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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도문화의전당 조명 감독

 

무대는 아름답고 화려하다.

현란한 조명과 귀를 유혹하는 음향 속에서 노래하고 몸짓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단연 무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이 감명깊게 관람한 공연의 무대는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마음 한 켠에 오래동안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그 무대 뒤의 모습은 어떠할까? 단언컨대, 무대 위보다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다. 겉모습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 위의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웃고 우는 극작가, 공연 스태프(staff)들은 무대 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관객들 100명, 아니 1천명 중 1명이라도 알아 주지 않아도 그들은 상관없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진심 어린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면 그걸로 족하다. 지난 15일 무대 뒤 주인공 중 한명이자 ‘빛의 예술가’라 할 수 있는 경기도문화의전당 김완식(35) 조명 감독을 만났다. 자신이 하는 일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그를 통해 공연예술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2번의 도전 끝에 시작한 조명 담당... “내게 조명 일은 아직도 …ing”

경기도문화의전당 내에는 모두 7명의 조명 감독이 있다. 이 중 김완식 조명 감독은 가장 막내다.

2004년 9월 전당에 들어오면서 그는 조명 일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학교를 다니며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는 맛보기 수준이었다고 할까. 그는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당시 몇몇 대학교 내 연극영화과에서는 조명을 전문으로 하는 팀이 따로 있긴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연극을 하면서 조명도 함께 하는 시스템이었죠. 저도 연극을 하면서 조명 일은 선배들이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는 수준이었죠.”

그는 대학 4학년 2학기, 남들보다 일찍 결혼했다. 아버지의 환우가 깊어지면서 집에서 결혼을 서둘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남들보다 생계에 대한 걱정도 빠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휴학을 결정하고, 경복궁에서 진행하는 궁중의례 재현행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보다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조명 담당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1차 시험과 면접에서 보기좋게 떨어졌다. 포기란 있을 수 없기에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몇개월 되지 않아 전당 조명 담당자가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자리가 생기게 된 것.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다.

“정말 뜻밖에 얻게 된 기회로 전당에 입사하게 됐죠. 나중에 들어보니 1차 면접 당시 면접관이 저를 눈여겨 보셨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당시 전 어떤 일이든 맡게 된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죠. 그런 부분을 잘 봐 주신거 같아요.”

전문적인 조명 업무는 처음 접하는 것과 다름없던 그는 2여년 동안 청소와 창고정리 일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조차 너무 즐거웠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꿜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한다.

일을 배우는 것도 순서와 단계가 있듯이 창고정리 일을 전담하다시피 하다 보니 조명 담당자 중 전당 5곳의 창고 물품을 꿰뚫고 있는 것은 단연 그였다. 어느 곳에 어떤 장비가 있다는 것을 알다 보니 선배들이 보조 업무자로 자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조명 기술도 선배들을 통해 빠르게 배우게 됐다. 2년 4개월 만인 2007년 1월, 그는 용인 소재 경기도국악당에서 진행하는 공연의 조명 감독을 처음으로 맡게 된다. “2007년 경기도국악당 상설공연 ‘한국의 미’를 맡게 됐어요. 1년에 300회 정도를 공연하는 말 그대로 ‘상설공연’이었죠. 동일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나태해 질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짧은 시간 안에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제는 경력 8년차 김 감독. 도립무용단 상설공연, 도립극단 ‘청이 스토리’ 등을 맡으면서 1년에 100일 이상 자체제작 공연에 투입되고 있지만, 그에겐 조명 일은 아직 ‘…ing’ 과정이다.

“조명의 기술적인 부분은 익히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술을 예술로 승화하는 단계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전 조명에 대해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거 같습니다.”

◆조명은 무대 기술이자, 빛의 예술

김 감독은 보다 자연스러우면서 배우나 무용수와 합을 이룰 수 있는 조명의 색채와 구도 연출을 위해 시간이 나는 대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한다. 무대 기술인 조명을 무대 예술로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현란하고 아름다운 조명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배우를 압도하는 조명은 금물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 되는 거죠. 공연예술을 종합예술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봐요. 조명·음향효과·안무·음악 등이 무대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 어려우면서도 추구해야 하는 작업이죠.”

이를 위해 공연을 자주 접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는 이에 따른 부작용(?)을 아쉬워 했다. 조명 연출에 신경을 쓰다 보니 순수한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타 소속 조명 팀의 조명 연출을 탐색하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그에게 조명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공연을 물었다.

“뮤지컬 ‘렌트’를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2시간 넘게 진행되면서 빠른 템포의 음악이 자주 나오는데, 이를 서포트해 주는 화려한 조명이 없더라고요.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명 연출도 있구나’ 배우는 계기가 됐죠.”

감 감독처럼 무대 뒤 보이지 않은 노력에도 조명, 음향 등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은 공연 브로슈어(brochure)에 이름 한 줄 나갈 뿐, 어떠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신경쓰고 아쉬워 했다면 조명 일은 일찌감치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작업이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본 공연을 통해 이를 모두 해소하는 거 같아요.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면 대부분 동감할 것으로 봅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를 듣는 순간, 무대 뒤는 배우고 스태프고 할 것 없이 서로 부둥겨 안고 손을 맞잡으면서 ‘수고’의 인사를 나누죠. 이 순간, 준비 과정에서 생긴 모든 좋지 않은 감정들은 눈녹듯 사라집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공연에 임할 수 있기에 마냥 행복하단다.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직장 다녀올게’라는 인사 대신 ‘극장 다녀올게’라고 한다. “조명 일이 저에게 있어 알파(α)이자 오메가(ω)가 되기를 바라요. 나만의 빛과 색을 발하면서 공연 안무가와 무용가들이 만족할 수 있는 조명 담당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바람도 잊지 않았다.

“조명 작업기간이 공연의 제작비와 수익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 기간이 좀 더 길어졌으면 해요. 관객이 만족하고 출연배우가 만족하고, 마지막으로 스태프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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