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시장 생태계가 급변하며 우리의 대응 능력이 걱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점유율 등 시장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각국과 기업들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기차 선두주자인 미국 테슬라가 올초 모델Y 가격을 한꺼번에 1만3000달러 내리는 등 가격전쟁을 선언했다. 또 독일의 폭스바겐은 15일 2만5000유로(약 3500만원)의 소형 SUV 전기차를 공개했다. 전기차가 내연 엔진 차량보다 저렴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에다 미국이 자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광폭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한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핵심원자재법(CRMA)과 탄소중립산업법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광물 공급망 강화 등에 나서며 한국 기업들이 이중삼중의 협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 취약하..
인공지능(AI)이 기사를 쓴다는 건 알았다. 스포츠, 날씨, 증시 같은 분야로 한정해 있긴 해도 어느 쪽이 사람이 쓴 건지 구분 못 할 정도로 인정해 줄 만하다고 들었다. ‘로봇 기자’라고 불렀다. 로봇 기자가 단순 반복형 기사를 맡아 써준다면 인간 기자는 복잡하고 심층적인 뉴스에 전념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나왔다. ‘상대적 기대’지만 AI 기자가 인간 기자를 대체할 정도까진 다다르지 못했다고 평가했을 때 얘기다. 이번엔 좀 다르다. 오픈AI가 출시한 챗GPT는 출시 2개월 만에 1억 사용자를 돌파했다. 인공지능 챗봇이어서 이용자가 질문을 해야 답변한다는 한계가 있는데 인증 후기가 넘친다. 정치 연설문을 작성했다거나, 보도자료를 작성했다는 것들이다. 청년문제를 주제로 하는 기사 작성을 주문했더니 놀라움을 안겼다는 반응이 있고, “챗GPT에게 기후위기를 물었다”, “챗GPT가 작성한 여론조사 분석기사”라는 뉴스도 등장했다. 과학분야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은 챗GPT로 작성한 논문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덕분에 전문성과 숙련성이 필요한 문서 작업도 인공지능이 인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근거가 생긴 상황이다. 챗GPT의 한계를 밝혀내려 하는 시도가 느는 것은 재밌는 현상이다. 수학 계산을 틀린 경우가 많다거나, 영어 아닌 한국어에는 기대에 못 미친다 등이 그런 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살짝씩 틀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쯤이야 챗봇의 학습 속도로 보면 곧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항상 따라붙는다. 놀라운 것은 답변한 내용 중에 단순 사실 몇 군데 틀린 것이 대수냐 하는 반응이다. 그럴듯하게 문장을 완성하고 설득력 있게 답변하는 챗GPT에 너도나도 놀랍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의 보편화는 막을 수 없다. 로봇이 만든 것이라고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결과물의 종류가 넘쳐날 가능성이 는다는 의미다. 인간 기자가 쓴 기사일수록 논리가 빈약하거나 비문으로 쓰였다는 식의 비꼬는 평가가 나오는 일이 머지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AI에 의존하지 않게 교육방식과 과제출제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AI를 거치면 손쉽게 전문가 수준의 지식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지식의 접근으로는 사람이 한 분야의 전문가나 달인이 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만들어내고, 각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게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조정해 가는 과정을 제대로 하게 만들지 못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선택과 주의, 집중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은 인공지능이 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때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독립운동은, 조국을 떠나 반제 해방 투쟁의 길로 나선 사람들과, 남아서 광복을 준비한 애국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동포들과 남은 가족들은 독립운동의 큰 뜻을 같이 하면서 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광복의 새날을 기다렸다. 따라서 광복 이후 세워져야 하는 민족 국가는 이들 독립운동가와, 그 뜻을 함께 하면서 독립투사들을 지원한 민중이 중심이 돼 건설돼야 마땅했다. 민족을 배반하여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부와 권력을 챙긴 친일세력은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이 민족사적 正義였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반민족 행위자들이 외세의 힘을 빌어 해방 정국에서 패권을 이어가는 뒤틀린 역사가 펼쳐졌다. 외세의 한반도 분할 지배로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득세에 유리한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 결과다. 이 틈..
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수도권에 300조 규모 세계 최대 신규 첨단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가첨단산업 조성 계획’이 확정 발표됐다. 이 계획에는 지방에 14개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반도체 소재 제조업체를 찾아 “경제 버팀목이자 국가 안보 자산으로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번에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계획이 공개된 것이다. 현재 세계는 첨단산업을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로봇 등 우리가 강점을 보유한 첨단 분야 6대 핵심 산업에 대해서는 2026년까지..
“아름다운 밤, 오~ 사랑의 밤. 오~ 사랑의 아름다운 밤이여!” 미녀 쥘리에타와 그녀를 마중 나온 니클라우스의 2중창. 애틋하고 달콤한 이 노래는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그 유명한 호프만의 뱃노래다. 주인공 호프만은 세 명의 여성과 비극적 사랑을 나눈다. 무대는 베네치아. 대운하의 물결 위로 곤돌라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사랑의 밤은 시작된다. 오펜바흐는 베네치아를 항해하는 곤돌라의 정겨운 풍경을 보고 이 곡을 작곡했다. 틀을 깬 천재 작곡가 오펜바흐. 1819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프랑스인으로 살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묻혔다. 오펜바흐가 프랑스인이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이삭 쥐다 오펜바흐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유대인 음악가였던 쥐다는 바이올린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아들을 파리 음악학원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자크는 1년도 못돼 학교를 팽개치고 나와 파리 오페라 코미크 단원이 됐다. 이때 짤막한 메들리를 작곡해 인정을 받았고, 코메디 프랑세즈의 단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5년 만에 여기도 청산하고 손수 극장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희가극과 오페레타를 처음으로 고안해 냈다. 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1858년 작곡한 ‘지옥의 오르페’가 히트를 치면서였다. 그 후 발표된 ‘아름다운 엘렌느’ 역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사후 발표된 호프만의 자장가와 뱃노래는 그를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 대가의 안식처는 에트르타(Étretat)였다. 파리 북서쪽 200킬로 지점, 알바트르 해안가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오펜바흐에게 무궁무진한 영감과 청춘의 샘물을 제공했다. 이방인인 오펜바흐가 프랑스 국적을 얻은 건 그의 나이 불혹. 그러나 그가 에트르타에 흠뻑 빠진 건 이 보다 앞서 일어났다. 자기만의 안락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로 성공해 큰돈이 들어오자 에트르타에 별장을 짓고 ‘오르페(Orphée)’라고 명명했다. ‘오르페’는 살을 간질이는 아침 햇살과, 조개들과 싸우며 익살을 떠는 갈매기들, 은은하게 풍기는 기분 좋은 소금향, 그리고 하루의 에너지를 꽉 채우는 신선한 바람을 그에게 제공했다. 이곳에서 오펜바흐는 매년 여름 가족과 함께 쉬면서 작업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생활은 계속됐다. 페캉(Fécamp)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에트르타. 하얀 석회석 절벽이 일품이다. 그 절벽 위로 미끄러지듯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선은 정말 신비롭다. 코끼리 형상의 절벽 끝에 조그맣게 나 있는 구멍은 천국으로 가는 성문이다. 여기에 풍요로운 전원, 울퉁불퉁한 절벽과 출렁이는 바다, 해안에 좌초된 배까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사회적경제의 지역 생태계 조성의 일환으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공동으로 사업을 개발하고 수행하는 사업연합 비즈니스모델이 전략사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사업을 협력하여 발굴하고 공동으로 수주하기도 하며 상호거래 활성화와 사업성과를 위해 온라인 몰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사회적경제에서의 협력과 연대는 상품이나 제품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향후, 헬스케어와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도 활발한 사업연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협력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개발이 필요하며 조직 및 사업 활동이 활발한 사업연합 방식으로 비즈니스 활성화를 모색함으로써 사업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헬스케어 사업 부문에서의 사업연합은 헬스케어 기기와 정보통신시스템의 연계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 간병인, 간병 보험 등의 이슈 속에서도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돌봄사업과의 연대가 필요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체계 구축과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당국, 의료계와 서비스 이용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 과정 또한 필요하다. 건강정보의 수집과 인공지능(AI) 분석 확대 등으로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 헬스케어가 노후 고령층의 필수 도구로 정착해 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미래 성장산업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노인복지의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 전략 및 혁신과 융합을 위한 다양한 협력 모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들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의료서비스가 큰 폭으로 증가하며 그동안 의료기관에서 축적해 오던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가 시민들의 일상생활 영역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빅데이터(Big-data)를 신속하게 분석·활용함으로써 질병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고 개인 맞춤형 건강 솔루션 서비스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한, 자가진단과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가 증가하면서 몸이 불편한 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을 즐기는 고령층 노인들을 위한 기기로써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고령화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스스로 대비하고 행복한 노후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상품 및 서비스 사업을 하는 사회적경제기업 간 연대가 필요하다. 유사·동종 기업 간 상호거래와 비즈니스 가치사슬(value chain) 연계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사회적경제 중간지원기관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해 갈 수 있다. 정부는 ‘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의료 건강 돌봄서비스 혁신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다가올 우리 일상 속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서는 개인 건강관리에 대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어지고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문제해결과 수요자 중심으로 사업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적경제 헬스케어 분야에서 기업 간 활발한 사업연합을 위해서는 이해관계가 다양한 협력 모델 발굴과 사업실행 역량 강화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의 규제 개혁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자, 그 앞에 온몸이 고름투성이에 추악하고 더럽고 소름이 끼치는 여자가 나타났다. “너는 도대체 누군데 내 앞에 나타나 내 길을 막느냐?” “나는 너의 행실이다.” (페르시아 속담) 중요한 것은 선한 행실에 대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탈무드) 착한 일을 하고, 자비롭고, 온화하고 겸손하며, 좋은 말을 하고, 선한 일을 생각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항상 배우며, 항상 진실을 말하고, 분노를 억제하고, 만족을 알고 인내심이 강하며, 친절하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와 스승을 존경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선인의 벗이요 악인들의 적이다. 거짓을 말하고, 훔치고, 음란하고, 속이고 욕하고, 악한 일을 생각하고, 오만하고 게으르며, 이웃을 중상하고, 인색하고 무례하며, 파렴치하고, 화를 잘 내고, 남의 것을 가..
한·일 간 최대 외교 쟁점인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놓고 윤석열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민간 기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변제 방식의 판결금 지급 방침을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론은 즉각적으로 극렬하게 갈리고 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돌파 의지를 피력한 윤 대통령과 집권당 국민의힘은 국익을 위해 지금 해결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설파 중이다. 그러나 제1야당 민주당은 ‘계묘늑약’이라는 딱지까지 붙여가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법 발표 다음 날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김대중-오부치 정신 계승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언급한 대선 공약을 거론한 뒤 “강제동원 문제를 조속히 풀어내고, 한일 간 경제·안보·문화 분야 교류를 활성화..
요즘 북한 김정은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말이 많다. 집권 초기에 인민 생활을 강조하면서 개방의 길로 가는 듯 하다가 지금은 국가와 이념 중심, 사상 통제에 전체주의 폭군으로 변화하였고 이례적으로 둘째 딸 김주애를 군사 및 경제 행사에 대동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김정은 행보에 대해서는 김정은 자신만이 의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를 포함한 국제 사회 당국과 전문가들은 정황상 추정에 의존하여 일종의 논픽션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기대했던 기대하지 않았든 간에 국제사회 관심을 끌면서 여기에 더해 북한 비핵화 집중도 약화라는 효과를 얻고 있다. 즉, 국내외 언론에서 김주애가 과연 4대째 세습을 할 수 있을지, 남성위주의 동양 문화에서 과연 여성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김주애 오빠..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담함을 넘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여기저기 신문에 칼럼이랍시고 잡문을 끄적이면서도 ‘이런 글이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는가’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속칭 ‘검사정권’, ‘검찰왕국’ 치하에서 살아내기가 여간하지 않은 탓이다. 자기들만 가장 똑똑하고 정의로운 초엘리트집단이라 여기며 전횡을 휘두르는 형세는 그래, 집권했으니 권력놀이 한다고 치자. 또 정적제거에만 혈안이 된, 차마 두 눈뜨고 못봐줄 국내정치는 차라리 눈감으면 된다고 여기자. 그런데 3.1절 기념식에서 일제강점도 우리 탓이요, 침략자들은 이제 글로벌 협력파트너가 되었다고 하는데서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버렸다. 허나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강제징용배상문제마저 우리 기업 돈 걷어서 해결하겠다니 도대체 대한민국에 주권이 있기나 한 것인지 분노를 넘어서 부끄럽기가 이를데 없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에 국권찬탈을 항의하는 불길이 타오르자 조약체결을 이끌었던 학부대신 이완용은 고종에게 올린 상소에서 이런 망발을 지껄였다.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유일하게 모두 포함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대명사인 그는 나라를 팔아먹고(일본에게서 거금을 받았으니 팔아먹은게 맞다) 거부로 살았지만, 죽거나 끌려가며 일제치하를 견디는 것은 백성들의 몫이었다. 이완용은 돈이라도 받았다지만 윤석열정권은 왜 이런 셀프배상이란 무리수를 둬가며 굴욕적 해결에 목을 매달았을까? 작년 9월 21일, 미국뉴욕에서 기시다총리와 윤대통령이 만났을 때 일본은 간담회라 깎아내렸다. 짧지 않은 만남이었음에도 굳이 회담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양국간 최대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소송문제 해결에 진전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아사히신문은 “안 만나도 되는데 만나줬으니 한국은 일본에 빚을 졌다”고 표현했다. 3월16일 한일 ‘정상회담’을 합의한 이면에는 그때까지 강제징용 소송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것이 굴욕이든, 치욕이든 말이다. 굴욕과 치욕은 다르다. 굴욕은 욕됨을 견디면서 사는 것이다. 참혹한 일을 당해도 남의 탓으로 돌리고 한탄할 따름이다. 치욕은 처절한 부끄러움이다. “이렇게 비굴하게 마지못해 사느니 차라리..”라는 자각이 뒤따르게 된다. 그래서 굴욕은 반복되고 치욕은 표출된다. 이완용은 상소에서 덧붙였다. “더구나 이것은 오늘 처음으로 이루어진 조약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지난해에 이루어진 의정서와 협정서에 있고 이번 것은 다만 성취된 결과일 뿐입니다. 가령 국내에 진실로 저 무리들처럼 충성스럽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면 마땅히 그 때에 쟁집(爭執)했어야 했고 쟁집해도 안 되면 들고 일어났어야 했으며, 들고 일어나도 안 되면 죽어버렸어야 했을 것인데 일찍이 이런 의거(義擧)를 한 자를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조롱하고 있었다. ‘정 꼽으면 백성이란 개돼지들이 죽도록 싸워보든가’ 하고.. 백이십년 후 정권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강제동원셀프해법의정서’를 내놓고 ‘그래서 어쩔건데?’라고..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라지만 세상은 고쳐 쓸 수밖에 없다. 치욕을 느낀다면 그때는 개돼지로 살아가게끔 만들어진 세상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