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봉 고경명( 霽峰 高敬命. 1533~1592). 큰 시인이요, 의병장이었다. 장흥이 본관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조선의 고위관료를 지냈다. 약관 스물에 진사시험 장원, 스물 여섯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영광은 예외 없이 고난을 수반한다. 사시사철 온몸에 질투와 시기의 화살을 맞기 때문이다.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제봉은 승승장구하다가 임관 5년만에 정치사건에 휘말렸다. 파직되어 낙향한다. 31세였다.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창공의 별과 같은 호남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1300수에 달하는 시를 지었다. 제봉집에 담겨있다.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백호 임제, 손곡 이달,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등과 교류했다. 고경명은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당연히 요직에 봉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가슴 뜨거운 충절지사에게 불패의 탄탄대로는 없다. 두 차례의 파직을 겪었다. 우국애민(憂國愛民)정신과 자부심만큼 좌절과 회한도 깊고 컸다. 홍안의 청년이 백발이 서리로 내린 초로(初老)가 되었다. 바로 이 때, 조총을 든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다. 1592년 4월. '朝日 7년 전쟁'(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다. 왜군들은 보름만에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였다. '머저리' 선조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왕초'가 이 따위면 없는 게 낫다. 영웅은 그 절망의 시간에 등장하여 역사가 된다. 고경명은 임진년 1592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길을 택하였다. 그 해 제봉의 나이, 60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80쯤이다. 나랏님의 은덕을 입은 선비로서, 공맹을 공부한 유생으로서, 자부심 높은 지식인으로서, 지행일치의 인격자로서, 제봉은 '세독충정'(世篤忠貞:대대로 독실하고 진정하게 우국애민의 충성을 다함)의 신념을 실천할 기회 앞에 선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은 창의구국(倡義救國)의 횃불을 높이들고 6000명 넘는 의병을 모아 금산성에서 각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고경명과 차남 고인후, 진주성 전투에서 남강에 투신 순절한 장남 고종후의 죽음을 삼종사(三從死)라고 했다. 실은 제봉 가문은 이 전쟁에서 9명이 순국했다.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집안과 제봉 고경명 집안은 이미 임진왜란 때부터 400년 동안 사돈간이다. 제봉의 장남 고종후가 석주의 14대조 고모와 가정을 이뤘다. 영호남의 항일 독립운동 명문가의 이 혼사는 소중한 연구과제다. 고경명의 후손들은 집안자랑을 하지 않는 가풍이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18일 광주에서 <의병장 제봉 고경명 선생 순국 제 430년 추모학술대회>가 열렸다. 인문연구원 '冬孤松'의 유미정 박사는 '제봉 고경명 선생의 交遊詩에 담긴 詩情연구'를 발표하여 '시인 고경명' 본격연구의 큰 문을 열었다. 그는 "호남 의인들에게 전해온 文人 제봉의 순절은 학행일치의 한 면을 보였고, 그 후 한말 호남의병 녹천 고광순(제봉의 12대손)이나 광주학생독립운동가, 독재에 맞선 민주열사들, 5•18까지 호남 정신의 맥을 이어오게 했다" 고 평가했다. "세상사람들은 남쪽지방에 시인이 많으나 고제봉이 제일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남쪽에 의병이 많았으나, 역시 제봉이 창도하였다."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48)의 평이다. 상식과 교양, 양심과 구국충정의 리더십을 볼 수 없는 이 야만의 시대에, 제봉 고경명은 우리 모두의 등대다.
이태원 참사로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겨있다. 그렇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선감학원 진실 밝히기’도 그 중의 하나다. 본보는 최근 세 차례에 걸친 기획기사를 통해 선감학원 설립부터 폐원 후 진실규명 결정까지 80년 세월 속 과정들을 짚었다. 기획기사 가운데 두 번째는 상처 입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이게 과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인가, 그것도 국민들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이 한 일이었던가 분노마저 치솟았다. 지난 10월 20일 가해자인 경기도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40여 년이 지난 2020년 12월 10일 아동피해대책협의회(회장 김영배)는 166명의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당시 이재강 전 도 평..
2022년은 북한의 무력시위 한 해가 될 것 같다. 북한은 연초부터 탄도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더니 8월 한미합동훈련을 계기로 핵무기의 선제적 공격 가능성을 공표하면서 전술핵 운용부대 군사훈련을 명목으로 단거리 및 중거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였다. 10월 들어서는 2018년9월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육상 및 해상 완충구역내에서의 포사격을 실시하면서 남북간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앞으로 군사정찰위성 또는 우주개발을 위한 인공위성이라고 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이미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판단되는 7차 핵실험, 그리고 우리 군사 활동이나 대북전단 등을 이유로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무력도발, 그리고 사이버 테러 등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무력시위는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립구도하에서 ‘러시아 따라하기’ 성격이 짙지만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불만과 대항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북한 주도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가 어려운 것은 핵무기는 남한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선전도 포기하고 전술핵 무기의 공격대상이 남한 주요군사지휘시설 등이라고 밝히는 북한의 경직된 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당장 내일이라도 조건없는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면 언론보도에서 긴장정세는 사라지고 대신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주제로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결과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망이 보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과거 남북 대립국면에서도 북한이 이산가족 카드를 들고 대화 무대로 나오면 우리가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였고 그 결과 남북 긴장상황 보도가 이산가족들의 감동적 상봉내용으로 변화되기도 하였다. 즉 북한이 대결자세를 보이면 남북관계가 긴장되고 반대로 협력적 자세로 나오면 남북관계가 표면적으로 평화 협력의 상태를 유지하였다. 단순하게 보아 남북관계 변화는 북한 변수가 중요하고 북한을 변화시키고 움직이기 위한 우리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북한이 경직된 사고와 대립적 태도를 버리고 우리 및 국제사회와 대화 협력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북한이 무력도발을 하면 할수록 우리 및 국제사회가 겁을 먹고 굴복하는 대신에 북한 민생과 경제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제재 증대만 가져올 뿐이라는 점을 북한이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원이 북한의 경제난과 북한 지도부의 경제강국으로 가고자 하는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2016년이래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지금의 무력시위가 아닌 우리 및 국제사회와의 대화협력 무대로 나서는 것이다. 북한의 지도부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언론의 국제관계 인식은 백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미동맹을 만고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신앙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는 우크라이나의 치어리더 역할에 충실하고, 중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추측과 비방 일변도다. 한겨레신문 박민희 기자는 10월 26일자 칼럼 《‘21세기 황제’ 시진핑이 예고한 3가지 미래》에서 “무엇보다 중국의 변화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해놓고 내용은 3류 추리소설을 써놓았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세기 황제’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주장의 주요 논거는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이었다. 이는 5년 전 보도의 데자뷔다. 《시진핑 사상 명문화 · 임기 제한 삭제…‘시황제 절대권력’ 굳힌다》(서울신문), 《시진핑 ‘황제 만들기 개헌’…헌법서 글자 10개 없앤다》(중앙일보), 《‘주석 임기 철폐’ 나오자 박수…중, 시진핑 1인 체제 막 올라》(한겨레신문). 진시황제에 빗댄 비아냥거림으로 모든 매체가 한 마음이 되었다. 진시황제는 공과가 있는 역사의 인물이다. 진시황제는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완성하고, 중앙집권형 군현제와 법치,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등으로 오늘의 중국이 있도록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언론이 시진핑의 책사로서 그의 공약을 제시했다고 외눈박이로 보도한 왕후닝 상무위원만 하더라도 교수 출신의 국제관계 전문가로서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공약도 설계한 중국 공산당의 브레인이다. 시진핑이 시황제와 마오쩌둥 수준의 역사의 인물이 될는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섣불리 단정할 일이 아니다. 시황제니 1인 체제니 하는 것은 서구의 민주주의 체제를 최선으로 인식하는 독단에서 비롯된 단견이다.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란 것도 5년 전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헌으로 채택한 것으로, 덩샤오핑이 흑묘백묘론에 입각해 제한적으로 받아들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감안해 제시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새 버전이다. 덩샤오핑 이래 경제건설이 궤도에 오른 시점에서 부패를 척결하며 일사불란한 팀워크로 덩이 제시한 온포(溫飽)와 소강(小康)을 달성했다는 판단에서 그 다음 단계인 중부(中富)와 나아가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선택이다. 물론 그것은 시진핑 개인의 독단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집단적 지혜의 선택이다. 이것을 시진핑이 종신집권을 위한 명분으로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세계경제가 위태로워지는 가운데 중국이나 러시아와 척을 지는 것은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동맹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웃 나라다. 동맹은 바뀔 수 있지만 이웃은 지정학적 운명이다. 정작 바꿔야 할 것은, 중국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어리석은 언론이다.
말은 세상(의 모습)을 정직하게 나타내야 한다. 상황을 바르게 표현하지 않는 말은 사람과 사회의 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독하게 말자자면, 기만(欺瞞)이고 사기(詐欺)다. ‘기후변화’의 변화(變化)는 가치 개념이 없는, 무색무취한 단어다. 기후가 변화하고 있단다, 어쩌라고... 하다 여기까지 왔다. 코앞에 닥친 것 아니니 미뤄두자고 했던가. ‘지구온난화’의 검은 구름이 우리(의 의지) 대신 안전핀을 쥐고 흔드는 위태로운 핵폭탄, 지구촌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가 좋은 점도 있다고 했다. 적극 대응해, 가령 새로운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은 ‘의욕’도 볼 수 있었다. ‘성공사례’로 포장되기도 한다. 대구사과가 춘천사과가 됐다. 불가피한 사정도 있으리라. 당장 먹고 사는 일 급하니, 지금도 그런 생각을 벗지 못하는(않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저 현상의 물밑에 잠긴 의미는 뭐지? 아들딸 챙기면 됐지 뭐가 문제냐고들 하지만, 그 아들딸의 아들과 딸, 손자까지 생각하는 것이 사람됨이고, 덕(德)이다. 자칫 눈앞의 아들딸조차 곧 ‘지구온난화’의 태풍 속에 밀어 넣는 것은 아닌지. 지금 미국서, 방글라데시에서 참사는 벌어진다. ‘강 건너 불’이라고? 그런가! 기후변화가 아니고 기후변덕(變德)이다. 기후위기(危機)이자 기후참사(慘事)다. 재난영화에서 보던 말세(末世)의 장면이 실은 지구촌 도처에서 늘 펼쳐진다. 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필시 ‘기후변화’란 언어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변덕 위기 참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어마무시한 상황은 ‘변화’라는 잔잔한 말로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말의 사기는 또 있다. ‘마약김밥’ 같은 황당한 마케팅 쇼다. 서구(西歐)가 동아시아를 공격한 ‘첨단 무기’가 마약이다. 거대 제국 중국이 영국 해적선 몇 척에 실려 온 마약에 휘청대다 뻗어버렸다. 그 무기는 지금도 인류를 공격한다. ‘좋은 나라’라고 자만하던 우리나라가 그 악귀의 온상이 되어 스스로 무너진다. 심지어 마약의 허브 국가가 되어 이웃 나라들까지 망치고 있다. 꿈에도 상상조차 못하던 지옥 아닌지. 시장에 가 보라. 엉뚱하게도, 마약천국이다. ‘마약김밥’을 비롯한 ‘마약**’가 즐비하다. 그 맛의 중독성 때문에 다시 찾는 음식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다. 마약(痲藥)의 핵심이 중독성이다. 중독성을 ‘맛있다’와 혼동하게 하는 그 말은, 고의가 아니라도, 큰 범죄의 틀과 같다.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 큰)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사(意思)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경우도 봤다. 모르는 사이에 마약김밥의 ‘마약’은 ‘맛있는’과 동의어로 사람들에게 스미고 있다. 당국은, 어쩔 테냐? 두고만 볼 것인지 엄중히 물어야 한다. 말이 무슨 죄냐고? 비유(比喩)를 이해 못 하는 무식한 소리라고? 말이 씨 되어 세상을 망치는 꼴, 바로보자. 말도 마약도 온난화도, 우선 나부터 고치자.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을 즘,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했다. 끔찍한 참사를 겪은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핼러윈 축제는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단절된 이웃사이를 연결하여 집집이 다니며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풍습에 기원한다. 이민자들이 만든 문화가 핼러윈 축제가 되었듯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이웃을 잇고 음식을 나눠주는 문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백골이 우는 것이냐, 혼이 우는 것이냐. 서울 양천구 임대아파트에 시신이 발견되었다. 발견되기 일 년 가까운 시간을 풍화작용 없는 어둠에서 홀로 백골이 되었다. 휴대폰을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세상에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보내줄 누구라도 있었다면, 이승과 저승이 무덤 되어 그렇게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백골로 만난 무연고 여성은 성공사례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2017년까지 정착을 돕는 전문 상담사로 일했고, 무엇이든 물어보면 잘 가르쳐준 최고의 선생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니 더욱 안타깝다. 그때는 성공했고 지금은 아닌 성공을 무엇이라 부르리. 시신이 방치되는 동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2017년 퇴사해서 전화번호를 바꾸어 지인들과 연락도 끊어졌을 것이다. 연락이 없다면 집으로 찾아와 위로를 건넬 사람도 없었나 보다. 성공적 정착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정작 자신의 아픔은 꺼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름다운 꿈도 백골의 시신처럼 어둠 속을 헤메이고 다녔을지 모른다. 무연고일수록 좋은 사람을 많이 알고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고립될수록 어둠에서 나오기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있으면 주변에 요청도 하고 낯설지만 남한의 정서를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안으로 문을 잠그면 밖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열 수 없다. 삶이 초라하고 무의미, 무가치하다고 느낄 때 생각을 글로 써본다.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다고 써보고,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써보는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소리라도 크게 질러라. 경험으로 꽤 효과가 있다. 상실의 감정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쏟아내지 못하는 아픔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를. 주변을 의식하지 말고 황소 같은 울음을 길게 울면 멈추는 순간 무엇이든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 봉사활동도 좋다. 돈 버는 일에 열심이다가 무보수 봉사를 하면 돈 버는 재미 못지않게 뿌듯함이 있다. 이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어 조금이라도 누구와 나누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래서 기쁘고 행복하면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다. 인파가 몰리는 축제에 안일한 대비가 참사를 불렀듯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식 정책을 다시 점검하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시신이 백골이 되도록 찾지 못한 여인과,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분들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기도가 지난달 말일 ‘2022년 제1차 경기도공공보건의료위원회’를 열었다. 시·도 공공보건의료위원회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가치가 새롭게 각인된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신설된 정책기구다. ‘건강 격차 없는 환경 조성’이라는 선진복지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큰 활약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차별 없는 보건의료 환경 구축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정책 방향이다. 경기도공공보건의료위원회(이하 위원회)에는 행정1부지사와 경기도의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장·경기도의료원장·경기응급의료지원센터장·보건소장·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 등 20명의 도정 핵심 책임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첫 회의에서 ‘응급·외상·심뇌혈관·암 등 중증의료’..
현실은 소설보다 잔인했다. 이태원에서 젊은 청춘들이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지난밤, 연락이 닿지 않는 아이 때문에 애를 태운 부모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핼로윈의 밤은 끔찍했다. 옆에는 푸른 천에 시신들이 덮여있고 다른 쪽에선 구급대원들이 미친 듯이 CPR처치를 하고 있는데 상황을 모르는 지척에선 클럽의 음악에 맞춰 떼창과 춤이 멈추지 않았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왜 대한민국에선 이런 말도 안되는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인지.. 이를 묻고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애도는 희생자를 능멸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행사는 많다. 특히 대한민국은 수십만 명정도의 집회는 주말마다 예사로 치러낸다. 여의도나 해운대 등에서 매년 개최되는 불꽃축제도 백만명은 우습게 모..
이태원 무더기 압사 참극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대형 사고였다. 이번 비극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불감증’ 고질병이 치유 불능상태에 다다랐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참사를 계기로 연중 수많은 행사를 치르는 지역의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모든 이벤트에 관리주체를 분명히 하고 적용할 엄격한 ‘안전사고 예방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예기치 못한 불행을 소재로 시도하는 분열 작당만큼은 철저히 배격돼야 할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인근에서 핼러윈을 맞아 몰려든 군중이 내리막길에서 밀려 쓰러지고 밟히면서 무려 150여 명의 국내외 인명이 희생되고, 100여 명이 부상당하는 유례없는 참변이 일어났다. 좁은 내리막길 폭 4m, 길이 45m 내외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이 깔리거나 밀려 선 채..
마스크 시대가 지나간다. 숨쉬기 불편하고 트러블을 일으키는 답답한 마스크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와 더불어 서서히 절대적이던 위력을 잃어간다. 하지만 2년 전 코로나가 끝나면 마스크를 불 질러버리겠다던 사람들은 이미 마스크 의존에 빠졌다. 콘서트장이나 축제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산길을 걷거나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조차 마스크와 한몸이다. 알레르기나 감기 예방, 수시로 돌아오는 코로나 재 유행에 대한 불안 때문만은 아니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자신의 보호막을 잃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오 판츠(顔パン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마스크의 별명은 ‘얼굴 팬티’다.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팬티를 입지 않은 것처럼 얼굴이 허전하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물론 미국에서도 마스크를 쓴 모습이 더 멋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