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묻은 1500개 소뼈 더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다. 소뼈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유고슬라비아의 민요가 흘러나온다. 흰 드레스의 여인은 세르비아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고 이 작품은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장을 거머쥔,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 4일간 이뤄진 이 퍼포먼스는 90년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내전 학살을 고발하는 행위였다. 그 충격적 퍼포먼스와 함께 기억에 남은 그녀의 인터뷰.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세르비아인이면서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단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어디일까. 소뼈를 닦으며 부른 노래를 주목한다. 유고슬라..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젊은 여교사의 극단적인 선택. 쉬쉬해왔던 학부모의 갑질이 불거진 사건이다. 어디 서초동, 교사에게 뿐 만일까? 우리 사회 갑질은 직장, 농촌, 학교, 백화점, 아파트, 식당…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 혹은, 재벌 2, 3세의 폭행에서부터 간호사의 태움 문화, 밀어내기 갑질, 학폭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나 뭐하는지 알지? 변호사야”. 서이초교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갑질 발언이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기에, 알량한 직업을 내세우고, 자기 자녀의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이번 사건으로 교권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일리 있어 보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 근본 원인은 우리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삐뚤어지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를 긍정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소중한 의미를 함의한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결합하고 연결하는 게 사회 자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회자본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여 진다. 법조인이라는 특정집단의 우월의식이 부정적 동질성으로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젊은 여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법조인들의 부정적 동질성, 다른 말로 하면 카르텔이다. 그렇지 않은 법조인도 있다. 하지만 그랜저 검사, 별장 성 접대, 대장동 50억 클럽, 검찰 특활비 회계부정, 검사 출신 법무부장관의 국회의원에 대한 깐죽거림, 교사에 대한 폭언 등은 법조 카르텔에서 비롯된 행태다. 법조인이 부패하고, 법조인의 준법의식이 삐뚤어지면 공정과 상식은 무너져 내린다. 행복한 사회가 아니고 불행한 사회가 된다. 범죄를 막아야 할 법조인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유죄가 안 되고, 폭력을 막아야 할 법조인이 폭력을 저지르는 세상에선, 평범한 국민은 열패감만 느낄 뿐이다. 법조 카르텔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다. 또 다른 기득권과 연합해 몸집을 키운다. 법조-언론-토건 카르텔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합 카르텔은 공권력과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이성이 마비된 괴물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 시점, 법조인들은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국민도 각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후진국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앞장서라. 정치가 변하지 않으면 국민은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변명의 정치는 중단돼야 한다. 정치인이 바로 서야, 국민도 바로 설 수 있다. 공직자들은 공적 서비스 제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행정 효능감이 높아진다. 사회가 행복해야 갑질도 경감하게 될 것이다. 서초동 20대 신규 교사의 자살. 우리의 삐뚤어진 군상들이 빚어낸 사건이다. 인격의 저열함을 교정할 수 있는 건 전인교육 강화에 있다. 정부의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 중심의 정책, 국민 존중의 겸손한 소통, 사법의 공정성 확보, 부정부패 방지에 국정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서초 교사 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과 상호존중의 관계를 경시하는 정치와 행정풍토에선 사회에 만연한 갑질을 지적하기도 민망하다.
대만을 거쳐 배송된 정체불명의 국제우편물이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있다. 지난 20일 울산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소포를 개봉한 3명이 어지럼증을 호소한 후 병원에 이송되면서 시작된 ‘소포 독극물’ 소동은 온 국민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하루하루를 소포·택배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종류의 흉문 횡행은 심히 고통스러운 사태다. 정부와 사법 당국은 신속히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세우는 등 국민 불안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주문하지 않았거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소포가 발견됐다는 신고는 23일 오후 5시까지 총 2058건 접수됐다. 경찰은 오인 신고로 확인된 1413건을 제외한 소포 645개를 수거해 조사 중이다. 지역별로는 경기 지역이 6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506건), 인천·경북(각 98건) 순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 경찰 등이 수거한 소포에서는 정밀 검사 결과 독극물 등 위험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배송 과정을 역추적한 결과 울산 장애인복지시설에 배달된 소포는 중국 선전에서 ‘경유 우편’으로 대만에 보내졌고, 대만을 거쳐 한국으로 배송된 것으로 밝혀졌다. 대만 당국도 대만 타이베이는 경유지로만 활용됐다는 취지로 사실을 확인했다. 유사한 포장의 소포가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면서 ‘소포 포비아(공포증)’가 확산됐다.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소포·택배가 온 국민의 일상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 착잡하다. 우리 경찰 당국과 대만의 발표내용을 놓고 중국이 발끈하고 있는 가운데, 문제의 소포가 전자상거래 판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이른바 ‘브러싱 스캠’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신고된 소포들에선 마약류나 독극물 등이 검출되지 않았고, 소포 내부에선 완충재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브러싱 스캠은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쇼핑 플랫폼에 등록한 판매업자들이 판매량과 리뷰를 늘려 온라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마케팅수법이다. 지난 2월 호주에서 주문한 적도 없는 가짜 까르띠에 반지나 가짜 버버리 스카프가 배송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앞서 2020년 7월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일부 중국 온라인 쇼핑몰이 물품명에는 장난감·보석 등으로 적고 나팔꽃·양배추·장미 등의 씨앗들을 보낸 ‘브러싱 스캠’ 사건이 있었다. ‘소포 포비아’는 처음 소포를 개봉한 3명이 어지럼증을 호소한 후 병원에 이송되면서 급격히 확산했다. 우리는 지난 2017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VX라는 치명적 독극물에 암살당한 사건을 기억한다. 소포나 택배를 이용한 독극물 테러라면 사실상 원천 봉쇄가 불가능한 새로운 테러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이 공포증을 폭발시켰다. 걱정스러운 것은 혹여라도 이번 사건이 지각없는 모방범죄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다. 사건의 진상을 세세히 밝혀내는 것은 물론,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필요하다. 편법적인 마케팅 기법이든, 장난질이든 파장의 책임을 엄격하게 지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된 소포·택배 상자를 앞에 놓고 벌벌 떨어야 하는 일상이라니, 이건 정말 안될 말 아닌가.
우리는 잊고 산다. 우리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쏜살같은지.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내달린다. 내달릴 때, 우리의 속도는 시속 11만km다. 총알보다 30배 빠른 속도다. 방향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1초에 30km를 달린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별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 공전(公轉) 속도다. 그렇다고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는 건 아니다. 총알 보다 빨리 달리면서 뱅글 돌기까지 한다. 뱅글 돌 때, 도는 속도는 시속 1667km다. 경주용 자동차 보다 5배 빠른 속도다. 방향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1초에 460m를 내달린다. 그것이 지구라는 초록별의 자전(自轉) 속도다. 초록별에 붙어사는 온갖 것들은 그 두 가지 속도에 기대어 산다. 공전과 자전이라는 두 가지 속도 틈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죽이고 죽는다.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얼마나..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14명이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사고 당시 청주 지역 강수량은 기상청 집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13일부터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인 16일까지 누적 강수량은 455.2mm로 지난 2021년 여름철 강수량인 446.6mm보다 많았다. 4일간 쏟아진 비의 양이 여름철 강수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우리나라는 여름철이면 태풍이나 호우와 같은 계절성 재해로 인한 피해가 잦다. 인명 피해도 늘고 재산상 피해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예년보다 빠른 장마와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내리는 ‘극한호우’ 빈도가 늘고 있다. ‘집중호우’는 시간당 30mm 이상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이에 반해 극한호우는 시간당 50mm 이상이면서 3시간에 90mm 이상인 강한 비를 말한다. 물폭탄 같은 강수량에 홍수와 침수를 유발할..
경기신문 19일자 1면 ‘사이렌 민원 넣겠다, 소방 발목 잡는 악성 민원’ 제하의 기사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면서 이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경기신문에 따르면 최근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하동 및 장안구 연무동, 상광교동, 하광교동 등을 담당하는 수원시 광교 이의119안전센터에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다’는 항의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인근 아파트 일부 주민들이다. 이에 소방 측은 지난달 민원인 대상으로 관련 간담회를 열고 협의에 나섰고 일부 구간에서 사이렌 소리를 줄이는 것으로 협의됐다. 신도시 주민 약 12만 명의 안전과 생명을 담당하는 유일한 소방 시설인 이의119안전센터 관할 지역에는 영동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신분당선 등이 교차하고 있고, 광교산, 저수지 등도 있어 센터 직원들은 항상 안전사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얼마 전에도 길에서 쓰러진 노인이 긴급 출동한 이의소방센터 119 대원들에 의해 생명을 건지기도 했다. 그런데 생명을 구하기 위한 출동사이렌 소리를 일부 시민들은 소음공해라며 항의한 것이다. 소방서와 파출소 등은 안전·치안 필수시설이다. 그럼에도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예전에도 있었다. 2017년 서울에서 유일하게 소방서가 없는 금천구는 금천소방서를 건립하고자 했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반대했다. 소음 공해와 집값 하락 등이 이유였다. 이보다 앞서 2015년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대치지구대 건축이 인근 아파트 주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2017년 부산의 한 병원 측에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다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됐다. 이때 119 소방안전복지사업단 SNS에는 “내 가족이 응급한 상황에서 병원을 가기 위해 신고하면 달려와 병원으로 이송해 준다면 소음이 아니라 고마운 소리 아닌가. 사이렌을 끄고 소리를 줄여 달리다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 "전쟁 났을 때 총과 대포도 이왕이면 시끄럽지 않게 소리 안 나는 것으로 조용하게 전쟁해달라고 할 사람들”이라는 글이 올라와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응급환자의 신속한 이송과 의료처치를 담당하는 닥터헬기의 소음이 심하다는 민원도 제기됐다. 이의119안전센터에 사이렌 소리 민원이 들어왔다는 보도를 접한 주민들의 반응을 보자. “저 동네는 무슨 일이 있어도 119 전화하지마라 진짜.”라며 흥분한 주민도 있었지만 “같은 광교주민으로서 부끄럽네요. 소방서와 소방관, 병원과 헬기 등 모두 없어선 안 될 존재들이에요” “극소수 악성민원이 있는 것 같네요. 광교주민 다수의 생각은 아닙니다.”라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희귀 난치성 환자로 119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수원 광교주민은 소방관들께 죄송한 마음이라며 컵라면 20박스를 기증했다. 기부자는 편지를 통해 “일부 격한 행동에 상처받지 마시고 다수의 시민이 소방관을 응원하며, 도움을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소방활동 소음관련 민원이 제기돼도 지휘부는 일선 소방관들의 역할과 사기를 지키고자 강경히 대응해야 한다”는 황선우 전국소방안전공무원노동조합 경기본부 위원장의 말에 동의한다.
장마인가, 우기인가. 기후 변화에 의해 장마철이 점점 길어지고, 특히 올해는 예년 장마철의 세 배에 달하는 강우량에 역대급 폭우가 이어지자 500여 년 전부터 사용되어 온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여름철 열대·아열대 지역의 나라에서 3~6개월 동안 많은 비가 집중되는 시기 ‘우기’는 이제 한국의 여름을 표현하는 용어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도 식물처럼 환기해주지 않으면 시들해진다. 바이러스와 세균의 활동 증가로 질병에 노출되고 낮은 일조량과 높은 습도로 인한 체내 호르몬 변화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강해지며 활동량 저하로 무기력감도 짙어진다. 비 오는 날이 길어질수록 사람의 건강은 위태로워진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드문 이 여름, 어디로 떠나야 할까. 마이크로투어리즘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형 관광지 대신 집에서 1~..
현 정부 들어서서 그동안 거리가 있던 미군의 핵잠수함들이 속속 국내에 들어와 군사 훈련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달 재래식 순항미사일 장착의 핵잠수함인 미시간함(SSGN-727)에 이어, 7월 18일에는 핵탄두 탑재의 핵추진 탄도유도탄잠수함인 켄터키함(SSBN-737)이 부산에 입항했다. SSBN이 기항한 것은 1981년 이후 42년 만이다. 이는 지난 4월 한미 두 대통령의 회동 후 있었던 ‘워싱톤 선언’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한미 양국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며”라는 표현에 있듯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위해 남한을 미국의 핵 전초 기지로 강화하는 내용의 선언문에는 ‘향후 예정된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을 통해 증명되듯, 한국에 대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시킬 것’이란 표현이 명시되어 있다. SSBN은..
요즘 경기북부지역을 포함한 접경지역 곳곳에는 평화경제특구법 제정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많이 보인다. 오랫동안 논의만 되던 ‘평화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이 올해 6월 13일 제정돼 12월 14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6월 9일 제정돼 7월 10일 시행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 ‘기회발전특구’에 대한 홍보성 현수막 또한 많다. 평화경제특구(통일부 주관)와 기회발전특구(산업통상부 주관) 모두 접경지역 지원정책의 하나로 도입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접경지역 정책인 두 개 특구제도가 성공하기 위한 후속조치이다. 우선 평화경제특구가 활성화되고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고, 남북간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국내적 상황뿐만아니라 국제적 상황도..
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접근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더 이상 어둠으로 생각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고, 날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고 있다.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운명이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과연 서로 때리고 괴롭히고 죽이고 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흉악한 강도들도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파스칼) 우리는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이내 죽어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이 매일 조금씩 소모되고 쇠약해지는 것을 알고, 언젠가 결국 죽어버리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끝난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 대해 꽃이 시들거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들이 남긴 지위를 부러워하며, 누군가가 벌써 그 자리에 앉았는지, 또 누가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그런 것만 알고 싶어 안달할 뿐이다. (라 브뤼에르) ‘이 자식들은 내 것이다. 이 재산은 내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자신이 이미 그의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식과 재산이 그의 것일 수 있으랴. (부처)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부족하니 창고를 더 크게 넓혀야지.’ 생각하면서 그 영혼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이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고 하셨다. (예수) 지금 당장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남겨진 시간을 뜻밖의 선물로 생각하고 살아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