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인류학자 타이거와 폭스(Tiger & Fox, 1971)는 ‘보은(報恩)의 망(web of indebtedness)’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타인에게 은혜를 받으면 그것을 되갚는 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이 원칙이 노동을 분화시키고 재화와 서비스의 상호 교환을 가능케 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거다. 사냥으로 생존을 유지하던 구석기 시대가 대표적 사례다. 발 달린 사냥감이 필요한 시기에 딱 맞춰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먹거리 획득이 부정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잡은 짐승 고기를 자기와 가족만이 독식한다 치자. 그 같은 습관을 반복하면 나중에 자신이 굶을 때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봐서 무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는 거다. 주어진 호의와 선물을 되갚는 후성유전학적 DNA가 호모사피엔스에게서 우세를 점한 이유다. 이런 행동이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문화권에서 미덕으로 전승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준 제비나 ‘은혜를 갚은 까치’ 같은 우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보은은 커녕 은혜를 악으로 갚는 자들도 드물게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런 자를 말종이라 부른다. 2. 이완용을 보자
지난 주, 직장의 인터넷 공지게시판에 정부에서 보낸 공문이 하나 떴다. 제목이 눈길을 확 끌었다. “빈대 정부합동본부 구성, 운영안”. 눈을 씻고 다시 봤다. 정말로 빈대 정부합동본부였다. 세부 내용은 이렇다. 11월 3일부터 별도 상황 해제 시까지 복지·질병·행안·교육·법무·국방·문체·고용·국토부 등 전 관계부처가 모여 평일 하루 한번 씩 회의를 열겠다는 거다. 그리고는 낮과 밤에 걸친 '빈대 발견방법'을 별도로 상세히 첨부해 놓았다. DDT 사용 이후로 사라졌던 빈대가 다시 나타났다.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해충이 사람들의 두려움 대상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한 건강악화와 불편 해소가 중요하니, 이렇듯 세심히 신경을 쓰는 걸 어찌 나쁘다 하겠는가. 하지만 공문 내용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천둥처럼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거였다. 159명이 생목숨 잃은 이태원 참극이 일어난 지 갓 1년이 지난 시점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그 황망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과연 무슨 일을 했는가? 사안에는 경중이 있고 우선 순위가 있는 법이다. 이 정부에 대하여 참극을 철두철미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정부합동본부’까지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
1.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다. 세계 최초의 SNS는 1995년 미국에서 시작된 (친구 찾기 사이트)‘클라스메이트’로 알려져 있다. 이런 유형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현대인의 삶 속에 뿌리내린 일등 공신은 역시 마크 주커버그가 창시한 페이스북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후발주자들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지만 페이스북은 여전히 세계 최대 SNS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속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 메타(meta)가 세계적으로 여러 사건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올해 5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무려 12억 유로(우리돈 1조 7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유럽연합 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무단 전송한 행위 때문이었다. 아마존 등의 다른 빅테크 기업도 유사한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반복성과 위반 정도에 있어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 메타다. 이 회사의 얼굴마담 격인 페이스북이 한국에서도 말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년 7월에는 맞춤형 광고에 활용할 목적으로 도를 넘어설 정도로 상세한 사용자 개인정보 수집을 시도했다
1. 페이스북(facebook)은 마크 주커버그가 약관의 나이였던 2004년에 창업한 SNS 플랫폼이다. 이후 월간 활성 사용자(MAU), 즉 30일 동안 접속한 사용자 합계 기준으로 30억 명을 넘어서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로 성장했다. 이 온라인 공간에서 표현자유 탄압 논란이 불붙고 있다. 도화선이 된 것은 지난 9월 2일 이었다. ‘개밥풀’과 ‘물의 노래’등으로 널리 알려진 이동순 시인의 시작품 ‘홍범도 장군의 절규’를 혐오표현이란 낙인을 찍어 무단 삭제한 것이다.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개탄한 이 시의 삭제 이후, 현재까지 이동순 시인이 올리는 작품에 대한 집요한 삭제가 반복되고 있다. 그의 시를 옮겨 적은 일반 게시물에 대해서도 대대적 삭제 열풍이 불고 있다. 문학으로서 저항시에 담긴 비판과 풍자는 작품의 생명이요 존재 이유 자체다. 그러한 ‘인간 정신’에 대한 무도한 검열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와 문학작품에 대한 이 같은 직접적 탄압은 박정희의 유신시대에나 있던 정치적, 문화적 만행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세계적 선진국으로 자리잡은 민주주의 공화국 아닌가. 이런 공동체에서 일개 외산(外産) 상업적 온라인 기업
1. 사람들은 광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TV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하루에 수십 번이나 광고를 만나면서도 왠지 거리감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광고가 인간의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도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어떨 땐 대폭할인이란 카피에 현혹되어, 때로는 호기심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지갑을 연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으니 말입니다. 광고를 꺼림직하게 여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허위과장 때문입니다. 진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제품 품질을 부풀리거나 속이는 광고. 이런 콘텐츠는 과장광고(puffery), 허위광고(falsity advertising), 기만광고ceptive advertising)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같이 물건만 팔아치우면 그만이란 판매지상주의의 산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2. 허위과장광고의 역사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흑사병(黑死病)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pest)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팬데믹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겪은 최악의 역병이었지요. 가장 피해가 심했던 건 14세기 때의 대유행이었습니다. 유럽인구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2500만여 명
1. 사냥꾼이 수풀을 헤치고 있다. 사슴을 찾는 중이다. 드디어 바위 모퉁이에서 사냥감이 나타났다. 어미 사슴이다.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옆에 무언가가 보인다. 새끼 사슴이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총구를 거둔다. 어미와 새끼를 함께 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경심 교수를 입시비리 혐의로 기소한지 4년 만에 조민 씨를 기소했다. 하반신을 못 쓰는 상태로 3년 3개월째 실형 살고 있는 어머니와 재판 중인 아버지에 이어 딸까지 기소의 형틀에 묶은 것이다. 주범을 처벌하는 경우 가족은 함께 기소하지 않는 법적 관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태다. 유례가 없는 전 가족 처벌 시도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말아먹은 압도적 범죄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에 대한 기소를 포기했다. 조민 씨의 경우는 왜 다른가. 검찰이 제기한 입시서류 제출 관련 ‘업무방해’가 최순실이 저지른 국정농단과 천문학적 뇌물수수보다 더 크고 심각한 죄목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검찰의 사적 감정이 개입된 것이다. 부모자식 관계를 천륜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조국
1. 커뮤니케이션 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6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가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주변의 다수가 선택하는 방식을 살핀다는 거다. 당신도 경험이 있으실 거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사람들이 우르르 길을 건너면 자기도 모르게 차도에 발을 내딛은 적이. 삼인성호(三人成虎)란 어구도 유사한 심리적 기저에서 나온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데도 여럿이 한 목소리로 우기면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거다. 일종의 어거지 수법인데, 나는 이걸 가장 열심히 활용하는 정치세력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실업급여’ 폐지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7월 12일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위장이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를 운운한 것이다. 그는 공청회 후 브리핑에서 최저임금의 80%인 현재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폭탄 발언을 던졌다. 실업(失業)은 노동하려는 뜻과 능력이 있음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실업급여는 이렇게 일시적으로 직장 잃은 노동자
지난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이었다. 언론 지상에 그러한 1년의 성과와 과오를 분석하는 특집 기사들이 넘쳤다. 기사마다 빠지지 않은 것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의 심각한 퇴행 상황이었다. 1주년 당일, 보수의 아성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터져 나온 시국선언은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총체적 평가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도시의 25개 시민단체는 이렇게 단언했다. “민생을 파탄시키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평화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투쟁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왜 이토록 혹독한 평가가 나올까. 3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불통(不通)이다. 필수적 대화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제 1야당 대표와 공식 회담을 갖지 않은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윤석열 대통령 밖에 없다. 서열과 관례 상 하위에 있는 야당 원내 대표 혹은 국회 상임위원장들과 만남은 적극 제안하면서도 정작 당 대표는 제외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당시 야당 총재는 집권 기간 내내 격렬히 충돌했다. 그럼에도 무려 7차례나 공식 회동을 했다. 삼권 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통과 타협은 대통령의 절대 의무다. 안 하고 싶다고
1. 봄이 오면 꽃을 구경하러 다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잠시 왔다 사라지는 찬란한 계절의 이름을 직접 불러줘야 할 것 같아서. 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이 다르다.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목련에는 순백의 기품과 고고함이 있다. 벚꽃은 일시에 피어났다 비처럼 떨어지는 낙화(落花)가 아름답다. 산수유는 봄 햇살 맞으며 소풍 떠나는 아이 웃음을 떠올리게 하고, 개나리는 돌담 아래 미소 짓는 순박한 새악시 같다. 진달래, 배꽃, 철쭉, 등꽃, 연산홍은 또 어떤가. 이 땅의 길섶에 피어나는 이름 없는 들꽃조차 봄에는 모든 것이 눈부시다. 주말에 복사꽃을 만나러 갔다. 경상북도 영덕에서 ‘복사꽃 큰 잔치’가 열린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34번 국도변의 복사꽃이 그렇게 곱다는 이야기였다. 황장재를 넘어 굽이치는 오십천 물길 옆에 수줍게 두근거리는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는 소식이었다. 두 시간 넘어 차를 몰았다. 하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꽃이 벌써 다 떨어져버린 것 아닌가. 가지마다 연두색 어린잎이 무성히 돋아나고 있었다. 초봄부터 시작된 이상 고온 탓에 예
1.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티브이와 잡지와 온라인에서 네온사인처럼 번쩍이는 메시지들. 그 현란한 세 치 혀에 설득되어 필요도 없는 물건에 돈을 쓸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취급을 받아도 싸기는 하다. 멀쩡히 잘 사용하던 기존제품에 싫증을 느끼게 만들고 새 물건을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일종의 요물이니까. 밤을 낮 삼아 아이디어 짜내는 광고인들이 이런 평가를 들으면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광고사에 아로새겨진 업보가 분명하다. 특히 2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차처럼 질주하던 19세기 중엽 이후가 그랬다. 미국과 유럽의 광고산업 규모가 커지고 광고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 부작용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허위와 과장을 써서라도 물건만 팔고 보자는 판매지상주의가 도를 넘은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이 광고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1850년대 미국 대중신문은 수익의 3분의 1 이상을 광고수익으로 벌어들였다. 이런 재정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신문발행인들에게조차 일종의 ‘필요악(必要惡)’ 취급을 받았다. 광고의 이러한 처지는 순수 예술과 명백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