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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白虎의 기개’로 경인년 한해를 내달리자

 

이창식 주필의 ‘우리네 역사 속 호랑이’

범띠해(경인년·庚寅年) 새해를 맞았다. 범은 호랑이라고도 하는데 호랑이 새끼는 ‘개호주’ 또는 ‘개호자’라고 한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인 단군 신화에 범이 등장한다. 범은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원했으나 성질이 조급하여 금기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고려 태조 5대조인 호경(虎景)이 마을 사람 8명과 함께 평나산(平那山)에 매사냥을 갔는데 날이 저물어 동굴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범 한 마리가 나타나 동굴 입구에서 크게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놀라 의논하기를 “범이 우리를 잡아 먹으려 하니, 머리에 쓰고 있는 관(冠)을 던져 잡힌 자가 호랑이 밥이 되기로 하였다. 호랑이 앞에 던진 9개 관 가운데 호랑이는 호경이 관을 물었다. 호경이는 죽을 각오를 하고 동굴 밖으로 나섰는데 호랑이는 온데간데 없고, 동굴이 갑자기 무너져 동굴 속에 있던 8명은 압사하고 말았다.

여기서 범은 선택자인 신의 사자(使者) 또는 신 자체가 된다. 범은 우리 무속과 민속에서 산신 또는 신수(神獸)로 인식됐다. 옛 기록에 보면 범을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고 했는데 이같은 범 숭배 신앙은 산악 승배 사상과 융합되어 범을 산신 또는 산신의 사자로 인식하였다. 범은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범 그림이나 범‘호(虎)자’ 부작, 또는 단오 때 궁중에서 나눠주었다는 쑥으로 만든 범에서도 벽사의 호력이 있다고 했다.

 

옛날에 흔했던 말라리아에 걸리면 범고기를 삶아 먹이거나, 범 그림을 환자의 등에 붙였으며 콜레라가 발생하면 범 그림을 문간에 붙였고, 독감 환자가 생기면 “범 왔다”는 소리를 세 번 크게 외치면 도망갔다고 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전혀 믿겨지지 않는 일들이지만 우리 옛 조상들은 그렇게 순진무구하게 살았다.

‘모험 없이는 값진 것 얻을 수 없다’는 교훈

범 또는 호랑이를 주제로한 속담은 적지 않다. 아득한 옛날 얘기를 “호랑이 담배 피울 적”이라 하고,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호랑이 굴에 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들은 매우 값진 것은 위험이나 모험을 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얻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일컫는다. “호랑이가 꿈에 크게 울면 벼슬을 얻는다”, “호랑이 등에 타면 악한 일이 없으며, 집 가운데로 들어오면 벼슬이 무거워진다”고 하여 길몽으로 쳤다. 호랑이는 용맹성의 상징이었다. 조선 때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서 우영(右營)을 지휘하는 의장기는 날개 달린 백호가 사슴 뿔을 양손에 들고 서 있는 그림이다.

오늘날 우리 국군 가운데 맹호부대와 백호부대 등이 호랑이 이름을 쓰고 있는 것도 용맹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호랑이에 대한 속신은 중국도 비슷하다. 사귀를 막기 위해 대문 기둥에 호랑이 그림을 붙이고, 아이들에게는 호랑이 동전을 주기도 한다. 역경(易經)에서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는 것은 호랑이와 바람과의 관계, 신비한 권위, 범접할 수 없는 감독자를 암시하고 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월(日月) 기원 신화와 호석(虎石) 전설이 있다.

 

남방 호랑이의 본 고장인 말레이시아에 인접한 싱가포르에서의 호랑이는 지혜, 힘, 용기를 상징한다. 타일랜드에서는 유명 상표 가운데 호랑이 모습을 담은 것이 많다. 그리스 신화의 호랑이는 디오니소스가 더글라스 강을 건널 때, 야누스가 호랑이를 보내 도왔다. 고대의 12궁도에서는 호랑이가 디오니소스의 수레를 끄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호랑이는 디오니소스의 광연(狂宴)인 오르기와 결부되어 분노, 잔혹,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초자연적 용맹성·강력한 지배욕·신성한 인도자

호랑이는 두 가지 입장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첫째는 인간을 보호해주는 수호신의 상징이고, 둘째는 인간을 가해하는 두려운 존재로서 호환(虎患)을 방지하기 위해 신앙의 대상이 됐다. 수호신으로 상징되는 호랑이 신앙은 호랑이를 일반적으로 산신(山神)·동신(洞神)·호신(護神)의 상징이라 믿는 데서 비롯되었고, 나라의 안위를 위한 제의 때 희생으로 비쳐지는 중대한 종교적 의미를 지녔다하여 신성시 했다.

 

즉 ⓛ호랑이는 일반적으로 산신의 상징이라 믿어 경외했고 ②호랑이는 산신의 상징으로 마을과 사람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으며 ③호랑이가 나라의 안위를 위한 제의 때 희생(제물)으로 바쳐지는 종교적 의미를 평가했다.

5세기 중엽의 매산리사신총(梅山里四神塚)의 백호도는 가장 오래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 통일 신라 시대에는 능묘 등의 둘레에 12지 신상호석(神像護石)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인상(寅像 : 호랑이상)이 있었고, 조선 시대 민화와 민속공예에서도 12지 신상이 많이 등장했다. 이 12지 신상은 일종의 방위 수호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도자기, 목각민예품, 그림 등에 범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즉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 범이 앉아 있으며, 소나무 가지에 까치 몇 마리가 앉아 있는 편안한 모습이다. 이 때 소나무는 장수를, 까치는 기쁨을, 범은 보은(報恩)을 나타낸다.

호랑이는 사자와 같이 공격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초자연적 용맹성, 강력한 조절자이기도 하지만 지배욕, 탐욕,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파괴의 본능, 부정적 본능도 지니고 있다. 분명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다. 그러나 정당한 생존을 위해서는 강·약자를 막론하고 제압해버리는 용기와 결단력은 가위 본받을 만하다. 바야흐로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다. 약자를 잡아 먹지는 않더라도 강자에 맥없이 잡혀 먹힐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처지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白虎)의 기개를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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