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 난(9월 7일 자)을 통해 '서사 부재 시대의 비극'을 쓴 바 있다. 그런데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서사의 위기』가 8일 뒤인 15일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이 먼저 출간되었다면 읽은 뒤 보다 풍부하게 글을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임이 인다. 필자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흉악 범죄가 유행이다시피 하는 현상을 서사의 부재에서 찾고자 했다. 한 선생이 책의 근저로 삼고 있는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근대는 (대)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통한 개인의 출현을 근간으로 한다. 근대 사회는 공동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특히 근대 후기로 접어든 한국의 경우 학력계급사회가 되어 개인의 파편화·원자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카페가 건물마다 하나씩 들어서 있는 것은 잃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작용하는 것으로 필자는 보았다. 이는 서사 부재 시대라는 강력한 반증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한 서사의 부재를 말했다면 한병철 선생은 SNS를 분석의 틀로 삼아 서사의 위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분석을 압축하면 페이스북 등 SNS는 서사가 아닌 셀링 스토리(Selling Story)다. 이야기가 상품 판매를 위한 스토리에 지나지 않아 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사의 위기』에 따르면 서사는 8가지 특징으로 정리된다. 이야기하다, 자기 존재, 삶의 주체, 과거와 연결, 경험의 축적, 타인에게 공감, 공동체를 이룸, 방향성 있음 등이다. 반면에 스토리는 이 서사와 정반대다. 설명하다, 자기 광고, 상품의 소비자, 과거와 단절, 정보의 나열, 타인과 정보교환, 커뮤니티를 이룸, 방향성 없음 등이다. 서사와 스토리는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를 풀어보면 SNS는 궁극적으로 자기 광고를 위해 기능하기 때문에 정보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이야기가 아닌 설명만이 필요하다. 경험의 축적은 쓸모없는 것이기에 과거와의 단절은 필연적이다. 타자와는 정보교환을 위한 커뮤니티로 묶여만 있으면 그만이다. SNS 스토리에 일정한 방향성이 존재할 리 없다. 공동체 지향이 아니므로 어떠한 의미도 생성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는 디지털 문명에 따른 SNS 미디어 시대다. 이를 떠나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SNS가 개인의 시대에 걸맞는 신무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공동체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현실화할 수 있다. 그러나 SNS는 한 선생이 '인문학의 아버지'로 뒤늦게 부상한 발터 벤야민에 기대어 분석한 『서사의 위기』에 따르면 오히려 해악이다. 개인을 광고화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학력계급사회 고착화 등으로 불평등이 심화하는 구조적 모순 때문에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수위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서사가 존재할 리 없다. ‘묻지마’ 칼부림 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게다가 SNS는 한 선생이 지적한대로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나 SNS에 타자와의 만남을 통한 공동체 지향의 서사도 생각보다 많은 게 사실이다. 오프라인의 카페처럼. 이 오아시스를 『서사의 위기』가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한 점 희망이라 해도 우리는 기대를 걸어야 하지 않을까?
5호선 연장사업은 기여도의 차이가 크지만 인천시와 김포시 사이의 초극단적인 지역 이기주의에 의한 노선갈등으로 사업 추진상황은 2022년 11월 이후 제로 상태에 놓여 있고, 사업 추진 자체가 매우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이라도 김포시와 인천시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서로 백번 양보하여 경제성과 기여도 등 균형잡힌 노선안에 전격적으로 합의한다면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여 5호선 연장은 신속히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김포와 인천시민들에게 더 많은 기쁨과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향후 인천지하철 2호선 예타대응 용역 등 상생하여 인구 350만 명의 서부권 통합도시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너무나 아쉽게 5호선 김포·검단 연장사업은 4차 국가철..
수원시가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열린 ‘2023년 2분기 당정 정책간담회’에서 이재준 시장이 박광온(수원시 정)·백혜련(수원시 을)·김영진(수원시 병)·김승원(수원시 갑) 의원 등 수원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수원시에 닥친 재정 위기를 설명한 뒤 이를 극복하기위해 수원시 관련 국비 확보 등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반도체 경기 악화로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5% 감소했다”면서 “삼성전자가 수원에 내는 법인지방소득세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내년 재정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정부는 수원시 뿐만 아니다. 경기 침체로 지방세가 크게 감소하면서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이 재정위기에 처했다. 경기도의 경우 1분기 세수는 전년 대비 8.6%(3405억원) 감소, 3조6287억원 규모로 줄었다. 국세도 줄었다.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같은 기간(111조1000억원)보다 24조원이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지방교부세도 감소,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정부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전기한 것처럼 수원시의 경우 반도체 경기 침체로 삼성전자 이익이 급감, 세수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7일 2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이익은 약 6000억 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95% 이상 감소한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면서 내년에 삼성전자가 수원시에 낼 지방세는 지난해 대비 20%도 채 안 되는 400억 원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수원시는 국·도비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기위해 노력하는 한편 긴축재정 등 세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정에서 많은 사업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그 가운데 문화예술 관련 예산도 대폭 줄었다. 대표적으로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야조(夜操)’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재즈 페스티벌도 하루로 일정이 축소됐으며, 예술인 기본소득도 지급되지 않는다. 화성 낙성연도 하지 못했다. 문화예술행사와 축제가 주는 유·무형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재정상의 어려움이 닥치면 제일 먼저 문화예술 행사 예산을 삭감한다. 행정관청에서는 아직도 문화예술사업이 소모적, 전시적이란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원시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예술 예산의 비중이 매우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7월 12일 수원예술단체총연합회와 수원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 공동주최한 ‘예술문화 자유토론-수원 예술문화의 현재, 말해봅시다’ 토론회에서 지역 예술인들은 예산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민예총 박설희 회장은 “수원시 홈페이지의 2022-2026년 중기 지방재정계획엔 체육 포함 문화 및 관광분야에서 2022년 투자계획이 약 1927억 원인데, 2026년엔 1531억 원으로 감소한다”면서 중장기 문화예술 비전과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정책 수립’을 주문했다. 이 자리에서 윤경선 시의원(진보당, 금곡·입북동)이 한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먼저 행복해야 시민도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흘려듣지 말길 바란다.
1887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나 평양의 일신고보를 졸업했다. 1904년 하와이로 노동이민 갔다가 본토로 옮겨 도산 안창호의 공립협회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에서 도산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하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토쿄를 거쳐 귀국했다. 국권회복이 목표였다. 1907년. 스무살이었다. 100년 전, 뜻있는 약관의 청년들은 대개 이와 같았다. 1909년 1월.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황제와 함께 평양에 온다는 정보를 듣고 동료들과 평양역에서 대기하다가 도산 안창호의 '전략적 만류'를 받아들여 연해주로 떠났다. 그 해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그 '동양 제1적'을 쏘아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목표를 이완용으로 바꿨다. 백범일지 '민족에 내놓은 몸' 편에 보면, 이재명과의 인연이 상세히 나온다. 의사는 미국서 돌아와 오인성이라는 여교사와 결혼했다. 부인은 남편의 계획을 듣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견으로 다투다가 오발이 발생했는데, 집밖에서는 그 총성을 심각하게 여긴 것 같다. 동네 유지가 마침 그 마을에 와서 머물던 백범에게 청년을 데리고 왔다. 백범이 타일러서 총을 챙겼고, 함께 있던 노백린 장군이 "서울에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거인은 얼마 후 그 해 연말, '명동성당 앞 이완용 암살미수 사건' 뉴스를 접하고, 그 의로운 청년이 이재명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망연자실했다. 후회막급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도산이나 백범이 정말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이다. '잘못된 만남'이었다. 이 의사는 네델란드 국왕 추모식이 명동성당에서 열리는데 이완용이 참가한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렸다. 이완용의 허리와 어깨를 찔렀다. 인력거가 쓰러지면서, 50 넘은 초로의 '국적(國賊)1호'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달려들어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당연히 목숨을 끊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완용은 순사들의 호위를 받아 대한의원(지금의 서울대학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총독부는 긴급히 일본에서 심장수술의 1인자를 불러들여 이완용을 살려냈다. 그후 장장 17년을 더 살았다. 이재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는 흉행(凶行)이 아니라, 의행(義行)을 한 것이다. 2000만 민족이 나의 공범이다. 너희 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나의 충혼을 빼앗지는 못한다. 나는 죽어서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 것이다." 1910년 9월 30일. 서대문 형무소. 먼저 떠난 안중근선배처럼 의연하게 최후 진술을 마치고 순국했다. 역사에 남을 명연설이었다. 스물 네살. "국적 이완용은 저렇게 살아있는데, 왜 우리 가장은 죽어야 하느냐?", 미망인이 소리치며 통곡했다. 추신:이완용은 오늘의 총리였다. 광산사무국 총재를 겸했다. 친일재산환수팀이 파악한 그의 땅은 여의도 면적의 7.7배였으며, 광복 전에 일본지주들에게 매각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국가가 환수한 땅은 그가 차지했던 총면적의 1%도 안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반격하듯 국가가 환수한 그 땅의 환수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땅을 되찾은 뒤 외국으로 도망쳤다. "그물도 치기 전에 물고기가 먼저 달려들어왔다." 1910년 8월 합방 전날,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 미도리가 밝힌 비사다. 이완용이 일제에 강제합병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경기도에 화장장 건립을 시도했다 중단한 경우는 참 많다. 연천·양주·포천·가평·양평·하남·부천·김포·안산·여주·이천·화성 등 하나같이 지역사회 반대에 가로막혀 포기하고 말았다. 그 결과 ‘반대하면 안 한다’라는 그릇된 학습효과만 남겼다. 고난의 길이 분명한데, 양주시에서 다시 화장장 건립에 나섰다. 기왕에 시작했다면 이번엔 정말 성공해야 한다. 과연 양주시가 받아볼 성적표는 화장장 건립 성공 또는 실패 사례 중 어떤 것이 될까? 화장장에 관해 나름의 견문과 경험을 쌓은 필자는 실패 사례와 쓴소리를 많이 챙겨 들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첫째, 기본이 되는 화장장과 화장로를 제대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장장 건립에 나섰던 지역의 관계관이 화장장 한번 가보지 않은 걸 자랑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또 화장장 건..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경기도 지역의 전세 사기 시한폭탄이 또다시 작동을 시작한 낌새다. 연초에 불거진 화성 동탄 사건에 이어 최근 수원에서도 피해 고소장이 잇따라 접수되는 등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이 폭발 직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피해자 대책에만 몰두할 뿐 제도적 안전장치 등 예방책 마련을 등한시한 처참한 결과물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한 실효적인 예방대책에 역량을 쏟아부을 때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전세 사기 관련 고소장이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현재까지 53명으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됐고, 피해 금액도 70여억 원에 이른다. 고소인들은 대부분 임대인에게 1억 원 대의 임대차 계약을 맺었으나 임대인이 잠적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
한 고등학생은 이번 추석 명절에 받게 될 용돈을 기대하는 사연에 대해 털어 놨다. 이유는 ‘사설토토’라 불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쓸 돈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 경기에 불법 도박업체가 판돈을 걸게 하면서 불법 스포츠 도박시장과 청소년 도박문제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2022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박을 처음 접한 평균 연령은 11.3세로 집계됐고, 초등학생 10명중 4명은 도박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리고, 더 많은 청소년들이 불법도박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사행사업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으며, 인터넷과 결합돼 접근성이 높아져 중독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쉽..
찰거머리처럼 질긴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들녘에 벼가 고개를 숙이고, 농민들의 추수에 보답하거나 기다리고 있다. 남한 농민들에게는 연례행사로 벼수매 문제가 관심사항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북한의 작황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2017년부터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2020년에 440만 톤을 기록하고, ’23년 상반기 북한의 대중 쌀 수입(10만 톤 이상)이 2019년 동기간 대비 약 5배 증대한 것을 들어 식량난을 부정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금년 7월까지 아사자 240건 발생을 근거로 최악의 식량위기 발생을 추정(국정원)하는 등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북한 식량난을 분석하는 접근방법이다. 북한의 ‘기근’원인을 주로 공급(식량 가용량 감소)의 문제 또는 접근성(식량획득력 감소) 문제로 인식함으로서 북한주민이..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유튜브 영상 중에 ‘카푸어’ 관련 내용이 올라오는 채널이 있다. 영상에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뛰어넘은 차를 산 사람들이 나와서 본인의 차를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을 차에 올인한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데, 드물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슈퍼카를 구입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 본 영상에는 20대 초반 대학생 A가 독일 슈퍼카를 타고 나왔다. 차량 가격이 카푸어 마인드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유튜버가 A에게 부모님 찬스를 쓴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본인이 차 리스 비용을 지불한다고 했다. A가 다니고 있는 대학은 서울권 4년제가 아닌 잘 들어보지 못한 학교였다. A는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A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과 모바일 앱을 만들어서 파는 중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개발자로서 몇 억대의 실 수령액을 받고 있었다. 일반 직장인은 평생 연봉으로 받기 어려운 금액이고, 사회에서 선망하는 전문직들이 오랜 수련 끝에 버는 돈을 어린 나이부터 벌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문득 A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주위로부터 선망 받는 학생이었을까 궁금해졌다. 학교에서는 높은 확률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인정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성공한 인생이 된다. 분위기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학교에서 주로 하는 일이 공부인데 공부 외의 일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보다는 컴퓨터를 많이 했다고 하는 A의 말로 미루어봐서는 훌륭한 학생으로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인데 학교는 제자리에 서서 부적응하고 있다. 학교 공부를 잘하면 뭐가 될 것 같지만 되지 않는다는 건 우리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제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문과 출신이면 취직이 담보되지 않은지는 꽤 되었다.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던 사람들도 결국에 전문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교사나 공무원의 인기는 없어진지 오래됐다. 대학이 직장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직장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잘하는 분야를 찾아서 어릴 때부터 그 길을 파야 한다. A 같은 친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파고들 분야를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 특성이라고 떠도는 글을 보면, 10대 아이들 10명 중 9명이 미래에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는 장래희망에 공무원이 대세였는데 그것도 건강하지 못한 사회였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는 아이들을 만들어 냈으니 사회의 병증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자녀를 키우는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공부 말고 다른 걸 시킬만한 게 없다고 했다. 부모인 자신들이 평범하게 공부해서 직업을 가졌기에 아이들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트랙에서 벗어나는 위험부담을 빼고서라도 트랙 밖에 어떤 삶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선택이 어려워진다. 학교가 해야 할 역할이 아이들에게 교과서 공부 말고 다른 길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메디컬 고시로 불리게 된 수능에 모든 아이들을 갈아 넣고 소수의 몇몇만 성취감을 느끼는 시스템을 손보지 않는다면, 학교는 영원히 현실과 괴리된 채로 떠돌 수밖에 없다. 이런 학교 환경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존중이 피어나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학교의 사회 부적응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수원은 세계에서 선진 화장실 문화를 이끈 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그런데 경기도의 학교들 가운데 아직도 화변기(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변기)가 남아있는 학교가 무려 4분의 3이나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부 아이들은 학교에서 용변을 보지 못해서 억지로 참아야 하는 고통까지 받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하루빨리 전면 개선해야 한다. 아이들의 기억과 자존심에 더 이상 멍이 들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무소속 김남국 의원실 등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지역 전체 학교 2526곳 중 아직도 화변기가 설치된 학교가 75%(1896곳)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화변기 설치 비율이 50%가 넘는 학교는 160곳이며, 80% 이상인 학교도 9곳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성의 한 초등학교는 무려 92.5%, 부천의 한 고등학교는 88.7%에 달한다니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화변기가 하나도 없는 학교는 630곳으로 파악됐다. 다만 전체 변기 중 화변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경기도가 전국 평균보다 약간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학교 화장실의 화변기 비율은 19%인데 비해 경기도는 18.2%였다. 전국의 광역시도 가운데는 학교 화장실 화변기 비율은 경남이 32.6%로 가장 높았고, 관광지인 제주도가 0.2%로 가장 낮았다. 서울의 초중고에도 화변기가 아직 1만6000개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1307곳 초중고에 설치된 총 11만3882개의 변기 중 화변기는 1만6662개(14.6%)인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는 화변기 설치 비중이 서울 평균보다 낮았지만, 강북 지역은 비중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 도청소재지인 수원은 세계의 화장실 문화 혁신의 아이콘이 되다시피 한 도시다. 남보다 앞선 생각으로 향토 사랑을 실천해온, 1·2대 민선 수원시장이었던 고 심재덕 시장의 빛나는 업적이다. 지역 내의 모든 공중화장실을 세계 최고의 화장실로 만들기 위한 ‘으뜸화장실 콘테스트’ 실시 등 수원시의 ‘세계 최고 화장실 만들기’ 운동은 선진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였다. 화장실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분인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기념하여 30여 년간 살던 집을 허물고 변기 모양의 집을 짓고 사찰의 해우소를 본따 해우재(解憂齋)라고 이름 지은 일은 유명한 일화다. 한국화장실협회와 세계화장실협회 본부가 소재하는 도시 수원특례시의 이재준 시장은 현재 세계화장실협회(WTA) 회장을 맡고 있다. 심재덕 시장 같은 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은 세계 으뜸 수준으로 올라섰다. 고속도로 휴게소, 어린이놀이터 할 것 없이 전국의 공중화장실은 짧은 시간 안에 괄목할 변화를 이뤘다. 공중화장실은 그 사회의 경제 수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위생 및 교육 수준과도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지역을 비교할 이유란 전혀 없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모범이 돼야 할 경기도의 학교들이 이래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대책을 찾아내고 개선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