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왼손잡이 낫이 없던 탓에 오른 손가락 교대로 피 흘려야 했다 키만 하던 말꼴 망태기 메고 헤매던 들녘에서 발등에 꽂힌 채 뽑히지 않던 낫을 붙잡고 누이와 함께 울던 벌건 대낮이 있었다 여물 썰던 작두날에 문드러진 검지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왼 손가락과 맞대어 보면 한 15도쯤 휘어져 있다 그런 사건들이 하나 둘 슬픔이 되어 쌓인 탓인지 내게는 지금도 한 15도쯤 휘어진 슬픔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 정원도 시집 / ‘귀뚜라미 생포작전’ / 2011 / 푸른사상 이 시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흔히 검지는 이것저것 무언가를 지시하고 가리킬 때 쓰는 손가락이다. 보통 사람과 다른 습성을 지닌 왼손잡이는 늘 위태로움이 따라 다닌다. 지금 세상에도 왼손은 오른 손(옳은 손?)의 반대이며 곁눈질의 상징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가 없던 시절 오른 손 쓰는 사람만을 위한 낫으로 다친 왼손잡이의 상처가 아이러니하게도 오른 손 검지다. 40년전 한 농촌의 소년에게 있을 법한 풍경 같지만 시인이 노래하는 ‘검지이야기’는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가 없음으로 마침내 무언가를 가리키게 되는 오른손 검지에 15도 휜 아픔이 남아있게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 문태준 시집 ‘맨발’ / 2004년 / 창비 숨이 꺽꺽 막혀 숨을 쉬는지 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숨을 쉰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도 고된 일인지 실감한다. 내가 한 번 숨 쉬는 사이 생명 하나가 사라지고 태어난다.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도 한 호흡이고 ‘아버지’의 ‘홍역 같은 삶’도 깊디깊은 한 호흡이다. 하나의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도,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돼 가는 것도……. 지금 이 순간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우주적 시간 속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하면 한 발 뒤로 물러 날 여유가 생긴다. 한 호흡 한 호흡 몸을 의식하면서 깊게 숨을 쉬어본다. /박설희 시인
시인은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 김광규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1994 /문학과 지성사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데 필요한 것이 정치와 경제와 노동과 법과 군대와 공장과 논밭과 관공서와 학문뿐인 나라, 그러니까 문학을 비롯하여 현실적 쓸모와는 거리가 먼 예술의 총칭으로서의 ‘시’가 없는 나라에는 여행가고 싶지 않을 겁니다. 유용과 효율과 질서, 순수라는 낱말들이 포함하고 있는 폭력을 상상하지 못하는, 못하
자꾸자꾸 무너져요. 흔들리며 무너져요 밤새도록 솟아오른 꿈 부끄럽게 무너져요. 중심의 물결은 머물 것은 머물게 하고 떠날 것은 떠나라고 하네요 섬 주위를 맴돌던 바람은 뼛속까지 흔들리고 무너져 흔적 없이 가라앉을 때까지 견디라고 하네요 그럭저럭 견디려고 하는데 아래로부터 자꾸자꾸 무너져요 - 이낙봉 시집 / ‘다시 하얀방’ / 2005년 / 글나무 바다에 떠있는 섬은 오랜 파도를 견디고 남아있는 대지의 한 덩어리이다 밤새 꿈을 꾸고 솟아오르다가 파도에 흔들리고 조금씩 무너지다가 다시 그럭저럭 견디어 내는 그렇게 해서 얻어진 이름이 섬 아니겠는가? 이 혼란스럽고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힘은 그래도 부끄럽게 무너질지언정 다시 밤새 꿈으로 솟아오르는 열정 때문일 것이다. 떠날 것은 떠나게 버려두고 머물 것은 머물게 하는 어쩌면 수도승 같은 처세가 이 세계를 견딜 수 있게도 하겠지만 어쩌랴! 시인의 아래로 아래로 부터 자꾸자꾸 무너져 내린다고 하는 인간적인 고백이야말로 우리의 본 모습이 이닐까?/최기순 시인
새벽은 등으로 터진다 날갯죽지에 고개를 처박은 간절한 능선, 등은 목보다 길다 새벽달이 올라앉은 서늘한 횃대 누가, 나를 양푼처럼 끌어안고 쌀을 안친다 오래오래 밥이 될 깜깜한 능선 목젖도 아궁이도 많이 부었다 십 리 밖까지 등이 휘도록 싸락눈 털네어내며 닭이 운다 - 심창만 /2003년 봄호/ 문학동네 긴 긴 밤을 지새며오는 새벽은 긴장감이 가득 차 있다. 목 보다 더 긴 닭의 등이 그 과정을 보여준다. 이 긴장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닭 울음이다. 그러나 닭 울음은 그리 쉽게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깊은 겨울을 건너는 인동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이 바탕이 되어 닭 울음이 터져 나온다. 닭 울음이 터지면 시인은 공손한 솥이 된다. 밥이 되는 주체보다는 밥을 짓는 솥이 된다. 밥물이 끓어 넘칠 때까지 밥이 뜸 들여질 때까지 불과 쌀의 중간 매개인 솥을 자청한다. 이것은 밥 퍼주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십 리 밖까지 등이 휘도록 울어주는 닭은 시인에게 보내주는 갈채이다. 응원이다. 닭은 새벽의 찬란함을 아침이 희망적임을 깊게 각인 시켜 준다. 나도 볏 붉은 수탁으로 횃대에 올라 개벽이 오도록 홰를 치고 싶다. 이것은 암울한 한 시대를 사정없이 털
우주정거장 스카이랩 귀환 미국의 첫 우주정거장 ‘스카이랩(SKYlab)’이 1979년 오늘,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왔다. 6년 동안 돌던 지구 궤도를 벗어나 지구 귀환길로 들어선 것이다. 스카이랩은 발사 당시 태양전지판 등 부품의 파손에 따른 고장으로 고도가 점점 낮아지다 결국,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대기권으로 진입하게 됐다. 스카이랩은 귀환 도중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와 인도양 상공에서 대기 마찰로 부서졌다. 이 과정에서 큼직한 파편들이 주거지역으로도 떨어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생기지 않았다. 소 한 마리가 파편에 맞아 다쳤다. 스카이랩은 1973년 5월 14일 발사됐다. 1973년과 1974년 사이에 우주인들이 세 번 이 우주정거장을 다녀왔다. 우주인들이 스카이랩에 머무른 171일 동안, 의학과 과학 등 여러 분야의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또 18만 장에 이르는 태양 사진을 찍은 결과 태양에서 어둡게 보이는 저밀도 영역인 '코로나의 구멍'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구관측을 통해서 석유와 광석이 매장된 곳도 찾아냈다. 제8회 월드컵 영국서 개막 1966년 오늘, 제8회 월드컵축구대회가 영국에서 개막됐다. 런던에 전시돼 있던 줄리메(Jule
여름내 호박넝쿨 담을 넘더니 옆집 고욤나무 가지에 호박 한 덩이 매달아 놓았다 하늘과 땅 어디에도 기울지 않고 비바람에도 아랑곳없이 허공에 얹혀 흔들며 흔들리며 나아간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짐짓 다시 한번 더 바라보는데 좀체 서두르지 않는다 둥글게 둥글게 힘을 그러모아 하늘은 저렇게 땅을 디딘다 - 황구하 시집 ‘물에 뜬 달’ /2011년/시와에세이 호박 넝쿨과 호박이 한 몸이라는 것은 그 넝쿨이 나아갈 때도 둥글게, 열매로 맺힐 때도 둥글게 여물어 가는 것을 보면 안다. 울타리를 넘어 옆집에 고욤나무의 둥근 열매와 함께 엉켜 둥글게 매달려 있는 모습! 어디에도 기울지 않는 그 고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시는 하늘이 땅에 닫는 이치를 둥근 호박을 통해 보여 준다.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줄기로서 원(圓)을 이루는 힘! 각을 세우지 않는 완만한 평화로서 둥근 힘! 그것이 바로 경계를 넘나드는 하늘의 힘임을 깨닫게 해 준다. 사람도, 세상도, 지구도 종소리처럼 둥글게 퍼져 서로의 어깨와 어깨가 원(圓)을 이룰 때, 그 때가 힘들지 않게 힘이 되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것이 하늘이 호박을 통해 보여준 ‘둥근…
2002년 오늘,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치적 결사체인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창설 39년만에 해체되고 아프리카연합(AU)이 공식 출범했다. 아프리카연합의 첫번째 의장직을 맡은 음베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53개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상회담 개막을 선언했다. 아프리카연합은 유럽연합(EU)을 본 떠 평화안보위원회와 아프리카 의회,중앙은행의 설치와 단일통화 도입 등을 목표로 했다.
1966년 오늘, 우리 나라 이동원 외무부 장관과 미국의 러스크 국무장관이 소파(SOFA), 즉 한미행정협정에 서명했다. 주한 미군의 지위에 관한 두 나라의 합의사항을 담은 협정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 4조에 따라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된 지 13년 만의 일이다. 한미행정협정 내용 가운데 특히 형사재판권을 규정한 내용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군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된 지 한 달이 넘은 1944년 오늘, 영국과 캐나다 등 연합국 지상군이 프랑스 북서부 도시 캉(Caen)을 점령했다. 노르망디 해안에서 15km 떨어진 이 도시는 독일군의 정예 장갑사단이 완강히 버티고 있던 요충지다. 연합군 폭격기 460여 대가 앞서 이틀 전인 7월 7일 밤 40분 동안 이 도시에 6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독일군 진지와 통신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공습이었다. 그러나 이 공습으로 무고한 민간인 5천 명 이상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