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반지하 주민들이 참변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반지하 주택에 대한 대책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날마다 발표되는 “지하·반지하 공간을 주택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거나 “임대주택 보급으로 향후 20년 동안 개선하겠다”는 등 즉효성 없는 격화소양(隔靴搔癢)식 정책들을 들으며 영세 서민들은 속이 터진다. 장기적인 대책과 함께 당장 20만 가구의 열악하고 위험한 주거환경 개선책부터 먼저 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향후 20년 동안 공공임대 재건축으로 23만 호를 확보해 반지하 가구에 제공하고, 반지하 가구가 지상으로 이주할 때 2년간 월 20만 원씩 지원해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6일 ‘국민 주거 안정실현방안’을 통해 “반지하 등 모든..
누구나 알고 있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의 치부가 폭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 반지하에서 각각 살던 장애인 가족 3명과 50대 기초수급자 여성이 불어난 비를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원흉은 집중호우지만 실은 반지하다. 그들이 반지하가 아닌 지상 1층에만 살았더라도 물난리로 어이없이 죽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외신은 한국의 반지하에 방점을 찍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중요한 배경인 반지하가 이번 폭우로 맨얼굴을 드러냈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런 비정상적 주거 형태는 세계에서 한국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의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은 32만7320가구(2020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로 대략 62만여 명이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 통계도 덧붙여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정 구두를 신고 반지하를 내려다보았고, 오세훈 서울 시장은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인재(人災) 속에서, 정치지도자들의 영혼 없는 모습이 겹쳐지면서 비로소 얼굴이 드러난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들의 얼굴이 과연 있기는 있는 걸까? 지난 80년대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은 민중자서전 시리즈를 통해 얼굴 없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등장시켰다. 일본의 한 출판사가 번역 출간했을 정도로 이 기획은 국내외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981년부터 10년간 모두 20권을 펴냈는데 말로 풀어 낸 것을 전혀 고치지 않고 그대로 담아 가히 민중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벌교 농부 이봉원 씨의 자서전 일부를 보자. “그전이는 인자 흔트모, 흔트모, 기양 방 골래서 여윽 꽂고, 여윽 꽂고, 여윽 꽂고, 그릏곰 기양 막 슁겨 나가. 기양 멍체이 모로 싱궜어. 기양 아믛게나 강골라서 차꼬 모 싱군 사람덜이 인자 방 골래서 꼽아, 항클방클허니.”(‘그때는 고롷고롬 돼 있제’, 73쪽.) 예전에는 못줄을 쓰지 않고 모를 심었기 때문에 논이 삐뚤빼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부사 등을 많이 써서 상황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목수, 옹기쟁이, 보부상, 진도 강강술래 앞소리꾼, 뗏사공, 설장구잽이, 농사꾼, 고수…밑바닥 사람들의 삶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입말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예는 역사적으로 극히 드문 예가 아닌가 한다. 바로 이 대목이 이번 폭우 속에서 숨진 반지하 사람들을 뉴스를 통해 접할 때 크게 다가왔다. 그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더욱 안타깝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들의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작은 꿈들을 꾸었을까? 앞서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숫자는 대략 경기 안산시(7월 기준 64만 8,164명 거주) 인구 정도다. 이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정치권에서 약자를 받들겠다는 소리가 요란해도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기에 40여 년 전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사랑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나온 민중자서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중자서전, 양적으로만 치닫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비춰주는 거울 아닐까?
영미 팝송을 월드뮤직의 전부로 알고 자란 사춘기 때, 영어가사 노래를 들으면 영미권 가수겠거니, 짐작했다. 제랄드 졸링(Gerard Joling)의 티켓 투 더 트로픽(Tiket To The Tropics)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노래 분위기가 딱 미국 팝송이었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 노래였다. 노래에 빠져든 건 졸링의 목소리와 가사 때문이었다. 조관우 목소리의 서양버전이랄까, 남성 같지 않은 미성이다. 조관우는 가성으로 내는 목소리라던데 졸링은 본목소리란다. 화려하면서도 달콤하고 쓸쓸하다. 가사는 ‘사랑 잃은 자가 연인에게 마음으로 쓰는 편지’ 라 할 수 있는데 시 같다. 홀로 앉아 있는 이곳은 추워지고/아침 비는 유리창을 때리고 있어요/ 날씨는 온통 춥고 흐리네요/ 마음 속에 생각의 나래를 펴요/ 나는 열대의 섬으로 가려해요/ 나를 늘 몽상가라 불렀던 당신/ 내게 걸림돌이 되었던 당신/ 열대로 가는 차표를 한 장 사겠어요/ 혼자 되어 이곳을 뒤로하고 떠나렵니다( 후략) 사랑 잃고 고통에 빠진 이의 행로가 대단히 활동적(?)이다. 대개 실연 가사의 주 레퍼토리는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형, ‘담배 연기에 고독을 날리고 술로 쓰린 속을 긁어 이열치열하는’ 학대형, ‘정처 없이 길을 헤매는’ 방황형(헤매봐야 동네일 듯) 등이다. 가사의 내용을 유추하면 반경 10킬로 밖은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졸링의 노래 속 인물은 사랑을 잊기 위해 열대섬으로 가는 차표를 사려한다. 사랑도 실연도 대륙적이다. 졸링의 나라 네덜란드라 그런가, 하는 억측이 든다. 네덜란드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 세계를 주름잡던 해운강국이었다. 기원전 6500년경, 켈트족이 살았던 네덜란드 역사는 기원전 50년경의 로마 침입을 시작으로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등의 강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림 받았던 약소국의 역사다.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16세기 후반, 북방무역의 70%를 휩쓸고 전 유럽보다 많은 상선으로 세계 해운업계를 평정했던 무역대국이 된 것일까. 대개 모직공업과 청어산업이 잘돼 급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배경에는 유대인의 두뇌가 있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을 가장 많이 받아준 곳이 바로 네덜란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스페인은 전쟁포상금 마련을 위해 부유한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기로 하고 ‘카톨릭 신앙에 해악을 주었다’는 명목으로 추방) 유대인들은 ‘플류트’라는 특수 화물선을 개발, 발전시켜 해양무역왕국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나아가 최초의 증권거래소, 최초의 은행을 네덜란드에 세워 금융왕국을 만든 주역이기도 했다. 16-17세기 네덜란드 융성의 중심에 유대인들이 있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유대인들에게 문을 활짝 연 네덜란드의 개방성이 유럽역사를 바꾼 것이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폭우 속 반지하 일가족 3명 사망. BBC는 “기생충 반지하의 진짜 비극”을 집중 조명했다. G5 국가를 꿈꾸던 대한민국이 외신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국민들은 넷플릭스 세계 1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부끄러움을 달래는 중이다. 비극이 발생했던 지난 9일, 비상시국에 우리의 대통령은 “공무원 11시 출근”을 지시했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집중폭우 속에서 공무원들은 이미 비상근무체제에 들어섰고, 직장인들은 대부분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나” “폭우 피해 있었나?”라고 해 국민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한 정치 효능감 ‘제로’ 상태다. 공자는 정치를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라고 했다. “먹을 것이 충분하고, 병사가 충분하고,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덧붙였다. 현대의 상황에 맞춰 해석하면 정치란 경제,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민과의 신뢰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경제와 안보는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신뢰는 20%대다. 재해재난 속에서 보여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아마추어적 위기관리는 이미 ‘청와대 이전’에서 예견됐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대통령 취임 이후 다음날부터 지각 논란’이 일면서 진즉에 깨졌다. 새 대통령은 비전 제시와 소통보다는 전(前) 정부 비난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논쟁에만 매달려 왔다. 하지만 늘 위대한 우리 국민은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를 따지는 것보다 “똑똑한 정부, 유능한 정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또, 국민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보다는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65%가 국정운영을 ‘잘못’으로 평가했다(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의뢰 NBS 여론조사 ; 8.11 발표). 능력 부족,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라는 문제는 늘 지적돼왔다. 아마추어리즘은 그 분야 최고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극복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온전한 이해에 달렸다. 민주주의는 여론에 의해 움직이고, 여론은 정부신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집중호우를 계기로 대통령실은 전면적으로 개편돼야만 한다. 대통령은 독선에서 벗어나 국정철학을 재정비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해야 한다. 재난에서 보았듯이 생명과 환경은 중요한 정책의제다. ‘반지하의 비극’에서 보았듯이 형평과 평등의 가치는 민생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정책가치다. 국정운영에 오롯이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폭우에 잠긴 경제와 안보, 신뢰를 건져낼 수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LNG 시장으로 확산되며 올 겨울을 앞둔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갔다. 최근 한국과 일본에 수입되는 평균 LNG 현물가격 지표인 JKM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지난 11일 JKM 가격은 MMBtu(열량 단위, 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9%나 올라 50.628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27일 이후 최고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 3월 기록한 역대 최고가의 70% 수준이지만 연중 이맘때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으로 높은 가격이다. 세계 최대 LNG 구매국 중 하나인 일본이 겨울용 비축량 확보를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비축분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파이프 라인 공급이..
바라보는데 바라보지 않는다 쪼그려 앉은 시선의 끝에 이슬 같은 허공이 한 방울 매달려 있다
중부지방에 큰비가 내렸다. 서울은 100년 만에 보는 기록적인 폭우라고 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9일 새벽 1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비상근무 2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했다. 위기경보 수준도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발령했다. 이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번 폭우로 중부지방 곳곳이 물에 잠겼다. 산사태가 일어나고 도로와 상가, 주택, 지하철역이 침수됐다. 도로와 골목은 재난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차량들이 둥둥 떠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다. 도내 광주시와 화성시, 양평군에서도 토사매몰, 침수 등으로 숨졌다. 하천 범람으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가로수를 정리하던 구청 직원이 사망했다. 주택 침수로 숨진 사람들도 있다.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도 폭우에 참변을 당했다. 모두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박정희는 남로당 군사담당 책임자였다. 한국전쟁 직전 발생한 여순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됐으나 곧바로 전향했다. 자신의 ‘세포’ 전원을 밀고해 조직을 일망타진한 공을 인정받아 군으로 복귀했다. 황국신민이 될 것임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 만주군 장교가 되었던 그는 일제 패망으로 세상이 바뀌자 남로당 간부로 변신했고, 여순사건 후에는 다시 전향해 국군 장교로 둔갑했다. 그가 시현한 전향과 변절 과정은 일반의 상상을 절한다.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는 북에서 특사로 보낸 자신의 맏형 박상희의 절친 황태성까지 잡아 죽였다. 황은 그가 친형처럼 따르던 한 고향 출신의 ‘이념적 형님’이었다. 정신의학자들은 변절한 인간은 쉽게 저열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주지육림에 빠져드는 특성을 지닌다고 진단한다. 가치와 신념을 내던지고 변절할 경우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 부끄러운 과거를 잊으려고 했는지 모르나 박정희는 살아 있을 때 술을 엄청 마셔댔다. 심복의 총탄에 맞아 죽은 마지막 순간에도 여자들을 곁에 두고 술판을 벌였다. 우리는 뜻이 맞은 친구를 ‘동지’라고 부른다. 옳은 일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과 실천을 공유하는 동반자를 뜻하는 이 말이 아무한테나 붙여지진 않는다. 독재에 저항한 사람들의 강한 동지애는 엄혹한 시절에 비밀경찰과 공안검찰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그 극한의 역경을 이겨낸 큰 힘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구타와 몽둥이질은 기본이고 물고문과 전기고문, 통닭구이를 비롯한 별의별 지독한 고문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인간백정’으로 불린 고문 기술자들은 사람을 짐승 다루듯 했다. 최고의 ‘기술자’ 이근안이 고위직까지 출세한 것도 민주 인사들을 상대로 갖은 악랄한 고문 수법을 구사해 정권의 입맛대로 허위 자백을 잘 받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민청련 활동가인 김근태, 이을호 뿐 아니라 언론인 송건호, 김태홍 등도 그들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일찍 세상과 작별해야 했다. 고문자들은 심지어 참고인으로 끌고 간 박종철을 물고문하다 숨지게도 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어둠의 시대에도 불의를 이기는 힘은 동지에 대한 강한 믿음과, 역사가 진보하리라는 굳은 신념에서 나왔다. 부정의하고 부패한 세력은 필경 인간의 선한 의지로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곳이 변절자와 동지의 행로가 갈리는 지점이다. 한번이라도 배신한 적이 있는 자는 반드시 또 배신하게 돼 있다.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이들이 이미 인격분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너진 자들은 사익을 위해 한 순간 서로 돕다가 배신하기도 하는데, 결국 다툼 끝에 공멸하는 법이다. 정부가 신임 경찰국장으로 노동운동 프락치 출신으로 특채된 의혹이 있는 인물을 발탁했다. 그가 과거 무슨 짓을 얼마나 했는지는 공직 수행에 앞선 필수 검증대상이 돼야 한다. 검찰개혁을 철썩 같이 믿게 하고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에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윤석열 대통령의 선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의 공적 마인드는 전체 공직사회의 기준이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도쿄에서 쿼드 정상회의에 참가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출범을 주관하였다. 6월엔 유럽으로 가서 G7과 NATO 회의에 참석하였고, 7월에는 이스라엘에서 I2U2 정상회의의 출범을 주관하는 등 매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이른바 알파벳 수프 외교라는 별칭이 생겨났을 정도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I2U2이다. I2U2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I2U2는 인도Indo와 이스라엘Israel의 I와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와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의 U를 합성하여 만든 두문자어다. 이들 4개국(쿼드)의 상호 경제적 협력을 선언한 소다자협의체이다. 2020년 9월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아브라함 협정이 토대가 되었다. 미국, 일..
시아버지가 부쩍 노쇠해지셨다. 식욕이 줄고 활동량이 없으시더니 무기력하게 누워만 계셨다. 은퇴 후 소일거리 없이 지내신지 15년, 무심한 세월에 기력마저 잃으셨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혈액검사를 시작으로 뇌, 위, 전립선, 대장까지 검사해 봤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존엄한 노후에 대해 곧잘 말해왔지만 정작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치자 자식으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툴고 헤매기만 했다. 그렇게 한 달. 한국 의료와 복지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것은 허점과 오류, 맹탕 수준의 노후였다. 엄격하고 자존심 센 아버지 당신이 무력한 존재가 되면서부터 노년의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거동을 못하시게 된 아버지를 위해 노인용품을 하나씩 장만하면서 자식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서러운 사연을 짐작해본다. 청년 시절 빛나던 청춘이 풍화(風化)되어 재처럼 남고 장년의 기세도 추억으로 아른거릴 삶. 가난에 찌들어 눈빛도 바랬고 온 얼굴 가득 주름살 오글쪼글 지하철 공짜로 타는 것 말고는 늙어서 받은 것 아무것도 없네 /김광규, 쪽방 할머니 한국 70대 노인 빈곤율은 전체 노인의 절반에 이르고 자살률은 세계 1위를 기록한다. 노인 자살의 주된 이유는 경제적 빈곤이다. 더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바랄 수도 없이 늙음을 마주하는 이들은 폐지를 줍거나 전철에서 소일하며 노후를 보낸다. 그나마 기초노령연금이라도 있어 숨 쉴 틈이라도 생겼다지만 여전히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이 늙어서 받는 현실적인 복지 혜택의 거의 전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노년도 있지만 노후가 대체로 슬픈 이 나라에는 “짤짤이 순례길”도 있다. 종교 단체가 요일과 시간을 정해 나눠주는 달랑 500원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길을 걷는데 그렇게 교회와 성당을 반나절 돌아 모은 몇 천원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가난한 노인들은 스스로 자조 섞인 말로 짤짤이 순례길이라 부른다고 한다. 존엄한 삶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해야할 절박하고 서글픈 현실에 서 있는 존재들의 성지길인 것이다. 시아버지는 앞서 말한 유형에는 속하지 않는 노인이었다. 무기력할지라도 삶 언저리에서 늙어감에 견디며 버티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끝끝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한 달여 만에 돌아가셨고 쓸쓸한 노년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의 젊음은 유한하며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당연한 이치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노화와 죽음, 법칙은 단순한데 복잡한 심경은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오늘 네가 승리했더라도 기쁨에 취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뜻을 지녔다는 라틴어가 삶에 죽음을 ‘각인’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삶에 각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