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 중 특별한 장면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으며 추억을 되살릴만한 사진이라도 한 장 있다면 더 또렷해진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참가했던 아·태잼버리 대회가 그 중 하나인데, 충청도 소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외국인과의 교류 경험을 처음으로 선물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1982년 덕유산에서 개최되었던 아·태잼버리 대회는 아시아와 태평양 주변 국가의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대원들의 축제였다. 그 때도 날씨는 더웠지만 덕유산 숲 자락의 그늘은 시원했고 밤마다 진행되는 공연들은 느긋하게 즐기기에 충분했었다. 덕유산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은 시원했는데 어떤 프로그램은 계곡의 시원한 물가에서 진행되기도 했었다. 난생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프로그램과 외국 대원들과의 교류는 설레는 기대로 다가왔다. 어린 날의 그러한 느낌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추억을 할 때마다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대만에서 온 대원들과 찍었던 사진을 가끔 가족들과 들여다보면 41년 세월이 무색하게 생생하다. 41년을 돌아 새만금에서 개최되는 세계잼버리 대회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뉴스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내가 어릴 적 경험했던 아름다운 추억과는 거리가 먼 소식뿐이었다. 광활한 벌판에 들어선 텐트는 흡사 난민촌과 같았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들이 생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열악한 화장실과 샤워실, 질퍽한 바닥과 그 옆에서 쓰러진 듯 쉬고 있는 대원들을 보니 이것이 2023년의 대한민국인가 싶었다. 위생은 더 열악해 보였다. 모기와 벌레에 물린 대원들의 팔과 다리는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짐작하건데 그동안 쌓아왔던 K-문화에 대한 좋은 인식이 한 순간에 날아갈 듯하다. 실시간으로 상황이 전파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4만 여명이 겪는 불편함과 고통은 단시간 내에 지구촌에 전파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무더위가 한창이다. 잼버리대회에 참가한 대원중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시급하다. 이들을 호텔이나 휴양시설로 이동시키고 대회 프로그램을 최소화 시켜 조기에 잼버리대회를 종료해야 한다. 대회 종료전 까지라도 화장실과 샤워실을 비롯한 편의 시설을 더 확충하고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충분하게 제공해야 한다. 넷플릭스에서 방송되었던 오징어게임의 대사가 생각난다. “이러다가 다 죽어...”
경기도가 풍수해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한탄강·탄천·안양천·공릉천·흑천 등 5개 지방하천의 국가하천 승격을 정부에 건의했다. 글로벌 기상이변과 맞물려 재해·재난이 상시화하고 이른바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상습적 하천 범람과 수해는 기존 눈높이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지방정부의 역량만으로 방책이 어려운 규모의 지방하천은 모두 국가하천으로 승격해 재해예방책을 세워야 한다. 오랜 관습에 빠져서 안일하게 대처할 때가 아니다. 경기도에는 국가하천 20개, 지방하천 498개가 있다. 국가하천 정비율은 81.3%인데 반해 지방하천 정비율은 53.1%로서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지방하천 정비사업은 사업비의 100%를 도비로 충당하지만, 국가하천이 되면 정비 및 유지관리 등에 전액 국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해관리에서 차원이 다르다. 100년, 200년 만에 한 번 일어날 법한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조기 방재가 훨씬 더 강조되는 추세를 고려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방재예산을 전향적으로 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지자체 관할 지방하천의 지류·지천 정비사업까지 국가하천 사업으로 승격하고, 국가하천과 연계성이 높은 지방하천에 대해서도 정부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국가하천은 유역면적 합계가 200㎢ 이상인 하천, 다목적댐 하류 및 댐 저수지의 배수 영향이 미치는 상류의 하천, 유역면적 50~200㎢이면서 인구 20만 명 이상의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하천 등을 지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경기도가 국가하천 승격을 요청한 한탄강의 경우 강원 철원군에서 경기 연천 전곡읍까지 유역면적이 2085㎢다. 또 지류인 신천이 2020년 1월 국가하천으로 승격됨에 따라 하천 체계상 승격이 필요하다. 또 용인 기흥구 청덕동에서 서울 강남구까지 흐르는 탄천도 유역면적이 303㎢이며 2개 이상 시도를 경유해 국가 차원의 통합적 하천 관리가 요구된다. 상습 침수가 발생하는 양평군 흑천 역시 유역면적이 314㎢ 이상이다. 의왕∼안양 안양천과 양주∼고양 공릉천은 유역면적이 200㎢ 미만이지만 다른 국가하천 지정 요건인 ‘인구 20만 명 이상 도시를 관류하는 하천’을 충족하고 있다. 집중호우가 일상화될 정도로 비와 관련된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침수, 범람 등 하천과 관련된 자연재해가 확산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하천과 관련된 자연재해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동안 국가의 하천 관리정책은 소걸음을 지속해왔다. 이는 철저하게 중앙집권적 마인드에 묶여 지방하천의 국가하천 승격기준을 시류에 맞춰 개선하지 못한 어리석음의 여파다. 재해 예방에 들어가는 재원을 ‘비용’으로만 치부하는 전근대적인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대증요법 만능주의에 젖어 국민의 인명과 재산이 크게 망가지고 난 다음에야 복구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는 바보짓이 계속되는 것도 그 케케묵은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국가의 으뜸 존재 이유이자 애민으로 이어지는 ‘투자’다. 제발 과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예산 집행에 인색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소 잃고 뒤늦게 외양간 고친 일’을 잘한 정치·행정으로 자랑질하는 허망한 저질 쇼는 이제 멈출 때가 됐다.
소설이나 영화를 읽거나 보다보면 메시지와 상관없는 것들은 지나치기 마련이다. 이른바 사각지대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 지점이 메시지보다 더 비중 있게 기억되기도 한다. 어떤 소설 혹은 영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 채. '인간은 폭력성의 소우주'란 말도 그런 것 중 하나다. 메시지를 떠받치는 말이 아니어서 지나쳤다가 개별로 기억한 것이다. 여운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말 그대로 인간은 폭력적 존재인 까닭이다. 인간은 알게 모르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말을 꺼내자마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한 친구는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과 인간과 투쟁하면서 살아왔기에 폭력이라는 DNA가 몸에 배어있다"고 말한다.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테면 인간이라는 동물의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라는..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좋으신 분들이다. 늘 젠틀하시고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도 많이 해주신다. 그분들로 인해 힘과 위로를 얻는다. 올해 나는 운이 좋아서 좋은 학부모님들만 만났다. 문제는 운이 나쁘면 죽음을 결심할 수 있을 정도로 괴로워진다는 거다. 일당백을 하는 진상을 만나면 버틸 수가 없다. 진상 학부모 감별기 같은 건 없지만 아래 사례 정도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진상 축에 들어갈 수 있다. 그저 한 통의 메시지와 전화를 했을 뿐인데 수십 명에게 연락받는 교사는 정신과 약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 ‘선생님 시간되실 때 전화 주세요.’ 별거 아닌 내용이지만, 이 내용을 받는 순간 심장이 덜커덕거린다는 교사가 많다. 교사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은 대체로 부정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다. 역으로 교사가..
지난 3일 오후 6시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앞과 건물 1~2층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신림역 흉기’ 사건이 벌어진 지 2주 만의 일이다. 20대 범인은 승용차를 끌고 백화점 앞 인도로 돌진, 보행자들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여성 피해자 1명은 뇌사가 우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백화점으로 들어가 시민들을 향해 흉기를 마구 휘둘러 9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총 14명이 죽거나 다친 것이다. 사건 2주 전에도 서울 신림동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졌다. 30대 피의자는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20대 남성 1명을 10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30대 남성 3명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이번 분당흉기난동 사건은 신림동 훙기 난동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 신림동에서..
꽉 막힌 남북관계. 그래도 소망을 버리면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과거 남북간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의 추억을 나눈다. 2006년 4월 말, 평양 역포구역 고구려 고분군 진파리 4호분 앞에 남북의 역사학자, 문화재 전문가들이 모였다. 남북 학술교류단체인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주관하여 유네스코에 등재된 고구려 고분군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주장으로 고분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의식을 갖는다. 안주는 유 청장이 그린 ‘돼지머리’ 그림, 술은 페트병의 물이다. 유 청장이 먼저 절을 하고 제사상 앞에 달러 지폐를 놓았다. 다음은 최광식 교수, 그리고 남측 참가자 모두가 절을 했다. 유 청장의 명령으로 모두 헌금을 해야 했다.(모두가 싱글벙글 웃음 꽃이 활짝 폈다!). 모인 돈을 고분 개복작업을 위해 일한 북한의 작업 인부들에게 유..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이 있지요.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항상 말조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옛 선인들이 삶의 지혜로 여기고 지켜온 지혜 중에도 ‘신언(愼言)’은 참으로 소중해 보여요. 말을 삼가지 않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 ‘쓸만한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즐기는 도박 가운데 투견(鬪犬)보다 잔인한 노름은 없을 거예요. 불법 투견장 단속 뉴스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걸 보면 투견은 마약 같은 매력이 있는 모양이에요. 개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 물어뜯는 장면을 도박으로 삼는 불법이 극비리에 끈질기게 유통되는 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현상이죠. 물리고 찢겨 악귀처럼 만신창이가 되는 개들을 보며 투기꾼들은 과연 어떤 희열을 느낄까요? 투견장의 광분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는 아직도 국민 가슴을 후벼 파는 쇼킹한 뉴스가 터진 후에야 대응책을 찾는 행정 미개국에 살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의 절규가 터져 나오고 이를 여론조사로 제시하고, 언론이 문제제기해도 당국은 응답하지 않았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이후 교사권리 보호를 위한 다양한 해결이 제시되고 있으나, 사후약방문식이며 각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는 국회에 교원보호 입법청원으로도 쏟아지고 있으며, 이미 5만 명을 넘어 국회상임위 논의를 앞두고 있는 것도 다수라는 전언이다. 이는 교육당국의 늑장 대응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국회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일 교권침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검토, 2일 민원사전예약제 등을 담은 ‘교원의 교육활동보호를 의한 우선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지난 1일 교육현장 악성 민원에 대해 교육청이 기관적 대응을 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러한 광역교육청단위의 대책과 함께 이제는 교육부 차원의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교사 보호대책 수립이 긴요하다. 큰 사건 전에는 반드시 예감할 수 있는 징후들이 나타난다. 철저한 점검과 이슈관리를 통해 방지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30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랬고, 최근의 오송역 지하차도 수몰사고도 마찬 가지다. 정부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발생의 징후를 신속히 포착해 대응하는 통합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본지는 지난 5월 스승의날 특집기획시리즈로 무고로 인한 교권침해를 집중 조명했었다. 교사노조에서도 1만 여명이 넘는 교사를 대상으로 광범위 여론조사를 실시해 교육현장의 문제점과 교사지위 향상 문제를 공론화 했으나, 교육당국은 응답하지 않았다. 문제가 드러나고 대안도 제시되었는데 왜 적절한 정책 대안이 제시되지 못했는지 통탄할 노릇이다. 각론적 대응책에 머물지 말고 교육부가 앞장을 서서 교육철학적, 종합적 교사보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노무현정부 국정홍보처는 언론보도에 신속대응하기 위해 정책기사 수용대응 시스템을 개발했다. 언론의 바른 지적과 비판은 정부가 즉각 정책으로 수용하고, 사실과 다른 보도는 오보 대응하는 것을 뼈대로 했다. 정부부처는 할 일이 많아졌으나 정확한 정책정보가 유통되고, 그것에 기반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가교역할을 했다. 이명박정부가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면서, 이 시스템도 폐기되었다. 언론과 정부의 피드백 기능이 약화된 것이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위기징후를 신속히 발굴하고 해결하도록 행정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 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경기도심리지원센터가 개소한지 2년도 안돼 7월말 폐쇄됐다. 센터가 개소하자마자 심리상담신청이 몰려왔고, 채 2년이 안되는 동안 개인상담을 받은 내담자들만 1200명이 넘었었다. 센터 위탁계약기간이 3년이었음에도 왜 2년도 안돼 폐쇄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경기도민으로서 경기도내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예결위 J의원과 보건복지위원장에게 묻고자 한다. 첫째, 경기도청 정신건강과에 묻는다. 담당부서로써 왜 센터를 지키지 못하고 폐쇄했는가? 운영되는 동안에도 조례에 있는 아동청소년 상담과 개인심리상담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데, 조례에 명시된 심리지원센터의 기능들이 온전히 작동될 수 없도록 하였던 것은 무슨 이유인가? 또한, 정신건강센터와 심리지원센터의 일이 중복된다고 하였는데, 조례내용과 업무를 보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는 2018년에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치크와 대니얼 지블랫 두 명이 쓴 책이다. 이들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점차 무너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목격하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 극우적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는 기존의 미국 사회 질서와 좌충우돌 갈등을 유발하고 대립을 극대화했다. 정치적 반대파를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적폐로 몰아 경제적 불평등으로 불만이 가득했던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사회의 전면으로 이끌었다. 헌법이 공인한 국민의 기본 권리를 부정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기본인 상호 존중, 관용의 정신은 실종되고 혐오가 극을 이루는 트럼프의 미국은 분명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가 실현된 국가가 아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