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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홍사용문학관

이창식 주필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시인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문학관이 화성시에 의해 세워진다. 홍사용은 1900년 옛 수원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에서 대한제국 통정대부(通政大夫) 육군 헌병부위 홍철유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여덟살되던 해 백부 승유의 양자로 입적됐다.

1912년 두 살 연상의 원효순과 결혼하고 1919년 장남 규선을 낳았으나 그는 이미 문학에 입문해 박종화,정백 등과 더불어 등사판으로 만든 ‘피는 꽃’을 발간하면서 3·1운동에 담하고 있었다. 1920년 ‘문우’와 1922년 문예지 ‘백조’를 창간했고, 1923년 ‘백조’에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발표했다. 1927년에는 박진과 함께 극단 ‘산유화’를 창단하면서 문학과 연극에 몰입하게 되는데 출판비와 극단 운영비는 홍사용 몫이었다. 1944년 강경·전주 등지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희곡 ‘김옥균전’을 썼지만 총독부 검열에 걸려 요주의 인물로 주거제한 명령을 받았다.

 

그의 문예 열정과 애국 의지는 이 시점에서 접어야만 했다. 1947년 1월 7일 폐질환으로 서울 공덕동 장남 집에서 유명을 달리하니 그의 나이 47세였다. 필자가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장 시절인 1984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52명이 기금 170만원을 모아 같은해 5월 26일 석우리 그의 묘소 앞에 ‘노작 홍사용선생 시비’를 세운 바 있다. 그런데 엊그제 화성시가 노작공원에서 홍사용문학관 기공식을 가졌다니 경하할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30개의 문학관이 있는데 도내에는 안성 출신 계관시인 조병화가 세운 편운제(片雲齊)문학관이 있을 뿐이다. 같은 안성 출신의 청록파 시인 박두진문학관이 시립도서관 안에 있어서 독립된 문학관으로 보기 어렵다. 소설가 이문열이 이천에 ‘부악문원’을 두고 있으나 ‘두울문학관’은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군에 있다. 오는 4월 25일 필자를 비롯한 순수문인 39명이 모은 기금 300여만 원으로 수필가 ‘백봉 안익승선생 문학비’을 화성시 마도면 해문리 묘소 앞에 세울 예정이다.

더 많은 문학관과 시비, 문학비가 세워질 때 우리 문단도 그만큼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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