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그를 생각하면 ‘인도’가 떠오른다.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진즉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사람을 90년대 이후 불어온 인도 열풍에 편승한 상업주의 작가라고 의심해왔다. 그가 쓴,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인도 여행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중영합적인 책이구나"라는 심증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딸아이 보라고 도서관에서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대신 빌렸다. 반납하기 전에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심심풀이로 들쳐봤다. 의외로 흡인력이 강했다. 술술 읽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마음이 '덜컥' 흔들리는 듯 충격을 받았다. 47페이지 '세 가지 만트라' 대목이었다. 왜 그랬을까. 류시화가 명상 수행을 위해 북인도 히말라야 산록을 찾았을 때 이야기다. 산모퉁이 납작바위 위에서 명상에 빠진 요기(요가수행자) 싯다 바바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 순간 작가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완벽한' 스승임을 직감하고 반 어거지로 제자가 된다. 문제는 이 스승이 제대로 된 명상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물 길어오기, 밭 갈기, 땔감용 소똥 주워오기 등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온종일 일만
1. 한국에서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언론사는 어디일까. 조선일보다. 콘텐츠가 풍부하고 보도가 균형 잡혔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구제불능의 극우매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안티조선' 운동이 그러한 시각의 상징이었다. 이 신문이 대형 사고를 쳤다. ‘성매매 관련 기사’를 쓰면서 조국 교수와 딸의 삽화를 함께 내보낸 것이다.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참담함을 토로했다. 하물며 이런 모욕을 당한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자칭 ‘1등 신문’이 공개적 인격살인을 저지른 게다. 검찰개혁 국면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조국과 그 가족에 가해진 보수 언론의 광기어린 공격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집요했다. 그의 법무부 장관 임용설이 제기된 지 3개월 만에 “조국”을 키워드로 하는 온·오프 보도가 100만회를 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허위, 과장, 왜곡이 세상에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번의 조선일보 보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수준이다. 인간성과 가족의 마음에 대한 난도질이기 때문이다. 보도가 나간 지 두 시간 반 만에 해당 신문이 그림을 바꾸고 사과를 내놓기
1.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에 당선되었다. 한나라당과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으로 이름을 바꾸는 동안 당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올드보이 (혹은 올드걸)들이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한국 정치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드라마가, 그것도 극우의 본산이라 불리는 정당의 안방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를 당 대표 자리까지 밀어올린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무엇인가.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젊고 변화지향적인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변화의 방향성이 옳고 그른 것과는 별개로). 진보와 보수 정당 모두에서 이념적 명료성과 특히 기간당원 육성시스템이 전무한 것이 해방 이후 정치사였다. 정당의 뿌리가 취약하고 지속가능의 구조틀 자체가 부재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빈약한 정당정치의 실체가 이준석 식 이미지정치의 승리를 가져온 것으로 판단된다. 여러 이유로 이준석 신드롬의 의미를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이미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간과하면 안 된다. 최순실의 치마 속에서 놀아난 박근혜가 어떻게 너끈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던가. 도둑정치의 주범 이명박은 또 어떠했던가. 지금 이준석이 격발시킨 세대교체의 쓰나미는 향후 국민의힘 대선후
1. 1999년에 부산에 왔다. 오랫동안 집에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두 가지를 구독했다. 종이신문 전성기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의무감이 컸다. 부산 하고도 해운대에는 두 신문의 독립지국이 없었다. 동아일보 지국에서인가 위탁배달을 했다. 밀림처럼 고층아파트가 빽빽한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한겨레나 경향 받아보는 집이 100 곳도 안 된다는 한탄 같은 한숨을 (일찌감치 안면을 튼) 지국장한테서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침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신문을 펼치면 훅 풍겨오는 잉크냄새가 좋았다. 물론 더 좋은 건 예기(銳氣)로 번쩍이는 헤드라인과 지사적 풍모가 물씬한 칼럼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일이었다. 대학교수가 비교적 자유로운 게 출근시간이다. 그렇게 술렁술렁 신문을 넘기는 것이 하루를 여는 나의 즐거움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신문산업을 둘러싼 미디어생태계가 눈이 휙휙 돌 정도의 속도로 급변했다. 종이신문의 퇴조는 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쓸쓸하고 아픈 것은) 두 신문의 성격 자체가 크게 변질했다는 게다. 몇 년 전에 한겨레를 절독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는 결국 경향까지 끊었다. 명실상부 진보언론을 대표하는 두 신문에
1. 매회 챙겨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위에서 하도 재미있다 해서 가끔 시청했다. 사필귀정, 거악응징 드라마의 쌍두마차 《빈센조》와 《모범택시》 말이다. 전자는 노골적 B급 정서를 지향하는 블랙코미디. 황당한 스토리 전개가 가관이다. 난데없이 (한국 혈통) 이태리 본토 마피아 변호사가 등장한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양쪽에서 줄줄이 사람을 죽여도 수사기관은 하품만 하고 있다. 팩트 체크를 생각하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다. 후자는 요 몇 년 사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제 사건에서 주로 모티브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모 웹하드 기업 회장의 엽기잔혹 스토리 같은. 상대적으로 좀 더 사실적인 설정인 셈이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인물 설정, 미장센, 대사에서 모두 노이즈가 강하다는 거다. 특히 《모범택시》는 등장인물 모두가 시작부터 끝까지 그저 빽빽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다. 늦은 밤에 보고 나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다. 잔인한 장면 기준으로는 《빈센조》가 한 수 위다. 특히 최종회에 등장하는 ‘참회의 창’인가 뭔가 하는 살인도구는 (끔찍을 넘어) 참신하다 싶을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2. 사회학자 겸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
- 말을 하는 가축, 흑인 노예- 미네소타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만장일치 유죄평결이 내려졌습니다. 무저항 상태의 흑인 조지 프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한 혐의로 말이지요. 이 같은 인종차별문제는 총기문제, 의료보험문제와 함께 미국의 계급적, 구조적 모순을 상징하는 3대 암종(癌腫)으로 불립니다. 오늘은 인종차별의 근원을 되짚어 보는 광고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18세기 중반 이후 미국 남부의 주요 신문에 빈번이 등장하는 광고 유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사고파는 ’것이지요. 이들 콘텐츠는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생각과 양심을 지닌 인간을 가축처럼 사고파는 습속이 이렇게까지 성행했던 곳은 이 나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북아메리카 땅에 최초의 흑인노예가 도착한 것은 1619년 8월.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 스무 명을 싣고, 대서양 연안 버지니아 주 포인트 컴포트(Point Comfort)에 화물선이 도착한 거지요. 이것이 미국 노예제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유럽 산(産) 공산품과 서아프리카 지역 현지 노예들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곧 인력이
1. 기적은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패배의 외형이 아니라 내용이다. 부산 시장선거의 경우는 거의 더블 스코어로 졌다. 이번 선거는 극우정당의 대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대 패배인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른바 MB의 정통 후계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정부와 민주당이 싫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나온 사람들은 반대정당에 몰표를 던졌다. 탐욕이 승리한 선거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언론과 검찰이 문제라고까지 말한다.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시각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청와대에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 실망하고 분노한 철저한 응징 투표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적 거부에는 백약이 무효였던 게다. 지난 지선, 대선, 총선과 비교해서 가장 극적인 민심이반이 일어난 곳이 2, 30대 청년 계층이다. 특히 20대 남성 유권자의 경우 70퍼센트 이상이 국민의힘 후보에 표를 던진 걸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 모든 지역구 단위에서 처참한 패배는 청년층의 이 같은 투표 결과로 봐야 한다. 2. 선거 전 여론조사를 통
- 연재를 시작하면서- '광고로 세상읽기'란 제목으로 시리즈의 문을 엽니다. 매 회마다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드는 광고 작품을 선택한 다음 그에 얽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속살을 살펴보려 합니다. 많은 이들이 광고를 단순히 제품 팔고 브랜드 이미지 높여주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광고는 그런 마케팅 수단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 모듬살이에 중요한 영향 미치는 엄연한 사회적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현대인들에게 샤워와 면도 그리고 양치질 습관을 처음 심어준 것이 바로 광고의 힘이었습니다. 미국의 광고학자 셧 잘리(1990)는 지적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고유한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을 형성하는데 있어 광고가 매스미디어 못지않은 핵심 역할을 한다고. 또 한 가지 빠트릴 수 없는 것은 광고가 ‘세상의 거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입고, 쓰고,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되비춰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광고는 인간을 둘러싼 당대의 환경들이 교집합된 일종의 종합적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현란한 설득기술의 장막 뒤에 정체를 숨긴 광고의 심층적 의미를 추적하는 작업이 재미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무
1. "어차피 한 두 달이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서 물 흐르듯이 지나가겠지". 일파만파로 충격이 확산되고 있는 LH 땅투기 사건에 대해서, 해당 회사의 직원이 올렸다는 글이다. 이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조직의 구성원이 오랜 역사를 통해 체화(體化)시킨 일종의 확신이다. 해방 되기 4년 전인 1941년 ‘조선주택영단’에서 출발했다. 이후 ‘대한주택영단’으로 개명했다가 ‘대한주택공사’, ‘토지금고’, ‘한국토지개발공사’, ‘한국토지공사’ 그리고 2009년부터 현재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러한 80여년이 흐르는 동안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이 조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민간 토지를 수용하고 그것을 건설업체에 불하하거나 직접 주택을 지어 공급하면서, 배후권력인 국토교통부의 힘을 빌린 한국 토건세력의 성층권으로 군림했다. 거래 업체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갑질로 유명했다. 선의의 토지 수용자들에게는 일방적 전횡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내·외부 개혁을 실행한 적이 없다. 위법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저 회사 사람들이 이번 사태도 '늘 그래왔듯' 찻잔
미쓰비시 기금교수로 하버드 법대에 채용된 존 마크 램지어.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매춘부(prostitute)" 라고 칭한 논문(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 :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뒤따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박유하 교수가 나섰다. 램지어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이 교수의 주장이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자기 페이스북에서 밝힌 것이다. 텍스트에 기초한 접근은 모든 객관의 기초다. 그럴진대 논문 자체를 안 읽었다면서도 해당 주장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저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크레스웰(Creswell, 1998)의 지적대로 역사적 연구에서는 해석학적 입장, 즉 사료(史料)에 대한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확보되어야 할 것은 자료 수집과 분석에 있어 최소한의 실증적 근거다. 학문으로서 역사학이 개인의 소감을 나열하는 ‘에세이’와 구별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지난 2014년 박유하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통해 점화시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