼 것이다. 신생대 포유류 종의 평균 존속 기간이 300만 년 보다 짧았다. 모든 종은 사라진다. 멸종하거나 둘 이상의 후손 종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캄브리아기부터 지금껏 살아 있는 동물 종은 없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오늘날 침팬지와 사람만큼 서로 다른 자손 종 둘로 나뉠지도 모른다. 종의 분리가 기술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내구력 있는 영구적인 로봇 껍질 속으로 신경계가 통합된 인간의 후손은 행성을 오가는 우주선에 달라붙어 망원경 눈으로 별에서 방출되는 엑스선을 관찰할지도 모른다. 인간에서 진화하는 종들 중 일부는(유전자 조작으로) 병 인자에서 자유로워지고 정상 기능을 훨씬 능가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종은 지구보다 강하거나 약한 생성에 거주하면서 뼈의 질량과 호흡계가 변하고 내장 기관이 재배치되어 몸무게가 극적으로 늘거나 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의 계승자들은 과거의 흔적, 즉 우리의 현재를 간직할 것이다. 어떤 생물학 신무기가 여러분의 모든 동물세포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다 해도 “여러분”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상상해보라. 자기 초월적인 생명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사람은 동물이고 미생물이고 화학 물질이다. 지구의 생명은 광합성에 기초를 두는 아주 복잡한 화학 시스템이며, 개체들이 여러 단계에 걸쳐 프랙털 구조로 조직을 이룬다. 우리는 자연을 넘어설 수 없다. 자연 자체가 초월하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김영 역. 리수. 2021. 294-297쪽
요사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과정을 보면, 한 가지 특징적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지향성”이다. 미래를 말해야 하는 여당에서 “과거 지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과거의 잘못”만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 중에도 분명 계승할 것이 많음에도, 잘못만을 들춰내는 과거 지향성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현 정권 들어서 가장 먼저 역점을 둔 사안은 바로 적폐 청산이다. 적폐 청산이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로잡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단 몇 년간 청산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그래서, 역사에 관한 문제는 “청산”이라는 단어 대신 “극..
고리타분한 단어 같지만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도 다르고 답이 없는 관계라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정’과 ‘의리’ 하나로 버티며 위기를 넘긴다. 흔히들 이런 경우 “전우애로 살아간다”고도한다. 여염집의 장삼이사들도 이럴진대 만인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속된 말로 “의리고 나발이고”식으로 처신하는 것을 보면 처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의 의리는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자기 신념과 역사에 대한 책임일진대 말이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조국 전 장관 때문에 선거에 졌다며 검찰개혁을 주도하다 멸문지화의 처지에 몰린 장수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작 자신들은 조국사태(?)이후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드높아진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는데 말..
50대에 대한 백신 접종이 7월 26일부터 시작되었다. 55살 이상은 8월 14일까지, 54살 이하 예약자는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필자도 50대이기 때문에 8월에는 백신 접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백신 접종 예약을 하기까지에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백신 예약 당일,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백신접종 예약 사이트는 예약 일보 직전에 접속이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30여 분을 기다리다가 13초를 앞두고 접속이 세 번이나 끊어지니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네 번째로 예약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했을 때는 내 앞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늘 하던 저녁 운동까지 미루고 예약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자꾸만 끊어지는 접종 예약 사이트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대..
5차 재난지원금이 국민 88%·소상공인에게 다음달부터 순차적으로 지급된다. 코로나 사태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어 더욱 힘든 시기다. 중소기업 수출이 최근 8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내며 올 상반기 역대 최고 실적(21.5%)을 거뒀다. 특히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두 자릿수 증가율(13.7%)을 기록했다. 품목도 의약품을 비롯해 반도체 화장품 플라스틱 자동차부품 등 전 분야에 걸쳐, 그리고 국가별로도 미국, 중국을 넘어 독일 러시아 인도 등으로 균형있는 성장세를 보였다. 한류와 관련한 온라인 매출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또 LG전자는 가전 부문에서 상반기 미국 월풀을 크게 제쳤다. 영업이익에서 2017년 이미 세계 1위로 올라선 데 이어 올해는 매출로 명실상부한 정상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에서 미국 국무부는 지난주 기업..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통령 출마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또다시 ‘경기북도 분도론’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경기도 분도론은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 선거철마다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경기북도 설치를 위한 국회 추진단’도 공식 출범했다. 지난 19일 김민철(더불어민주당, 의정부을) 의원과 김성원(국민의힘, 동두천·연천)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진단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여야가 모두 참여했다. 경기북부 지역 의원뿐 아니라 남부지역 의원들도 가세했다. 중진 의원인 김진표·안민석·윤호중·정성호(이상 민주당)·심상정(정의당) 의원이 고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추진위원으로는 김경협·박광온·이원욱·이학영·김철민·김한정·박정·소병훈·송옥주·조응천·강득구·..
광주교도소 특사 동에서 아침 점호 시간이 끝나면 까망이는 내가 열어주는 식구통으로 사뿐히 뛰어올라 밖으로 나갔다. 자유 없는 감옥에서 유일하게 까망이만 자유로운 고양이였다. 까망이가 복도에서 ‘야옹’ 하고 한 번 울면 특사의 죄수들은 일제히 까망이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이려고 갖은 아양을 떨었다. 무엇보다 확실한 유혹은 먹을 것이었다. 멀건 국 멸치는 하급이었고, 일주일에 한번 배식되던 돼지고기 살코기는 고급이었다. 어떤 죄수는 사식으로 들어온 훈제 닭고기로 까망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까망이는 여유롭게 이 방 저 방을 순시하듯이 드나들었다. 까망이를 영접한 죄수들은 어떻게든 까망이와 긴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까망이는 한 곳에 정을 주지 않았고 기특하게도 반드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홀쭉한 배로 출타했던 까망이가..
-할매요, 뭘 그렇게 많이 사 들고 가세요? -누기라? -저 예주목 사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여, 이거? 아~들 줄 끼라. -아들요? -손주들, 그거 뜨리 저번 주에 와써, 저 아바이 어마이 일 다닌다고 나한테 매끼노코 가 뿌리네. -아이고, 참말로 더위에 고생 많으시네요. 키워 놓으면 보람 있을 겁니다. 근데 왜 걸어가세요? -3시 차가 고장 나서 안 들어온다카네. 보람은 무신 노무 보람, 나 죽고 저들만 잘 살만 그기 보람이지. 차 좀 태워 주든지. 마스크 썼응께, 주사도 맞았고... -아, 예, 예, 타세요. -나 알아여? -모르는데요. -그런데 우째 잘 아는 사람처럼 말을 걸어서 아는 사람인 줄 알았네. -할매가 막 아는 사람처럼 대답을 잘하시더만요. 하하하하. -그럼, 저짜 봉지뫼까지만 태워 줘. -아이고 걱정 마세요. 집까지 태워 드릴게요. -까자 좀 샀는데 하나 주까? -아뇨, 아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