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서강 지킴이’와 ‘4대강 저격수’로 잘 알려진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환경운동 이력에 ‘난개발’이 추가될 거라고는 그 역시 생각지 못했다. 안양 도심에서 살다, 집필 활동을 위해 산을 벗 삼아 살고자 2004년 용인 외곽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난개발 문제의 심각성을 맞닥뜨렸다. 초등학교 인근에 세워지는 환경유해시설(콘크리트 혼화재 연구소), 산등성이를 깎아 세운 전원주택단지,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세워진 물류창고 등등. 그야말로 용인은 난개발 천국이었다. 환경운동이 자신의 목회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최 목사였기에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심지어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까지 위협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최 목사는 주민들의 편에 서서 여론전을 펼치고, 건설업체의 거짓말을 찾아내 폭로하기도 했다. 심지어 법정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용인시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용인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였다. 2018년 당선된 민선7기 백군기 용인시장이 선거 때 핵심공약으로 난개발 해결을 내걸었는데, 공약대로 그는 당선이 되자마자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 발족에 첫 결재 도장
이병도가 존경한 식민사학자들 쓰다 소키치는(津田左右吉:1873~1961)는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와 함께 지금도 한국 역사학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다. 남한 강단사학계의 이른바 태두(?)라는 이병도의 회고를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병도는 1914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한 후 와세다대학에 들어가 쓰다 소키치에게 배웠다. 이병도는 1982년 4월 『광장』지에서 와세다 시절 일본인 스승들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 “대학 3학년 때의 강사(그 후에는 교수)인 쓰다 죠오끼지(津田左右吉:쓰다 소키치) 씨와 또 그의 친구인 이께우찌 히로시(池內宏, 동경대 조선사교수:이케우치 히로시) 씨의 사랑을 받아 졸업 후에도 이 두 분이 자기들의 논문이나 저서들을 보내 주어 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원래 남의 논문이나 저서를 많이 보아야 연구방법이나 학식의 향상을 보게 되는데 그 당시 일본학계의 최첨단을 걷는 이 분들의 논문이나 저서들을 통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본인이지만 매우 존경할만한 인격자였고, 그 연구방법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만큼 날카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병도가 ‘매우 존경할만한 인격자’라고 흠모하
이마니시 류의 ‘삼국사기’ 불신론 한국 강단사학자들이 아직도 존경해 마지않는 일본인 식민사학자가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다. 도쿄제대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건너와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실무를 맡으면서 경성제국대 교수도 역임했다. 이마니시 류는 ‘삼국사기’는 가짜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는 진짜라고 극력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신라사연구(1933)’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대부분 조작되었다면서 “신라 제1왕 박혁거세 즉위년은 후대의 왕위계승의 연대에서 계산하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박혁거세의 즉위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후대의 왕위계승의 연대에서 계산’하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면 그 후대의 왕이 누구이며, 어떻게 계산했더니 성립되지 않는지 논증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무조건 ‘믿을 수 없다’고 우기는 것뿐이다. 이마니시 류는 또한 “문헌이 없는 시대의 즉위연대가 이렇게 뚜렷할 수가 없다”면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가짜로 몰았다. 문헌이 없는 시대라는 것도 이마니시의 억지에 불과하다. 김부식을 비롯한…
…가면을 쓴 윤희가 가운을 이민지에게 맡기고 발가벗은 몸으로 정물대에 올랐다. 화가들이 신음 같은 감탄을 연발했다. 정물대 가까운 곳에서 이민지가 손짓 몸짓을 섞어가며 작은 소리로 윤희의 동작을 리드했다.… ‘윤희. 잘 잤어? 이따가 오후 두 시에 극단사무실로 데리러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어제 산 원피스 입고 나와. 알았지?’ 마치 우주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들뜨고 야릇한 기분으로 인해 밤잠을 설쳤다. 새벽 나절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난 아침에 이민지로부터 휴대전화 문자가 날아들었다. 이민지. 이 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엊그제 스크랩에서 본 자료 속에서 그녀는 극단 카프카에서 주연을 도맡아 하는 대단한 배우였다. 백두 단장과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배우라고도 했다. 대개 연극배우들은 어렵게 산다고 들었다. 어쩌다가 TV나 영화에 진출하여 스타반열에 오르는 배우도 있지만, 나머지 연기자들은 곤궁한 처지를 면치 못하면서 오직 예술가의 열정 속에 살아간다고 했다. 그걸 알려준 사람은 윤희에게 연극을 가르쳐 준 장시욱 선생이었다. 그런데 이민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와 외제 승용차는 뭔가. 윤희를 마치 피붙이처럼 살피려 들기 시작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한국 역사학계에는 다른 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교리들이 있다. 국민들에게는 비밀로 삼고, 자신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교리다. 그중 하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김부식이 만든 가짜라는 논리다. 한국 국민들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삼국의 건국시기를 물으면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신라는 서기전 57년, 고구려는 서기전 37년, 백제는 서기전 18년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나라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 사학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때 만들었던 국정 교과서와 현 정권에서 사용하는 검인정 교과서는 큰 차이가 있을까? 99%는 그 내용이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예로 천재교육에서 발행한 검인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보자. 이들은 삼국의 건국시기를 부정하기 위해 ‘국가의 기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국이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는 차이가 있다. 고구려는 2세기, 백제는 3세기, 신라는 4세기로 보고 있다.” 고구려는 6대 태조왕(재위 33~146) 때, 백제는 8대 고이왕(재위 234~286년) 때
…“얼굴 좀 펴라.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내가 너한테 미리 투자하는 거야. 너는 아주 예쁘고, 똑똑한 아이야.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거니까 마음 푹 놓고 살아도 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눈을 떴다. 낯선 방이었다. 윤희는 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커다란 방에 고급스러운 가구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여관 같은 숙박업소는 아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덮치듯 엄습해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니 창문이 보였다. 얇은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윤희는 검은색 실크 잠옷이 입혀져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섰을 때 옆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 쪽지가 보였다. ‘윤희. 놀라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집안에서 푹 쉬고 있어. 거실 냉장고 열면 마실 것도 있으니까 목마르면 꺼내 먹고. -이민지.’ 이민지 배우의 집? 비로소 윤희는 희미한 기억을 떠올렸다. 극단 카프카 회식에서 글라스 잔 가득 소주를 석 잔이나 마셨던 기억이 났다. 쓰러진 나를 이민지가 자기 집으로 데려온 것인가. 창밖으로 다가가 보니 내려다보이는 까마득한 도심 풍경이 현기증을 일으켰다. 자동차들이 마치 줄 맞춰서 기어가는 딱정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 ‘일본서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주갑제(周甲制)를 이해해야 한다. ‘주갑(周甲)’이란 만 60년을 뜻하는 환갑(還甲)과 같은 뜻이다. 동양 고대 역법(曆法)의 간지(干支)가 한 바퀴 순환하는 것이 주갑이다. 간지(干支)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나뉘는데, 천간은 갑을병정((甲乙丙丁)…등의 열개이고, 지지는 자축인묘(子丑寅卯)…등 열두 개다. 천간에서 갑(甲)을 따고 지지에서 자(子)를 따서 첫해가 갑자년이고, 둘째 해가 을축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지가 한 바퀴를 돌아 만 60년이 되는 것을 주갑(周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 한다. ‘일본서기’는 역사서의 기초 중의 기초인 연대부터 맞지 않기 때문에 주갑제를 이용해 2주갑 120년을 끌어올려 연대를 맞춰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가 주갑제다. ‘일본서기’의 연대가 맞지 않는 것은 편찬자의 실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먹고 연대를 조작한 것이다. 반면 ‘삼국사기’ 연대는 놀랄만큼 정확하다. 1971년 공주에서 우연히 무령왕릉 지석(誌石)이 발견되었는데, 무령왕이 “계묘년 5월 병술 삭(朔) 7일 임진일에 붕어하셨다”말하고 있다. 서기로 환산하면 523년 5월 7일에 세상을 떠났
어둠이 짙을수록 아주 작은 불씨도 밝은 빛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밝히려고 애쓰는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있어 소개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홈쿡’과 ‘홈캠핑’이 새 라이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주말 외식, 캠핑의 필수 코스인 바비큐도 이제는 집에서 즐긴다. 소비자들은 직접 마트에서 장보는 대신 온라인 구매를 생활화하고 있다. 2년 차 신생기업 스모커리는 캠핑에서 즐기던 텍사스 바비큐를 집에서 먹을 수 있게 온라인 판매한다. 사업 초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난해 인기 유튜버의 ‘인생고기’로 입소문을 타면서 빠르게 고기 마니아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미국 텍사스가 아닌, 물 맑고 공기 좋은 경기 양평군에서 이아람 스모커리 대표를 만났다. Q. 국내서 아직 텍사스 스타일 바비큐는 다소 낯선데,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 텍사스 바비큐를 만들고 있지만, 사실 가족과 저는 고기를 잘 못 먹는 편이다. 양평군으로 이사하고 매일 삼겹살 파티가 열렸는데 너무 지겨웠다.
“김윤희 씨. 일을 잘하시네요. 무대 경험이 많은가 봐요.”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윤희는 극단 카프카 단원 중 엑스트라급 배우들 네 명과 함께 공연장 정리를 했다. 소품을 박스에 담아 트럭으로 들어 나르고 있을 때 손정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단원이 말을 걸어왔다. 웃을 땐 잇몸이 많이 드러나는 순박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아닙니다. 시골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조금 경험했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무대 철거에 척척 손을 맞추시네요. 눈썰미가 좋으신가 봐요.”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윤희는 웃어 보이며 칭찬에 답례했다. 공연 소품들을 빌딩 지하창고에 다 옮겨 놓았을 때는 오후 두 시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사무실 한구석 아크릴 칠판에 씌어있는 공지글이 보였다. 저녁에 쫑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모두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윤희 씨. 이리 좀 오세요.” 사무실 저쪽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금테 안경을 쓴 여자 단원이었다. 윤희는 여자 단원 앞으로 갔다. “우리 극단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하는 일이 많아요. 청소나 쓰레기 치우는 일, 탕비실 관리하면서 차를 타내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여자의 음성에서 차가운 느낌이 뚝뚝 흘렀다. “네. 알겠습니
…“제 목숨만큼 좋아합니다. 연극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러자 단장이 껄껄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는 툭 던지는 듯한 예의 투박한 어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놈치고 오래 가는 놈 못 봤어!”… 오후 세 시 삼십 분. 윤희는 다시 ‘화가와 여간호사’ 공연장 안에 있었다. 새로 산 하늘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엄마에게서 배운 대로 색조가 보일락 말락 하도록 옅은 화장까지 하고 난 뒤였다. 두 번째 보는 연극인데도 감동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절반을 조금 넘게 채워진 객석의 반응도 뜨거웠다. 주연배우 이민지의 연기와 대사가 더 확실하게 귀에 와서 꽂혔다. 화가역을 맡은 남자배우의 연기도 능청스럽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능숙했다. 연극 종반부, 알몸을 보여주는 자극으로도 남자의 기억을 끝내 되살려내지 못한 여간호사 제니퍼가 화가 세잔에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자고 애원하는 장면에서 객석에서는 안타까운 한숨이 물결처럼 일었다. “우린 오늘 처음 만난 거예요. 저 싫지 않으시죠? 기나긴 이별의 시간을 건너 당신을 다시 만난 일을 꼭 증명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우린 지금 처음 시작하는 거예요. 기억 저편으로 묻어버린 옛일들이야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