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것은 오른쪽에 놓고 흰 것은 왼쪽에 놓는다. 가운데는 다식과 약과의 자리이다. 촛불로 어둠을 밀어내고 향불로 길을 닦았으니 돌아가신 당신의 넋이 찾아오실 것이다. 나는 제상에 술과 밥과 국을 올리며 속으로 조아린다. 많이 잡수세요. 아버지. 예순으로 나아가는 아들이 마흔에 멈춰있는 아버지에게 절을 한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마흔 살 청춘이다. 돌아가시던 그날부터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같다. 아버지는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두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가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오던 바로 그날 당신은 문을 닫고 세상 너머로 사라졌다. 삶과 죽음의 간격처럼 허망한 것이 또 있을까. 도회지로 나오기 전까지 우리 식구는 장흥읍내 후미진 곳을 전전했다. 언젠가는 장흥극장 뒷골목 판잣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나와 형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할 무렵이었다. 그 시절, 남편의 직업을 묻는 이가 있으면 어머니는 ‘재단사’라고 답했다. 말이 좋아서 재단사지 아버지가 하는 일은 양복점 영업사원이었다. 아버지는 치수를 재는 줄자 하나를 들고 완도와 진도 인근 섬들을 훑고 다녔다. 오라는 섬은 없었지만 가려는 섬은 많아서, 아버지의 출장은…
필자는 종종 와인 입문자를 위한 오픈 클래스를 연다. 다양한 와인을 함께 마셔보면서 와인에 관한 기초 지식과 각 와인에 담긴 이야기들을 공유한다. 와인 시음회 때 평균 4병의 와인을 오픈한다. 테이스팅한 후 순서대로 좋은 와인과 그 근거를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모두 각기 다른 이유를 말한다. 여기서 더 재밌는 사실은 만약 가격과 브랜드를 가리고 블라인드로 시음회를 진행했을 때 그 차이가 더 도드라지면서 각자의 취향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와인 취향을 알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첫째, 평소에 가능한 여러 종류의 와인을 접해보고 나에게 맞는 와인을 발견하라. 처음에는 전문가 도움을 받아 여러 번 다양하게 시도하며 마셔보는 것이 좋다. 균형 잡힌 영양을 위해서 다양한 음식을 먹듯이 와인은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같은 와인이라도 해마다 또 다르니, 더욱 그렇다. 둘째,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와인에 관심을 가져라. 비싼 와인·최고급 와인이라고 다 좋은 와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값이 비싼 와인은 질이 좋다. 그러나 와인으로 투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자칫 소문이나 마케팅전략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셋째, 빈티지를 고려하
산재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산재 신청 시 사업주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있는가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산재 신청 시 사업주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산재로 인해 산재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 산재보험료는 기본적으로 사업의 종류(업종)에 따라 산재보험료율이 정해지지만 ‘개별실적요율’ 제도라는 것이 있어 사업의 종류가 같다고 하더라도 개별 사업장(회사)마다 보험료율이 달라질 수 있다. 쉽게 말해, 산재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은 보험료를 더 올리고, 산재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장은 오히려 보험료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업종에 따라 기본적으로 같은 보험료율이 적용되지만 산재발생 건수에 따라 보험료 차등을 두어 산재를 예방하고, 근로복지공단이 지출한 보험급여 대해 상대적 형평성을 갖도록 하는 목적이다. 따라서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의 경우 개별실적요율 제도로 인해 산재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는 개별실적요율 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보험료 상승과는 관계가 없다. 정리하면, 업무상 사고(출퇴근 재해 제외)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보험료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만,…
한국의 거대 여야 정당이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것 같다. 두 주체의 이득이 맞물려 쇼하고 있다는 것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적대적 공존. 이 낡은 이율배반이 한국 사회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치행위에 있어 한국 국민들이 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소환통보를 기점으로 여야의 비난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 대표의 "전쟁", 정청래 최고위원의 "민주개혁 진영에 대한 도발", 김태년 의원의 "졸렬한 무신정권의 미친 행위", 박성준 대변인의 "윤석열 검찰공화국의 정치 보복", 조정식 사무총장의 "DJ 현해탄 납치 사건 연상" 등 민주당은 연일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당도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검찰소환 비난은 치외법권적 발상“, 김기현 의원의 "전과 4범의 이력을 가진 이 대표가 검사에게 협박하고 훈계하는 모습은 막장 영화 ‘아수라’에서 보았던 장면”, 박수영 의원의 "야당 탄압 프레임 짜려고 당 대표 된 것" 등 국민의힘당의 거친 말도 열거하
정부의 수많은 공직 중 현재 가장 중요시 되고 힘든 과업을 수행해야할 자리는 아마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하 ‘본부장’)이 아닐까 쉽다. 모든 공직은 다 나름의 중요성을 가지겠지만 북한핵문제 해결이 갖는 의미, 즉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의 진전이 가져올 후과(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등 경제적 효과는 물론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세계평화에의 기여 등)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2차 북핵위기 이후 6자회담이 활발히 개최되어 2005년 9.19공동성명이 발표되던 때를 되돌아보면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현재의 ‘본부장’)의 빛나는 활동이 기억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이후 현재까지 ‘본부장’이 북한측 카운터 파트를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미국측과 만났다는 기사(가끔은 중국측과 일본측을 만나기는 했지만)만 보여질 뿐이다. 한마디로 존재감을 찾을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제안을 북한이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현 상황에서 북한의 진정한 속내를 알아보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긴급한 상황인데도 ‘본부장’은 그저 미국측과 협의했다는 기사만 접할 뿐이다. 답답하다. 현 상황관리에 실패한다면 무슨 일이
만약 삶이 행복이라면 삶의 필연적 조건인 죽음도 역시 행복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음은 자아로서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대부분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평화와 안도의 표정은 아마 거기서 유래하는 것이리라. 선한 사람의 죽음은 대개 조용하고 평온하다. 그러나 각오를 하고 죽는 것, 스스로 나아가 기꺼이 죽는 것은 자기를 버린 자, 살려는 의지를 거부하며 그것을 포기한 자의 특권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만이 겉으로만이 아니라 진실로 죽기를 원하는 자이며, 따라서 자아의 존속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또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만약 죽음이 두렵다면 그 원인은 죽음 속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있다. 선량한 사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일이 적다. 성자에게는 이미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육체의 죽음은 육체를 결합시키고 있는 것을 멸망시킨다. 즉 순간적인 생명의 의식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매일 잠들 때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과연 육체의 죽음은, 나의 모든 의식의 흐름을 통일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나의 특별한 관계를 무너뜨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려면 그 전에 나의 모
‘온겨레 참여 문화재 사랑’과 ‘여민동락’을 슬로건으로 하는 ‘2022 전국문화재 지킴이 대회’가 16일 수원 화성행궁 광장 등에서 열린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주최하고 (사)화성연구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문화재지킴이들의 가장 큰 잔치다. 문화재지킴이는 소중한 문화재를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가꾸고 지켜나감으로써, 문화재와 함께 ‘문화재를 가꾸는 문화’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취지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지킴이들은 인력·예산·조직에 한계가 있는 문화재 행정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동시에 문화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잇는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킴이들은 특히 국가나 지방정부의 관리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소외된 문화재’를 찾아 가꾸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문화재는 보다 친근한 존재가 된다. 문화재지킴이는 지난 2005년 시작된 운동인데 현재 전국에 7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위촉돼 문화재 주변 정화 활동, 문화재 감시 등 자발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개인지킴이, 2인 이상 가족이 활동하는 가족지킴이, 각급 학교, 기업, 법인체, 공공기관, 기타단체 등이 참여한
노을이 채색된 들판에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감자를 캐던 젊은 농부는 모자를 벗어든 채 묵상을 하고, 두건을 쓴 그의 아내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한 때 전 세계를 휩쓸었던 그 유명한 그림 ‘밀레의 만종’이다. 이 그림은 농촌의 목가적 풍경을 그린 밀레의 걸작으로 원제는 랑젤뤼스(L'Angélus), 즉 ‘삼종기도’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그는 농촌의 전원풍경을 그린 화가이기에 앞서 인간공학의 수호성인이었다. ‘건초 묶는 사람들’, ‘양털 깎기’, ‘양치는 소녀’를 그려 국제적 아이콘이 됐다. 그로 인해 농촌화가의 대명사가 됐지만 그의 진가는 이보다 더 거창하다. 1847년 프랑스는 불황이 덮쳐 집 없는 농부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 모습을 밀레는 ‘폭풍우의 피난처’에 담아냈다. 그 후 1년 뒤 파리 살롱전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하는 농부를 그림에 등장시킨 건 밀레가 처음이었다. 비평가들은 밀레의 정치적 관점과 농부들을 향한 연민을 감지했다. 밀레는 농민에 대한 그림을 더욱 발전시켰고 자신의 고향을 닮은 바르비종(Barbizon)에서 ‘파종’, ‘만종’, ‘이삭 줍는…
드라마 ‘판관 포청천(包淸天)’은 권력에 굴하지 않은 중국 북송의 명신 포증(包拯)의 생전 일화를 소재로 하는 사극이지요. 수십 년 전부터 우리 국민을 사로잡았던 드라마는 버전을 달리하면서 지금도 유선방송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어요. 법치(法治)의 기본인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너무나 안 지켜지고 있는 세상에서 포증의 속 시원한 “작두를 대령하라!”는 호령이 오래도록 시청자의 기억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군요. 드라마 장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소위 나라의 최상급 권력자인 황족(皇族)의 범죄까지도 가차 없이 법대로 처단하는 판관 포증의 서슬 퍼런 처결이에요. 황족에게는 용(龍)작두, 관리등급에는 호(虎)작두, 일반 백성에게는 개(犬)작두를 동원하는 즉결처분 형식의 작두형이 박진감을 더해주지요. 끔찍하지만, 판결과 동시에 작두를 열어 곧장 사형에 처하는 장면은 엄정한 법치에 목마른 민심을 흔연히 적셔주는 대목이에요. 민주주의가 만개했다는 이 시대에 이 나라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법치가 확립돼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과연 충분할까요? 요즘 TV 매체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률가들의 활약이 크게 늘었어요. 예전부터 여의도에 진출해 금배지를 다는
미망은 인간이 빠지기 쉬운 상태이다. 하지만 일정한 시대, 일정한 사회 계층 사람들 사이에 특히 그것이 널리 퍼져 있는 경우가 있다. 기독교 집단이 바로 그러하다. 고차원의 인생의 법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든, 학문을 배운 사람이 저지른 죄가 가장 무섭다. 무지하고 타락한 민중은 방자한 학자보다 낫다. 전자는 눈이 멀어 길을 잃지만, 후자는 눈이 멀쩡하면서도 우물에 빠지기 때문이다.’(사다) 사람들은 영혼을 잃어버렸다. 그 뒤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다시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 영혼의 상실이 바로 우리의 환부, 현대의 모든 현상에 무서운 죽음을 선고하고 있는, 전 세계에 걸친 사회적 부패의 근원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종교도 없고 신도 없다. 인간은 영혼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치료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하여 잠시 병세가 수그러든 것처럼 보이는 전염병은 곧 다시 더욱 맹렬하고 더욱 무섭게 기승을 부릴 것이다. (칼라일) 모든 범죄와 온갖 종류의 무서운 기사로 가득 찬 언론은 고기를 중심으로 한 아침 식사의 반찬과도 같은 것이다. 몸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