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49년이었고 초대 지방의회는 1952년 지방총선거가 실시되면서 탄생했다. 하지만 1961년 5·16이 일어나면서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해산됐고 1991년에야 지방의회(기초·광역의원 선출) 선거가 다시 치러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다. 올해부터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대변혁을 맞이했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정책 지원 전문인력 도입 등 자치입법권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회 의원들의 구태는 여전하다. 말만 지방이지 중앙정치의 못된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의 감시와 견제가 주요 역할이다. 하지만 중앙정치 논리와 의석수에 따라 사사건건 딴지를 걸거나 무조건 협조하느라 감시와 견제 기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의회 활동 중 물의를 일으키는 의원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2월 발간한 지방의회 백서에 따르면 민선 6기(2014년 7월~2018년 6월) 지방의회 의원 중 사법처리된 사람은 149명이었다. ‘지방의회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국민 만족도가 겨우 13%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경기도민들이 경기도의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매우 차갑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제11대 경기도의회는 78대 78 여야 동수로 출범했다. 원활한 의회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12일 첫 본회의가 열린 뒤 5분 만에 정회하고 19일과 25일도 무산되면서 경기도의회의 개점휴업 상태는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의장 선출 방식과 의석수 증가(10대 142석→11대 156석)에 따른 상임위원회 증설문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경기도·경기도교육청 분리 등 여러 쟁점을 놓고 원 구성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급한 안건도 묶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당초 예산 33조6036억 원보다 1조4387억 원(4.3%) 증가한 35조423억 원 규모의 제1회 추경예산안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취임 직후에 결재한 ‘비상경제 대응 민생안정 종합계획’을 추진을 위한 추경이다. 이 예산은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직접 지원 예산과 코로나19 생활지원비 등이다. 코로나19와 경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민들에게 꼭 필요한 예산인 것이다. 그러나 양당의 힘겨루기로 첫 임시회가 파행됨으로써 추경은 이달 내 처리가 힘들게 됐다. 이에 소상공인들이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다. 지난 22일엔 경기도상인연합회와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 소속 회원 50여 명이 경기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민생경제 대응 종합 계획’에 150만 소상공인들이 희망과 기대를 하고 있다며 개원조차 못하는 도의회를 거세게 비난 했다. 26일 경기도청공무원노동조합도 “코로나19 생활지원비 지급, 지역화폐 발행 지원, 고금리 대출대환 특례보증 등 비상경제 대응과 민생안정을 위해” 도의회 정상화를 요구했다. 옳다. 지방의회는 지역민의 민생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조속한 개원을 촉구한다.
최근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시급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학교측을 상대로 4개월째 시위 중이다. 학교당국은 침묵한다. 몇몇 학생들이 수업권 침해를 주장하며 노조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스무 살 청년들이 옳다고 편드는 어른들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물론 그 애들 편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선 그 부모들 대부분이 그쪽일 거다. 밭이 산물의 등급을 정하잖나. 그 '학구파'들이 교수나 국회의원이 된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다. 민주당 의원들 몇이 중재를 하는 모양이다. 무명의 뜻있는 다수도 연대하여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화해와 합의로 결론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유사상황으로 갈등하고 있는 다른 대학들, 공공기관들, 기업들의 청소/경비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1898년 9월 10일은 고종황제의 생일날이었다. 그날 독립협회는 평양 대동강 모란봉 광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지식인, 학생, 부인, 상인, 백정 등 1만명이 신분을 초월하여 모여들었다. 이 애국토론회에 스무 살 청년 하나가 연사로 등단, 귀빈으로 참여한 지역유지들을 포함, 조정을 간담이 서늘하게 꾸짖었다. "백성들은 사또가 좋은 정치를 베풀어서 잘살게 해주기를 바라지만, 관리들은 서로 싸움질이나 하고 세금 거두어 배터지게 먹기나 하니 나라꼴이 제대로 되겠는가. 백성들의 안위를 책임진 진위대장은 죄없는 사람들 족쳐서 재물을 빼앗아 가니 장차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요즘으로 추산하면 백만 명 정도될 그 군중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가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이다. 그는 1902년 유학 목적으로 미국에 갔으나 이민 1세대 교포들의 처참한 생활수준을 목격하고는 학업을 단념한다. 그들은 지저분하고 더럽고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는 야만족 취급을 받았다. 도산은 곧바로 교포사회를 지도하는 일에 헌신한다. 각 가정을 방문하여 청소해주고 눈 오면 가장 먼저 거리를 쓸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솔선했다. 그 진정성 덕에 마침내 동포사회가 변하기 시작했다. 도산의 가르침과 덕행은 두터운 경전의 어록들 같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중 '모란봉 연설' 때 도산이 겨우 스무 살의 애송이였다는 사실과, 미국 망명 시기에 '대한 사람'ㅡ도산의 표현ㅡ의 자부심을 완전히 무너뜨린 교민들을 이끌어 미국사회에서 민족의 명예를 되찾는 일에 헌신했던 대목을 특별히 상기한다. 20대 초반의 그 학도들이 전두환 일당도 아니고, 하필이면 이 세상 최약자들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작태를 도저히 외면하고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2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과 당대 수퍼-리치 빌 게이츠도 약관(弱冠) 스물에 자이언트가 되었다. 간장종지에 무슨 수로 바다를 담겠는가.
국회가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함으로써 연금개혁 논의를 공식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연금 전문가로 통하는 5선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갖가지 한계 노출로 지속가능성이 고갈된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됐지만, 이를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여기는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무한정 시간만 끌어왔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어물쩍’ 넘기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금제도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에 비유될 만큼 끔찍한 재앙으로 묘사된다. 군인연금, 공무원연금에 이어 올해는 사학연금도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연초에 한국경제연구원은 ‘현 제도에선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국회예산정책..
플로킹이 유행이다. 플로킹(Ploking)이란 길을 걸으며(Walking) 쓰레기를 줍는 행동으로, 이삭줍기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플로카 웁(Plocka upp)과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인 플로깅(Plogging)과 함께 북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전 세계적 환경운동이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스쿼트 운동과 비슷하며, 쓰레기를 담은 봉투를 들고 뛰기에 조깅보다 칼로리 소비가 많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또한 최근 방송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플로킹을 하는 모습이 노출되며 교육적 놀이로도 주목받고 있다. 기업은 임직원 플로킹 캠페인을 열거나 플로깅 용품을 제공하는 등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위해 유행에 편승한지 오래다. 여행 역시 국내 숙..
정신의학자 마사 스타우트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상식이나 남의 불행에 공감을 못 하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때로 무자비한 행동으로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이러한 소시오패스들이 권력과 그 주변에서 활개를 치는 듯하다. 조선업 하청 노동자 파업과 관련한 정부와 공기업 대우조선해양의 대응 방식은 참으로 몰상식할 정도로 소시오패스적이다. 5년 전 닥친 세계적 불황기에 이 회사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고통 분담에 동참해 임금을 무려 30%나 스스로 삭감했다. 이제 업황이 흑자로 전환되면서 노동자들은 약속한 대로 임금을 정상화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었고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파업을 벌였는데, 현 정부는 무력 진압을 공언했다. 약속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과연 그렇게 무리한 것인가? 대통령이 파업과 관련해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말했다는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참았다는 것인가? 임금 협상이 타결됐으나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분명하다. 하청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5년 전 1만3천원에서 현재 9500원으로 깎였으니 합의대로 4.5%를 올려준다 한들 주 48시간 노동 기준으로 월 소득은 대략 190만원 남짓이 될 것이다. 이 돈으로 4인 가족이 어찌 살 수 있는가? 공감 제로의 비인도적 처사이다. 파업 때문이라며 크게 부풀려진 회사 손실분에 대한 배상 소송과 파업 지도부 처벌이라는 강경 방침도 여전히 철회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법과 원칙, 상식’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이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이에 반하는 짓 투성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주가 조작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 부인이 제대로 된 수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대부분 구속돼 있는데 이런 봐주기가 국민의 법 감정과 건전한 상식률에 맞는가? 대통령 부부의 지인들이 비서실 등에 마구 채용되고 있는 것이 해괴하다. ‘욕설 유투브’를 운영하는 소시오패스의 누나가 홍보수석실에 채용되어 근무했다거나 대통령실 인사 부인이 대통령 해외순방 행사 사전 답사를 한답시고 한 달 전 현지로 갔다가 전용기에 동승해 귀국한 행동 등도 일반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터이다. 대통령 최측근인 여당 대표가 지인 아들을 대통령 비서실에 ‘꽂아 넣었다’고 자랑스레 떠든 것은 듣는 이를 아연케 한다. 그는 몇해 전 공기업 간부 채용과 관련해 인사 청탁 혐의로 기소됐다가 혼자만 무죄로 풀려난 전력의 소유자다. 당시 검찰의 봐주기 ‘부실 기소’로 무죄를 받아냈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문제는 괴이한 행태가 주로 국민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주요 인사들이 여론의 따가운 비판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이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일반이 지닌 공감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심마저 든다. 공감 능력과 양심이 결여된 ‘권력형 소시오패스’가 지배하는 나라가 된 것인가?.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 그의 그림엔 아이와 여인, 꽃을 든 남자와 비둘기, 뛰어 오르는 염소와 아이들, 방긋 웃는 해님이 등장한다. 동심을 부활시키는 이 소재들은 우리의 맘을 녹여주고 꿈꾸게 한다. 20세기 프랑스에 귀화해 성공한 최고의 예술가 샤갈.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와 네오 프리미티즘 성격을 띤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동유럽의 유대인 마을 슈테틀과 유대전통, 그리고 러시아 민속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샤갈은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식료품 가게를 했고 아버지는 시나고그에서 일했다. 다정한 어머니는 항상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다. 그림에 소질이 많은 샤갈은 일찍부터 데생을 공부했고 스무 살 때 생페테르부르크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레옹 박스트(Léon Bakst)가 연 프랑스 인상주의에 눈을 떴고 파리를 사모했다. 러시아의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리자 그는 스물세 살 때 파리로 피난 왔다. 이때 원래 이름인 모이슈 자카로비치 샤갈로프(Moishe Zakharovitch Shagalov)를 프랑스식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다. 그러나 기구한 유대인의 운명은 파리 정착을 어렵게 했고 끝없이 세계를 떠도는 노마드로 만들었다. 나이 오십이 돼서야 그는 그토록 원했던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파리를 제2의 고향으로 자부하던 샤갈. 하지만 맘속엔 언제나 조국 러시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비테프스크는 그의 상상 속에 동심의 천진난만한 낙원이었다. 센 강의 다리들과 에펠탑을 그릴 때도 배경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장식했다. 그 유명한 ‘눈 내리는 마을’도 샤갈이 프랑스 방스에 살면서 비테프스크가 그리워 그린 그림이다. 샤갈은 말년에 프랑스 남부로 떠났다. 니스 근처 방스(Vence)의 마티스 예배당 근처에 정착한 그는 마티스, 피카소, 마그넬리, 레제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교류했고 미술적 테크닉을 넓혀 갔다. 하지만 곧 생폴드방스(Saint-Paul de Vence)로 이사해 마을 어귀에 ‘동산’을 짓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샤갈이 친구들을 자주 만났던 콜롱브도르와 플라스드카페, 그가 산책했던 트리우스 교차로와 생 클레르 길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했다. 샤갈의 생폴드방스의 그림은 모두 사랑에 진동하는 서정시였다. 사랑하는 연인들, 푸른 하늘 속 평온한 둥지, 성벽과 마을 위에 떠도는 새와 꽃다발. 실제의 그곳 역시 그러하다. 골목골목 깔려 있는 매끌매끌한 돌멩이마저 예술인 그곳. 마르셸 파놀이 ‘내 아버지의 영광’을 영화화한 ‘마르셀의 여름’에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 주인공 샤를이 꿈속에서 조차 그리워했고 죽어서도 오매불망 잊지 못한 동화 속 나라. 그곳은 바로 샤갈의 마을 생폴드방스였다.
연일 추락하는 새 정부의 국정지지도를 보면서 쉬운 길을 나두고 어려운 길, 그것도 가서는 안 되는 길을 택하여 고생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지도 추락의 원인은 각자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북관계만을 가지고 논하고자 한다. 북한에 끌려 다니다 핵문제 등 남북문제를 망쳤다는 생각으로 탈북자 북송 등을 정쟁화하여 지지를 얻겠다고 기대했다면 이는 큰 착각이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과거 북풍공작 같은 일에 휩쓸릴 정도은 아니며 나름 균형감각을 갖는 안보관을 갖고 있다. 그런 수준 있는 우리 국민이기에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관점에 따라 첩보 등 당시 상황을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인데, 지금의 최우선 과제인 경제문제는 제쳐두고, 남의 탓을 통한 자신의 정체성, 가치..
21대 후반기 국회가 50여일의 긴 식물국회를 끝내고 대정부질문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됐다. 국내외 대형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많은 국민들은 그동안 허송세월한 시간을 압축해 입법부 본연의 임무를 다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여야 정치권을 보면 제사보다는 젯밥에 쏠려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바로 2024년 총선 공천권과 관련한 차기 당권 경쟁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로 흘러가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8월 28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국민들이 더 주목하고 우려하는 곳은 집권여당인 국민의당이다. 정상적인 일정대로라면 내년 6월에 당 대표가 선출돼야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6개월의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으면서 당 지도체제의 불확실성이 파장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당 내부가 이대표 대 비(非)..
진정되는듯한 코로나가 다시금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1주일 사이에 두 배로 뛴다는 더블링이 이어져 전문가들은 8월에는 3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로나의 재확산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 되어 각국은 모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BA.5)에 이어 더욱 강력하다는 켄타우로스(BA.2.75)까지 거듭되는 변이의 발생으로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서구의 학자들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종결시키는 방안으로 4가지 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첫째가 가장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부터 배려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적 관점이고 둘째는 최대 다수가 혜택을 봐야 하므로 먼저 완쾌가 빠른 젊은 층에 집중해서 방역과 치료를 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 셋째는 개인의 생명까지도 자유이므로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로버트 노직의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가 그것이다. 정답은 단연코 4번째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이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고 세계 최다의 확진자국가가 된 것은 전적으로 자유방임주의적 마인드와 정책 덕분이었다. 한국은 지난달 말 블룸버그에서 선정한 코로나19 회복력 전 세계 1위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이는 4번째 방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비난이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국경을 봉쇄하지 않았고 신속한 선별진료소 운영과 빠른 격리, 치유,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까지 국가의 주도와 자발적인 국민의 참여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민관 합동으로 함께 고통을 극복한 한국의 모범적인 방역시스템에 대해 세계는 K-방역이라며 칭송했다. 비록 자유롭게 해외를 나가서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국제회의에서 한국 대표들에 대한 절대적인 환대가 그것을 증명했다. 이런 성과에도 전임 정부의 정책을 정치방역이라 비판하며 자신들은 과학방역을 하겠다던 현 정부는 막상 뚜껑을 여니 과학은 온데간데없고, 각자도생이라는 방역법만을 제시한다. 정권이 자랑하는 도어 스테핑에서 대통령은 과학방역이 기본 철학이지만 희생과 강요가 아닌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방역을 하겠다고 한다. 정권 출범 두 달이 지났음에도 방역정책을 총괄할 장관은 없고 신임 질병청장은 통제중심의 국가주도 방역은 지속 가능하지도 못하고 또 지향할 목표도 아니란다. 그럼 국가가 왜 있는 것이지? 전 정부에서 확보했던 비상용 병실, 선별진료소 등은 대부분 철수했고 자가 진단키트의 가격도 몇 배로 뛰었다. 중소기업에 지급되던 유급 휴가비와 생활지원비는 축소되고 재택치료비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인상된 것은 사망 시 위로금 정도이다. 우스갯소리로 ‘과학방역’이 아니라 ‘가학방역’이라고 하니 각자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것이다. 전세계에 자랑했던 K-방역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우리도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는 국가가 되고 있다. 하긴 몰락하는 게 방역 정책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립다, 그리고 돌아오라 K-방역.
세상은 늘 한 번에 망가지지 않는다. 서서히 붕괴한다. 그건 마치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형사 해준(박해일)이 서래라는 이름의 조선족 여인(탕웨이) 때문에 붕괴하는 것과 같다. 붕괴는 물리적인 파괴보다 해준처럼 참담함이라는 정서적 공습으로 다가선다. 붕괴는 간조(干潮)가 끝나고 밀물이 차오를 때 마냥 서서히 스며든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렇다. 예컨대 1. 이전 정부 때까지 정권의 핵심 공간이었던 청와대를 지금의 정부는 베르사유 궁전처럼 바꿔 관광 장소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이미 그곳을 버린 자들이지만 공적인 공간을 자기들 멋대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 일단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적어도 공청회 같은 것, 여론을 모으는 척 같은 것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게 누구 발상이고 누구 아이디어인지, 생각한..